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결정적 순간’을 붙잡는 찰나의 깜빡임 – 앙리 카르띠에 브레송 사진전 : 결정적 순간 [전시]
-
“이 세상 모든 것에는 저마다 결정적인 순간이 있다.”
– 레츠 추기경 회고록에서 발췌.
앙리 카르띠에 브레송 사진집 『결정적 순간』 서문 첫머리에 인용됨.
‘순간(瞬間)’은 말 그대로 눈을 한 번 깜빡할 정도로 짧은, 찰나의 시간을 이야기한다. 이는 카메라 셔터가 한 번 열리고 닫히는 아주 짧은 시간을 포함하기도 한다. 그러나 ‘셔터의 깜빡임’은 그저 눈을 한번 깜빡이면서 지나칠 수 있는 눈 앞의 ‘순간’을 ‘영원’으로 남긴다. 그렇게 순간을 붙잡는 사진은 누군가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이 되고,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록이 되며, 다양한 사람들의 삶과 일상 속 대상의 본질을 탐구하는 예술이 되기도 한다.
앙리 카르띠에 브레송(Henri Cartier Bresson, 1908~2004)은 이렇게 사진을 통해 순간을 붙잡으려 했던 예술가였다. 그는 굵직한 경험들로 얻은 자신만의 직관과 통찰로, 인간의 삶과 이를 둘러싼 세상에 가까이 다가가며, 그가 마주한 ‘결정적 순간’을 사진 안에 담아냈다. 1932년부터 1952년까지 그가 전세계를 오가며 포착한 ‘결정적 순간’을 담은 사진집 『결정적 순간(The Decisive Moment)』은 당대뿐 아니라 후대의 다양한 예술가들과 사진을 찍고 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책이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의 발행 70주년을 맞아 열린 <앙리 카르띠에 브레송 사진전 : 결정적 순간>은 그의 작품들과 사진집을 내기까지 주고받은 편지들, 그 자체만으로 본질을 드러내는 사진을 찍고자 한 그의 태도와 철학이 담긴 글과 인터뷰 등을 모두 아우른다. 단순히 피사체로써만 사람과 공간을 대하는 것이 아닌, 현대사의 굵직한 흐름 한가운데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고 그들의 삶에 가까이 다가가려 했던 앙리 카르띠에 브레송의 사진들은 여전히 오랜 시간 눈길을 붙잡고 여러 번 곱씹어 보게 하는 작품들이었다.
‘결정적 순간’을 붙잡는 찰나의 깜빡임
<앙리 카르띠에 브레송 사진전 : 결정적 순간>은 앙리 카르띠에 브레송이 머물렀던 나라들을 순서대로 따라가며, 그곳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앙리 카르띠에 브레송은 격동하던 20세기 초중반 유럽의 다양한 국가들과 미국, 멕시코, 인도, 중국, 인도네시아 등에서 조지 6세의 대관식, 간디의 죽음, 중국 공산당 정부의 시작 등 역사적으로 중대한 사건의 일면을 사진에 담았다.
하지만 그는 일반적인 기록물들처럼 유명인사에 주목하거나 사건 자체를 전달하는 것에만 집중하지도 않았고, 예술적인 사진을 찍기 위해 인위적인 연출을 더하지도 않았다. 그는 거대한 사건을 마주하고 때로는 그것에 휩쓸리면서도 그 속에서 삶을 이어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순간’을 포착했다.
“내 친구들은 사진을 찍는 나를 보면 우스꽝스럽다는 말을 한다.
내가 펄쩍 펄쩍 뛰기도 하고 까치발을 하고,
살며시 사람들 곁으로 다가가기도 하고,
또는 아예 없는 사람처럼 구석에 가만히 물러나 있기도 한다고 (...)
사람 곁으로 다가갈 때는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다가가야 하고
그들 위에 군림하려 들거나 과격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매순간 인간적이어야 한다.”
"내게 가장 중요한 주제는 언제나 인간이었다.
인간, 그리고 짧고, 덧없고, 위협받는 우리 인간의 삶."
이렇듯 앙리 카르띠에 브레송은 무엇보다 자신을 둘러싼 시공간과 어떤 형태로든 공명하는 ‘사람들’에 주목했다. 그리고 그들과 그들의 세계가 상호작용하며 만들어 내는 ‘결정적 순간’을 붙잡기 위해 직접 그 공간 안으로 들어가 조심스럽게 사람들 곁에 다가섰다. 그렇기에 그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을 다룰 때도, 일상적인 공간을 찍을 때도, 그 속에서 다양한 개개인이 마주하는 삶과 이야기를 존중하고 그것을 사진 안에 섬세하게 담아내고자 했다.
이런 그의 태도가 잘 드러난 작품 중에 하나가 영국 조지 6세 대관식 당시 런던 트라팔가 광장을 찍은 사진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일간지의 의뢰를 받아 조지 6세 대관식의 보도 사진을 촬영했는데, 왕실의 행렬 대신 런던 시민들의 모습과 표정을 집중적으로 찍었다. 시민들은 대관식을 놓치지 않고 보기 위해 광장에서 밤을 지새웠는데, 다음날 아침 광장에서 아직 깨지 못한 한 사람이 앙리 카르띠에 브레송의 카메라에 포착되었다. 이는 대관식을 대하는 당시 런던 시민들의 태도와 감정을 한번에 담아내며 그 속에 포함된 여러 이야기들을 생각해 보게 하는 ‘결정적 순간’이었다.
또한 앙리 카르띠에 브레송은 다소 거칠고 험한 지역이라 여겨지는 빈민가와 사창가, 마약상 등이 있는 뒷골목 등과 같은 공간 안에서 일상을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열린 마음으로, 또 예리하지만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다. 그는 문에 난 작은 구멍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 멕시코의 매춘부들을 찍었고,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거친 지역 중 하나였던 바리오 치노의 좁은 거리에서 벽에 기대 자고 있는 과일장수를 찍었다. 이러한 사진들은 그 공간 안에 있는 사람들의 존재와 삶을 부정하지도, 그들을 자극적인 소재로 포장하지도 않았다. 이는 그 공간을 표현했던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앙리 카르띠에 브레송만의 시선으로 포착한 것들을 표현한 것이었다.
이러한 앙리 카르띠에 브레송의 시선은 난민캠프와 전쟁이 벌어진 지역 등 비극의 현장에서도 이어진다. 그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공간 속에서도 장난을 치는 아이들의 모습, 파키스탄의 난민캠프에서 헤어졌던 가족들이 재회하는 모습, 미얀마(당시 버마)의 반군이 도시의 물 공급을 차단하자 주민들이 모여 혹시 파이프 안에 물이 남아 있는지 확인하는 모습 등을 사진 안에 담았다. 이러한 그의 사진들은 색깔도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 후각, 촉각 등 순간 안에 담긴 다양한 감각과 감정을 전달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진은 2분 이상 바라볼 수 있는 사진이다.
2분이란 굉장히 긴 시간이다. 그런 사진은 보고 또 보게 되는데
그래도 충분치가 않다. 마치 체홉의 단편 같기도 하고
개인의 사연을 생각하게 하는 그런 사진엔 온 세상이 담겨 있다."
"나에게 있어 사진이란, 머리와 눈과, 그리고 마음을 하나의 축으로 놓는 것이다.
그것은 삶의 방식이다."
그의 사진은 그의 말마따나 ‘2분 이상 바라볼 수 있는 사진’이었다. 사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진이 포착한 순간이 눈 앞에 펼쳐지는 것 같은 생생한 감각이 느껴졌고, 사진 안에 담긴 감정에 공감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이는 앙리 카르띠에 브레송이 사진 그 자체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관찰하고 또 관찰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기존의 고정관념이나 사진가와 피사체가 맺었던 관계에서 벗어나, 열린 마음과 존중의 시선으로 대상을 관찰하고 자신이 관찰한 바를 솔직하게 표현하고자 했다. 이렇게 사진을 찍는 그의 방식은 예술과 세계를 대하는 그의 태도이자, 사람과 삶을 대하는 그의 가치관이었다. 따라서 그의 작품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예술과 세계를 마주하는 그의 태도와 시선이 사진과 예술을 넘어 우리 각각의 삶에도 영감이 되어준다.
우리 모두가 ‘순간’을 ‘영원’으로 붙드는 예술가가 될 수는 없겠지만, 앙리 카르띠에 브레송이 그랬듯 본질에 집중하고 우리 자신과 외부세계의 균형을 맞춰 가는 것은 우리 삶에도 굉장히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매순간 다양한 사람들과 진실된 마음으로 함께하려 노력할 것이고, 그들과 함께하는 시공간과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만의 ‘결정적 순간’을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만이 표현해낼 수 있는 것
앙리 카르띠에 브레송은 거리에서 찍은 사진을 ‘예술’의 반열에 올려 놓은 ‘선구자’로 일컬어진다. 그는 눈앞의 순간에서 포착해낸 구도와 구성 등 형태적 혹은 형식적 측면과, 하나의 장면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 이야기와 감정 등 내용적인 측면까지 모두 한 장의 사진 안에 표현해냈다. 이를 통해 그의 작품들은 ‘사진’만이 표현할 수 있는 독보적인 영역을 보여준다.
특히 그의 작품들을 보면 자의적인 연출 없이도 직관적으로 포착한 회화적인 구도가 돋보인다. 1933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찍은 작품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사각형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을 포착했고, 1947년 뉴욕 맨해튼 다운타운을 찍은 작품에서는 여러 거대한 건물들이 겹쳐지는 사이로 고양이와 사람이 마주 앉아 있는 구도가 인상적이었다.
또한 창문이나 문, 부서진 벽 등을 사진 안의 또 다른 프레임처럼 활용하여 인상적인 구성을 만들어내거나, 건물들의 배치와 계단, 시선의 높낮이 등을 활용하여 수평, 수직, 혹은 대각선과 같은 다양한 구도를 사진 안에 조화롭게 담아낸 것도 눈에 띄었다.
그의 작품들에서 빛을 활용하는 방식 역시 사진만이 담을 수 있는 순간의 예술성을 더했다. 그는 다양한 구조물과 사람들이 공간 안에 그림자를 만들어내며 공간과 조화를 이루는 장면과, 창문이나 유리문에 비친 형상이 기존의 형상과 겹쳐지는 순간 등을 포착했다. 1932년 프랑스 마르세유 구 항구를 찍은 작품에서는 전쟁을 겪으며 카운터가 사라진 카페에 마찬가지로 전쟁을 겪어낸 항구가 비치는 모습을 담아냈는데, 전쟁이 지나간 자리를 바라보는 허망함과 씁쓸함이 그대로 전달되는 듯했다.
"항상 구성에 관심을 두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사진을 찍는 순간은 직관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다.
나에게 사진이란 찍고자 하는 사건의 내용과 그 사건을 표현하는 시각적 형태의
엄밀한 구성을 동시에 인식하는 찰나의 행위이다.”
"내가 찍고자 했던 사진은 하나의 상황으로 구체화되는 사진이다.
그 한 장면에 모든 게 담겨 있고 그 자체로서 형상과 직결된 사진인데
나에겐 그런 것이 본질적인 것이자 시각적인 즐거움이었다."
앙리 카르띠에 브레송은 찍고 싶은 공간 안에서 구성과 구도를 고려하며 관찰과 기다림을 거듭했고, 순간이 만들어내는 우연과 그만의 직관을 통해 작품을 완성했다. 때로는 움직임 때문에 초점이 흔들리거나 대상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는 선명한 형태를 찍어내는 것보다 공간과 그 공간 안의 사람들이 상호작용하며 만들어 내는 ‘결정적 순간’을 붙잡는 것에 집중했다. 이렇게 그의 작품 안에 포착된 순간은 그의 통찰로 바라본 인간과 이들을 둘러싼 세계의 모습이 담겨 있었고, 한 장면만으로 많은 것을 설명하고 생각하게 할 수 있었다. 이는 사진만이 할 수 있는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담아내는 초상 사진에서도 이러한 앙리 카르띠에 브레송의 작업 방식과 태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가 작업한 초상 사진을 보면, 다른 초상화나 초상 사진들과 다르게 주인공들이 정면을 응시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는 대상과 어울리는 공간 안에서 가장 ‘그 사람다운’ 순간을 포착해낸다.
특히 그의 사진집 『결정적 순간』의 표지 그림을 그리기도 했던 화가 ‘앙리 마티스’의 사진은 ‘예술가’ 앙리 마티스로서의 모습이 굉장히 잘 드러난 사진들이었다. 그의 사진 속에서 앙리 마티스는 자신의 모델인 ‘미카엘라 아보가드로’를 그리고 있는 뒷모습으로, ‘피카소’가 만든 화병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와 미국의 소설가 ‘트루먼 카포티’의 초상 사진 역시 그들만이 가진 특유의 분위기와 잘 어우러지는 공간 안에서 그들의 외적인 특성을 잘 드러냈고, 내적인 부분마저 가늠해볼 수 있는 사진들이었다.
"세상만사에는 다 주제가 있는 것이므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항상 주의를 기울이고
우리가 느끼는 것에 솔직하기만 하면 충분하다. (...)
사진은 현실속에서 드러난 모습과 사건의 리듬을 인식하는 것이다.
눈이 대상을 어떻게 다룰지 가늠하면, 카메라는 자기 소임대로
눈이 결정한 것을 필름 위에 새기면 된다.
회화에서처럼 사진에서도 우리는 한번 흘깃 보는 것만으로
그 전체를 모두 바라보고 지각할 수 있다."
이처럼 앙리 카르띠에 브레송이 작업한 다양한 작품들을 보며, 그의 눈에 비친 세계 역시 함께 볼 수 있었다. 그는 누구보다 사람들과 그들의 삶과 일상 가까이에 다가가려 했던 예술가였고, 사람들이 자신이 속한 시공간과 일정한 관계를 맺으며 나름의 균형을 맞춰간다는 것을 깊이 이해하고 있던 통찰력 있는 관찰자였다. 그렇기에 그의 사진 안에 담긴 장면들은 모두 더욱 생생하고 공감되는 순간과 이야기로 다가왔다.
이를 통해 앙리 카르띠에 브레송은 어쩌면 예술이란 우리와 아주 가까운 곳에 매순간 존재할 수 있음을, 그가 거쳐온 모든 시공간을 통해 보여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수 십년 전 그가 붙잡아낸 ‘순간’은 ‘영원’이 되었고, 우리 곁의 ‘예술’로 남았다.
[김효중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