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인간 운명에 대한 잔혹한 현실 - 우화

글 입력 2022.11.19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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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올해의 책을 꼽으라면, 나는 앞으로 이 책을 말할 것이다.

 

원래 그림책을 좋아한다. 글자들이 빼곡한 일반 '책'과 또 다른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여백과 여운이 가득한, 그래서 때로는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그림책의 깊이가 참 좋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그림책이 다 마음에 들 순 없다. 때로는 시시하고 때로는 재미없다. 그래서 그런지, 마음에 꽉 차는 그림책을 만났을 때 너무 기분이 좋다. 그림책 <우화>를 읽었을 때처럼.

 

책 <우화>는 폴란드의 그림책 작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신작이다. 권위 있는 각종 상을 수상한 이력을 가진,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작가의 글자 없는 첫 그림책이라고 한다. 그 덕분에 독자 개개인의 생각과 상상, 판단으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열린 구성이 인상적이었다.

 

글자가 없는 책인지라, 책에 대한 상상을 해볼 수 있도록 소개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 먼저 책을 딱 펼치면 똑같은 두 사람이 한 쪽씩 등장한다. 얼굴과 옷차림, 심지어 자세까지 완전히 똑같은 두 사람에게는 유일하게 다른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상황이다.

 

똑같지만, 다른 상황에 처한 두 사람은 각기 다른 인상을 준다. 아래 그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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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은 책 <우화> 속 한 장면이다. 똑같이 뒷짐을 지고 있는 베이지색 셔츠를 입고 있는 두 남성.

 

하지만 한 사람은 수갑을 차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꽃을 쥐고 있다. 수갑을 차고 있는 사람은 복도 같은 휑한 공간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꽃을 쥐고 있는 사람은 문 앞에 서 있는데, 아무래도 사랑하는 누군가의 집 앞인 것 같다.

 

소품 하나만 달라졌을 뿐인데, 천지 차이가 되어버렸다. 분위기와 이야기까지 상반된 두 인물을 두고 작가는 인간의 운명을 이야기하고자 했단다. 인간의 운명이란, 작은 하나의 조각만으로도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나아가 끔찍한 상황에 처한 인물이 특별한 누군가가 아니라는 것을, 그들에게도 우리의 일상적인 모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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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위 그림 속 여성을 한 번 보자. 그녀는 아이를 등에 업고 조심스럽게 기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한쪽에는 평화로운 거실의 풍경이, 다른 한쪽에는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풍경이 둘러싸고 있다.

 

둘러싸고 있는 풍경의 차이가 여성의 표정을 다르게 읽히도록 만든다. 아이와 거실을 기어 다니고 있는 여성은 육아로 피곤한 얼굴처럼 보이고 아이와 철조망 밑을 기어가고 있는 여성은 두려움에 일그러진 얼굴처럼 보인다.

 

분명 둘 다 좋은 표정은 아니다. 하지만 부정적인 감정에도 척도라는 것이 존재하기에, 전달되는 감정의 깊이가 무척 다르다는 것을 너무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책 <우화>의 모든 그림들은 다 이렇게, 극단적인 상황 대치를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독자는 종이 한 장 차이로 달라질 수 있는 운명의 잔혹성과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생각의 흐름은 끝내, 이들이 함께 담긴 그림 앞에서 최종 결말을 맞는다.

 

그럼에도 희망을 보고 싶은 사람과 그렇기에 희망은 없다 생각하는 사람이 읽어내는 의미는 분명 상이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이 책을 올해의 책으로 꼽은 이유이다. 각자의 개인적인 감상을 자극하는 책의 구성이 무척 나의 마음에 들었다. 책을 읽고 누군가에게 추천해 주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기란 참 어려운 일인데, 책 <우화>는 읽자마자 주변에 권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책 <우화>를 추천한다. 무엇보다도 정세가 시끄러운 이 시기이에, 인간의 운명을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라서.

 

 

[김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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