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눈으로 즐기는 역사 – 명화로 읽는 합스부르크 역사 [도서]

역사가 흐르는 미술관-명화로 읽는 합스부르크 역사
글 입력 2022.11.07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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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인물의 재미에 달려있다.

 

서양사를 공부한다면 빠질 수 없는 합스부르크 왕조는 중세부터 20세기 초까지 약 650년에 걸친 긴 명맥을 유지했다. 십자군 전쟁, 르네상스, 종교 개혁, 시민혁명 등 유럽사의 핵심이자 기반을 이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서적과 미술관, 박물관에서 자주 보는 예술 작품들도 거의 합스부르크 왕조 배경 속에서 탄생한 것이다.

 

<명화로 읽는 합스부르크 역사>는 명화에 초점을 맞추어 그림의 흡입력으로 역사를 쉽게 볼 수 있게 한다. 합스부르크 사람들은 워낙 개성이 강하고, 운명이 비정할지라도 끝까지 싸워나가며 끝의 파멸조차 화려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단숨에 매료되었던 인물은 펠리페 2세이다. 초상화 속 조용히 서 있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복잡한 내면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에스파냐만의 역사가 아닌 각국 유럽과 연결되어 있는 이야기를 계속 긁어내어 자세하게 공부해 보고 싶다.

 

 

 

군복 모습의 펠리페 황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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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첼리오 티치아노, 군복 모습의 펠리페 황태자

 

펠리페 2세가 군림했던 시기는 에스파냐의 황금시대였다. 하지만 이러한 황금은 약탈의 흔적이 가득했으며, 흑사병, 전쟁, 음모, 반란... 펠리페 2세의 인생은 피로 얼룩진 삶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혼마저 그랬으니 말이다.

 

첫 번째 왕후는 포르투갈 왕녀로 2년이 채 되지 않아 난산으로 사망했다. 두 번째 왕후는 영국의 메리 1세였는데, 당시 후계자를 생산하기 위한 결혼이었다. 그들 사이에 아이가 태어난다면 에스파냐는 강대국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늦은 나이의 메리에게 임신이란 힘든 일이었다. 결국 메리 1세는 종양이 악화되어 사망했다. 세 번째 왕후와 네 번째 왕후가 연달아 일찍 사망하면서 펠리페 2세는 ‘그가 움직이면 세계가 흔들린다’라는 말의 시초가 되었다.

 

그림을 보면 허리에 검을 차고 눈부신 갑주로 몸을 감싸고 있는 늘씬한 펠리페 2세가 보인다. 손가락에는 수수해 보이는 반지를 끼고 있고, 부풀린 형태의 짧은 반바지는 늘씬하게 쭉 뻗은 다리를 돋보이게 한다. 바지 사이로 튀어나온 코드피스가 눈에 띄는데, 이는 당시 유행한 장식용 보호구로 색과 형태, 소재까지 화려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펠리페의 눈빛은 짙은 어두움을 담고 있다. 조용한 모습 가운데 어딘지 모르게 방심할 수 없는 분위기가 떠돈다. 그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제왕의 기품 속 어딘가 청년의 복잡한 내면을 엿볼 수 있다. 티치아노는 그의 정신과 이념을 날카롭게 간파했던 것이 틀림없다.

 

 

 

프리드리히 대왕의 플루트 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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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폰 멘첼, 프리드리히 대왕의 플루트 연주회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는 합스부르크가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합스부르크가의 원수였다. 바로 합스부르크 공국의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와 말이다.

 

프리드리히는 마리아 테레지아가 합스부르크 공국의 여제로 등극하자마자 오스트리아령 슐레지엔 지방을 둘러싼 전쟁을 선포했다. 당시 프리드리히는 마리아 테레지아의 아버지인 카를 6세의 도움으로 즉위할 수 있었는데, 은혜를 원수로 갚은 것이었다.

 

합스부르크 입장에서 보면 확실히 프리드리히 대왕은 배은망덕한 악마였을 것이다. 실제로 마리아 테레지아는 죽을 때까지 프리드리히를 끔찍하게 싫어했다고 한다. 하지만 프리드리히 대왕은 지켜야 할 나라가 있었던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당시 프리드리히는 신흥국 젊은 왕으로서 ‘왕은 국가를 가장 섬겨야 할 사람’이라고 주장했는데, 철학자 칸트나 러시아의 표트르 3세, 심지어 마리아 테레지아의 아들인 요제프마저 그를 칭송했다.

 

프리드리히 2세와 마리아 테레지아. 숙적인 두 사람은 한쪽은 파격적, 한쪽은 모범적이라는 면에서 차이가 있다. 하지만 예민한 정치 능력과 냉철한 행동력은 매우 닮았다.

 

그림의 배경은 프로이센의 상수시 궁전이다. 특유의 화사함을 담아 반짝이는 샹들리에가 먼저 보인다. 그 가운데 장년 남성이 플루트를 연주하고 있다. 그가 바로 프리드리히 2세이다. 당시 프랑스 문화에 심취해 있던 프리드리히는 음악을 사랑하는 대왕이었다. 오른쪽 벽에 서 있는 사람은 플루트 스승으로, 만족하는 표정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 그림의 독특한 점은 다른 국가의 궁정과 달리 여성이 적다. 당시 별거했던 왕비의 자리에 프리드리히의 누나가 자리하고 있는데, 당시 프리드리히의 여성관을 살펴볼 수 있다. 그는 어머니와 누나 제외하고 모든 여성을 싫어했다.

 

 

 

엘리자베트 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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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사버 빈터할터, 엘리자베트 황후

 

초상화의 주인공은 국내 뮤지컬로도 잘 알려져 있는 오스트리아의 엘리자벳 황후이다. 사실상 합스부르크 제국의 마지막 황제이자 오스트리아의 국왕인 프란츠 요제프가 그녀의 남편이다. 그녀의 삶은 자유를 향한 갈망, 고부 갈등, 우울증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엘리자벳 인생에서 가장 큰 사건은 아들인 루돌프 왕세자가 남편 요제프와 정치적으로 대립하다가 자살한 ‘마이얼링 사건’이 아닐까 싶다. 이 사건으로 그녀의 정처 없는 방랑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무정부주의자였던 루이지 루케니에 의해 암살당한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자유를 갈망했을 그녀의 삶이 한편으로는 희망적이고 한편으로는 허무와 적막감이 가득해 보인다. 어째서 그녀는 결혼과 죽음과 같이 중요한 순간마다 다른 사람에게 가야 할 것을 떠안게 된 것일까.

 

그림은 엘리자벳 황후의 화려함을 자랑하고 있다. 당시 엘리자벳의 사진이 많이 남아 있어 화가의 붓이 거짓을 그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굳이 미화할 필요 없을 정도로 세기의 미녀였기 때문이다. 웅장하고 아름다운 대리석 궁전을 배경으로 비스듬히 서있는 그녀는 우아하게 화가를 바라보고 있다. 풍성한 머리카락에는 황제의 선물인 별 모양 장식을 달고, 황금 자수의 눈부신 드레스를 걸친 모습은 과히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다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녀의 눈은 조금도 웃고 있지 않다. 전반적으로 이 그림은 아름다움과 호사스러움 속에 숨어 있는 고독과 어두운 예감을 느끼게 해준다. 그림 감상 후에도 잊히지 않는 어두운 슬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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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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