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지금 누군가 필요한 당신에게 - 헬프 미 시스터 [도서]

플랫폼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이버 프롤레타리아들의 이야기
글 입력 2022.03.27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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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왜 이렇게 아픈 사람이 많은 거야?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도, 이서수의 장편소설 [헬프 미 시스터] 속 세상에도 아픈 사람이 너무 많다. 몸과 마음이 아프고, 깨져버린 현실에 잔뜩 상처 입은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이서수의 소설은 그런 세상을 이야기한다. 잔뜩 깨어지고 여기저기 모난 세상과 그 세상을 살아가는 인물들을 그린다. 분명 그들은 책 속에 살고 있고, 나는 현실에 존재하는데도 내 세상도 그들의 세상과 똑같이 상처로 가득하다. 왜.


그래서 이들은 내 친구 같았다. 가족은 친구 같은 거라고, 수경이 그랬으니까. 수경의 가족은 내 친구 같았다. 그래서인가. 나는 자꾸만 눈물이 났다. 몇 번이고 책장을 덮어 붉어진 눈가를 가라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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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수는 2014년에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그 후, 제 6회 황산벌청년문학상을 수상하고, 제 22회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했다. [헬프 미 시스터]는 이서수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이서수는 플랫폼 노동자의 삶을 삼대에 걸친 가족을 통해 풀어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청소년 사이버 성폭력, 성소수자의 현실, 시월드라고 불리는 가부장제의 폐단 등 현실에 고여 있는 문제들을 보여준다.


딱히 그런 현실을 ‘꼬집는다’고 표현하긴 힘들다. 이서수는 그저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이 세상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친하다고 믿었던 동료에게서 수면제가 담긴 음료수를 받아 성폭행을 당할 뻔하니까. 이 세상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채팅앱을 통해 미성년자에게서 성착취를 하니까. 이 세상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경력 단절으로 인해 청소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여기며, 어렵게 변해버린 키오스크 앞에서 멈칫거리고, 도통 수익을 얻을 수 없을 것 같은 선물 거래에 중독되니까.


그러니까 이서수의 소설은 더 이상 소설이 아니다. 이건 곧, 무해한 척 흘러가는 다분히 유해한 우리의 현실이다.


세상은 너무 빠르게 흘러간다. 흐르는 세상 밑에 침잠되어 버린 비참한 현실은 그저 손을 뻗는 것만으로도 너무 쉽게 나를 옭아매고, 나는 그렇게 무엇에도 적응하지 못한 채로 멈춰서 있다. 수경도, 여숙도. 천식도, 은지도 그렇다. 이들 가족은 모두 세상에 발을 붙이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 세상을 외면하지 않는다. 물론 히어로 영화에 등장하는 영웅처럼 단번에 세상을 바꾸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소설은 현실이니까. 그래도 그들은 적어도 현실을 앞에 두고 도망치지 않는다. 그 대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낸다. 남들은 그들을 사이버 프롤레타리아라고 불러도, 그들은 묵묵히 각자 자기 몫의 노동을 해낸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렇게 그들은 플랫폼 안에서 함께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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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경의 가족은 어딘가 특이하다. 수경의 부모님 여숙 씨와 양천식 씨, 수경과 우재 부부, 우재의 조카 형제 준후와 지후. 6명이 살아가는 좁은 빌라에서는 누구도 돈을 버는 사람이 없었다. 그건 모두 수경에게 일어난 일 때문이었다. 모순적이게도 그들이 다시 돈을 벌기 시작한 것도 수경 때문이었다.


수경은 어딘가 특이한 이 가족 중에서도 단연 특이한 인물이 아닐 수 없다. 수경은 사랑이 너무 많다. 그 사랑은 수경을 무너뜨렸고, 다시 일으켜 세웠다. 수경은 그게 돈 때문이라고 하지만, 아니다. 가족을 향한 사랑이 수경을 지탱하고 있다. 깊은 상처를 안고 주저앉아버린 수경은 생각한다.


그러면, 누가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리지?


그 가족에는 사기를 당해 집을 날려버린 아버지가, 딸의 옆에서 직접 보호하려 애쓰는 어머니가, 수익률을 조금도 올라가지 않는 전업 투자자 남편이, 남편의 형이 남기고 간 조카 두 명이 있다. 수경은 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그 부분에 대해서 조금도 의심할 수 없었다. 수경이 상처를 깊숙한 곳에 묻어두어야 했던 것도 가족 때문이었지만, 다시 세상으로 나온 것도 가족 때문이었기에. 수경은 분명히 노력하고 있었다.


여숙 씨 역시 그렇다. 그는 무지에 무너지지 않았다. 처음 보는 플랫폼도, 기억나지 않는 운전도, 한때 혼란을 안겨주었던 키오스크도 그는 극복했다. 앞으로도 여숙 씨는 그렇게 지낼 것이다. 당연히 또 다른 벽에 부딪히겠지만 그렇다고 돌아서진 않을 것이다. 여숙 씨는 이제 아픈 상처를 소독하는 게 더 이상 두렵지 않다.


보라는 이 소설에서 가장 자유로운 동시에 가장 혼란스럽다. 그러나 보라는 그 혼란을 외면하는 대신 정면으로 부딪히는 걸 택했다. 스스로를 구제불능이라고 생각하기에 앞서 그냥 자신을 사랑해버렸다는 보라는 앞으로도 수만은 물음표에 마주칠 것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답을 찾아내기 위한 발걸음을 망설임 없이 내딛겠지. 보라의 세상은 보라가 제일 잘 알고 있다.


은지와 경자 씨가 그렇게 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은지는 아직도 두려움 속에 떨면서도 그걸 드러낼 수 없다. 경자 씨는 다리에 난 쥐를 떨쳐버리고 다시 달리는 게 무서울 수도 있다. 그들은 아직 현실이 무겁고, 또 무섭기 때문이다. 우재와 양천식 씨는 또 어떤가. 그들은 이제 두 발로 걷고 뛰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재의 대인기피증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준후 역시 철이 너무 일찍 들어버려 계속해서 악역을 자처할 테고, 지후는 여전히 가족의 불행에 눈 감아 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탓할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다. 그들이 마주한 세상은 분명 날카롭고 파괴적이다. 그 앞에서 온전히 상처를 인내해야 하는 것은 그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옆에 언제까지고 수경과 보라가, 또 여숙 씨가 있어 줄 것을 이젠 안다. 그들은 서로를 사랑하니까.


이들은 어떻게 서로를 이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 자칫하면 남일 수 있는, 아니면 세상 누구보다도 원망스러울 수 있는 서로를 어떻게 하면 저리도 서로를 사랑할 수 있을까. 수경은 준후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그런 수경이 힘들어하는 모습은 준후가 알고 있다. 그렇기에 준후는 수경을 사랑한다. 보라 역시 수경을 사랑한다. 수경이 보라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경자 씨가 여숙 씨를 사랑하는 것도, 여숙 씨가 지심 씨를 사랑하는 것도. 우재와 양천식 씨가 서로를 사랑하는 것도. 조금은 특이한 이 사랑에 질식할 것만 같다. 이 가족은 결국, 함께 하기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


서로는 서로의 원동력이 된다. 플랫폼 노동을 시작하는 딸의 손을 엄마가 잡는다. 장모님의 플랫폼 적응을 사위가 돕는다. 할아버지가 숨기려는 두려움을 손주는 기꺼이 눈감아준다. 준후는 은지를 몇 번이나 살리고, 보라는 수경을 위해 싸운다. 그건 세상을 바꾸는 일이 아니다. 그들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는 작은 물결이 된다. 그들은 오롯이 서로가 있기에 유해한 세상을 살아나갈 수 있다.


아마 언제까지고 그들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을 수도 있다. 수경은 다시는 남이 내미는 음료를 받아 마실 수 없을지도 모른다. 여숙 씨는 몇 번이나 남을 대신해서 가치관에 어긋나는 일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우재가 몇 명의 무례한 취객을 상대해야 할지도, 양천식 씨가 몇 번이나 더 사기를 당할지도 모른다. 은지는 계속해서 불안에 떨 것이고, 준후는 계속해서 이유 모를 부채감에 시달리면서도 밤늦게 집을 나서겠지.


하지만 그건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노력하고 있으니까. 어떻게 보일지 몰라도 그들은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 어떻게든 현실을 살아내려는 이 사람들의, 이 여자들의 삶은 불행할지언정, 계속해서 함께할 거라는 확신이 있다. 결국에는 서로를 꼭 안아주듯이, 언제든 서로를 또 잡아줄 것이라는 확신이. 본디 무릎을 굽혀본 사람만이 넘어진 사람과 눈높이를 맞출 수 있는 법이다.


그 사이에 또 수경은 옥상에서 몰래 담배를 피워야 할 수도 있다. 보라의 분노가 멈추지 않을 수도 있다. 여숙 씨가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 생길 수도 있다. 그래도 그들은 계속해서 현재를 살아가겠지. 서로에게 도움을 청하고, 도움을 주며 그렇게 살아가겠지. 서로가 서로의 삶에 한 조각의 윤슬이 되어 주면서 그렇게.


은지의 말대로 가족은 그런 거니까. 불행한 미래를 함께 방어하는 존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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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프 미 시스터’라는 플랫폼은 수경 모녀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제시했다. 그들은 플랫폼 안에 자리를 잡아갔다. 여성 위주로 돌아가는 시스템은 수경에게는 안전함을 느끼게 했고, 여숙 씨에게는 새로운 기회를 주었다. 마치 이 소설 속 여성들이 서로를 보듬는 것처럼, ‘시스터’를 돕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점점 ‘헬프 미 시스터’ 플랫폼에 의문점이 생겼다. 이 속에서 수경 모녀가 무조건적으로 안정적인 것은 당연 아니었기 때문이다. 의뢰인들의 의뢰들에는 그들이 보지 못한 세상의 이면이 숨어 있었다. 과연 이 플랫폼이 마냥 좋은 것일까? 결국은 이 플랫폼 역시 수경 모녀가 정착할 수 없는 곳은 아닐까?


이러한 의문은 수경의 한 마디에 휘발되었다. 여전히 의구심은 남아있지만, 이제는 깨달았다. 시어머니를 마주하기 어려웠던 의뢰인도, 산책할 사람을 구하지 못한 의뢰인도 그들만 가지고 있는 상처가 있을 것이다. 그 의뢰들에 숨어 있는 핵심은 하나였다. 나는 누군가 필요합니다.


이 소설은 그런 시스터를 위한 소설이다. 누군가가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에게 내미는 구원의 손길이다. 그저 또 하나의 처연한 세상을 보여주는 소설이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또 다른 시스터를 인식할 수 있다.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일 수도 있고, 우리가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우리 주변에는 분명 수많은 시스터가 있다. 단지 보이지 않을 뿐이다.


플랫폼 노동자가 홀대받지 않고, 어린 청소년들이 성적인 착취로부터 안전하며, 새로운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손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그러니까 시스터가 언제든 도움의 손길을 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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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시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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