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에피타이저처럼 맛보는 합스부르크가 650년 - 명화로 읽는 합스부르크 역사

글 입력 2022.11.05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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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역사를 잘 알지 못하지만 ‘카를 5세’, ‘미남왕 펠리페’, ‘후아나’ 같이 이름이 익숙한 사람은 몇몇 있다. 『명화로 읽는 합스부르크 역사』를 읽으며 유럽사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의 상당수가 합스부르크가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650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합스부르크가는 유럽의 중심에서 그 세력을 지켰고, 유럽사에 큰 영향을 미친 여러 인물을 배출했다. 그러므로 합스부르크가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은 유럽사를 탐구하는 것과 같다.

     

이 책에서는 그림을 통해 합스부르크가의 연대기를 돌아보고자 한다. 알브레히트 뒤러, 베첼리오 티치아노, 디에고 벨라스케스 등 여러 화가가 화폭에 담은 합스부르크가 사람들의 모습이 펼쳐진다. 영상도 사진도 없는 시대의 그림은 활자로 된 기록이 다 말하지 못하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오래전에 그려진 이 그림들은 2022년을 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줄 수 있을까. 나카노 쿄코는 우리가 한번 보고 지나칠 법한 그림을 꼼꼼하게 분석하며 합스부르크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모든 것이 그렇듯 합스부르크가도 시작은 소소했다. 합스부르크가의 유럽 지배 역사는 13세기 초 가난한 시골 호족이던 합스부르크 백작 루돌프가 우연치 않게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되면서 시작된다. 이후 150년간 합스부르크가는 다른 가문과 계속해서 경쟁하며 세력을 유지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가문은 아니었던 합스부르크가의 존재감을 강하게 만든 건 막시밀리안 1세이다. 그는 적극적으로 영토를 확장시켰고 예술을 프로파간다로 이용해 지지자들을 끌어모았다. 결혼의 덕을 많이 본 인물이기도 하다. 당시 부르군트공국의 마리아와 결혼해 가문의 세를 넓혔기 때문이다.

     

 
“전쟁은 다른 이들에게 맡겨라. 너 행복한 오스트리아여, 결혼하라!”
 

     

합스부르크가의 이 유명한 가훈은 막시밀리안에게서 비롯되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리고 이어지는 역사 속에서 이 가문은 오랫동안 그 가훈에 충실했다. 합스부르크가는 크게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와 에스파냐 합스부르크가로 나뉘는데, 가문의 사람들은 여러 차례 근친혼을 통해 자신들의 ‘푸른 피’를 지켰다고 한다. 책을 읽다 보면 이 시대의 결혼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결혼과 많이 다른 개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유력 가문들 사이의 결혼은 개인과 개인의 결합이 아니라 누가 어디를 통치할 것인지 결정하는 계승 의식에 더 가까웠다. 합스부르크가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 역시 이 가문의 결혼과 출산의 역사를 살피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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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fonisba Anguissola, Portrait of Philipp II, 1573.

 

 

펠리페 2세는 당시 결혼이 권력에 어떻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는지 잘 보여주는 인물이다. 이미 젊은 나이에 아내와 한번 사별했던 그는 그 뒤로 각각 다른 사람과 세 번이나 새롭게 결혼했다. 그중 두 번째 결혼 상대는 영국의 여왕 메리 1세였다. 메리 1세 사이에서 자식을 낳으면 잉글랜드의 신교도 항쟁을 잠재울 수 있고, 훗날 그 자식이 잉글랜드까지 물려받을 수 있을 거라는 아버지 카를 5세의 판단이었지만, 펠리페보다 11살 연상이었던 메리의 건강 악화로 이 계획은 무산된다.

     

이후 메리가 처형되고 엘리자베스가 왕위에 오르자 펠리페는 언제 메리와 결혼했냐는 듯 엘리자베스에게 청혼하지만 거절당한다. 그는 좌절하지 않고 적국이던 프랑스의 공주로 당시 14세였던 엘리자베트와 결혼해 잉글랜드를 견제한다. 아무리 전략적인 결혼이 일반적인 시대였다고 해도 엘리자베트가 원래는 펠리페의 아들과 약혼했던 사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파격적인 행보다. 결혼한 지 9년 만에 엘리자베트도 죽고 말자 외삼촌의 조카딸인 안나와 곧바로 네 번째 결혼을 한다. 오로지 자신의 세를 넓히고 후계자를 만들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수많은 결혼이 650년간 이어지는 걸 보고 있으면 권력을 향한 합스부르크가의 열망이 느껴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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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cisco Pradilla Ortiz, La reina doña Juana la Loca, recluida en Tordesillas con su hija, 1906.

 

 

물론 이때나 지금이나 사람은 사람이기에, 이 도구적인 결혼에서 상대방에게 깊은 애정을 품게 된 이들도 있었다. 펠리페 2세의 할머니이자 카스티야의 여왕이었던 후아나는 혼란한 시대에 생겨난 애정으로 오랫동안 괴로워한 인물이다. 그 이야기보다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책에 실린 한 점의 그림이다. 황야에 놓인 관을 슬픈 표정으로 바라보는 모습과 창가에 허망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검은색 옷차림의 여성이 있다. 그가 바로 ‘후아나 라 로카(광녀 후아나)’로 불리는 후아나다.

     

후아나는 정략결혼으로 남편이 된 펠리페를 마음 깊이 사랑하게 되었지만, 이 시대 합스부르크가에서 사랑은 사치품이었다. 남편인 펠리페와 아버지인 페르난도의 권력 다툼 사이에서 고통받던 그는 남편이 갑작스럽게 죽어버리자 남편의 시신을 데리고 여기저기를 떠돈다. 결국 페르난도는 후아나를 토륻데시야스궁전에 유폐해기에 이른다. 책에 실린 그림은 유폐되어 궁 안에서 생활하는 후아나의 모습을 담은 것이다. 1906년 작품으로 실제 후아나가 살던 시기와 400년 넘게 차이가 있지만 후세의 사람들이 그림의 대상으로 삼을 만큼 후아나의 이야기가 비극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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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z Xaver Wagenschön, Erzherzogin Maria Antonia am Spinett, 1769.

 

 

결혼으로 세력을 확장하는 수단이었던 것 못지않게 결혼으로 낳은 자식들도 귀중한 기회의 씨앗이었다. 자식을 어디의 누구와 혼인시키느냐에 따라 가문이 다스리는 영토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이런 면모가 잘 드러나는 인물이다. 그는 합스부르크가의 번영을 위해 자신이 낳은 11명의 딸을 전략적으로 활용했다.

     

그중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사람은 마리아의 11번째 딸인 마리아 안토니아일 것이다. 프랑스어로 '마리 앙투아네트라' 읽는 그는 익히 알려져 있듯 프랑스 혁명에서 38세의 나이에 처형당했다. 후세에 와서 사치밖에 모르는 사악한 여자로서가 아니라 다른 면모도 많이 부각되고 있는데, 이 책 역시 같은 결이다. 강대국의 왕비가 되기에는 철없고 부족한 그에게 여러 불운이 겹쳤다는 부분을 흥미롭게 풀어낸다. 서서히 비극의 길로 접어드는 앙투아네트의 모습을 보며 수많은 '만약에'를 생각해보기도 하지만, 역사는 이미 일어난 일로만 채워져 있다. 그림 속 말간 얼굴이 유난히 슬퍼 보이는 이유다.

 

*

 

'합스부르크가의 역사'라고 하면 거창해 보이지만 스웨터가 실과 실이 얽힌 결과물인 것처럼 합스부르크가도 결국에는 개개인의 결혼과 출산으로 이어진 가문이다. 거대한 역사를 이룬 개개인의 이야기가 그림과 함께 흥미롭고도 안타깝게 다가온다.


650년에 걸친 그 모든 역사를 다 소화하기에 한 권의 책으로는 부족하다. 이 책은 일종의 에피타이저와 비슷하다. 합스부르크가의 주요 인물 몇몇을 그림으로 훑어보며 흥미를 돋우는 것이다. 쉽게 쓰인 책이므로 그림과 역사 두 분야 모두를 잘 알지 못해도 무리 없이 이해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관심이 더 생긴다면 한 인물을 좀 더 깊게 탐구하든, 유럽사를 다룬 다른 책을 읽든 앎을 이어나가면 된다. 이 책은 그 시작이 되어줄 것이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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