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합스부르크 역사, 명화에 담긴 역사속 생생한 이야기 [도서]

글 입력 2022.11.07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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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스부르크 왕조는 중세부터 20세기 초까지 약 650년에 걸쳐 명맥을 유지하며, 유럽 내에서 주변 국가들과 적극적인 혼인관계를 맺으며 영토를 확장해나갔다.

 

베르디의 오페라 <카를로스>, 슈테판 츠바이크의 전기 <마리 앙투아네트>, 실베스터 르베이의 뮤지컬 <엘리자벳> 등 합스부르크제국은 수많은 예술작품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도서 <명화로 읽는 합스부르크 역사>는 당시 명화를 통해 그 속에 담긴 폭넓은 역사와 이야기들을 독자에게 전한다.

 

 

합스부르크 도서사진.jpg

 

 

합스부르크 왕조의 이야기를 음미하며 책장을 한장한장 넘길때마다 충격적이었던 부분은 왕실간의 혼인에 대한 이야기였다. 사촌, 조카 등 근친간의 결혼이 빈번했고 결혼의 주 목적이 국가간의 협약과 직결되는 일종의 계약이었다. 그 대표적 예로 펠리페 2세의 일화를 들 수 있다.

 

펠리페 2세의 두번째 부인인 잉글랜드 여왕 메리 1세는 열한살 연상의 부인이었다. 두사람 사이의 결혼은 신교도 항쟁의 불꽃이 다시 타오르기 시작한 잉글랜드를 가톨릭으로 되돌리기위한 사명으로 성사된 결혼이었다.

 

당시 계약 내용에는 메리는 잉글랜드를 떠날 필요가 없으며, 에스파냐는 잉글랜드에 군사를 주둔시키지 않는다는 내용이 포함되어있었다. 펠리페의 초상화를 보고 남편을 맞을 생각에 기대에 부풀었던 메리는 그의 의중을 헤아려 신교도 반란자 수백명을 피의 제물로 바쳤고, 그로 인해 ‘블러디 메리’라는 호칭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 왕가간의 결혼은 국가의 권력증대 및 안위보장을 위해 이용되었고, 메리의 회임소식을 들은 펠리페도 에스파냐가 더욱 강대국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겨 더욱 기뻐하였다. 하지만 메리는 상상임신을 한것으로 밝혀졌고, 배가 부른 이유도 종양때문으로 판명되었다.

 

결혼을 위해 잉글랜드에 온지 1년반도 안되어 펠레페는 메리 곁을 떠났고, 1년 3개월뒤 다시 돌아온 목적도 아내의 애정을 이용해 프랑스와의 전쟁에 필요한 자금을 원조받기 위함이었다. 그는 자금을 얻어내자마자 떠난 것은 물론, 종양이 악화되어 곧 죽게 될 메리를 두고 차기 여왕후보 엘리자베스와 비밀리에 결혼을 타진하기도 했다.

 

‘피의 메리’라는 호칭으로 겉핡기식의 세계사 지식을 보유하고 있던터라 메리에 대한 상세 일화는 그동안 잘 알지못했었다. 하지만 <명화로 읽는 합스부르크 역사>를 통해 세계사 속 인물들을 상세히 파헤쳐 볼 수 있었고, 우리에겐 한줄짜리 역사로 보여지는 연대표 속에 수많은 이야기와 역사의 무게가 함축되어 있다는 것을 다시한번 실감했다.

 

국가를 위해 결혼을 하고,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남편에게는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메리의 삶을 한 여인의 삶에 빗대어 잠시 생각해보면, 피의 메리라는 호칭으로 역사상 기억되는 그녀의 치열했던 삶에 마음한켠이 쓸쓸해지는 것 같다.

 

펠리페 2세에 이어 흥미로웠던 이야기는 그의 손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펠리페 2세의 손자 펠리페 4세는 16세에 왕위를 역임해야했기에 총신에게 정무를 위임할 수 밖에 없어 무능왕이라는 딱지가 따라다녔다고 한다. 하지만, 미술품이나 회화에 대한 감각은 탁월하여 왕실의 소장품을 차곡차곡 늘려나갔고, 젊은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재능을 일찍이 알아보고 궁정화가로 등용해 그가 실력을 펼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었다.

 

벨라스케스는 길쭉한 얼굴형에 길고 불그레한 코, 튀어나온 아랫입술과 주걱턱 등 준수하지 않은 외모의 왕을 초상화 하나만으로 위엄과 권위를 갖춘 이상적인 군주의 모습으로 재탄생시켰다. 펠리페 4세는 벨라스케스가 그린 자신의 조상화를 본후 다른 화가들을 왕궁에서 전부 내보냈다. 고도의 사실주의 화풍, 오묘한 색채, 풍부한 표현력 등 벨라스케스는 자신만의 특별한 재능으로 보는이에게 국왕의 기품과 위엄을 전달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벨라스케스에 대한 왕의 신임은 더욱 두터워져 시내의 저택 뿐 아니라 왕궁내 전용 아틀리에를 마련해주었고, 화가인 그를 궁정관리로 임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사인은 과로사였고 남긴 작품수도 적다. 미술사 한편에서는 과묵하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던 벨라스케스가 정말 행복했을까?라는 의문을 품기도 한다고 전해진다.

 

 

벨라스케스 시녀들 수정.jpg

벨라스케스, <시녀들>

 


화가의 숨은 재능을 발굴하여 재능을 펼칠 수 있는 든든한 기반을 마련해준 것은 단연 펠리페 4세의 위대한 업적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신임이 과하여 화가가 본업에 몰두하지 못하고 궁정업무에 매달리다 과로사로 죽게 만든 것은 정말 비통한 일이 아닐수 없다.

 

고야, 피카소, 마네를 매료시킨 걸작, <시녀들>을 탄생시킨 벨라스케스가 왕족의 초상화를 지속적으로 그리지않고 더욱 다양한 주제를 소재로 자신의 재능을 살렸다면, 혹은 궁정업무 대신 화가로서 당시 미술사에 관한 업적을 더 남길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글의 마무리는 책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리 앙투아네트 전기의 일부를 빌리고 싶다.

 

때때로 예술가가 세계를 아우르는 대단한 소재 대신에 사소해 보이는 소재를 통해 자신의 창작력을 증명하는 것처럼, 운명 역시도 별볼 일 없는 주인공을 찾아낸다. 그래서 부서지기 쉬운 재료를 가지고도 최고의 긴장감을 탄생시킬 수 있다는 것을, 또한 연약하고 의지가 부족한 영혼을 통해서도 위대한 비극을 전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일 때가 있다. 그때 우연히도 주역을 맡게 된 가장 아름다운 비극의 예가 마리 앙투아네트다. - 슈테판 츠바이크, <마리 앙투아네트> 172p

 


[이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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