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린이라는 세계에서 어른으로 살아가는 것은 [만화]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코타로는 1인 가구>
글 입력 2022.04.0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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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옆집에 5살 아이가 혼자 산다면 어떨 것 같은가? 요리도, 빨래도, 청소도 스스로 하고 신문도 구독해 읽는 아이가 살고 있다면 말이다. 게다가 그 집에 매주 생활비를 주러 찾아오는 변호사가 있다면? 아마 판타지 소설만큼이나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여기 아주 비현실적인 설정으로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는 애니메이션이 있다. 지난 3월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코타로는 1인 가구>다.


원룸 건물 '시미즈'에 혼자 이사 온 코타로는 만 네 살이다. 이제 막 다섯 살이 된 코타로는 혼자 장도 보고 요리도 해 먹고 심지어 유치원 등록도 스스로 한다. 지나치게 어른스러운 사극 말투까지 쓰는 코타로는 도통 어린이 같지 않다. 애(?) 답지 않은 말투와 행동 속에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귀엽기도 하지만, 코타로가 어쩌다 혼자 살게 되었고 무슨 이유로 너무나 이르게 어른스러워졌는지를 알게 되면 마냥 귀여워할 수는 없다.

 

 

코타로.jpg

 

 

코타로는 아동학대 피해자다. 아버지에게는 폭력을, 어머니에게는 방임을 당했다. 코타로의 과거가 구체적으로 묘사되지는 않지만, 현재 코타로의 행동들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미움받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모습,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는 모습, 눈치가 빠른 모습. 모든 면에서 과한 모습을 보이는 코타로의 행동은 실은 과한 것이 아니라 '결핍'이다. 그리고 그 결핍은 원룸 빌딩 시미즈에서 만난 이웃들을 통해 점차 채워진다. 코타로의 눈은 안광 하나 없이 짙은 검은색으로 표현되는데, 코타로의 마음이 채워지는 순간마다 두 눈동자가 자그맣고 하얗게 빛난다. 극을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코타로의 눈망울을 기다리게 된다.

 

 

 

어린이를 대하는 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코타로를 대하는 어른들의 태도다. 그 누구도 코타로를 '아이' 대하듯 대하지 않는다. 함부로 말하지고 않고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코타로의 요청이 있기 전까지는 장바구니도 들어주지 않고 요리도 대신해주지 않는다. 심지어 어떤 등장인물은 코타로에게 존댓말을 하기도 한다. 이들과의 관계에서 코타로의 결핍이 채워지긴 하지만, 권위의식을 가지고 '채워주려'하는 어른은 한 명도 없다. 오히려 모두 코타로에게서 위로를 받고 깨달음을 얻는다. 코타로를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다. 김소연의 <어린이라는 세계>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린이가 어른의 반만 하다고 해서 어른의 반만큼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가 아무리 작아도 한 명은 한 명이다. 하지만 어떤 어른들은 그 사실을 깜빡하는 것 같다.
 

 

아무리 작아도 한 명은 한 명이다. 우리는 한 명을 한 명으로 대해야 한다. '어른이 채워주어야 할 반쪽짜리 존재'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헬린이', '등린이' 등 한 분야에 미숙한 '초보'를 뜻하는 단어로 '-린이'를 쓰는 것도 옳지 않다. 어린이는 미숙하고 불완전한 존재라는 편견을 고취시키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어린이는 어른의 반이 아니다. 어린이는 무한한 가능성과 힘이 있는 존재라고, 그러므로 젊은이, 늙은이와 동등한 사람으로 봐야 한다고 '어린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방정환 선생은 말했다. 어린이는 우리에 뒤처진 세대가 아닌,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다른 나이대'의 사람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어린이들은 생각만큼 미숙하지 않다. 오히려 어린이에게 배울 점이 무궁무진하다. 이것은 아이들과 잠깐만 대화해도 느낄 수 있지만,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는 이들에게는 이슬아의 <부지런한 사랑>을 추천한다. 이슬아의 글방 어린이들이 직접 쓴 글을 읽는다면 그동안 알고 있던 어린이라는 존재를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어린이의 세계가 얼마나 완성형인지, 얼마나 근사한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지 느껴보길 바란다.

 

 

우리는 함께 뒤섞여 놓다가 서로의 여름 냄새에 대해 다 알게 되었다. 우리의 두피에서는 찌든 걸레 냄새가 났다. 우리의 옷에선 중학생 남자 옆을 지나가면 맡을 수 있는 냄새가 났다. 우리의 발에서는 가죽에 물을 묻히고 한동안 방치해둔 냄새가 났다. 웃음거리가 되던 우리의 여름 냄새들이었다.

 

- <부지런한 사랑>,이슬아 中 열 세살 이형원이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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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타로의 주위의 어른들은 '완벽한 어른'이 아니다. 어린이를 대하는 데에 익숙하지도 않고, 데이트 폭력을 당하거나, 이혼하여 사랑하는 자식을 보지 못하고 있거나, 어릴 적 학대의 트라우마로 어린이를 무서워하는 등 각자의 사연과 상처를 안고 사는 어른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당연하다는 듯 코타로에게 애정을 준다. 대중목욕탕에 함께 가고, 유치원 학부모 회의에 참석하고, 코타로가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의 마지막 화를 함께 시청해 준다. 실제로 그럴 수 있는 어른이 몇 명이나 될까 생각해 보다 조금 씁쓸해졌다. 코타로 세계관에서는 그것이 당연한 일인 게 부럽기도 했다.

 

어쨌든 <코타로는 1인 가구>의 이러한 설정은 '나는 어린이 잘 몰라서', '아이는 엄마가 제일 잘 아니까', '혹시나 안 좋은 영향 줄까 봐' 등 다양한 핑계로 어린이와 나 사이에 선을 긋는 이들에게 말한다. 어린이와의 관계를 위해 당신이 완벽할 필요는 없다고. 오히려 어린이가 당신의 상처를 위로할 수도 있다고 말이다.

 

 

 

어린이라는 세계에서 어른으로 살아가는 것은


 

한 에피소드에서 어린이 진료를 한 시간씩이나 보는 치과의사가 아이들의 충치에는 아이들의 들리지 않는 절규가 담겨 있기도 하다며, 자신은 그 절규를 흘려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자신의 자리에서 어린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이 치과의사는, 어린이라는 세계 속 참된 어른을 대표한다.

 

 

우리에게 자녀가 있든 없든, 우리가 어린이와 친하든 어색하든, 세상에는 어린이가 '있다'. 절망의 말을 내뱉기 전에 어린이를 떠올려 보면 좋겠다.

 

- <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연

 


어린이가 '있는' 세상에서, 나는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까. 나는 치과의사도 어린이집 교사도 아니고 코타로처럼 어린아이가 옆집으로 이사 올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다짐한다. 언제까지고 어린이라는 세계 속의 어른이 되자고, 어린이들이 자라날 시간을 지켜주자고 다짐한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아이의 부모나 교사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그 마을에 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직접적인 도움이 아닐지언정 어린이를 위해 '마을 어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있다. 가장 쉬운 방법으로는 대중교통에서 아이가 울어도 불편해하지 않기 (불편하더라도 티 내지 않기), 노키즈존을 필요로 하지 않기, 기다려주기 등이 있다.

 

이 세계에는 어린이가 있다는 것을, 어린이라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 행동한다면 모든 어린이의 눈동자가 형형하게 빛나는 세상에 조금 더 가까워질 것이라 믿는다.

 

 


김지은 (1).jpg

 

 

[김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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