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킬힐을 벗어야 계단을 오를 수 있기에 [드라마]

훔친 인생을 사는 한 여자의 이야기, 드라마 '안나'
글 입력 2022.07.14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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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시작한 거짓말은 돌이킬 수 없었다. 훔친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냈지만, 결국 가짜는 진짜가 될 수 없었고 진실은 거짓에 묻혀 존재를 잃어갔다.


정한아 작가의 소설 '친밀한 이방인'을 원작으로 한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드라마 '안나'의 이야기다. 이주영 감독의 손에 6부작 드라마로 재탄생 된 '안나'는 수지, 김준한, 정은채 등 출연진의 연기력과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 여운을 남기는 엔딩으로 화제를 일으켰다.


주인공 이유미(수지 분)는 가난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안나(현주·정은채 분)의 신분을 훔쳐 살아간다. 이름도 안나로 개명하고 고졸에서 해외 명문대 출신으로 학력을 위조해 세상을 속이기 시작한다.

 

불안감 속 승승장구하던 인생은 자신과 비슷한 남편 최지훈(김준한 분)을 만나 흔들렸고, 이름의 진짜 주인 현주와 재회하며 균열이 생겨 파국으로 치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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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혼자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씁니다."

 


유미의 말처럼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고 자신까지 속이며 진실같이 기록을 남긴다. 그 작은 불씨에 대한 대가는 오롯이 미래의 자신이 짊어지게 될 것을 모른 채.

 

 

"난 마음먹은 건 다 해요."

 


돈이 없다는 이유로 무시당하고 짓눌리던 가난하고 연약했던 유미는 작정하고 세상을 속이며 마음먹은 건 다 했다. 가짜 신분, 가짜 학력으로 가짜 금수저 노릇을 하며 상류층 사회에 진입했고, 허영과 야욕으로 가득 찬 남편을 만나 주체적 삶만 포기했다면 가면을 쓴 채 부와 명예를 누리며 살 수 있었다.

 

 

"진짜 원했는지는
가져보면 알게 된다."

 


거짓으로 가진 것들은 공허하다. 가짜는 끝내 진짜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짜 이력으로 미술입시학원에 취직했던 유미는 제 노력으로 제자들을 진짜 명문대 학생으로 만들어내며 복잡한 속내를 드러낸다. 가짜는 진짜를 만들어 낼 수는 있지만, 결코 자신이 진짜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진짜 '나'에게는 노력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는 아이러니.


그토록 바라던 부와 명성을 얻었지만 유미의 마음은 외롭고 황량했다.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사람도 죽이는 잔인한 남편 곁에서 유미는 쌓아 올린 많은 것들을 버리고 탈출을 택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남편의 속임수로 유미는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자 자신을 버리듯이 모습을 숨겼다.


 

"남의 인생을 훔쳐 살았으면
대가를 치러야지."

 


해외 명문대 출신으로 명성 높은 교수가 된 유미는 현주와 마주치자 화려한 킬힐을 벗고, 23층 높이의 아파트를 계단으로 이동한다.

 

사람을 평가할 때 '머리와 구두'를 본다던 유미가 헝클어진 머리와 맨발로 계단을 오르는 모습에서, 진짜가 되지 못한 채 과거에 머물러 있는 가짜의 두려움과 끝내 상승 욕구를 포기할 수 없는 집착이 느껴졌다.


남을 속이느라 스스로 얽매여 항상 긴장하던 인생. 힘에 부쳐 무너질 준비를 했던 유미는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차라리 모든 것을 지우고 지옥에서의 시간을 선택했다.

  

 

"진실은 간단하고 거짓은 복잡합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습니다. 그렇게 견디면 기회는 반드시 옵니다."

 


때로는 내가 아닌 다른 삶을 동경한다. 지금의 나를 너무나 잘 알기에 '다시 태어나는 것이 더 빠르다'는 농담조의 말이 실감 나게 와 닿는다.

 

현재 가진 것들이 소중하지만 죽을 때까지 만족할 수는 없을 터.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에 평생 고통받겠지만, 탐욕에 이끌려 맞지도 않는 킬힐을 신고 까치발 들어 주변을 기웃거리는 어리석음보다, 몇 개 없는 계단이라도 예쁜 운동화를 신고 차분히 밟아가며 손에 쥔 것들의 가치에 감사할 줄 아는 '삶의 본질적 이유'를 깨우친 사람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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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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