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기생충, 기정은 왜 죽어야했을까? [영화]

영화 <기생충> 리뷰
글 입력 2022.06.1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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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장면.jpg

 

 

Parasite! 대한민국에서 이 영화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으며 여러 열풍을 불러일으킨 봉준호의 영화, 기생충은 많은 평론가에 의해 분석되고 새로운 연구 과제를 제시했다. 나는 개봉 당시 영화를 감상하고 나서, 압도되는 기분과 함께 긴 여운을 느꼈다.

 

여기, 한국 영화 역사 상 중요한 의미를 갖는 기생충의 서사 구조를 세밀하게 분석한 책이 있다. ‘이동진이 말하는 봉준호의 세계’에서 첫번째 챕터를 차지하는 기생충 파트는 나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따라서 나는 인상깊게 읽은 책의 구절을 소개하며 Parasite를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고자 한다.

 

 


기생충, 갈등의 ‘구도’를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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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에는 크게 세가지 계급이 등장한다. 상층, 하층, 그리고 최하층. 상층 집안에서 원래 있던 사람들의 자리를 빼앗아 일자리를 구한 기택 가족은 결말 이전에는 상층과 직접적인 갈등을 겪지 않는다. 그들의 투쟁 대상은 늘 그들과 비슷한, 혹은 그 아래에 있는 자였다.

 

일자리를 얻기 위해서는 상층 계급의 제의 또는 다른 하층 계급과의 투쟁이 필요하다. 그들이 결코 상층 계급과 경쟁할 일은 없다. 상층은 그저 그들에게 베풀고, 하층은 던져진 파이를 차지하기 위해 격렬히 싸울 뿐이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강하게 느낀 것은 ‘소통의 부재’ 였다. 기택의 가족과 동익의 가족은 같은 집에서 생활하고 대화하지만 사실상 단절되어 있다. 하층은 정해진 역할을 수행하고 상층의 지시와 요구를 따르는 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접적인 갈등이 발생할 수가 없다. 처음부터 싸울 상대가 될 수 없는, 너무나도 멀리 있는 자들이기에.

 

“탁월하게 연출된 그의 작품들을 보고 나서 번져오는 무력감의 진짜 이유는 싸움의 결과가 아니라 그 싸움의 구도이다. 봉준호는 그 무력감이 지배하는 그라운드 제로의 폐허에서 다시금 이 세계의 모순에 대해 치열하게 생각해볼 것을 제안하는 회의론자다.” (이동진이 말하는 봉준호의 세계, 34p)

 

결국, 그들의 생존 투쟁은 항상 같은 계급에 속한 사람들과 이루어진다. 기택의 가족(하층)과 문광의 가족(최하층)이 치열하게 부딪히고, 누군가 이겨 쟁취하더라도 상층은 견고하게 자리를 지킨다. 그리고 갈등의 결과와 관계없이 상층의 의도에 따라 너무나도 손쉽게 결론이 바뀐다.

 

갈등하는 건 하층과 최하층, 그리고 갈등과는 무관하게 모든 것을 손바닥 뒤집듯 결정하는 상층. 기생충에서 보이는 이러한 구도는 사실 영화를 보는 나의 입장에서는 쉽게 납득이 갔다.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체 왜 기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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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죽음을 맞는 인물들 중 의아한 한 사람이 있다. 동익은 상층을 대표하는 자로 계급제와 가부장제의 정점에 있다. 문광과 근세는 최하층의 인물로 대상화되어 비극적인 결말을 맞을 것이 예상되는 인물이다. 하지만 기정은?

 

나는 그녀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다. 영화를 보며 가장 좋아했던 캐릭터이기에 더욱 그랬다. 기택 가족의 일원으로, 우아하고 도도한 태도로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녀가 왜 죽는 인물로 선택되었을까? 책의 저자 역시 같은 의문을 가진 모양이었다. 그 죽음이 상징하는 바가 무엇인지 너무나도 궁금했다.

 

우선 내가 느낀 점은, 기정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녀에게서는 무언가 독특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작중에서도 기정은 그들과는 다르다는 기우의 언급이 있었던 것처럼. 단순히 성격의 문제가 아니었다. 책의 구절을 읽고 나서, 나는 근본적으로 달랐던 지점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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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택, 기우, 충숙은 모두 누군가의 자리를 대체함으로써 일자리를 얻었다. 하지만 기정은 미술치료라는 영역의 필요성을 연교에게 새로 주입시킴으로써 누구의 자리도 빼앗지 않은 채 그만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그러니까 기정은 같은 하층 계급과 싸움을 벌이지 않고도 계급 상승의 가능성을 이끌어낸 극 중 유일한 인물인 셈이다.” (이동진이 말하는 봉준호의 세계, 21p)

 

그 장면. 연교가 테스트를 보고자 했지만 기정은 거절했다. 상층을 상대로 주도권을 잡은 것이다. 이 지점이 달랐다. 상층의 요구를 수용했던 다른 기택 가족의 일원과 달리 유일하게 의지를 관철한 기정. 그만큼 주도적인 신분 상승에 대한 의지와 능력이 강했던 인물이었다.

 

그 점을 고려했을 때 기정은, 하층 사람들 중에서 가장 상층에 가까웠으며 올라갈 가능성이 높았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찾아온 ‘죽음’. 나는 이 장면이 하층이 상층이 되는 것은 실현 불가능한, 일말의 가능성도 없다는 단언이라고 느껴졌다.

 

책에서는 기정이 살해당할 때, 사라지는 것은 계급 상승의 사다리 자체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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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대의 대저택에 사는 사람들에게 파티를 최적의 환경에서 열도록 만들어주었던 비는 아래로 아래로 끊임없이 흘러서 저지대 사람들에겐 치명적 타격을 입힌다.” (이동진이 말하는 봉준호의 세계, 25p)

 

결국 봉준호 감독은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상층, 하층, 최하층으로 철저히 구분된 인물들을 보여주며 한국 계급사회의 현실을 여실히 드러내면서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라는, 힘없고 무기력한 메시지를 전한 것이 아닐까?

 

나는 이동진 작가의 시선에 동의한다. 봉준호는 기생충을 통해 사회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그 과정에서 희망과 개선의 의지를 보인 것이 아닌, 이미 결말이 정해진 운명에 대해 생각할 여지를 남겼다. 그랬기에 영화를 보고 난 뒤 긴 여운과 찝찝한 기분에 사로잡힌 것이다. 사회, 계급, 나의 위치, 삶을 바라보는 방식의 전환. 이러한 사회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깊은 고민에 든다.

 

그렇기에 영화 기생충은 위대하다. 영화 속에 담긴 사회를 통해, 영화를 본 뒤 살아갈 사회를 생각하게 하니까. 프레임 밖의 사회에서 오늘도 나는 프레임 속을 들여다본다.

 

이 책의 저자처럼, 그 시선을 세상에 표현하는 것은 나의 몫이다.

 

 

출처

이동진이 말하는 봉준호의 세계(2020), 저자 이동진, 출판 위즈덤하우스

기생충(2019), 감독 봉준호, 배급 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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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서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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