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이라는 병(病) - 혼불 [도서]

글 입력 2024.04.12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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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혼불>과 <전지적 독자 시점>에 대한

스포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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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귀로 인한 재액과 변고로부터 인간을 수호하는 국가 기밀기관 나례청. 나례청의 수석 나자, 윤태희는 새로운 후임을 영입하기 위해 귀신을 보고 들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귀재’를 찾아다닌다. 그러던 어느 날, 정체를 숨기고 암행에 나선 윤태희는 지방 소도시의 한 고등학교에서 수상한 소년을 만나게 되는데…

 

 

<혼불>은 22년도 완결 작품으로 연재 당시 플랫폼 1위를 계속해서 달릴 정도로 많은 사람에게 관심을 받았던 작품이었다. 소설이 완결되고도 23년도 BL 웹소설 대상을 타거나 팝업 스토어가 열리는 등 한동안 그 열기는 식지 않았다. 이 작품의 매력은 무엇이길래 이토록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것일까?

 


 

현실 속의 비현실, 일상 속의 비일상


 

소설 <혼불>은 우리의 일상인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다. 하지만, 그저 평범한 세계이지만은 않은데, 소설 속 세상에서는 우리 주변에 악귀 즉, 귀신이 숨어들어 있고, 이들을 처리하는 집단이 이 작품의 주요 배경이기 때문이다.

 

중세 배경이나 판타지 세상의 모험 이야기가 웹소설 시장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는 지금, 우리의 현실 속 비일상을 다루는 작품이 등장한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매우 좋아하는 장르인데, 그 이유는 ‘마치 우리 주위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을 것만 같은 ’근접성‘ 때문이다.

 

소설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방법의 하나가 바로 이 ’접근성‘인데, 독자들의 ‘몰입’을 노린 방법이다. 이야기와 현실의 벽이 얇을수록 독자들의 몰입을 유도하게 되는데, 마치 자신이 주인공과 같은 세상에서 살고 있으며, 함께 모험하는듯한 감정적 동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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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몰입을 잘 실천한 대표 작품 중 하나가 바로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본 <전지적 독자 시점>이다. 이 소설은 연재 당시 현실에서 눈이 내릴 때 소설 속 세상에서도 눈이 내린다거나(이 부분은 아직도 의도한 것인지 우연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알 수 없다.) 주인공을 살리기 위해서 이 소설을 읽고 있는 독자들의 힘을 빌리거나 하는 전개 등으로 많은 사람의 눈물과 감동을 만들어낸 작품이다.

 

다시 <혼불>로 돌아와서 이야기하자면, 이 소설에서는 종묘나 대릉원같이 실제 현실에 존재하는 장소를 무대로 삼는 방식으로 독자들의 몰입을 유도했다. 이런 장르는 도전이 꽤 부담스러울 수 있는데, 현실에 존재하는 장소에 대한 많은 조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동양 판타지의 경우, 장소 이외에도 귀신, 설화, 유적, 유물 등에 대한 높은 이해도가 있어야 한다. 잘못된 고증을 할 때 잘 유지하던 몰입을 한순간에 떨어트릴 수 있고, 배경지식에 너무 많은 서술을 할애하게 되면 독자들이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으므로 그 중간을 잘 유지하는 능력 또한 요구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중도를 잘 지켜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고증 측면 이외에도 사건에서의 긴박함, 감정에서의 섬세함 모두를 잘 지켜내는 매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섬세한 문체로 완성되는 작품


   

 

재겸이 눈을 떴다. 불꽃이 타오르는 듯한 섬뜩한 눈동자가 윤태희가 쓴 탈을 노려보았다. 눈에 눈물처럼 피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탈 너머의 시선이 또렷하게 박혀 들었다.

“나자의 이름으로…“

시위를 잡은 손끝이 흔들렸다.

“밤을 몰수합니다.“

 

- 혼불 53화 中

 

 

이 작품은 다양한 장점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작품 장르에 잘 어울리는 문체라고 생각한다. 소설에서 문체가 끼치는 영향은 꽤 큰데, 문장 하나하나가 모여 작품의 분위기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만약, 작품의 분위기와 잘 맞지 않은 문체를 사용하게 된다면, 서술과 분위기의 괴리감이 생겨 소설에 집중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

 

마치 한 편의 거대한 극과 같은 분위기를 내뿜는 소설인 <악녀를 죽여 줘>를 예시로 들 수 있는데, 만약 여주인공이 ‘기사도’에 대해 비웃는 장면에서 ‘그런 건 잘못된 사고방식이야.’와 같이 가벼운 어투를 사용하여 말했다면, 소설은 특유의 분위기를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주제와 분위기를 완벽하게 파악했고, 이에 맞추어 “참으로 이기적이고 보잘것없는 낭만이로구나.”라는 대사를 사용함으로써 독보적인 작품으로 탄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너한테 병을 옮기고 싶었던 거야."

‘선생님, 어찌 이것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단 말입니까? 사랑은 파멸이고, 형벌이며, 고역이라는 이름의 병(病)이었던 겁니다.’

사랑이 고역이고 형벌이며 ‘병(病)’이라면, 윤태희는 재겸에게 이 병을 옮기고 싶었다. 재겸과 같이 병들고 싶었다. 네가 나로 인해서, 나처럼 아프기를 바랐다. 나는 그래서 너에게 자꾸만 입을 맞추고 싶었던 것이다.

 

- 혼불 152화 中

 

 

이 작품은 현대 동양 판타지의 분위기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단어, 심지어 인용되는 작품까지 소설에 섬세하게 맞췄다. 과거 소설 창작에 대해 배우며,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았는데, 작가의 습관과도 같은 문체를 작품의 분위기에 맞춘다는 것은 그 장르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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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창작하기 위해서는 세계관 설정, 캐릭터 설정, 시나리오 설계 크게 이 세 가지를 꼼꼼하게 완성해야 한다. 어느 한 부분이 엉성하거나 과하게 되면, 사건의 개연성이 떨어지게 되거나, 작품에 집중이 되지 않는 등 여러 사건·사고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작가들은 작품을 창작하기 전 충분한 준비 운동인 작품 설계 기간을 가지고 난 후에 작품 연재라는 장거리 마라톤을 뛰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신선한 전개와 매력적인 캐릭터를 무기로 세운 혼불은 ‘표현력’이라는 무기 또한 갖추어 독자들을 공략했다. 인물의 감정을 표현할 때 직접적인 표현뿐만 아니라 비유적, 인용절 표현 또한 활용하여 인물들의 감정에 짙은 여운을 더해주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어느새 두 사람은 병색이 완연했다.

그것은 오직 서로만이 알아볼 수 있는 것이었다.

 

- 혼불 275화 中

 

 

 

복수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귀결되는


 

이 작품은 판타지뿐만 아니라 로맨스 장르도 포함하고 있다. 다만, 단순히 주인공들의 사랑에만 집중한 것이 아니라 철학, 애증, 가족 등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작품에서 두 주인공은 각자의 목표를 가지고 나례청에서 활동하는데, 태희는 자신의 복수를 이루기 위해 나례청을 부수려 하고, 불로불사인 재겸은 그곳에서 얻을 수 있는 특별한 물건을 사용하여 죽기 위해 태희를 돕게 된다.

 

 

“설사 만에 하나 잘못되더라도 넌 패망하지 않아.”

단언하는 말에 윤태희가 느리게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해?”

“너한텐 내가 있으니까.

나는 사활을 걸었어. 근데 난 뭘 해도 안 죽잖아. 세상이 망해도 나는 살아 있어. 영원히 닳지 않는 목숨을 바쳐서 내가 널 이기게 해줄게.“

 

- 혼불 87화 中

 

  

하지만, 장기 말로서 데려온 제겸이 너무 강인하고 빛났던 탓일까, 태희는 더 재겸을 장기 말로 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는 자신이 10년 동안 계획했던 복수를 뒤엎어서라도 삶의 의지를 잃은 재겸을 살리고 싶어 하는데, 이들에게 얽힌 수많은 비밀, 사건, 상황이 그들을 막아서고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험난한 과정에서 더 애처롭고 처절하게 사랑을 피워내기에 읽는 독자들은 손에 땀을 쥐고 두 사람을 응원하게 만든다.

 

다른 글에서도 종종 말한 적이 있지만, 나는 다양한 장르 중에 개인적으로 ‘사랑’ 이야기를 가장 좋아하는 편이다. 그 단어가 주는 설렘, 불안, 애틋함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무슨 일에도 이성적인 사람이 본능을 따르게 만들고, 가장 정의로웠던 사람의 모든 것을 무너트리기도 하는 감정이기에 더욱 관심을 두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성과 지식, 과학이 아무리 발달한다 하더라도 사람은 이 감정 하나를 통제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을 무너트리기도, 살리기도 하는 이 감정은 답이 없기에 오히려 더 이끌리게 되는 것이 아닐까.

 

 

세상은 때때로 이유 없이 악의적이다.

이것은 아이가 최초로 얻은 깨달음이었다. - 혼불 1화 中

 

나는 사랑을 하기 위하여 이 땅에 왔다.

그리고 너는 세상이 내게 선사한 호의였음을. - 혼불 348화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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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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