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음악으로 표현된 여말선초 - 뮤지컬 '난세'

글 입력 2022.07.0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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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난세>는 여말선초, 같은 곳을 향해 걸었던 이방원과 정도전의 대립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하지만, 단순히 이방원과 정도전의 정치 다툼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꾼’이라는 인물을 등장시켜 두 인물이 모두 대의명분을 내세웠던 ‘백성을 진정으로 생각했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고 있다. 이 시기는 한국사에서 가장 큰 관심을 갖는 부분 중 하나로, 다양한 장르에서 끊임없이 다뤄지고 있는 소재이다. 창작 뮤지컬로는 뮤지컬 <난세> 외에 지난 1월 종연한 뮤지컬 <창업>이 있었으며, 하여가와 단심가의 경우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 외쳐, 조선!>에서도 사용된 적이 있는 만큼, 작곡가에 따라 다양한 멜로디가 붙여지고 있으며 다양한 심리를 묘사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뮤지컬 <난세>에서는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을 다루고 있으며, ‘태조 몇 년 몇 월’과 같이 일시를 계속해서 반복해서 언급한다. 이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오가고 있으며 특히 이방원과 정도전의 첫 만남에서의 관계, 그리고 조선 건국 후 달라진 두 사람의 관계(존경하던 스승에서 없애야 할 적으로의 이행)를 극명하게 대조시키고 있다. 이에 이방원과 정도전은 각기 다른 시간에 따라 다른 목소리 톤으로 연기와 노래를 한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에 집중하다 보니 극 전개는 매우 정적이고 연극적인 측면이 강조된다. 이에 노래의 맺음과 조명을 매우 빠르게 끊음으로써 역동성을 가미하고 있다.

 

극 초반 꾼이 고려의 시조 청산별곡(청산에 살어리랏다)를 노래하고, 이방원이 하여가를 부르며 시작된다. 이에 고려 시대의 시조의 형식적 특징인 3음절 감탄구와 4음보 율격, 특히 4음보 율격을 강조하여 상당 부분의 넘버의 멜로디를 구성하고 있다. 조선 시조의 경우에도 템포가 빠르지 않았던 것을 감안하여 대부분 넘버의 템포는 빠르지 않고 잔잔하게 흘러간다. 세자의 자리, 사병까지 빼앗긴 이방원의 감정이 폭발하는 넘버조차 강하기는 하지만, 감정을 폭발적으로 내지르는 ‘겟세마네’(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내 운명 피하고 싶어’(뮤지컬 모차르트)와 비교해 봤을 때는 상대적으로 감정이 절제되어 있으며 음악이 웅장하지도, 빠르고 강렬한 멜로디로 구성되어 있지도 않다. 이에 극이 자칫 단조롭게 느껴질 수는 있으나, 시대적인 음악적 특징을 담아내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측면에서 ‘여말선초’의 시기를 다루고 있는 만큼 고려와 조선의 시조의 각 특징을 음악적으로 잘 풀어내며 조화를 이뤘다.

 

또한, 조선의 가장 대표적인 백성의 음악인 판소리를 중심으로 내세우면서, 백성의 입장에서 본 여말선초의 모습을 그려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판소리에서 ‘(소리)꾼’은 다양한 역할로 분하여 각 역할마다 다른 목소리로 연기를 펼친다. 본 작품에서도 ‘꾼’이라는 역할은 태조 이성계, 하륜, 백성 등 다양한 인물로 시시각각 바뀌며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고 있다. 또한, 판소리적 음악의 특징을 살려 꾼의 넘버의 중심 멜로디는 판소리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특히, 이방원과 정도전의 대립이 가장 고조되는 순간, 백성으로 분한 ‘꾼’이 “나는 원치 않소, 백성의 뜻이라고 이야기하면서 백성은 어디에 있소”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외치고 백성을 전혀 보지 않는 이방원과 정도전의 모습을 통해, 대의명분으로 민심을 내세웠지만, 결국에는 자신들의 사사로운 욕망을 이루기 위한 정치 싸움에 지나지 않음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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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풀이 춤 | 출처 : 문화유산채널

 

 

꾼은 시조에서 중요한 특징인 추임새를 끊임없이 노래한다. ‘아아아아~’를 길고,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는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살았던 백성의 애환과 권력 다툼 속에서 죽어간 수많은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정도전이 죽음을 맞이한 후, 꾼의 손짓과 목소리에 반응하여 고개를 드는 장면에서 이것이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또한 ‘꾼’은 주요 소품으로 긴 흰색 천을 붙인 흰색 부채를 사용하고 있는데, 흰색 천이 살풀이 춤에서 사용하는 소품이라는 점에서 살풀이 춤을 상기시킨다. 살풀이춤이 슬픔을 환희의 세계로 승화시키는 인간의 감정을 표현한 고전무용인만큼 이방원과 정도전 사이의 복합적인 감정, 그리고 난세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상황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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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세트 | 출처 : 콘텐츠플래닝

 

 

무대 위에는 두 개의 책상, 보름달과 기울어진 왕좌, 붓 나무가 있다. 무대 오른쪽에 있는 한 그루의 붓 나무는 이방원과 정도전을 양가적으로 의미한다. 이 나무는 가장 빠르게 꽃을 피워서 봄의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가장 빠르게 꽃이 져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짓밟힌다는 두 가지 모습을 가지고 있다. 이방원과 정도전은 서로를 붓 나무에 비유한다. 정도전은 양면적인 의미를 모두 내포하고 이방원에게 붓꽃과 같다고 했고, 이방원은 정도전의 숨겨진 의미를 간파하고 자신은 붓꽃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며, 오히려 정도전과 닮았다고 반박한다. 보름달과 그 앞에 기울어진 왕좌는 “달이 꽉 차서 만월이 되면 반드시 기울게 되지요”라는 대사를 통해 정점에 도달한 태조 이성계와 정도전의 권력이 기울고, 이방원이 새로운 세력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것을 상징한다. 또한, 극 후반부에서 정도전과 이방원의 정쟁이 가장 고조되는 장면이 체스로 표현되고 있다. 검과 백으로 이루어진 체스판에서 정도전과 이방원은 각자 의자를 가지고 움직이며 승부를 벌이며, 그 의자 위에 올라서기도 한다.

 

다른 극과 달리, 전반적으로 극에서 조명을 색다르게 사용하고 있다. 암전을 한순간에 빠르게 함으로써 갑자기 극이 끊기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그리고 이 암전의 속도를 반복하면서 조명이 켜지고 암전이 반복되는 장면을 통해 이방원, 정도전, 꾼의 모습이 바뀌며 시시각각 바뀌는 그들의 위치를 표현하고 있다. 또한, 암전 – 얼굴 조명 – 암전 – 얼굴 조명 – 암전을 반복함으로써 조명이 비치는 순간마다 바뀌는 이방원의 표정을 강조하여 보여준다.

 

지금까지 이방원을 다룬 작품에서 이방원의 폭발하는 감정 표현을 강조하고 '정몽주 – 이방원'의 관계를 중심으로 다룬 것과 달리, 뮤지컬 난세에서는 이방원을 강한 인물로 그리지 않고 있으며 굉장히 이성적이고 차분한 인물로 다루고 있다. 또한, '정도전 – 이방원'의 관계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조선 건국 전보다는 조선 건국 직후를 세부적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백성을 집어넣음으로써 지금까지 기득권 층에 의해 묘사되었던 여말선초가 아닌, 백성의 입장에서 조명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의미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꾼이 너무 많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꾼을 제외하면 2인극 중심인 만큼 꾼의 존재 의미가 때때로 명확하지 않다는 한계가 있었다. 또한, 백성을 대변하는 꾼의 장면이 굉장히 짧고 일시적이었다는 점과 정돈되지 않는 동선으로 인해 극이 정제되지 않은 느낌이 든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이방원을 맡은 이준우는 정도전을 믿고 따르던 시절과, 정도전을 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대비적인 모습을 목소리 톤과 연기로 극명하게 표현했다. 정도전을 맡은 박유덕은 도발에 반응하는 이방원과 다르게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노련한 기성 정치인의 모습을 그렸다. 꾼을 맡은 정연은 애환이 담긴 목소리로 국악적인 측면을 강조했으며, 빠르게 다양한 인물을 표현해야 하는 역할임에도 각 인물들의 경계를 뚜렷하게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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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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