6월 중순 진행된 서울국제도서전은 올해도 수많은 독자들의 발길을 모았다. '텍스트 힙(Text Hip)'이라는 신조어도 생겨났을 만큼, 최근 젊은 세대는 독서를 '힙한' 행위로 인식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지적 허영이라며 비판하기도 하지만, 그 동력이 무엇이든 독서를 통해 본인의 내면에도, 출판계에도 활력을 불어넣게 되므로 이는 분명 긍정적인 현상이다.
특히 현재 소설 베스트셀러 상위 20개 중 16개가 한국 소설일 만큼 한국 문학계의 열기가 여전히 뜨겁다.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작품들부터, 『모순』(양귀자), 『급류』(정대건), 『구의 증명』(최진영) 등 예전에 출간된 작품들이 다시 떠오르기도 했고, 또 새롭게 나온 신간들도 다수 보인다. 이번 글에서는 올 상반기 주목할 만한 국내 소설 신간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크기변환]혼모노.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6/20250628221029_xmientug.jpg)
『혼모노』(성해나)
현재 소설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책이다. 7개 단편이 수록되어 있으며, 지난 3월 출간된 이후 지금까지도 뜨거운 반응과 관심을 얻고 있다.
우선 단편의 소재들이 매우 다양하면서도 하나하나 파격적이다. 논란이 있는 누군가에게 팬심을 품는 일. 태극기 부대를 만난 외국인의 시선. 진짜와 가짜의 날카로운 경계에 선 무당. 고문 시설을 설계해야 했던 건축가의 마음. 직장 내의 불편한 관계. 자녀를 둘러싼 엄마와 시아버지의 욕망 같은 것들.
그 소재들을 몰입감 넘치는 필력과 도발적인 이야기로 풀어나간다. 공통적으로 배어 나오는 작가의 관심사는 "미끈해 보이는 것 안쪽에 숨겨져 있는 무언가"(「스무드」)다. 첫 번째로 수록된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의 이야기가, 발톱과 송곳니가 다 빠진 호랑이의 이미지로 끝맺어지는 순간 이 책에 완전히 넘어가고 말았다.
이후의 단편들에서도 작가는 계속해서 혼모노(ほんもの), 즉 '진짜'에 관한 물음을 던진다. 가짜 너머의 진짜. 미끈한 구 안쪽의 무언가. 쾌감 너머의 통증. 이는 단편소설이라는 장르가 응당 포착해야 할 사회적 지점들과도 맞닿아 있다. 최근 개인의 내면에 집중하는 부드러운 단편들이 주류를 이루었던 만큼, 마치 이전 세대 작가들이 엿보이는 듯한 이 거친 책이 더욱 반갑게 느껴졌다.
『혼모노』를 직접 읽어본다면, 성해나 작가가 최근 다수의 문학상을 휩쓸고 베스트셀러 1위에 머무는 것을 누구나 납득하게 되리라 믿는다.
![[크기변환]안녕이라그랬어.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6/20250628221315_lhvmehxx.jpg)
『안녕이라 그랬어』(김애란)
6월 말 출간된 따끈따끈한 신간으로, 한국 문학의 한 축을 이루는 김애란 작가가 8년 만에 낸 소설집이다. 마찬가지로 7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안녕'이라는 단어는 우리말에서 독특한 단어 중 하나다. 대부분의 언어에서는 만났을 때와 헤어질 때의 인사말을 구분하는데, 우리나라의 '안녕'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듯 이 책의 관심사는 그러한 만남과 헤어짐의 문제에 있다.
단편 속 인물들 역시 공통적으로 타인의 영역을 경험하고 그로부터 충돌을 겪는다. 가깝게는 가족부터, 후배들, 지도하는 학생과 학부모, 집주인, 해외여행 중 만난 노동자까지. 내가 위에 있거나, 아래에 있거나, 혹은 나란히 있지만 어긋나있다.
그리고 작가는 그와 함께, "틀린 방식으로 맞을 수밖에 없는 순간"(「안녕이라 그랬어」)도 있음을 보여준다. 화상 영어 강사나 처음 본 도배사 같은, 잘 모르는 사람한테 오히려 마음을 열게 되는 경험을 나 역시 해봤다. 만남과 헤어짐, 열고 닫음, 틀림과 맞음, 모름과 앎. 그 모든 것은 연결되고 공존할 수 있다. 타인을 대할 때 우리는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개인주의가 심해지고 있는 세상에 필요한 소설이 아닌가 생각한다. 김애란 작가 특유의 투명하면서도 다정한 시선은 이번 책에서도 잘 드러난다. 소설에 등장하는 노래 "Love Hurts"를 틀어놓고 읽어보기를 권한다.
![[크기변환]봄밤의모든것.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6/20250628221517_ubathlen.jpg)
『봄밤의 모든 것』(백수린)
안정적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백수린 작가의 네 번째 소설집으로, 지난 2월 출간되었다. 마찬가지로 7개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바깥은 여름』(김애란)이 실은 밖의 여름과 대비되는 시린 겨울 이야기인 것처럼, 『봄밤의 모든 것』 역시도 겨울의 한복판에서 봄밤의 온기를 쫓는 소설들이다.
수없이 많은 것을 잃어본 늙고 지친 할머니가 작은 앵무새에게 기어코 또 사랑에 빠지는 것(「아주 환한 날들」). 혼자 사는 가난한 할아버지가 그저 내년에는 금잔화를 심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잠드는 것(「호우豪雨」). 김수영의 시 「봄밤」과 권여선의 단편소설 「봄밤」을 너무나 애정하는 독자로서, 백수린 작가가 그려내는 봄밤의 모든 것들이 마음에 꼭 들었다.
시간의 흐름과 변화는 대개 부정적이고 덧없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이 단편들에서는 전반적으로 그것을 긍정한다. 정확히는 돌아올 수 없는 것보다는, 변하지 않는 것을 생각하려 한다. 작가와 비슷한 관심사를 지닌 사람이라면 정신없이 글을 따라가게 될 것이다. 백수린 작가는 섬세한 감정선 묘사에 강한 작가인데, 수십 년 세월의 흐름을 단편소설에서 충분히 풀어내기에는 한계가 있어 아쉬움은 남는다.
그럼에도 '빛의 소설가' 백수린다운 반짝임은 여전하다. 상실에 관한 이야기들이 이토록 단정하면서도 반짝일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빛나는 작가들과 함께, 한국문학의 미래도 그처럼 눈이 부시기만을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