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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왜 우리는 창의성에 집착하게 되었나 : 프로파간다의 도구, 창의성



 

“전체주의는 폭력을 휘두르고, 민주주의는 선전을 휘두른다.” - 에이브럼 노엄 촘스키

  

 

위는 몇 해 전 우연히 읽었던, 에드워드 버네이즈가 1920년대에 출간한 『프로파간다』 맨 앞장에 쓰여 있는 문장이다. 갑자기 무슨 폭력과 선전이냐 싶을 수 있다. 이 문장을 소개한 것은, 우리가 인지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오늘날에도 이것들이 세계 곳곳에 만연하다는 점을 시사하고 싶어서다. 둘 중에서, 아무래도 더 많이 볼 수 있는 건 역시 선전이다. 숫자상으로 민주주의 제도를 갖춘 국가가 과반수 이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여전히 선전은 아주 교묘하고 집요한 방식으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든다.

 

그렇다고 해서 선전이 마냥 나쁜 것이라고 하고 싶진 않다. 세상만사가 양면성을 띠고 있는 만큼, 선전의 긍정적인 면도 분명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함으로써 사회적으로 통합을 이루어 공공선의 증진을 도모하거나, 교육적 도구로서 쓸모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파간다가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것은 대중에게 단순한 정보전달이나 설득을 넘어 조작 혹은 통제의 위험성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사회 갈등 유발의 촉매제로 작용될 가능성이 있다.

 

여기, 책을 읽기 전까지는 몰랐던, 앞서 말한 프로파간다와 떼려야 떼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단어가 있다. 현재 일상 속에서 자주 사용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자라오면서 끊임없이 강조된 태도와 관련된 단어이다. 그리고 아마 당신도, 이 책을 통해 그 사실을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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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에 집착하는 시대』는 현대 사회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인 “창의성”의 개념에 숨겨진 사회적 열망을 낱낱이 파헤치는 책이다. 미국 역사학자 새뮤얼 W. 프랭클린은 창의성이라는 단어가 출현한 시점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배경과 여러 연구들을 기반으로 한 ‘창의성’에 대한 설명 그리고 왜 창의성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현대로 넘어오면서부터 창의성은 예술에만 국한되지 않고, 기업 경영, 교육, 광고, 과학 기술, 도시 정책, 심리학 등 사회 전반에서 요구되는 중요한 실용적 능력 중 하나로 급부상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에 걸맞게 스스로 창의적이고자 하고 사회 또한 창의성을 요구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창의성이 개인적 능력이나 직업적 능력을 크게 넘어서는 어떤 것으로 간주되거나 심지어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선전적 도구로 이상화되어 왔음을 시작부터 주장하며, 날카로운 시각 속으로 독자를 초대한다.

 

지금부터 창의성이 어떻게 선전의 도구로서 활용되었는지, 그 일부분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쓰여진 내용 외에도 시대적 흐름에 따라 창의성을 대하는 태도와 주장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책에서 만나볼 수 있음을 미리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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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거대해진 대중사회에 압도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심리학적으로 해결하려는 시대적 요구에 맞춰 그 중요성이 대두되었다. 1950년대 중반, 당시 미국 사회는 획일성이 문제라고 판단하였고 자본주의에 인간적 가치를 더한 매력적인 창의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창의성은 좋은 것이라는 인식을 심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사실 창의성은 시대가 만들어낸 가치였던 것이다.


 

 

새로운 활동은 새로운 단어를 요구한다. - 『프로파간다』 中

  

 

위의 문장은 사회에 새로운 현상이나 양식, 기술, 사상 등이 등장할 때 더욱 효과적으로 각인시키고 받아들이게 하는 방법으로 새로운 언어적 표현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1950년대 미국엔 더 많은 성장을 위해, 좋은 것이라고 여겨지는 창의성이 필요했다. 조직적 차원에서 보자면, 창의성을 관리하여 조직이 원하는 개인 - 창의적인 사람 - 을 식별할 수 있어야 했으며, 노력의 일환으로 더 얻을 수 있는 것이어야 했다. 그리고 것은 이전과는 다른, 한층 높은 수준의 활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책에서 저자는 유사어로 천재성, 영리함, 독창적, 상상력, 예술적이 있지만, 이는 창의성과 동일하다고 할 수 없다는 점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아 『프로파간다』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창의성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게 된 배경이 일맥상통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창의성은 새로운 심리학적 전문용어로서 위대한 업적 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독창적 행위도 포함하는 개념적 공간을 열어주었다.

() 인류의 진보를 이끄는 동력 그 이상의 것이었다. _ p. 81

 

 

또한 심리학적인 전문 용어로서의 지위도 가지고 있었으니, 대중에게 아주 효과적으로 창의성의 중요함과 당위성을 어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대중이 반감을 갖거나 의심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당신의 부는 당신의 아이디어에 달려 있다.- 알렉산더 페이크니 오즈번

 

 

이는 광고업계의 거대 에이전시 BBDO의 공동 창립자이자 회장이었던 오즈번의 주장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광고는 내 생업이고, 상상력은 내 취미입니다.”라고 말하고 다녔던 사람이었으며, 창의성을 누구나 배양하고 의도적으로 적용가능한 기술이라고 여겼다. 1950년대에 창의성 연구자 중 하나인 길퍼드의 연설을 듣고 자신의 연구를 정당화하는 계기로 삼은 후로는 창의성 교육 재단을 설립하는 등 창의성의 중요성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높이기 위해 힘을 쏟았다.

 

심리학자는 아니지만, 자기 계발서 작가였던 오즈번은 독자들에게 창의적 상상력이 소수의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며 의도적이고 체계적인 연습을 통해 향상되고 발휘될 수 있다는 바람을 불어 넣었다. 창의적 사고가 노력의 영역에 있다고 믿은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곧 미국 교육을 완전히 개혁해 모든 학생에게 창의적 사고 수업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에 확장되었다.

 

당시 대중에게 이러한 말들이 어떤 의미로 와닿았을지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그리고 아래의 구절을 떠올렸다.

 

 

인간의 욕망은 사회라는 엔진을 가동하는 증기다.

선전가는 인간의 욕망을 이해해야만

현대 사회라는 거대하면서 짜임새가 느슨한 기계를 비로소 조종할 수 있다.

 

『프로파간다』 中

 

 

선전가는 대중의 태도를 의도적으로 기획하고 조종하는 사람이다. 오즈번만 그렇다는 게 아니라 이 시대적 배경이 대중을 상대로 창의성을 도구 삼아, 성공에 대한 욕망을 건드려 빠르게 성장하는 사회로 이끈 것이 아니었을까. 개인의 잠재력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모두가 거기에 닿을 수 있다고 성급하게 일반화 한 것. 이것으로 창의성이 선전 도구이자 인적 자원 분류 및 활용 도구로 쓰였음이 자명해졌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 평범함과 창의성의 균형 속에서 시스템 재정립 하기


 

책 속 마지막 목차이자 결론의 제목은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다. 이 질문은 결국 도구로 쓰였던 창의성을 지금은 어떻게 바라보고 다룰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이끌어 내는 역할을 한다. 수많은 페이지들을 넘겨 읽고서 필자가 도달한 결론은 진정한 창의성은 결국 평범함이 잘 지켜질 때 발휘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이다.

 

앞서 『프로파간다』를 인용하며, 창의성이 시대적 요구에 걸맞은 도구로 사용되어 왔음을 이야기했다. 그 이유는 해당 책에서 두드러지는 엘리트적 사고 방식이 『창의성에 집착하는 시대』의 주된 주장인 창의성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필요한 이유와 맞닿아있는 지점이 많아서다. 수많은 연구 결과를 근거로 내세우며, 이것이 선한 것 혹은 발전을 이룩하는 일종의 열쇠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은 일종의 계몽 촉진제로 쓰였다. 모두에게 잠재된 창의성이 있다고 본다거나 근육처럼 기를 수 있다고 한 것 또한 헛바람을 불어 넣으며 창의성의 중요성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습득하게 만드는 주장이라고 보았다.

 

물론 창의성이 선물한 이점도 분명히 있고, 창의성을 아예 부정하고 싶지 않다. 저자가 제목에 ‘집착’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까지 강하게 비판하는 것처럼 말이다. 본래 집착은 ‘어떤 대상에 마음이 쏠려 매달리는 것’을 의미한다. 매달릴 만한 명확한 이유 - 새로운 세상을 이룩하는 가장 효과적인 동력으로서의 단어 사용 - 가 있었기에 오랜 시간 키워드를 전면에 내세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창의성을 기반으로, 어떠한 혁신 및 성장이 일어났다고 해서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는 파괴를 부추기기도 한다. 그 예로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을 지나치게 높게 평가하고, 개개인에게 창의적 성취를 압박하며, 그렇지 않은 타인을 경시하는 문화 조성을 그 예로 든다. 제도 등 사회적 요인을 무시하는 것이 있다. 여기에는 규제 및 정책이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해결해줄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투영되어 있으며, 모든 새로운 것은 개인이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과 유사하게 받아들인 경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책을 읽은 우리는 안다. 모두가 창의성을 가질 필요도, 창의성이 만능 용어가 아니라는 것도 말이다. 그런 점에서 평범함이 갖는 대단함을 다시 한 번 주목해 보는 것이 진정으로 창의성이 발휘될 수 있는 상황을 조성하고, 사람들에게서 그 부분을 이끌어 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책을 읽으며 좋았던 점이 하나 있다. 사실 책의 키워드에 국한하여 얘기해서 그렇지, 저자처럼 사고하는 방식이 삶의 모든 부분에 적용 가능하면서 꼭 필요한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우리는 전례 없는 속도로 변화하며 발전을 이룩해 나가는 중이다. 이럴 때일수록 한 번 더 생각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의 주장 혹은 단어의 정의를 숭배하거나 그저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비판적인 시각을 탑재해 모든 것에 의미를 생각해 보는 연습이 더더욱 요구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의 창의성을 의심하고 앞으로의 창의성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며, 나아가 비판적 태도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책 『창의성에 집착하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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