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취업률 1위가 자랑이 된 대학이라는 모순 [문화 전반]

글 입력 2022.04.07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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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지방의 ‘거점 국립대학교(이하 지거국)’를 다니고 있다. (지거국이라는 단어는 거점 국립대학교 협회에 가입된 학교를 지칭하는 말이기에 지방대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게 더 맞겠으나 특별히 거점국립대학교의 특수성을 언급하고 싶기에 사용한다) 한국에서는 절반의 확률로 수도권 사람이거나 지방 사람일 것이다. 나는 절반의 확률로 줄곧 지방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해당 도에 소재하는 지거국에 입학했다.

 

지거국의 역할은 지역의 인재를 교육하고 그 인재가 해당 지역에 기여하는 선순환에 있다. 하지만 본인의 학교는 재학생의 1/3만이 대학이 위치한 지방 사람이며 그 외에는 타지역 유입이 대부분이다. 그러한 현 상황에서 과연 지거국 출신 학생들이 지역의 발전과 선순환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대학이 결국 취업을 위한 사다리, 하나의 라이선스를 취득하기 위한 공간으로 변모해가고 있다는 데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고등학교 시절 논술 수업에서 얕게나마 배우는 사회학이 놀라울 정도로 재밌었다. 사회학은 하나의 새로운 세상이었으며 지적 우월감에 빠지게 만들었다. 세상과 사회에 숨겨진 인과관계를 알아가는 것이 재밌었고 배우고 나면 꼭 친구나 부모님에게 한껏 지식을 뽐내보곤 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금방 잊어버렸지만 배우는 순간, 그리고 남들에게 설명해 주는 시간은 지적으로 충만해지는 기분을 들게 했다. 그렇게 막연하게 대학에서도 사회학을 배우고 싶었고 해당 과로 진학하게 되었다.


당연하게도 주변에선 사회학과에 진학하면 나중에 어디로 취직하는 거냐는 질문이 따라왔다. 사회학이 취업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느냐는 맥락이 깔려있는 말이었다. 기초 학문은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실질적으로 취업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기술을 배우는 공대와는 달리 인문·사회과학, 그중에서도 특히 사회학과와 같은 과는 학문적 역량을 기르는 데 그 목표가 있다. 다시 말해 취업이 목표가 아니라 학문 그 자체가 목표가 된다.


‘대학을 취업의 다리로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다만 대입 당시에 나는 취업을 고려해서 전공을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 원하는 걸 그저 배우고 싶은 생각이었고 취업 같은 건 그때 가서 생각하자는 마음이었다.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거란 ‘근자감’이 있던 것이다. 취업난이 심각한 사회에서 무슨 무모한 행동이냐고 질타 받을 수 있겠지만 그때도, 그리고 지금도 대학은 학문의 장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공부를 특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 수단이 아니라 인생 그 자체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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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미 대학교는 취업을 위한 다리로 변모했다. 당장 우리 대학교 캠퍼스 전체에 걸려있는 플래카드만 해도 그렇다. ‘지방 거점 국립대학교 취업률 1위’라는 문구를 보고 나는 어떤 생각을 해야 하는가? ‘취업이 잘 되겠다’는 공허한 생각을 해야 할까? 아니면 ‘우리 대학교 멋지다’하고 손뼉을 쳐야 할까?

 

취업은 당연히 필수적이다. 대학이 학생들을 교육시키고 사회로 양질의 인재가 잘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대학이, 그리고 삶이 지나치게 미래에 초점 맞춰져 있지는 않은가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식의 플래카드와 홍보는 대학의 특수성을 공식적으로 상실시키는 행위이며 취업과는 거리가 먼 기초 학문을 배우는 학생들에게 무력감을 안겨준다. 대학은 상아탑이지 취업을 위한 졸업증을 발급해 주는 곳이 아니다. 대학의 플래카드는 학술적 성과가 되어야지 취업률 1위가 되어서는 안 된다. 1이라는 숫자가 가지고 있는 우월성 뒤에는 무의미함이 숨겨져 있다. 마치 많은 수험서나 책들이 본인들이 1등이라고 공허하게 외쳐대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맞고 네가 틀리다’는 식의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단지 취업이라는 족쇄에 과도하게 매몰된 탓에 대학에서조차 학문 자체에 무관심한 경향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모든 사람들의 성격과 특성이 다른 것처럼 대학들도 취업에만 과도한 초점을 맞추기보다 각 대학의 특성을 살려 더 나은 사람, 더 발전된 학문을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대학이 진정으로 우선시해야 할 일이며 상아탑이 그러한 소명을 다할 때 우리 사회는 조금 더 진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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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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