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미술을 매개로 역사를 보다: 도서 명화로 읽는 합스부르크 역사

글 입력 2022.11.03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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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작품에 관심이 간다면, 특히 유럽의 과거 미술 작품들을 알고 싶다면 필수적으로 지식이 수반되는 분야가 있다. 바로 종교와 신화 그리고 역사다. 물론 르네상스 이후 유럽에서 기독교가 갖는 위상은 중세 시대에 비해 낮아지기는 했지만, 기독교라는 종교의 영향은 유럽 사회에 오래도록 뿌리내렸기에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 확실히 도움이 된다. 신화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스로마신화를 안다면 이를 모티브로 한 작품들을 이해하기가 수월하다. 그런 차원에서 종교와 신화는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는 범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역사는 다르다.


우선 유럽의 역사는 너무나 방대하다. 개인적으로 한국사를 참 좋아하는데, 세계사는 공부하면서 막혔던 것이 유럽의 역사가 너무 복잡해서였다. 특히 그 중심에는 합스부르크가가 있다. 유럽을 제패했던 가문이었지만, 그들의 혼인관계는 너무나 거미줄처럼 얽혀있고 한 인물이 각 국가에서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경우가 있어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마치 인물의 이름과 애칭이 변화무쌍한 러시아 문학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합스부르크 가문은 나에게 유럽사를 이해하는 데에 가장 큰 산이었다.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었던 사람들에게 환영할 만한 소식이 있다. 출판사 한경arte에서 합스부르크 가를 미술 작품을 통해 이해해볼 수 있는, 도서 '명화로 읽는 합스부르크 역사'를 출판했다는 점이다. 유럽 왕조의 역사를, 미술 작품을 통해 살펴보게 되면 미술과 역사를 동시에 아우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아트인사이트를 통해 도서 '명화로 읽는 합스부르크 역사'를 접할 수 있게 된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이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을 10월 25일부터 전시할 예정이기 때문에 이를 위해서도 미리 합스부르크 가의 역사를 머릿속에 정리해보고 싶었다.


 



< 책 소개 >


역사가 흐르는 미술관 시리즈 일본 누계 35만 부 판매!


기요틴의 이슬이 된 마리 앙투아네트, 미남왕 펠리페, 비극적 황후 엘리자베트…

합스부르크가를 알면 유럽사가 보인다!


[무서운 그림]의 저자 나카노 교코가 명화를 통해 유럽 왕조의 역사를 들려주는 

'역사가 흐르는 미술관' 시리즈 첫 번째 책 

[명화로 읽는 합스부르크 역사] 출간


시대를 대표하는 명화를 통해 배우는

역사와 인간이 직조하는 화려하고도 피로 물든 세계 

유럽을 호령한 합스부르크가 650년사

 




앞서서도 이미 말한 바 있지만, 유럽사가 개인적으로 어려웠던 이유는 역사적 인물들의 이름을 외우기가 쉽지 않았고 그들의 가계도가 너무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서 신성로마제국 황제였던 카를 5세는 에스파냐 왕국의 왕으로서는 카를로스 1세였다. 한 명에 대해서 붙는 이름이 이렇게 달라지는 경우는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름 뒤에 붙는 몇 세라는 표현이 너무 귀찮게 느껴졌다. 그냥 독립적인 이름을 지어줬으면 안됐던 걸까? 왜 굳이 선조의 이름과 똑같게 만들어서 후세대들을 이렇게 피곤하게 만들었을까? 비단 나뿐만 아니라 유럽사를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본 문제일 것이다.


저자 나카노 교코도 이 부분에 동의했다. 그래서 그는 서문 다음에 바로 합스부르크 가계도부터 제시한 후에 내용을 풀어나가고자 했다. 한 페이지에 집약적으로 담고자 했기 때문에 모든 인물이 들어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에 '명화로 읽는 합스부르크 역사'에서 다루고자 한 인물들은 중점적으로 표기가 되어 있었다. 특히 에스파냐로 넘어간 합스부르크가의 후계들은 초록색으로 표기하여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가와 구별되도록 안배해두었다. 이를 통해 합스부르크가를 이제 알아가고자 하는 사람도, 책의 서두부터 이 가문이 유럽 전역에 영향을 미친 엄청난 가문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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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그레코, <오르가즈 백작의 매장>



나카노 교코는 도서 '명화로 읽는 합스부르크 역사' 속에서 총 12점의 작품, 11명의 작가(베첼리오 티치아노의 작품은 2점을 소개했다)를 소개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 내가 알고 있었던 작가는 총 세 명이었다. 엘 그레코, 디에고 벨라스케스 그리고 에두아르 마네였다. 세 명의 화가라도 아는 사람이 있어서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12점의 작품 중에서 알아본 건 엘 그레코와 벨라스케스의 작품 밖에 없어서 아쉬웠지만, 인물이라도 알아본 게 어딘가 하고 생각해보았다.


내가 알아본 작가 엘 그레코의 작품으로 소개된 것은 바로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오르가즈 백작의 매장>이다. 이 작품을 그릴 시점에 엘 그레코는 이미 에스파냐 톨레도에 머물고 있었다. 그리스에서 에스파냐로 넘어갔을 때 그는 궁정화가가 될 의욕이 가득했지만, 엘 그레코가 그린 <성 마우리티우스의 순교도>가 펠리페 2세의 취향에 맞지 않아 기회가 좌절되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엘 그레코는 수도 마드리드를 떠나 톨레도에 자리잡게 되었고, 거기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가면서 명성을 얻었다.


바로 윗단락에서 언급한 내용에 대해서 나는 분명 이 책을 읽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기억하는 정보 속의 그 펠리페 2세가 에스파냐 합스부르크 가계의 혈통이었다는 것을, 나카노 교코의 설명으로 비로소 이해했다면 믿기는가? 놀랍게도 내가 기억하는 정보가 이렇게 파편적이었던 것이다. 그만큼 나에게 합스부르크 가의 인물들은 썩 와닿지 않아서 머릿속에 정리가 잘 되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그렇지만 명확하게 기억하는 엘 그레코, 그가 톨레도로 떠나게 만들어 <오르가즈 백작의 매장>을 탄생하게 만든 계기를 제공한 펠리페 2세의 혈통이 '명화로 읽는 합스부르크 역사'를 읽음으로써 이제야 퍼즐조각이 맞춰지듯 온전히 조합되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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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스케스, <시녀들>



벨라스케스 하면 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시녀들(Las Meninas)>를 떠올릴 것이다. 나카노 교코 역시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여러 작품 중에서 <시녀들>을 통해 합스부르크 가문을 조명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디에고 벨라스케스는 에스파냐 합스부르크 가계에 속하는 펠리페 4세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화가이기 때문이다. 화가로서는 아직 햇병아리였던 그를, 펠리페 4세가 뛰어난 예술감각으로 알아보고 그를 궁정화가로 위촉하여 극진한 대우를 했던 것은 괄목할 만한 일이다. 비록 그가 정치적으로는 무능한 왕이었다고 해도 말이다.


그런데 나카노 교코가 소개하고 있는 내용을 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벨라스케스는 펠리페 4세의 지원을 더 많이 받았던 듯하다. 그를 궁정화가로 등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전용 아틀리에를 만들어 준 데다가 궁정관리로 등용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특히 당시 왕궁 열쇠를 담당하는 최고 직책인 왕궁배실장까지 맡았다고 하니, 펠리페 4세가 벨라스케스를 얼마나 아꼈는지 볼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벨라스케스는 펠리페 4세가 그를 아끼며 선사한 수많은 일들에 파묻혀 끝내 과로사하고 말았지만, 펠리페 4세에게는 그가 놓칠 수 없는 인재였을 것이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은 작품 속의 그가 무엇을 그리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수수께끼 같은 작품이다. 그런데 이에 대하여 작품 속 앙증맞은 마르가리타 왕녀의 후계자 당위성을 주장하기 위한 목적의 작품이라는 주장을, 저자는 소개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르가리타 왕녀는 펠리페 4세의 뒤를 잇지 못했고, 그의 남동생 카를로스 2세가 보위를 이었다. 다만 그는 근친혼으로 인해 후계자를 생산할 수 없는 몸이었기에, 카를로스 2세를 마지막으로 에스파냐 합스부르크 가계는 막을 내렸다. <시녀들>에서 이어지는 역사적인 맥락이 이렇게 뻗어지는 줄 미처 몰랐기에, 읽으면서 굉장히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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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폰 멘첼, <프리드리히 대왕의 플루트 연주회>



합스부르크 가문을 논할 때 개인적으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마리아 테레지아라고 생각한다. 유럽사에 수많은 호걸들 중에서, 뛰어난 정치가로 활약하며 국가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끈 인물 중에 이만한 인물이 없다. 더군다나 그렇게 강력한 정치가였다면 낭만은 없었을 것도 같은데, 그는 첫사랑 프란츠 슈테판과 결혼하기까지 했다. 능력과 낭만을 모두 갖춘 호걸이라는 점에서, 합스부르크 가계에서도 이렇게 매력적인 인물은 드물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런데 얼핏 보면, 나카노 교코가 '명화로 읽는 합스부르크 역사'에서 이 마리아 테레지아를 정식으로 다루지 않는 듯해보인다. 하지만 저자는 이렇게 생각할 법한 독자들의 허를 찌르고 있었다. 바로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이 담겨 있는 아돌프 폰 멘첼의 <프리드리히 대왕의 플루트 연주회>를 통해, 그의 호적수였던 마리아 테레지아를 조명하기 때문이다. 프리드리히 대왕이 선전포고 없이 슐레지엔을 침범하면서 발발한 오스트리아 왕위계승 전쟁으로 두 사람이 극명한 대립각을 세우지만, 이로 인해 오히려 서로가 서로로 인해 더욱 빛나게 되었다.


비록 대립했다 한들, 냉철한 판단력은 프리드리히나 마리아 테레지아나 비슷하다고 저자는 보았다. 현대의 기준에서 비인간적인 실험을 지적 욕구를 위해 자행했던 프리드리히나, 수많은 자식들을 온전히 정치적 카드로 보고 결혼을 시켰던 마리아 테레지아나 보통의 인성을 가졌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마리아 테레지아가 마리아 안토니아, 프랑스식으로는 마리 앙투아네트라 불리는 그를 루이 16세와 결혼시키는 결정을 내렸기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게 되었다. 역사 속에 일어나는 나비효과를 새삼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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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가민가하게 머릿속에서 뒤엉켜 있었던 합스부르크 가의 역사와 유럽사를 조금씩 정리해가면서 미술 작품들을 살펴볼 수 있어서 좋았다. 책의 서두에 있는 합스부르크 가계도에 책갈피를 끼워놓고 중간 중간에 다시금 앞으로 돌아가서 책을 읽는 것이 재밌었다. 오래전에 수험서를 볼 때의 기분처럼, 머릿속에 정리하려고 하면서 책을 읽는 게 오랜만이었다. 물론 600여년 역사 전체의 가계도를 한 페이지 상에 담아낼 수는 없기 때문에 이번 책에 다뤄지는 주요 인물들 위주로 가계도가 나와있지만 그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저자 나카노 교코가 한 작품에서 파생되거나 연결되는 역사적 사실들을 함께 소개하고 있어 이를 따라 읽는 것만으로도 시야가 확장되는 기분이었다. 파편화되어 있던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억들이 미술 작품 하나를 매개로 연결되는 기분은 참 생경했다. 하지만 기분 좋은 새로움이었다. 조금이나마 가닥이 잡힌 상태로 국립중앙박물관의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전시를 보러 간다면 더욱 풍성하게 전시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벌써부터 기대된다.


*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릴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전시를 갈 계획이 있다면, 그 전에 미리 한 번 합스부르크 가를 정리해보는 차원에서 도서 '명화로 읽는 합스부르크 역사'를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저자 나카노 교코가 짚어주는 합스부르크가의 인물과 그의 시대적 배경, 그리고 심지어 그를 작품 속에 그려낸 화가의 이야기들까지 모두 읽어가다보면, 어느새 유럽사가 어렵다고만 느끼던 그 기분을 조금은 벗어던질 수 있게 될 것이다.


 



명화로 읽는 합스부르크 역사


지은이 / 옮긴이: 나카노 교코 / 이유라

분야: 미술일반/교양


출판사: 한경arte

페이지: 240쪽


정가: 16,000원

ISBN: 978-89-475-4847-2 (03600)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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