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침묵 속에서 자유로운 상상의 목소리를 내어보다 - '우화' [도서]

글 입력 2022.11.22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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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 세대의 사람들은 영상물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텍스트를 이해하는 능력이 줄어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 영상물마저도 요약본을 보는 경우가 많을 정도로, 짧은 시간 내에 큰 노력 없이 정보를 받아들이는 방법을 선호한다고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스마트폰과 유튜브가 일상 자체인 디지털 시대에 태어나고 자란 이들이 사회의 중심을 이루게 될 테니, 이런 현상은 분명히 계속 심화될 것이다.


사실 나도 그보다 간발의 차로 앞선 세대라 넓게 보면 별반 다를 게 없겠지만, 나는 유튜브를 비롯한 영상 매체를 거의 안 보는 사람이라 그런지 텍스트를 읽는다는 게 딱히 어렵게 느껴진 적은 없는 것 같다.


나에게는 아직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이 충분하다는 사실에 가끔 묘한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때로는 과연 이것으로 충분한 게 맞는지 의구심도 든다.


나는 상상과 창작의 과정을 두려워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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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속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상상하는 일. 어느새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는 데에만 익숙해진 나에게는 피하고 싶은 일이다.


문화예술 콘텐츠를 자주 접하고 그것에 대한 글을 쓰는 내가 이런 말을 한다는 게 누군가에겐 의외일 수도 있겠다. 물론 문화예술은 다양하고 자유로운 해석의 여지가 많은 분야이고, 오히려 나는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예술을 사랑한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예술 콘텐츠를 접한 후 그에 대한 리뷰를 적을 때마다 두려워지기도 한다. ‘내가 잘 이해한 게 맞나?’, ‘이 해석의 방향이 너무 터무니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고민 때문이다. 생각은 자유롭게 해본다 해도 그것을 글로 적어 남들에게 보일 용기는 부족할 때가 많다.


공교롭게도 이번에 읽은 그림책 ‘우화’는 그런 두려움을 끝없이 증폭시켰다. 제목 외에는 글자가 단 한 자도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쉽게 이해하라고 만들어진 게 아니라 스스로 상상하게끔 만들어진 책이었다.


며칠 동안 책을 여러 번 읽었다. 그때마다 책의 내용에 대한 나의 해석은 늘 다르기도, 비슷하기도 했다. 생각은 주로 끝맺음 없이 펼쳐졌고, 때로는 이야기의 마무리를 지어보려 나름대로 애써보기도 했다. 결국에는 정확히 모르겠다며 책을 덮어버리고 다음을 기약하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책을 펼쳤을 때도, 그림들은 역시나 말이 없었다. 오늘도 침묵한다. 막막함에 한숨을 푹 내쉬고 페이지를 넘겨보았다.


첫 장에는 멀찍이 배가 떠 있는 바다가 있다. 두세 번째 장에는 표지의 그림과 똑같은 남자가 있다...고 생각할 뻔했지만, 남자의 피부색과 헤어스타일이 달랐다. 그림 속 배경의 시간대가 다르거나, 어쩌면 다른 사람일지도 모른다. 


이 사소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주의 깊게 봤기 때문이다. 똑같이 붙여넣은 그림인 줄 알았는데 각도, 선, 색 등 약간의 차이가 있었던 부분들이 전날에 책을 봤을 때도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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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반복되는 구성은 이렇다. 똑같은, 아니지. ‘똑같아 보이는’ 사람들이 책의 가운데 접선을 기준으로 양옆에, 서로 다른 상징물들과 함께 그려져 있다. 한쪽은 장난감이 널브러진 거실을 기어가고 있고, 한쪽은 철조망 옆을 기어가는 식이다. 사람들의 표정과 분위기도 달라 보이는 것은 주변의 상징물 때문인지, 정말 다른 건지 모르겠다.


주변의 상징물로 대비되는 양쪽 그림을 볼 때마다 다양한 주제가 떠올랐다.


개인의 선택과 운명, 평행세계, 과거와 현재, 나비효과, 평화와 전쟁, 연대, 후회, 결국 연결되는 사람들, 지구 공동체...


앞서 말했듯 결론은 내리지 못했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이 모든 사고의 과정 자체를 위해 만들어진 책 같다는 생각. 


나는 이 책을 펼칠 때마다 언제나 그림을 세심히 관찰하고 의미를 찾으려 노력했다. 그것들을 구성하여 이야기를 만들어보려 했고, 떠오른 주제에 대해 잠시 생각하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상상이라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았을 어린 시절처럼 자유롭게.


언제부턴가 나는 상상도, 창작도 나와는 맞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그것들을 최대한 피하기 시작했다. 규격화된 학창시절을 지나 어른이 되면 대부분이 으레 이렇게 되고 마는 것인지, 혹은 나에게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어쩌면 대단한 이유 없이 그저 생각하기가 피곤하고 귀찮아져 스스로 상상을 멀리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오랜만에 스스로 ‘이야기’를 상상해본 후 드는 이 기분이 꽤나 색다르고 마음에 든다는 점이다. 


시간이 지나 다시 이 책을 펼쳐본다면, 그때도 역시 인물들은 침묵하고 있겠지. 그래도 나는 그들에게서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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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희 컬쳐리스트.jpg

 

 

[송진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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