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글자 하나 없지만, 생각은 가득해지는 책 '우화'

잔잔한 그림 속에서 요동치는 인간 세상을 보다.
글 입력 2022.11.21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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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은 어린 시절에만 손에 닿았던 것 같은데, 최근 들어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에 관심이 생겼다. 언제나 빼곡한 글을 통해 정보만 받아들이기 급급한 일반 독서와 달리, 그림책은 편안하기 때문이다.

 

책을 완독하는 데에는 아주 짧은 시간이 들지만, 마음에 남는 잔상은 길고 깊다.

 

폴란드 작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우화>는 앞서 말한 그림책 중에서도 정말 어른들을 위한 책이었다.


글자는 단 한 군데도 등장하지 않는 이 책은 지평선 너머 어딘가를 쳐다보는 한 남자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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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만 보이는데도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이 남자는 다음 장에서 오랜 시간 수갑을 찬 남자가 되기도 하고, 등 뒤로 꽃을 숨기고 누군가를 놀라게 하려는 남자가 되기도 한다.


남자의 행색과 생김새는 모두 비슷한데, 각 그림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너무나도 다르다. 흥미로운 점은, 각 상황에 맞추어 남자의 생김새가 다르게 보인다는 것이다.


수갑을 차고 있는 남성을 볼 때는, 수갑에 쓸려 벌게진 손목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나니, 앙상한 팔꿈치가 보이고, 목덜미도 왠지 속박했던 자국이 보이는 듯했다. '아, 이 사람은 부당한 환경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옆에 꽃을 든 남자를 다시 자세히 살펴보니, 튀어나온 팔꿈치도, 목의 자국도 거의 똑같았다. 다만 그 그림 속에서는 못 먹어서 앙상한 팔꿈치처럼 느껴지지 않았고, 목덜미의 자국도, 밧줄의 흔적이 아니라 그저 세월이 남긴 주름 같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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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의 여성은 우산을 펼치고 있고, 오른쪽의 여성은 총을 장전하고 있다. 같은 자세, 같은 사람인데 정말 이상하게도 표정이 달라 보였다.

 

왼쪽 여성의 얼굴에서는 기품있고 단아한 부인이 보이는데, 오른쪽의 얼굴에서는 왠지 모를 비장함이 느껴진다. 드레시한 옷에 손질된 머리, 뾰족한 구두 차림새임에도 익숙한 폼으로 총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니, 언제나 전쟁의 위협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다.


이처럼 <우화> 안에는 아주 간단한 사물 하나의 차이로 등장인물의 표정, 태도, 상황까지 다르게 생각하게 만들어버린다. 아예 사람이 다르게 그려진 게 아닐까? 하고는 양옆 페이지를 왔다 갔다 비교해보아도 큰 차이는 없다는 게 재밌다.

 

나는 지구라는 이 사회에 사는 사람으로서 이들의 상황을 유추하고 짐작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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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마지막 부분으로 가면, 앞에 나왔던 등장인물들이 서로 엮이며 연대하는 듯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려운 상황으로 보였던 인물을 다른 인물이 구해주고, 다들 하나의 원 안에 둘러 모여있는 그림.


지금까지 보았던 사람들의 얘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라는 걸 보여주는 듯했다.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임을, 누군가가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가도, 총에 맞아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는 현실이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라고.


사실 이 그림을 그린 작가가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댄 폴란드 사람이라는 걸 알았을 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아, 전쟁과 같은 위협 상황을 많이 보고 들은 나라의 사람이니까 그와 관련된 얘기를 하겠구나.' 그려진 사람들의 모습도 서양인이다 보니, 막연하게 서방 국가의 전쟁 상황을 떠올리며 그들의 아픔이 표현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을 계속 보다 보니, 나도 저 빨간 원 안에 함께 들어있는 사람이구나, 이건 모든 사람의 이야기구나 싶었다.


정말 짧은 분량의 책임에도 <우화>는 깊은 울림을 줬다.


이 책은 이렇게 요약된 리뷰나 사진으로만 보기보다, 직접 한 장 한 장 넘기며, 그림은 찬찬히 뜯어보며 음미할 때 감동 할 수 있는 것 같다.


너무나 자유롭게 이야기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에게 이 책을 보여 주고 감상을 묻고 싶어진다.

 

네가 이 책을 통해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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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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