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시끄러운 등, 소리 없는 아우성 - 우화 [도서]

글 입력 2022.11.21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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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화(寓話)’는 인격화한 동식물이나 기타 사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들의 행동 속에 풍자와 교훈의 뜻을 나타내는 이야기를 뜻한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우화는 이솝 우화이다. 거짓말을 일삼았던 양치기 소년은 종래에 아무도 자신을 믿지 않아서 양을 몽땅 잃어버리는 최후를 맞고, 허황한 욕심으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른 농부는 결국 황금도 거위도 모두 잃게 되었다는. 직관적이고도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우화들.


그러나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우화>는 우리가 흔히 아는 우화처럼 쉽고 명확하게 메시지를 던져주지는 않는다. 이 그림책에는 한 줄의 문장도 없기 때문이다.


 

간단한 상징을 통해 인간의 운명에 대한 보편적 진실을 말하고 싶다. 서사 전체가 여려 있어, 아무런 제한 없이 자유로운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도록. 독자 개개인이 자신들의 생각으로 채울 수 있도록. 여러분을 나의 그림책 세계로 초대한다.


- 작가의 말 中

 


작가의 말처럼 정말 독자의 상상에 제한하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책 표지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글자가 없다. 글자마저도 앞표지에는 제목, 뒤표지에는 위의 발췌된 만큼의 작가의 말만 존재할 뿐이다.

 

그렇다면 작가의 말을 따라 자유롭게 상상해보기로 한다. 단, 작가의 말을 지침 삼아 여정을 떠난다. 개인적인 경험뿐만 아니라 인간의 운명에 대한 보편성도 탐구해보기로.

 

참고로 그녀는 폴란드의 작가이다. 현재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접하고 있어 많은 피난민이 몰려오고, 과거 러시아에 의한 지배의 역사를 지닌 국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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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표지이자 첫 그림이다. 같은 모습이지만 왼편의 남자는 세상으로부터 억압되어 있고, 오른편의 남자는 곧 맞이할 세상에 대한 설렘을 지니고 있다. 언뜻 차이점이 없어 보이는 그림이지만, 파란색의 덧칠은 삭막함과 따뜻함이라는 정반대의 이미지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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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아이는 모두 공중에 있다. 차이점이라면 오른편의 아이는 지탱할 지지대가 없어 위태로워 보이고, 왼편의 아이는 그네라는 최소한의 안전 목이 있어 즐겁게 느껴진다. 왼편의 아이가 추락하고 있는지 비행하고 있는지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옆의 건물 그림으로 비추어 보았을 때, 사회에서 보호받아야 할 작고 여린 아이가 위태로워 보인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아이가 최소한의 보호막 없이 혼자 사회의 한 가운데에 부양하고 있는 것은, 그 전후사정을 몰라도 불안함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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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와 아기의 어머니로 추정되는 사람이 있다. 자세히 보면 아기와 어머니 두 명 다 볼에 빨간색 덧칠이 칠해져 있다.

 

그러나 왼편의 덧칠은 베개나 장난감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안도감이 느껴진다. 오래 누워 있다가 베개에 짓눌린 흔적, 장난감을 통해 살짝 긁힌 흔적 등으로 유추되어 소소한 일상의 느낌으로 치부된다.

 

오른편의 그림은 사뭇 다르다. 철조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 빨간색 덧칠, 아기를 위태롭게 업은 채 바닥을 기는 행위는 비밀리에 국경을 넘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이런 상황이 상상이 되면 저 빨간색의 정도가 어느 정도일지 감히 가늠할 수도 없다. 순식간에 구조적이고 국가적인 시선의 문제로 생각이 옮겨진다.


이 그림들을 통해, 같은 그림일지라도 주어지는 배경에 따라 개인의 시선과 구조적 시선으로 다르게 비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개인적인 일상 유희의 배경에서는 그리 눈에 띄지도 않던 빨간 덧칠이, 사회의 억압과 구속이 느껴지는 그림에서는 치명적인 효과로 다가온다.

 

특히 정확한 전후 맥락 없이 한 편의 포착으로만 이루어진 그림에 우리는 많은 역사와 사건을 빗댈 수 있다. 각자의 현대사 혹은 개인사를 대입해 구조적 문제에 대해 고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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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제시된 그림들은 주로 사회에서 억압되고, 고립되고, 피해를 겪는 그림이 위주이다. 그러나 <우화>의 책에는 동시에 가해의 행위를 상기시키는 그림들도 존재한다.


우산으로 비를 막으려던 여성의 손에 총이 쥐어지는 순간, 그녀는 자신의 목숨을 지키는 동시에 남의 목숨을 해할 수도 있는 존재가 된다. 화덕에 빵을 구워 남을 먹이는 일을 하던 남자의 손에 칼이 쥐어지면 순식간에 남을 해치려는 사람이 된다.


구조적인 싸움, 특히 ‘전쟁’과도 같은 참혹한 권력 다툼에서 가장 슬픈 것은, 평범한 사람들도 무기를 들어야 할 때가 온다는 것이다. 무기는 자신을 지키려는 수단이지만 동시에 남을 해칠 수도 있는 수단이다.

 

그저 각자의 위치에서 보통의 일상을 영위하는 것이 행복인, 한낱 민간인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남을 해칠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은 비극적이다. 그저 당연한 것을 지키기 위했을 뿐인데, 내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날벼락이나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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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하던 남성은 아이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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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였던 개인들이 하나의 우리가 된다

 

 

이 날벼락 같은 거대한 운명에 맞서기 위해 사람들은 연대한다. 나룻배로 탈출을 시도 하다가 바다에 빠졌던 남성은 추락하던 아이를 받아낸다. 금서(禁書)를 불태우던 남성은 아이를 업고 기어가는 여성을 돕는다.

 

혼자의 몸으로 사회에 떨어졌을 때는 위태로워 보이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끈 하나를 통해 연결되었을 뿐인데 더는 연약해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책에는 말 한마디 없지만, 그 그림에서 우리는 그들의 울부짖음과 아우성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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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위치에서 연대하는 마지막 페이지의 사람들을 본 후 책을 덮으면, 표지에 뒷짐을 지고 있는 뒷모습의 남성이 다시금 눈에 들어온다.

 

책을 펼칠 때는 그저 먼 하늘, 혹은 바다를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의 등에서, 이제는 무수한 말이 들려온다. 한때 사랑하는 이를 위해 뒤에 꽃다발을 숨겼을 그의 손은, 이제 수갑에 채이기도, 혹은 다른 사람들과 연대의 끈을 쥐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누군가에게는 이 사실이 현재 진행되는 현실이기에.


어쩌면 이 책은 말 한마디 없지만 가장 시끄러운 책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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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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