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길거리 옥수수 가게 [사람]

따스함을 전달하는 한 상인에 대하여
글 입력 2022.05.31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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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지나다 보면 자그마한 노상 가게들이 몇 몇 눈에 띈다. 주로 길거리 간식을 판매하는 곳들이 잠깐의 시즌을 맞아서 열린다. 붕어빵, 호떡, 땅콩과자 등.

 

내가 사는 곳 근처에는 작년 가을부터 붕어빵을 파는 곳이 생겼다. 다른 곳들처럼 이 곳도 봄이 오면 사라질 줄 알았는데, 옥수수가 생기고 구운 달걀이 생기더니 오늘 가보니 사장님께서 붕어빵 대신 토스트를 준비하고 계셨다.

 

옆에는 친구 분이 함께 계셨는데, 내가 좋아하는 옥수수를 사면서 맛있다고 하니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그거 중독되면 안돼, 내가 중독됐거든!" 그 말은 들은 나도 웃으면서, "아, 이미 중독됐는데 어쩌죠?" 라고 대답하니 모두가 하하하, 하고 웃으셨다.

 

어릴 적부터 옥수수를 좋아했다. 옥수수가 가진 찰기와 그 단맛은 알알이 터질 때마다 쫀득하게 행복을 가져다 주었다. 그래서 한 번에 서너 개를 먹어버려서 소화가 안될 때도 많았다. 때론 너무 많이 먹어서 가족들과 싸우기도 했을 정도이니, 내게 옥수수가 가진 의미는 단순한 음식 그 이상이다. 그런 모습을 특히나 많이 보였던 시기는 여름이다.

 

여름이 되면 찰옥수수를 쪄먹고 싶은 생각에 부모님을 졸랐고, 옥수수가 한 박스 도착하면 옥수수 수염과 잎을 직접 까서 얼른 찌곤 했다. 기다리는 와중에 맡는 옥수수의 달콤하고도 고소한 냄새는 언제나 설렜고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옥수수를 두 손으로 잡고 입을 파묻을 땐 너무나도 행복했다. 그래서 여름이 다가오거나, 옥수수를 발견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침이 고인다, 여전히.

 

최근 개인적으로 안 좋은 일들이 중첩되어 발생했다. 견딜 수 없게끔 화가 나고 우울한 날들이 연속되니 정말 마가 낀건가 싶어 인터넷에 사주 풀이도 검색해보았다. 어쩐지 5월의 운세가 별로 좋지 않았다. 믿거나 말거나, 재미로 보는 것이라곤 하지만 5월의 끝자락에서라도 봄의 내내 힘들었던 시간들에 대해서 겨우 위로를 받고 싶었던 것 같다. 건강도 해치고 압박 받는 느낌에 스트레스 받는 시간들이 이어지다 보니 금방 배가 고파지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러나 밥을 넘기려고 보면 목이 메이고 답답해 제대로 삼키기가 힘든 애매한 상태. 그럴 때마다 나는 작은 주전부리를 사서 먹곤 했다. 몸도, 마음도 여유가 없는 와중에 조금이나마 배에 음식물이 쌓여가는 느낌이 가끔은 거북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반갑고 감사한 일도 없었다.

 

그렇다. 주전부리로 노상 옥수수가 당첨된 것이다. 옛날 같았으면 유전자 조작이니 뭐니 하면서 애써 부모님께 말하고 싶은 마음을 참고, 또 배고픈 마음을 참고 여름을 기다렸을 것이다. 역시 성인의 좋은 점은 돈을 자유롭게 소비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제는 마음 내키는 대로 옥수수를 구매한다. 사장님께서는 나의 설렘 가득한 표정을 기억하시곤 값을 더 깎아주시려 하지만 내 성격 상 그런 친절을 잘 못 받아들인다.

 

어떻게서든지 기존의 수익, 혹은 그 이상을 내드리고자 하는 이상한 마음이 있어서, "그럼 더 살게요!" 하고 냉큼 더 사버린다. 그러면 사장님께서는 따뜻한 손으로 옥수수를 검정 비닐봉지에 담아주신다. 가끔은 소소한 대화도 이어진다. "옥수수가 참 맛있어요" 하고 내가 말하면 사장님께서는 "저도 맛있어서 먹고, 다른 손님들도 맛있다고 찾아와요~" 하며 나의 말을 받아주신다. 오늘은 더욱이, "방금 찐거라 맛있을 거에요" 하시며 더욱이 튼실해 보이는 것으로 담아주셨다. 나는 행복함에 싱글벙글하며 연신 감사인사를 한다.

 

이런 과정은 며칠이 지나도 계속 떠오르며 나를 행복하게끔 한다. 그 자체로도 참 좋아하고 배부르게 하는 옥수수지만 이 대화가, 그 피어오르는 김이 내게는 주전부리를 넘어 추억이자 일상의 행복이 되는 것이다.

 

어느 덧 단골이 된 나를 반겨주시는 사장님께서는 언제나 따스하게 반겨주신다. 물론 사장과 손님의 자본주의적 상황에 의해 서비스 정신을 발휘하시는 것도 맞을 것이다. 그래도 좋다. 그래도 그 잠깐의 대화가 안 풀리던 하루를 따스하게 풀어내는 듯하다.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옥수수를 사먹으러 자주 갈텐데, 이젠 토스트도 한 번 먹어보려 한다. 솜씨가 아주 좋으신 것 같다. 이번 여름에 옥수수는 다 먹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림 없는 소리! 이번 여름에도 박스에 담겨져 올 훈훈한 따스함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윤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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