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음악은 언어로 말하지 않는다 - 조성호의 콘체르토 플러스 [공연]

글 입력 2022.04.08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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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때로는 현실에서 벗어나 생각을 비우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생각을 비운다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필자의 경우 생각을 비우기 위해 음악의 힘을 주로 빌리는데, 차분히 음악을 들으려 해도 가사에 집중하게 되고, 가볍게 뮤지컬 한 편을 보려고 해도 내용과 연출에 대해 생각하게 될 때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클래식 음악은 온전하게 보장된 휴식처와 같다. 오히려 잘 아는 분야가 아니기에 더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것 같다. 다른 종류의 공연을 보러 가면 집중과 이해를 위해 노력하게 되는데, 클래식 공연을 볼 때는 종종 머리 속의 생각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그저 가만히 지켜보기도 한다. 잠시라도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보는 것이다. <조성호의 콘체르토 플러스>를 관람한 날 역시 지친 일상의 한 가운데에 있었기 때문에, 공연 시간 동안이라도 부디 마음의 휴식을 취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평온함을 바라는 마음과 함께, 새로운 설레임의 감정도 들었다. 본 공연은 클라리넷 협주곡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는데, 이전에는 클라리넷이라는 악기에 대해 특별히 주목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클라리넷의 소리를 들어본 적은 있지만 오케스트라 연주 속에서 악기들의 소리를 구별해낼 정도의 능력이 없기에 그냥 지나쳐왔을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어떠한 악기를 제대로 마주할 기회가 오면 굉장히 설레곤 한다. 데면데면하던 지인과 처음으로 제대로 대화를 나누는 것과 비슷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4개의 클라리넷 협주곡, <조성호의 콘체르토 플러스>


 

<조성호의 콘체르토 플러스>는 클라리네티스트 조성호와 콜레기움 무지쿰 서울의 합작으로, 바로크 협주곡 4개를 한 번에 연주하는 획기적인 구성의 프로그램이다. 조성호는 세계적 교향악단인 도쿄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클라리넷 수석으로 활동하며, 도쿄필의 순혈주의를 뛰어넘은 대한민국 관악계의 대표주자로 알려져 있다. 콜레기움 무지쿰 서울은 바로크 시대의 기악곡을 중심으로 다양한 작곡가의 작품을 연주하는 시대악기 연주단체이다.


조성호는 본 공연에서 바로크 음악 특유의 절제된 아름다움과 현재 시대의 연주자의 생각이 교차하면서 나오는 시너지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밝혔다. 또한 콜레기움 무지쿰 서울 역시 과거의 음악을 단순히 시대악기로 연주하는 것뿐 아니라, 작품이 쓰여진 시대적 근거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오늘날의 관점으로 재구성하는 ‘역사주의 연주’를 지향한다. 현시대에서 바로크 음악이 어떻게 표현되고 읽힐 수 있을지 궁금증을 안은 채 공연이 시작하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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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슈타미츠, 신포니아 제 2번 가장조, “만하임 교향곡” - 첫 곡으로는 실내악 인상의 신포니아가 당차고 경쾌하게 시작되었다. 이 곡은 클라리넷 없이 콜레기움 무지쿰 서울의 현악기 연주로 이루어진 환한 분위기의 곡으로, 90분 동안 연주자와 관객이 함께하게 될 음악의 세계로 안내받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별다른 말 없이 음악으로 전하는 인사는, 오늘 어떤 공연이 펼쳐질지 기대감을 갖도록 하였다.


요한 슈타미츠, 클라리넷 협주곡 내림나장조 - 신포니아 연주가 끝난 후, 클라리네티스트 조성호가 무대로 나왔다. 연주가 시작되었을 때 무대의 가운데에 서서 그가 먼저 보여준 모습은, 박자를 타며 지휘를 하는 모습이었다. 클라리넷 연주가 시작되기 전부터 그의 퍼포먼스는 이미 시작된 것 같은, 독특한 등장이었다.


지휘를 하던 그가 유려한 선율로 클라리넷 연주를 시작했을 때는 더욱 놀라웠다. 가만히 서서 연주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시선과 몸짓을 굉장히 다양하게 표현하며 연주를 했기 때문이다. 마치 안무 같기도 했고, 장면을 연기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단순히 귀로 음악만 듣는 게 아니라, 대사가 없는 동화 애니메이션이나 발레 공연의 장면을 그리게 되었다.


카를 슈타미츠, 클라리넷 협주곡 제3번 내림나장조 - 다음 곡은 요한 슈타미츠의 아들인 카를 슈타미츠의 클라리넷 협주곡이었다. 자유로운 스타일이 돋보이는 음악이었고, 그 속에서 조성호와 콜레기움 무지쿰 서울의 연주가 음악으로 호흡을 맞추며 함께 달려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무대 중앙에 서 있는 조성호의 클라리넷 연주와 선율이 돋보이기는 했지만, 결코 독단적으로 앞서나가려는 느낌은 아니었다. 연주자들의 조화가 굉장히 인상 깊었던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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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비발디, <올림피아데> 신포니아 다장조 RV 725 - 15분의 인터미션 후 비발디의 곡이 연주되었다. 휴식 시간 동안 현실로 잠시 나와 있던 관객들이 2부 공연에 다시 몰입하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그것이 1분이든, 음악 한 곡이든, 적어도 나에게는 언제나 조금의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본 공연에서는 2부 공연에 다시 몰입하기까지 3초면 충분했다. 알레그로의 빠르기에도 전혀 소리가 뭉개지지 않는 날렵한 현악기 연주가 강렬하게 2부의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시원한 폭포의 물줄기를 맞는 것처럼 단숨에 정신을 집중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안토니오 비발디의 음악에 푹 빠져본 기억이 없어서, 공연 전에 2부가 비발디의 곡으로만 구성된 것을 알았을 때 아주 특별한 기대를 가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첫 곡에서부터 느껴지는 비발디안 풍미가 왠지 모르게 이 날따라 굉장히 매력적으로 들렸다. 마치 음악에 대한 섣부른 판단은 이르다고 재치 있는 경고를 전하는 것 같았다.


안토니오 비발디, 클라리넷 협주곡 제1번 내림나장조 “산탄젤로” - 다음으로는 한국에서 실연된 적이 없는 비발디의 클라리넷 협주곡이 연주되었다. 엄숙하고 귀족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곡이었고, 수많은 경례와 존경 속 훈장을 받는 기사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했다. 클라리넷의 소리는 1부와 비교했을 때 조금 더 원숙하고 노련하게 들렸다. 주요 선율은 앞서 2부 첫 곡으로 연주되었던 <올림피아데> 신포니아의 주요 선율과 유사하였는데, 클라리넷 선율까지 더해지니 더 안정적이고 태가 갖추어진 느낌이었다.


클라리넷 협주곡 제2번 라단조 “불사조” - 이 곡 역시 국내 초연이었다. 1악장부터 비장하게 시작하여 긴장감이 조성된다. 숙명적인 전투를 떠나는 장면이 그려지면서, 이후의 전개가 궁금해졌다. 2악장은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폭풍전야의 느낌이었다. 멋대로 상상해보면 마치 본격적인 전투 전에 시험의 관문을 거치는 시간 같기도 했다. 유혹에 빠지지 않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만 통과할 수 있는, 안개 가득한 황야가 그려졌다. 마지막 3악장은 화려하면서도 긴박했는데, 그야말로 ‘불사조’라는 협주곡의 제목과 굉장히 어울리는 마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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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곡이 끝난 후 연주자가 퇴장하고도 박수는 멈출 줄을 몰랐고, 이에 화답하듯 클라리네티스트 조성호는 바순 연주자와 함께 ‘가브리엘의 오보에’를 앙코르곡으로 연주하였다. 많은 이들이 ‘넬라 판타지아’로 알고 있는 친숙한 곡이다. 바순의 중후함과 클라리넷의 포근하고도 맑은 소리의 조화는 그야말로 따뜻한 희망과 위로 그 자체였다.


때로는 언어가 그리 중요치 않다. 음악은 아무 말을 하지 않고도 너무 많은 것을 전달해준다. 악기들의 아름다운 선율이 그려낸 장면과 감정들, 그 속에서 완벽히 몰입하여 섬세한 표현을 보여준 조성호의 연주, 그리고 연주자들이 서로 눈을 맞추며 음악을 완성하던 모습. 모든 것이 삶의 다양한 가치와 의미를 전해주며 소중히 간직될 기억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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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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