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365일간 만나보는 어디에서도 존재하지 않는 미술관 - 365일 모든 순간의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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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일 모든 순간의 미술>, 여태까지 이토록 제목에 충실한 책을 접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 책은 정말로 소개 페이지와 부록을 제외하면 365페이지로 이루어져 있다. 즉슨, 마음만 먹는다면 정말로 이 책을 통해 1년간 하루에 하나씩 세심하게 선정된 미술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친절한 초대장이 아닐 수 없다.
특히나 바쁘게 흘러가는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이 책은 조금의 여유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해 미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일정과 일정 사이의 잠깐의 시간을 내어 미술관을 방문하기에 우리 사회에는 그만큼 미술이 가까이 있지도, 그 정도로 미술 향유를 중시 여기는 가치관을 강조하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한 권을 책을 펼치는 것 만으로 매일 새로운 미술을 만나볼 수 있는 이 책의 신박한 방식에 마음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이 지닌 특별한 구성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보자면, 우선 소개글과 함께 책의 첫 부분에 첨부되어 있는 체크리스트를 꼽아볼 수 있을 것 같다.
하루에 하나씩 제시 되어 있는 페이지를 읽을 때마다 체크를 하여 표시할 수 있는 페이지인데, 마치 초등학생 시절 칭찬 도장판을 연상시키게 하는 귀여운 방식이었다. 어쩌면 조금은 유치하고 단순해 보일 수 있어도 이렇듯 직관적인 방식이 때로는 습관 형성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가진 또다른 신비한 힘은 바로 미술 작품 아래 들어가 있는 짤막한 소개 글이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는 텍스트가 생각보다 너무 짧아 의문이 들었지만 나는 그 짧은 글이 가진 대단한 힘을 간과하고 있었다.
이 짧은 텍스트는 그림을 접하는 우리에게 든든한 가이드라인이 되어준다. 그림을 먼저 보고 설명을 읽어도 좋고, 설명을 먼저 읽고 그림을 보아도 좋다. 어떤 순서로 그림과 텍스트를 접하느냐에 따라서도 같은 작품에서 다른 감상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책에 기재된 짧은 소개글이 어떤 힘을 지니고 있는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자면, <파리의 성곽길>이라는 작품에 대한 나의 감상으로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처음 그림만을 접했을 때 사실 이 그림에서 크게 무언가를 느끼지는 못했다. 그저 이국적인 유럽의 풍경이 아름답다는 생각 정도만 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그림의 작가인 위트릴로가 가정 문제로 10대 때부터 알코올 중독으로 고단한 청춘을 보내고 방황하던 시절을 지나 어머니의 권유로 그림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소개글을 읽고 난 후 다시 작품을 보니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둡고 침침한 집 안에서 모든 것을 회피한 채 지내던 위트릴로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오래간 만에 집밖을 나섰을 때 느꼈을 바로 그 느낌을 말이다.
푸르른 들판과 아침 공기에서는 약간의 습하지만 상쾌함이 느껴진다.
2차원 평면의 작품이 불러오는 공감각적인 자극, 그것을 이끌어내는 짤막한 소개글, 이 책이 지닌 매력은 그것뿐이 아니다. 이 책의 작가는 좋은 작품을 선정하는 눈썰미 뿐 아니라 읽는 이의 마음을 동하게 만드는 비유적인 표현법을 지니고 있었다. <에르강에 내리는 비> 작품에 대한 작가의 소개글을 보면 이를 단박에 느껴볼 수 있다.
‘오랫동안 이웃해 가까운 사이가 된 나무들이 하늘을 불러 함께 그림자를 던져 놓는다. 떨어지는 빗방울에 닿은 물살이 동심원을 그리며 간지럼을 탄다’
<365일 모든 순간의 미술> p.29 中
설명만을 듣고도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그릴 수 있을만큼 이토록 짧은 토막글에 압축적이고도 세심한 표현이 한 가득 들어있다.
마치 미술관에 들러 한 작품에 대한 짧지만 강렬한 도슨트를 듣는 느낌이다. 작품의 캡션 뿐만이 아니라 도슨트의 역할까지 해주는 책의 구성으로 인해 우리는 아침마다 조금쯤 더 푸짐하게 차려진 미술 작품을 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지닌 또다른 매력점은 다양한 작품을 작가의 안목을 통해 셀렉하여 한 권에 담아 냈다는 점이다. 그만큼 우리는 다양하고도 색다른 매력을 지닌 작품을 별 힘들이지 않고 책장을 넘기는 행위 만으로 접해볼 수 있다.
이를 테면 초현실주의 사조가 짙은 작품과 사실적인 표현 주의 작가의 작품을 한 번에 만나볼 수 있다는 점 말이다.
이 작품은 폴 내시의 <해변의 파란 집>이라는 제목의 작품이다. 물론 이 작품의 표현 방식 자체가 사실에서 그리 멀리 떨어진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데 어딘지 이질감이 든다. 현실에 있을 법 하면서도 어딘가 일그러진, 조금은 낯선 기분이 드는 작품, 말 그대로 꿈 속의 한 장면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실제로 폴 내시는 이 작품을 작업할 당시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그리는 초현실 주의 화풍에 큰 관심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가하면 여기 또 다른 작품이 있다.
에드원 처치의 ‘나이가라 폭포’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보는 것 만으로 나이가라 폭포의 압도적인 장엄함을 느껴볼 수 있을 정도로 극도로 정교한 표현 법을 사용하고 있다. 나이가라를 미국 쪽에서 바라본 그대로 그린 이 작품은 마치 보는 이를 수천 마일이나 떨어진 나이가라 폭포 옆으로 당장이라도 데려다 놓은 것만 같은 느낌을 받게 한다.
이렇듯 두 작품은 너무나 다른 대상을 그리고 있다. 꿈과 무의식을 세계를 그린 작품과 현실에 기반을 둔 정교한 작품을 한 공간에서 만나보기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설령 미술관을 방문한다 하더라도 주제가 다른 여러 전시를 하루에 돌아보지 않는 이상 이렇듯 다양한 작품을 한 번에 만나보기란 어려운 일이라는 말이다.
그만큼 이 책이 지닌 힘과 매력은 각각 보았을 때 단순해 보이지만 그것이 한 데 모여 시너지를 이루며 우리에게 특별한 예술적 경험을 선사해준다.
[박다온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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