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바다 [여행]

완전하게 혼자이지 못했던 나의 고백.
글 입력 2022.07.01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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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생일을 맞아 자축하는 기념으로 연차를 하루 쓰고 여행을 다녀왔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온전히 홀로 있는 여행은 난생 처음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였다. 왕복 8시간 가까이 운전대를 잡고, 혼밥을 하고, 커피를 마시고, 바다를 감상했다. 간만에 느끼는 해방감이었다.

 

생각보다 아쉬운 점은 없었다.

 

나는 혼자 있고 싶으면서도 혼자 있기 싫은 모순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홀로 있어보니 나쁘지 않았다. 아, 사진 찍어줄 사람이 없어서 내 사진을 두어장 밖에 남기지 못한 것과 이런 저런 걱정 때문에 완벽한 휴식을 취한 것이 아니였다는 점을 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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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혼자 여행을 가려던 것은 아니였다.

 

전에 만나던 연인과 함께 여행을 가려고 생각 중이었으나, 그와 인연이 끝나게 되면서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불행 중 다행인걸까. 아무런 예약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머릴 굴리면서 복잡하게 생각할 일은 없었다. 다만 떠나기 전에 고민했던 건, 혼자 갔을 때 친구도 연인도 곁에 있지 않아서 느낄 허전함이었다.

 

아무튼 여행 가기 이주 전 쯤, 숙소를 예약을 위해 들어간 어플에는 꽤 높은 금액대의 숙소들이 즐비했다. 심지어 예쁜 숙소들은 예약이 마감된 상태였다. 사회초년생인 내가 혼자 감당하기엔 부담스러운 금액대였다.

 

그러나 우습게도 그 순간 일종의 보상심리가 작동했다. 오히려 혼자니까, 더 좋은 곳에서 더 좋은 시간을 호사스럽게 누리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푹 쉬는 것이 목적이었으니 숙소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것이 당연하기도 했다.

 

그렇게 걱정을 하던 중, 감사하게도 가장 친한 친구 K가 생일 선물로 숙소를 잡아줘서 아주 좋은 곳에서 편하게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그녀는 지구 반바퀴를 돌아야 만날 수 있는 곳에 있지만, 매일 같이 온기를 보내준다. 이번 생일 때 같이 못 있어줘서 미안하다며, 좋아하는 바다를 보면서 원없이 글을 쓰라는 응원의 말까지 해주었다.

 

아무튼 나는 그녀 덕에 강릉을 다녀올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을 용기있게 다녀올 수 있었던 것은 8할이 그녀 덕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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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니, 홀로 여행을 떠난 적은 있었지만 오롯이 홀로 다닌 여행은 없었다.

 

중간에 가족을 만나거나, 동행과 함께 돌아다니거나, 숙소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술자리를 가졌다. 엄밀히 말하자면, 혼자 한 여행이 아니였던 것이다. 관계에 치여서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국에서도 타국에서도 늘 관계 속에 있길 원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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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변명을 하자면 다음과 같다.

 

홀로 해외여행을 떠났을 때에는 '혼밥'이라는 식사 문화가 없다고 봐도 무방한 곳에서 혼자 먹기란 쉽지 않은 일어었다. 심지어 언어에 능통하지 않은 사람이었기에, 먼 타국에서 혼자 돌아다니는 것이 더 겁났던 것 같다.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는 일이 행복한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홀로서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늘 곁에 누군가를 두었던 것을 회상하니, 이런 나의 모습이 어쩌면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번에는 기필코 혼자 있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홀로 있으면서도 외롭지 않고, 오히려 나로 충만한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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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역사를 찬찬히 되짚어 보니, 연인과 헤어진 직후가 늘 가장 생산적인 상태였다.

 

원래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이 아닌데, 이별을 겪고 나면 잠시 동안 그런 상태가 되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우습게도 잘 사는 것이 가장 큰 복수라고 생각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헤어지고 나서 이룬 성과들은 꽤 멋있었다.

 

개인적으로 하고 싶었던 일들을 도전해보면서 긍정적인 결과를 맛보거나, 그동안 보지 못했던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속에서 많은 배움을 경험할 수 있었다.


아트인사이트 에디터에 지원하게 되었을 때도 그랬다.

 

그저 그런 인간으로 살다가 죽고 싶지 않은,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한 몸부림 중 하나였다. 또 헤어진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무언가에 몰두하면 다른 무언가는 잊히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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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는 늘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다.

 

욕망을 해소하고자 혼자서 다양한 sns에 글을 종종 올렸지만,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곳에 글을 꾸준하게 올리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초반에만 열성을 보이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저런 이유들을 대며 열심히 하지 않게 되었다.

 

불현듯 이대로 가다가는 글 앞에 영영 어영부영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은 강제성이 부여되는 활동을 하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곧바로 실행에 옮겨 지원서를 작성했고, 운이 좋게도 활동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일에서도 온전한 홀로서기를 하고 싶어서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있다. 꿈은 늘 꿈이라고만 생각하던 내가, 조금 앞당겨 그 꿈을 실현하고 싶다는 욕망을 갖게 된 것이다.

 

큰 그림을 염두해두고 작은 것들을 하나씩 그려나가는 게 인생일텐데.

 

어째서 눈 앞의 것만 해결되면 마음이 탁 풀리는 것인지. 아무튼 본업이 있다보니 좋아하는 일에 온전히 에너지를 쏟을 수 없었고, 결과는 예견했던 대로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가 허다했다. 좋아서 하고는 있지만, 마음 한 켠엔 잘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까. 조금씩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최근 2년 동안 알 수 없는 무기력이 나를 집어 삼킨 채로 살아왔다.

 

돌이켜 보면 나는 운이 '억수로' 좋았던 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번아웃이 온 것이다. 처음엔 그저 취준생으로서 느끼는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알바와 학업을 병행하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많지도 않은 수면시간을 줄여가며 살아왔지만, 취업을 하기엔 턱 없이 부족한 나의 능력치에서 나오는 허망감이 주는 힘듦인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건 나의 착각이었고, 소속이 생겼음에도 마음의 문제는 여전했다. '코로나 블루'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뭔가 내면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오는 아픔이라는 것을 최근에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감당하기 어려운 힘듦에 아팠던 날도 참 많았다. 그렇지만 내일은 또 내일의 해가 뜨고, 나는 계속 살아나가야 했기에 최근의 6개월은 정말 숨이 붙어 사는 느낌으로 간신히 통근길을 왔다 갔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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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나의 젊음이, 하나뿐인 인생이 이렇게 흘러가는 것은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이 문제는 결국 나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들어서 일이든 취미든 그것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몸소 느끼는 중이다.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어야 하는데, 늘 칼만 뽑는 편인 나에 대한 아쉬움을 늘 있었다. 이제는 그 사실을 직시하고 고쳐보려 한다. 습관적 용두사미를 지워나가기 위한 걸음을 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변화하고자 하는 마음을 먹고 조금씩 행하다 보면, 몇 년 뒤에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을 갖고 살기로 했다. 내가 원했던 나의 모습을 잃지 않고, 그 꿈을 꼭 이뤄나가야겠다는 목적성 말이다.

 

이번에 여행을 떠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힘들 땐 조금 쉬어가면서, 좋아하는 것을 꾸준하게 해보자는 마음가짐으로 훌쩍 떠난 것이다. 이전의 나였더라면 금전적인 여유도 없고 시간도 촉박하다는 이유만으로 떠나지 못했을 여행이었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그 모든 것을 차치하고 그저 나의 '경험'에 더욱 집중하자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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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그런 나에게 말없이 곁을 내어주었다.

 

타지에서 홀로 있을 때, 말 한마디 없이 위로가 되어줄 존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 옛날에 말 못할 비밀들을 대나무숲에 털어 놓았듯이, 나는 바다에 케묵은 감정들과 고민들을 모두 털어놓고 왔다. 그리고 그 바다를 눈에도, 핸드폰에도 잔뜩 담아왔다. 보고 싶을 때 언제든 보고, 기억할 수 있도록.

 

내가 언제 가던지 간에, 어느 시인이 쓴 문장처럼 바다는 늘 거기 잘 있을 것이다.

 

반성과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시간을 선사해주는 바다와 죽는 날까지 함께 할 것이라는 다짐을 속으로 되뇌며, 너무 아쉬워하지 않는 마음으로 뒤돌아섰다. '안녕 나의 바다, 조만간 또 보아!'를 내적으로 외친 다음 이윽고 바다를 등지고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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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돌아서 차까지 걸어오는 동안, 단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아쉬움이 남으면 남는 채로 돌아서기로 헀다. 어디 가지 않을 것이고, 또 이렇게 아쉬움이 있어야 다음에 또 올 명분이 생기니까 말이다.

 

어쨌든 이번 여행으로 나는 인간적으로, 일적으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 지 아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또 정신을 제대로 쉬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온전히 홀로 서기 위한 마음가짐 또한 되새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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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보자, 안녕 나의 바다.

 

조만간 선명해진 모습으로 만나자, 나의 꿈.

 

 

[강윤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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