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당신의 상상에 맡겨요, 그림책 우화

그림 조각들을 완성하는 것은
글 입력 2022.11.16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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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신작 〈우화〉는 그림만으로 구성된 그림책이다.

 

작가는 독자의 상상력을 제한할까 염려해 제목을 제외하고는 한 글자도 없다. 그러나 그림 한 조각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힘이 있다. 한 장씩 천천히 넘기면서 묘한 힘에 이끌려 무엇인가를 찾기 시작한다.

 

[보여주고 싶은 것만 전달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설명하지 않을 때, 독자들은 뭔가 다른 것을 찾아냅니다.] -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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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는 백인 남성이 뒷짐을 진 채 바다를 보고 있다. 한 페이지를 넘기면 난민들이 타 있는 듯한 배가 멀리 보인다.

 

다시 한 페이지를 넘기면 이번에는 흑인 남성이 다시 바다를 보고 서있다. 그다음 페이지에는 왼쪽과 오른쪽에 같은 인물이 같은 자세로 서있다.

 

다만 한쪽은 뒷짐진 손에 수갑이 채워져 있고, 한쪽은 꽃을 쥐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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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총상을 입은 듯한 남자가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온 마음을 담아 노래를 하는 남자가 있다. 반복되는 인물의 자세와 구도, 그러나 전혀 다른 상황 속에서 선명하게 다른 인생을 상상해 본다.

 

 


개인의 상상


 

같은 세상에서 누군가는 매일 죽음을 목격하지만 죽음이라는 걸 생각조차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우크라이나 접경국인 폴란드 출생의 작가는 죽음을 자주 떠올렸던 걸까. 책이 접히는 선을 중심으로 전쟁과 일상의 대비가 유독 눈에 띄었다. 대비되는 구성의 그림을 통해 나에게는 지극히 당연했던 일상이 보장될 거라는 믿음은 헛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최근 인상 깊게 본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서 영화를 관통하는 주요 소재로 사용한 멀티버스가 떠올랐다.

 

멀티버스 개념 속에서는 어디에서 태어나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동일한 사람일지라도 다른 운명을 지닐 수 있다. 그림책 속 인물들도 같은 자세를 한 동일한 인물에게 한 쪽에는 수갑이한 쪽에는 꽃이 쥐어져 있는 것처럼.

 

 

 

강조되는 빨간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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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그림의 일부분에 집중해 본다.

 

대부분이 하나의 색상으로 그려진 그림 중 유독 강조되는 빨간 선이 눈에 띈다. 빨간 선은 왼쪽에서 우산의 끝자락이었다가, 오른쪽에서는 총의 방아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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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한 집이었다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철책선으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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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내 선의 색은 점차 무지갯빛으로 변하면서 책에서 각각 등장했던 인물들이 연결된다.

 

떨어지는 아이를 잡아주는 남성, 슬퍼하는 할머니를 다독이는 여성. 서로를 온기로 감싸 안은 후 인물들은 색색깔의 실을 나눠 잡는다. 연대와 갈등 중 우리는 무엇을 쥐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은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말하는 것 같았다.

 

이 책은 자유롭게 풀어진 그림 조각들을 이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읽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갖는 그림책 <우화>를 보고 자신만의 의미를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유다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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