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낭만적이고 현실적인, 나의 사랑 바이블 [영화]

글 입력 2022.05.12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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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에는 비포 시리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사랑은 무엇인가? 나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기 전에, 그러니까 경험해보기 전에 비포 시리즈를 보며 사랑에 대한 꿈을 키워갔다.


그래서 내게 사랑은, 산책과 대화, 그리고 장난. 이 세 가지를 질리지 않고 계속 함께할 수 있는 것이다.


*


비포 선라이즈와 선셋은 좋아하지만 비포 미드나잇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네이버 영화의 관람객 평점만 보더라도 앞의 두 작품은 9점대인 반면, 미드나잇은 7점대에 머무른다.

 

선라이즈와 선셋에서 보여준 운명적인 만남, 낭만적인 로맨스, 달콤한 말을 속삭였던 젊고 멀끔했던 제시와, 청순한 미소로 많은 이들을 녹아내리게 하고 클래식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했던 셀린은 <비포 미드나잇>에는 더 이상 없다. <비포 미드나잇>의 제시와 셀린은 처음부터 삐꺽삐꺽 거린다.


비포 미드나잇은 지독하게 현실적이다. 중년이 된 부부의 잦아지는 다툼, 육아로 줄어드는 서로의 대화시간, 출산후유증과 여성의 육아로 인한 고충과 상실들, 이혼 후 이어지는 전처와의 갈등과 아이의 양육까지. (그렇다, 제시와 셀린의 사랑의 한편엔 한 가족의 이별이 있다.)


그러나 사실 사랑도 현실의 사람들이 하는, 현실의 것이다. 비포 시리즈는 낭만적이고 로맨틱한 영화의 대명사지만, 사실 그런 사랑은 영화에서나 존재한다.


 

- 책은 자기가 왔을 경우의 버전으로 써봤지.


둘은 서로가 맞지 않는 걸 깨달아.


- 현실적이네.


- 그 버전은 거절됐어.


- 책이 안팔릴 테니까?


- 그래, 그거지. 

 

- <비포 선셋> 중


 

<비포 선라이즈>와 <비포 선셋>은 “팔리는” 로맨스였다. 유럽을 횡단하는 열차에서 우연히 만난 마음에 쏙 드는, 대화가 너무나도 잘 통하는 사람. 6개월 후의 만남을 기약하고 만나지 못해 그대로 끝날 줄로만 알았지만 끝나지 않고 다시 이어지는 인연. 이 얼마나 낭만적이고 운명적인 사랑인가! 비포 시리즈는 그래서 많은 이들로 하여금 이런 우연하고 운명적인 만남을 꿈꾸게 했다. 그런 로맨스에 대한 환상을 깨뜨려버리는 <비포 미드나잇>에 실망하는 관객들이 있는 것이다.

 

*


비포시리즈를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건 마지막 편인 <비포 미드나잇>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비포시리즈를 통해 감독 링클레이터가 전하고자 했던 것의 정수는 미드나잇에 담겨있다.

 

링클레이터는 컷편집을 극히 적게 한다. 인물의 모습과 대화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특히, <비포 선셋>에는 그런 감독의 연출이 잘 드러나 있다. 80분 가량의 영화는 거의 생략이 없으며, 그들의 80분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런가하면 링클레이터의 또 다른 영화인 <보이후드>는 한 소년이 성장하는 모습을 실제로 12년동안 촬영하기도 했다.


시리즈의 첫 작품인 <비포 선라이즈>에서, 영화의 초반부에 제시는 이런 얘기를 한다.


 

내가 생각한 건 뭐냐면 1년간 하루 내내 계속 되는 프로에요, 알겠어요?

사람들의 24시간을 실시간으로 내보내는 거죠. 현실 생활을 있는 그대로요.


난 ‘일상의 시’ 라고 말하려 했는데..

 

햇빛 아래서 자는 개는 왜 아름답죠? 아름답잖아요.

 

 

여기에 링클레이터의 세계관이 담겨있다. 그는 우리의 일상에서 늘 아름다움을 본다.

 

 

하지만 요즘은 모든 것은 영원치 않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해.

나이가 들수록 삶이 소중하다는 걸 느끼게 돼.

인생은 한번 뿐이야. 이 삶보다 더 소중한 게 어딨어?

매일이 마지막인데.

 

- <비포 선셋> 중 제시의 대사

 

 

제시의 이 대사 뿐 아니라 <보이후드>에서 아들을 대학으로 보내며 "난 그냥 뭔가 더 있을 줄 알았어!" 라며 울먹이는 엄마의 대사나 "순간이 우릴 붙잡는거야." 같은 명대사도 마찬가지다. 삶은 현실이며, 그리고 그건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  사랑도 그러함을 <비포 미드나잇>을 통해 보여준다.

 

 

난 지금 잘하려고 애쓰고 있어

웃게 해주고 싶어서

 

근데 진정한 사랑을 원한다면 이게 맞아

 

진짜 삶이니까.

완벽하진 않지만 진짜야.

 

- <비포 미드나잇> 중 제시의 대사

 


중년이 된 제시와 셀린은, 완벽하진 않지만 현실의 부부다. 둘은 서로의 관계가 진짜임을 안다.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사랑도 그 설렘도 영원치 않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쉽게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다. 마지막엔 결국 언제나처럼, 처음 만났던 그때와 같은 방식으로 관계를 이어나간다.


셀린이 결국은 제시의 “황당한” 장난을 받아주면서, 앵글은 천천히 멀어진다. 그들의 모습을, 현실적인 중년의 부부의 모습을 담아낸다.

 

*

 

비포시리즈는 언제나 나의 사랑에 대한 "바이블"이었으며, 나는 <비포 선셋>을 제일 좋아했다. 설렘 가득한 우연한 첫만남보다도, 9년후의 재회가 나를 더 가슴뛰게 만들었다. 직접 만든 노래를 부르는 셀린의 모습이나, 파리와 센느 강의 풍경도 한몫을 했던 것 같다.

 

몇 번의 연애를 경험하고서 비포 시리즈를 보니 조금은 다르게 다가온다. 나이를 조금은 더 먹으니 선라이즈와 선셋이 얼마나 나의 현실과 거리가 먼가도 보이는 듯하다. 더 나이가 들면 분명, <비포 미드나잇>을 가장 좋아하게 될 것 같다.

 

오늘, 자정이 되기 조금 전에 비포 미드나잇에 대한 글을 마무리하며, 앞으로의 나의 사랑도 제시와 셀린 같았으면 좋겠다고 바라 본다.

 

 

[김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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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스텔라5
    • 잘 읽었습니다. 매주 좋은 글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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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무아
    • 보이후드를 보면서 '난 그냥 뭔가 더 있을 줄 알았어' 라던 엄마의 대사에 나의 마음도 쿵 하고 무너졌던 기억이 나네요. 우리의 비포는 항상 '뭔가 더 있을 줄 알고' 에프터를 기다리지만 사실은 매 순간이 우리가 바라고 기다르는 '뭔가'이지 않을까요?  항상 뭔가를 쥐고 있으면서 다른 뭔가를 기다리는 우리들...
      김민정에디터님의 다음 글은 뭔가...기대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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