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사철 푸르게 살아가는 사람

오송림 에디터를 만나다
글 입력 2022.03.03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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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소개하는 일이 이렇게나 힘든 일이었나. 고작 인터뷰의 서문일 뿐인데,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본 지 벌써 세 시간이 훌쩍 지났다. 헤아릴 수 없는 그의 깊이와 고뇌 앞에서 나는 자주 머뭇거렸다. 해서, 그의 방식으로 그를 소개하고자 한다.

 

그의 이름 송림(松林)은 ‘소나무 숲’ 이라는 의미다. 한자로 풀면 바로 이름의 뜻이 풀이되는 여타 이름들과 달리 은유로 한 겹 싸여 있다. 그는 이름이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면 소나무 숲이라는 사전적 정의만 일러준다고 한다. 그 후의 해석은 수용자의 몫이라고. (오송림 에디터, 「소설의 무용함을 사랑해」에서 인용)

 

송림이라는 이름은 꼭 맞은 옷을 입은 것처럼 그에게 어울렸다. 수용자로서 ‘소나무 숲’이라는 의미를 해석해 보자면, (그는 분명 이 이야기를 꺼내면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겠지만) 그는 사시사철 푸르게 살아가는 사람인 것 같았다. 소나무가 늘 푸름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잎이 완전히 떨어지기 이전에 꾸준히 다른 잎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라고 하던데, 과연 어떤 항상성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소나무는 봄에 잎이 나기 시작해서 여름에 자라지만, 가을에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가지에 달려 겨울을 보낸다. 그리고 다음 해, 봄과 여름이 지난 다음 가을에 떨어지기 시작한다. 조심스레 그와의 대화를 미루어 짐작해 보자면 그는 빠르게 지고 다시 피는 사람은 아닌 듯 싶었다. 추운 겨울까지도 잎을 달고 있을 정도로 무언가를 오래, 지극히 보는 사람에 가까웠는데, 글쓰기는 그를 다음 가을로 보내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울림을 주었던 글의 하단에서 그의 이름 석자를 발견했던 적이 많았다. 용기내어 인터뷰를 신청했고, 호기심과 고마움이 뒤섞인 마음으로 ‘당신’을 만났다.

 

 

 

아트인사이트 활동을 시작하다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활동을 시작하신 계기가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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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송림 에디터

 

 

다른 에디터 분들의 글을 읽어보면 다들 빛나는 동기가 하나씩은 있으신 것 같더라고요. 근데 사실 저는 그렇게 특별한 계기는 아니었어요. 우연히 에디터 공고 글을 보게 되었는데, 지원서에 있는 질문들이 굉장히 흥미롭잖아요. 저는 그걸 너무 써보고 싶었어요. 당시 제가 여러가지로 답보 상태에 놓여 있었고, 자기 충족감이 필요한 때였는데 이걸 쓰고 나면 왠지 충만해 질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이 에디터 활동을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나 '이 활동으로 무언가를 얻겠다.'는 의지보다도 그냥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이걸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에디터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어서 감사했죠.

 

와, 이런 경우는 좀 색다르긴 하네요.

 

확실히 글을 퇴고하면서 제가 문화예술 콘텐츠 관련해서 얼마나 비장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가 느껴지더라고요. 내가 이거에 정말 진심이었다는 것을 돌아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문화예술에 대한 비장한 마음이라고 하셨죠. 무슨 마음인지 알 것 같아요. 글들 보니까 전공도 영화 연출 쪽이신 것 같던데.

 

맞아요. 전공은 연극영화과고 정확히는 세부 전공이 영화 연출이에요. 사실 저는 영화는 시각적인 매체이기 때문에 말을 많이 할수록 안 좋다고 생각해요. 물론 물리적인 대사의 양으로만 좋은지 안 좋은지를 따질 수는 없죠. 분명 대사가 많은데 좋은 영화도 있거든요. 그런데 저는 글에도 많이 썼지만 개인적으로 영화는 Telling 보다 Showing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항상 어려워요. 왜냐하면 세나님도 글을 보셨다시피... 저는 할말이 많은 사람이잖아요. (웃음) 그래서 항상 글을 써야하는 사람인데, 영화의 문법은 텍스트와는 다르니까 그 점에 어려움을 느꼈어요. 그래서 아트인사이트에 지원할 당시에 약간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는데 이곳에서 글을 쓰게 되면서 한 번씩 숨통을 틔우게 되는 같아요.

 

그렇다면 에디터 활동을 하면서 송림님께 찾아오신 변화가 있을까요?

 

누군가 제 글을 읽을 것이라고 확신하지는 못했지만 가정은 했었어요. '사이트에 올라오니까 누군가는 읽겠지.' 이렇게요. 적어도 독자라는 사람들이 어딘가에 존재할 거라는 생각 자체가 원동력이 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오래전부터 글을 썼기 때문에 활동을 하면서 새롭게 글을 쓰게 되었다거나 글을 쓰는 루틴이 꾸준해졌다거나, 이런 건 아니에요. 그런데 독자를 상정하게 된 것. 내적으로 감춰두던, 밀실에 있던 글들을 광장에 내놓을 수 있게 된 점, 그런 인식의 변화 자체인 것 같아요. 확실히 독자를 상정하고 쓴 글과 상정하지 않고 쓴 글은 결이 달라지니까요. 가끔 예술 대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제 글을 필사했다거나 공부를 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을 때가 있는데, 저도 예대 입시를 했어서 그런지 그런 점이 참 감사하더라고요.

 

무척 보람되었을 것 같아요.

 

조금 상투적인 비유이긴 한데, 배가 바다에서 떠서 나가려면 내적인 설비도 잘 갖춰져야 하지만외적인 환경도 어느 정도는 받쳐줘야 하겠죠. 폭풍우가 치다가도 한 번씩은 <라이프 오브 파이>에 나오는 것처럼 예쁜 바다도 나타나야 할 거예요. 저는 글을 쓸 때 내적으로 글을 쓰는 마음 같은 것이 갖춰져 있었지만 외적인 환경으로 글을 읽어주는 독자가 없던 상태에서 그것이 생기니까 그 자체가 순항을 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읽고 씀에 대해 이야기하다



전공이 영화 쪽이시라면, 영화 시나리오를 제외하고 글을 쓰셨던 적은 없는 걸까요? 「재와 별」이라는 소설도 연재하시는 걸 봤는데. 글을 오래 쓰셨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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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오래전부터 쓰긴 했어요.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정말 어렸을 때는 시를 썼거든요. 백일장인가? 어디서 수상을 했는데 선생님께서 그걸 보시고 너는 시를 꾸준히 써보라고 응원을 해주셨어요. 일주일에 2~3편의 시를 꼭 쓰게 하셨죠. 그분에게 지금도 감사해요. 그때부터 시를 쓰다가 조금씩 커가면서 할말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어요. 사실 그때 썼던 건 그냥 귀여운 이야기들이긴 했죠. (웃음)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에세이를 썼어요. 힘들 때 저를 들여다보기 위해서 글을 계속 썼던 것 같아요. 아까 세나님이 말씀하신 소설 <재와 별>은 제가 고등학교 때 쓴 소설 제목인데, 그것에 대한 애증의 감정이 있어서 카테고리명을 그렇게 짓게 되었습니다.

 

그럼 「재와 별」 소설에 대해서 다음 연재 계획이 있다면...

 

쓸 수는 있겠지만, 해당 소설은 제가 인생에서 가장 우울할 때 썼던 거여서 조금 어려울 것 같긴 해요. 사실 아트인사이트의 소설 작가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별로 올린 게 없거든요.  써놓은 건 있는데 올리기가... 너무 저의 찌꺼기 같아서요.

 

제가 첫 영화를 제작하고, 상영회를 하고 나서 2주 동안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고 방에 틀어박혀 있었거든요. 거의 침대에만 누워있었어요. GV까지 마치고 나서 한참 우울했었는데, 처음으로 커다란 스크린으로 보게 된 그 영화가 저를 너무 많이 담고 있던 거예요. 그걸 몇 분 동안 버텨가면서, 청각과 시각 등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봐야 한다는 것이 무척 괴로웠어요. 그 기분을 다시 느끼기 싫어서 제가 자꾸 숨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차근히 아트인사이트에 올려도 괜찮을 만한 것들을 써보려고요.

 

「소설의 무용함을 사랑해」라는 글을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사실 저도 시에 대해 비슷한 마음으로 쓴 글이 있어서 무척 공감하며 읽었어요. 그래서인지 송림님 글을 읽어보면 한국 현대소설 작가님들에 대한 진한 팬심이 느껴지더라고요. 박상영 작가님도 그렇고, 정세랑 작가님도 그렇고요. 저도 최근에 송림님과 같이 박상영 작가님 신작 <1차원이 되고 싶어> 작가의 말을 읽다가 눈물을 흘린 기억이 있네요.

 

 

사실 나는 구원의 서사를 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중략) 그러나 종국에 이 소설은 실패의 기록으로 남을 것 같다. 구원을 바라며 허공에 손을 뻗었던 한 인간이 결국에는 누구에게도 가닿지 못한 채 홀로 남겨지는 그런 종류의 이야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와 내 소설 속 인물들이 허우적대며 노력했던 시간이 허사가 아니라고 믿는다. 몸부림을 칠 때 생겨난 생채기와 그 위에 덮인 굳은살, 삶의 장력을 이겨내려다 만들어진 잔근육이 모여 삶을 버티게 한다고, 처절한 고통조차도 때로는 희망의 한 조각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싶어서 이 소설을 썼고, 그 믿음을 잃지 않기 위해 계속 쓸 것이다.

 

- 1차원이 되고 싶어, 작가의 말 中

 

 

제가 별말을 다 했네요. (웃음) 사실 저는 서사를 볼 때 거리를 잘 두는 편이에요. 여운이 있더라도 빠르게 떨쳐내는 편이기도 하고요. 책 읽으면서 우는 일도 잘 없거든요. 그런데 그럴 정도로 좋았어요. 제가 글에서는 감정 표현을 잘하는 편인데 사실 평소에는 좀 건조한 면이 있거든요. 그래서 제가 예술 관련된 공부를 한다고 했을 때 의아해하시는 분들도 있었어요.

 

저는 그 글에서 송림님이 많이 드러나서 좋더라고요. 마침 송림님을 무척 궁금해하고 있던 참이기도 했고요. 그럼 그게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한 글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애정을 담고 있는 글이 되기도 하겠네요.

 

맞아요. <1차원이 되고 싶어>에 대한 글을 쓰면서 혼자 위로를 많이 받았어요. 제가 제 걸 쓰면서 그랬다는 게 웃기긴 한데, (웃음) 학창 시절의 상처 같은 것을 제가 스스로 문질러준 것 같았어요.

 

그리고 창작을 할 때 저를 지나치게 담는 경향이 있는데, 그게 문제가 될 때도 있거든요. 종종 교수님께 그런 부분에 대해서 비판적인 피드백을 받을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작가의 말에서 작가님도 예전에 없었던 그 존재를 상정해서 자신이 스스로 위로 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는 뉘앙스로 글을 쓰셨잖아요. 그때 창작자로서도 박상영 작가님께 응원을 받는, 지지를 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저도 제 자신에 대해 직접적인 이야기를 하지는 않지만, 나를 투영한 캐릭터를 만들어낼 때가 있거든요. 이게 아주 잘못된 방향은 아닐 수 있다는 걸 느꼈다고 해야하나… 박상영 작가님 책을 읽어보면 대부분 자신을 투영시키잖아요. 그런데도 이렇게 충분히 매력적인 글을 쓸 수 있는데, 저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뭐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저도 그 점이 좋았어요. 사실 저는 평소에 사소설 같은 걸 읽는 것을 되게 좋아하거든요. 항상 작가에 대해 궁금하고, 작가랑 친해지고 싶고. (웃음) 그래서 이렇게 인터뷰 요청도 하게 되었고요. 또, 본인이 쓴 글 중에서 기억에 남는 글이 있다면요?

 

구룡마을을 다녀온 뒤에 쓰게 된 글이 있어요. 「구룡마을, 아홉 마리의 용을 깨우다」

 

그런데 실제로 마을에서 투쟁하시는 분들이 제 글을 공유해서 읽으시고, 누군가가 댓글에 이권에만 눈이 밝은 정치인들과 달리 이런 예술가가 계신다며, 저를 예술가라고 칭해 주신 거예요.

 

사실 글이라는 게 어떤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지 않은 지는 꽤 오래된 것 같은데, 이분들이 이걸 읽고 마음의 위로를 얻으셨다는 사실, 제가 비록 크게 할 수 있는 것은 없지만 자신들의 투쟁을 함께 해 주는 외부인이 있다고 느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더라고요. 아까 말씀을 드렸듯이 저한테 글 쓰고 기쁜 순간은 실질적인 무언가를 받았을 때라고 했잖아요. 그런 점에 있어서 인상적이었고, 아트인사이트라는 플랫폼에도 무척 감사했어요. 플랫폼의 힘이 없었더라면 그런 일이 쉽게 일어나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저는 송림님의 글을 읽으면서 무언가를 꾹꾹 눌러 담은 글 같다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진창에서 어렵게 찾은, 가늘지만 빛나는 사유들을 읽어 내려가는 기분이었어요. ‘깊이 있음의 깊이’랄까… (웃음) (송림님은 이전에 「깊이 없음의 깊이」라는 제목의 글을 쓰신 적이 있다.)  더불어 송림님의 글에서는 말하고자 하는 본질에 가까이 접근했기에 다른 문장으로는 대체 불가능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많았거든요. 정확한 글을 쓰기 위해 신경을 쓰시는 부분이 있을까요?

 

우선 이런 질문을 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사실 이전에는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이라 고민을 조금 하긴 했는데, 일물일어설이라는 게 있잖아요.

 

맞아요. 플로베르의 일물일어설. 그걸 떠올리면서 질문했어요.

 

하나의 상황에서는 그걸 표현하는 단 하나의 단어만 있다는 뜻이잖아요. 저는 이게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그 부분을 ‘작가는 상황에 맞는 단 하나의 단어를 어떻게든 찾아내야 한다.’ 하고 해석하기보다는, ‘작가는 스스로를 그 단어가 있는 곳까지 스스로를 밀어 넣을 줄 알아야 한다’ 라는 의미로 받아들였거든요. 그런데 그 밀어 넣는다는 것에는 물리적인 시간, 흔히 말하는 앉아 있는 힘 있잖아요. ‘엉덩이력’이라고 하는. (웃음) 그런 것들이 있겠죠. 저는 약간 이런 느낌으로, 실용적으로 받아들였어요.

  

사실 절대적 우위로 존재하는 단어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정확한 단어를 위해 나를 몰아붙여야 한다는 것. 그 몰아붙이는 과정이 다양하게 갈릴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책에 모르는 단어가 있어서 바로 메모를 한다든가, 아니면 내가 평소에 일상적으로 쓰는 단어도 갑자기 뜻이 정확히 뭐지? 싶은 마음에 사전적 정의를 찾아간다든가. 이런 것도 사실 정확하게 쓰기 위해 그곳까지 나를 밀어 넣는 과정이 될 수도 있겠죠. 저는 가끔 비문학 글 같은 거나 칼럼 같은 거 읽으면서 수능 국어 풀듯이 막 끊어 읽어보기도 하고 그러거든요. 그런 과정에서 주술 관계가 파악이 되거나 중간에 수식어를 끼워 넣은 것이 보인다거나, 그런 문법적이면서도 문장적인 탐구를 할 때도 가끔 있는 것 같아요.

 

“독자로서 속이 후련해질 때가 많더라고요. 고맙기도 했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정확하게 쓰려는 노력이 상처주지 않는 글의 시작이기도 한 것 같아요.”

 

송림님께서는 독서량도 상당하신 것 같았어요. 송림님의 글을 읽으면서 읽고 있는 책이 겹치는 경우도 자주 있었던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송림님의 독서 취향이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쓰신 글 중에서 문학적인 소견을 살짝 엿볼 수 있었는데 그 부분에 대해 더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내 짧은 문학적 소견을 드러내는 지나치게 이상적인 진술일 수 있지만, 나는 주체로서의 ‘나’의 모습을 통해 미시 세계를, 객체로서의 ‘나’를 통해 거시적 세계를 교차시키는 자유로운 방식의 문학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사실 문학도 ‘리셋’을 맞아 거대 담론 주제로 반드시 ‘회귀’해야 하는 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발화할 필요성은 있다고 느끼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최근 한국 문학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젊은 작가들은 이에 아주 능하다고 느낀다. 개인을 통해 전체를 발화하는 동시에, 보편화 할 수 없는 개인의 특수성 역시 놓치지 않는 훌륭한 작품들이 많으며, <리셋> 역시 그 범주 안에 있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우리는 모두 ‘스스로가 낳은 재앙 앞에 선 절대악’인 동시에 각자만의 이유로 때때로 낭만적인 ‘리셋’을 꿈꾸는 주체가 될 수 있다.

 

오송림 에디터, 「멸망으로 지속하기 - 소설 '리셋'」

 

 

저는 문학은 가리지 않고 다 읽는 편이에요. 비문학은 예술, 인문서 위주로 읽는 것 같고요. 저번 학기에는 수업을 들으면서 민주주의 등 거대 담론을 담은 한국 근현대 문학을 많이 읽었어요. 성인이 되어서는 거의 최근에 나온 한국 현대문학들을 주로 접했는데 그 기회로 다시 돌아가서 읽게 된 거죠. 그런데 이런 작가들의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비교하게 되더라고요.

 

문학적 소견이라고 명명하기에는 소박한 개인의 의견이기는 하지만, 제 글에 썼듯이 저는 아직 미시적인 이야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문화계, 영화계에서 미시 세계에 대한 이야기는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식의 반응이 빈번하더라고요. 저는 실제로 영화 제작을 하면서도 자주 들었고요. 예를 들어 이제는 여성 서사에 대한 이야기도 줄일 필요가 있다는 말들이요. 근데 저는 그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아요. 유구한 세월 동안 언급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니 아직 더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읽은 60~70년대의 문학이 현재 젊은 작가들의 문학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도 볼 수는 없죠. 여성들에 대한 묘사라든지, 성별 이분법에 대한 묘사, 폭력적인 묘사, 어떤 인물을 소모적으로 사용하는 인물 묘사 등 과거의 혐오 표현들에 대해서 잠시 눈살을 찌푸리게 될 때도 있지만, 그분들이 소설로 이뤄낸 문학적 성과나 한국 문학의 계보를 쌓아온 것은 분명히 있을 거예요. 그래서 그것을 완전히 비판만 하기에는 무리가 있긴 합니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는 미시 서사 이야기를 더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거시 서사를 그냥 대놓고 다뤘다면 지금은 그냥 미시 서사에서 마지막에 살짝만 커지는 느낌이에요. <리셋>같은 경우도 여러 여성의 일기만으로 구성된 개인적인 이야기였다가 마지막에 23세기의 배경이 나오면서 살짝 커지죠. 거대 담론을 담은 근대 문학들은 '이러이러한 개인들이 거대한 사회를 구성한다' 라는 느낌이라면, 현대 문학들은 '거대한 사회를 해체하려는 노력은 개인을 관조할 수 있게 한다' 하는 느낌인 것 같아요. 물론 제 짧은 사견이지만요. 이런 방식의 이야기를 아직까지는 더 할 필요가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그렇지만 창작자로서 꼭 모든 것을 이야기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그 사람은 그 사람이 생각하기에 문제가 되는 부분을 말하면 되는 거예요. “난 지금 어떤 사회 시스템이 문제라고 생각해.” “민주주의에 장애가 있다고 생각해.” 그러면 그것에 대해서 그 사람이 말하면 되는 거죠.

 

"맞아요. 모든 사회문제들을 꼭 어떤 순서가 있는 것처럼 일률적으로 처리할 필요는 없죠. 그게 가능하지도 않고요."

 

"그리고 사실 이런 잣대가 여성 창작자들한테 더 예민하게 주어지는 면이 있어요. 여성 창작자인데 왜 페미니즘적인 각성을 하지 않았는지, 왜 이런 부분까지 예민하게 다루지 않는지에 대해서요. 그런데 여성 창작자라고 꼭 그래야 되는 건 아니거든요."

 

"그렇죠. 그런 시선 자체가 일종의 대상화가 될 수도 있겠죠."

 

"오히려 지금 필요한 건 여성 창작자들이 뭐든 그냥 하게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일단 그들이 문화 예술계에 진출한 뒤에, 어떤 윤리적인 잣대나 서사적인 잣대를 제시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일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부분에서도 고민을 할 때가 있습니다."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다



그럼 소설도 쓰시고, 시나리오도 쓰시고, 바쁘시겠네요. 그럼 글은 주로 시나리오만 쓰시는 걸까요?

 

아니요. 제가 감독을 한 영화도 있고요. 영화 촬영 현장을 스텝으로 뛰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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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production 과정에서 짠 콘티 ©오송림 에디터

 

 

“감독도 하시는구나. 사실 저도 영화 스텝으로 일해본 적 있어요. 친구 도와주려고.”

 

“정말요? 어떤 보직을 하셨어요?”

 

“그냥 이런 저런 거 했어요. 조명 들고 서 있거나 붐 마이크 들고 서 있기. 패션이나 분장을 담당하기도 했고요. 아, 그 슬레이트 치는 것도 해봤는데 당시에는 처음이라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영화를 만들어봤다.'라기보다는 '그래도 영화 만들어 본 사람한테 맞장구 쳐줄 수는 있다.' 뭐 이런 거죠. (웃음) 덕분에 지금 이런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것 같고요.“

 

“그렇죠. 그런 경험은 저처럼 그쪽에 뜻이 있지 않은 이상 생소한 경험이니까. 그런데 되게 재미있어 하신 것 같아서 놀라운데요. 영화 촬영 재미있다는 사람 잘 없는데.”

 

“근데 촬영 현장만 보면... 힘들긴 하더라고요. 12시간 이상 촬영이 강행되는 경우가 많으니까. 송림님은 대단하신 것 같아요. 시나리오를 포함해서 계속 여러 종류의 글도 쓰시고, 영화 감독이랑 스텝까지...”

 

“졸...졸업해야 하니까요.”

 

“아...... 맞네요......”

 

(일동 폭소)

 

그럼 보통 영화 만드는 일에는 그렇게 다방면으로 참여해야 하는 건가요?

 

아니요. 학과 내에서는 사실 품앗이에요. 제가 감독일 때 누군가가 와서 스텝을 해주면 저도 가주는 것이 일종의 룰인 거죠. 그게 아니라면 연극학과에서 외부로 촬영 갈 일이 생기기도 하고. 아예 막내 스텝으로 갈 일도 생기고요. 이제 그런 일들을 하다 보면 소위 말해 촬영 짬밥이 된다고들 하죠.

 

영화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혹시 송림님께서 좋아하는 감독이 있을까요?

 

시네필들 중에서는 좋아하는 감독이 분명해서 해당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다 깨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런 스타일은 아니에요. 하지만 스타일로만 따져보자면 한국 감독 중에서는 이창동 스타일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역시! 뭔가 그렇게 말하실 것 같았어요.”

 

“주변에서도 다들 "너 이창동 좋아하지?" 하더라고요. (웃음) 문학적인데 리얼리즘의 선두라고 불려지  는 점이 어떻게 보면 되게 모순적이잖아요. 그 점이 좋았어요. 그리고 외국 감독은 제가 <라이프 오브  파이>를 좋아하거든요.”

 

“맞아요. 송림님 글에서 봤어요. 저도 좋아해요.”

 

“그래서 이안 감독도 좋아하고,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같이 판타지적인 요소를 그려내는 감독도 좋아 해요. 왕가위 감독도 좋아하고. 그러고 보니 비주얼리스트들을 좋아하는 것 같네요. 아까 말씀드렸다시 피 영화는 Telling보다는 Showing이라고 생각해서. 특정 감독을 덕질하고 그렇지는 않지만 두루두루 보 는 편인 것 같아요. 최근에는 한국 여성 감독들 영화도 보고, GV도 찾아가고 그랬습니다.”

 

같은 영화를 볼 때도 전공자의 시선은 조금 다를 것 같긴 해요. 평소 영화를 어떻게 보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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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촬영 때 참여한 세트 ©오송림 에디터

 

 

학과 공부를 한 것도 있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영화를 편하게 볼 수 없게 된 시점이 찾아온 것 같아요. 왜냐하면 영화를 어떻게 만드는지를 알게 되었으니까요. 그래서 예전에는 영화를 볼 때 장면에 집중하고 서사에 이입을 했다면 이제는 바깥 스텝들이 약간 보이기는 하죠. ‘저 장면은 이렇게 만들었겠네.’ 이런 생각도 하고요. 그러면서 시선이 확장되는 것 같아요.

 

또, 저는 개인적으로 독서가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책을 상호 텍스트적으로 비교하며 보는 것은 영화만 보는 것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에요. 미술에 조예가 깊은 편은 아니지만, 그런 다른 예술 매체들을 자주 보러 다니는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움직이는 이미지만 보면 정지된 이미지에 담긴 느낌이나 그것이 줄 수 있는 효과를 경시하기 마련이라고 생각을 해요. 어떻게 보면 영화도 다 정지한 이미지를 붙여서 만들어지는 거니까. 그래서 그 기본적인 하부 구조를 알기 위해서라도 정지된 이미지에 길을 들여야 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영화는 종합 예술이니까요.

 

“창작자가 가져야 할 첫 번째 덕목은 창의력도 체력도 아닌 ‘자신의 창작물을 견디는 능력’ 이라고 생각한다” 라고 쓰신 것을 본 적이 있어요. 저도 이 부분에서 깊이 공감했는데요. 창작을 하기 위해선 ‘견딜 능력’과 ‘그럼에도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송림님께서도 창작 활동을 하면서 난항을 겪으셨던 순간이 있나요?

 

음, 예전에는 분명히 난항을 많이 겪었던 것 같거든요. 어려움을 겪는 순간이 많아져서 나중에는 그게 난항인 줄도 모르고 넘어갈 때가 있는 것 같긴 해요. 공모전이나 영화제에 떨어지는 것도 사실 난항이라고 볼 수는 있죠. 그것 때문에 어떤 창작력이 줄어들 수는 있으니까. 그런데 사실 저는 이제 거기에 익숙해져서 떨어지는 것에는 크게 실망하지 않아요. 오히려 저는 뭔가 붙거나, 상을 받거나 이러면 약간 더 의아해하는 편이거든요. 다시 읽어보고 어느 부분을 높게 사 주셨지? 할 때도 종종 있고요.

 

"말도 안 돼. (고개를 가로젓는다) 송림님의 글에 애정을 담고 있는 독자로서 그건 인정할 수 없어요. 독  자의 안목을 믿어주세요."

 

"(재빨리 변명한다) 그런데 친구들이 말하기를 보통 내 작품이 마음에 안 들 수는 있지만 내가 상을 받 는다면 누군가 그걸 인정해주었다는 뜻이니까 기뻐해야 되지 않냐고 말해주더라고요. 그때 그렇게 생 각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어요."

 

"앞으로도 그렇게 생각해 주셔야 해요. (웃음)"

 

영화를 만드실 때도 힘들었던 순간이 자주 있으셨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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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촬영 때 참여한 미술 ©오송림 에디터

  

 

사실 글을 쓰는 것보다는 영화를 만들 때 어려웠던 순간이 많았죠. 예산과 같은 현실적인 문제나 스태프들 간의 관계 문제, 기타 등등의 이유로 어려운 순간들이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가장 힘들었던 점을 떠올려 보자면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글을 쓰고 문학을 쓰는 거에 더 익숙한 사람이라, 영화라는 매체에 적응하는 것이 아직도 어려울 때가 있어요. 교수님들께서 항상 제 작품이나 시나리오를 보시면 공통적으로 제게 문학적이라고 말씀을 하시거든요. 칭찬으로 그 말을 하시는 분들도 있고, 비판으로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영화가 문학적이라는 건 칭찬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시거든요. 그것에 대해 크게 나쁜 평가를 받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스스로 고민을 많이 했던 부분이에요.

 

영화라는 매체는 관객의 심리도 잘 알아야 하고, 시청각적인 부분에서 조정해야하는 부분이 많잖아요. 영화 문법을 잘 만들어 가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내 영화가 문학적인 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리 영화를 봐도 사실 잘 모르겠어요.

 

“그럼 이창동 감독처럼 그런 문학적인 스타일을 밀고 나아가셔도 되지 않을까요?”

 

“제가 호불호가 좀 갈리는 편이에요. 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되게 좋아해주는 편인 것 같고, 약간 취향이 아닌 분들은, 뭐지...? 이런 순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에이, 개성이 있다는 말이잖아요. 이쪽에서는 굉장한 칭찬이지 않나요? 저는 벌써부터 기대되는데요.”

 

“좋은 말로 하면 그렇죠. (웃음) 좋은 말로 하면.  매번 스타일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이거를 유지하되 영화인들이 쌓아놓은 문법들을 어느 정도 흡수하고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하는 거예요. 저는 진로도 이쪽으로 나갈 거라서, 그런 걸 잘 배워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죠.”

 

“그럼 영화 쪽으로 진로를 결정하신 걸까요?”

 

“아니요. 아직 영화 쪽은 자본이라든지 현실적인 문제들이 있으니까. 일단은 영상 서사물 관련해서 직종을 생각하고 있긴 해요. 하고 싶다고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웃음)”

 

분명 잘 되실 거예요. 송림님이 만드시는 영화들도 무척 궁금해지네요. 그럼 반면에 창작을 하면서 기쁨을 느끼시는 순간이 있다면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항상 독자에 굶주려 있기 때문에, 어떤 실질적인 피드백이 오는 순간에 기쁨을 느껴요. 그게 설령 비판이라도 기쁘더라고요. 제가 연극영화과에 입학했을 당시 가장 좋았던 점이 그거였어요. 비판이든 칭찬이든 교수님께서 제 글에 대해서 생산적인 피드백을 준다는 사실이요. 그게 늘 그렇게 좋더라고요.

 

그리고 어쩌면 세속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부분이긴 한데 내 창작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요.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내 창작물이 교환 가치가 있다는 건 정말 큰 의미거든요. 솔직히 말해 단순히 돈을 받아서 기쁜 것도 있지만, 내 창작물이 어떤 교환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서도 기쁨을 느껴요. 또, 그 자체가 누군가를 이해시킬 때가 있는 것 같고요. 그냥 글만 봐서는 “잘 모르겠는데?” 했다가도, "이걸로 얘가 이만큼 돈을 벌었대." 하면 그때 인정해주시는 분들이 실제로 계시니까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요.

 

또, 제가 혼자 글을 쓰는 사람이긴 하지만 글로써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고, 연결되고 싶은 순간들이 많은데, 세나님과 지금 연결된 것처럼 이렇게 구체화 되는 순간이 제일 기쁜 것 같아요.

 

 

 

송림(松林), ‘소나무 숲’



송림님의 글 「나를 키운 건 8할이 비디오 가게였다」 잘 읽었습니다. 어렸을 적 비디오가게에서 자란 경험이 송림님의 서사적 욕망에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어렸을 적 이야기라 아무래도 기억에 남는 장면은 몇 안 되지만, 서사를 좋아하게 된 이유에는 분명 그 영향이 있을 것 같긴 해요. 낡은 비디오 가게의 빛바랜 듯한 느낌의 이미지들이 저에게 계속 남아 있는 것 같아요.

 

그 밖에도 송림님의 창작 활동에 영향을 미친 작품이나 존재가 있는지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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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ul Leiter, Red Umbrella, c.1955

 

 

우선 제게 영향을 미친 존재가 있다면 아무래도 어머니의 덕이 큰 것 같아요. 어렸을 때 기억나는 사소한 일화가 있다면 통창 유리가 있는 가게에서 식사를 하거나, 아니면 저희 오빠가 다니는 학교 앞에서 어머니와 함께 오빠를 기다렸던 기억이에요. 근데 그 기다리는 시간 동안 저희가 꼭 투명 우산을 썼었어요. 투명 우산은 밖이 보이잖아요.

 

마치 유리창을 통해서 세상 밖을 보는 기분이 들었겠네요. 스크린처럼.

 

맞아요. 그렇게 어머니와 함께 서 있었는데, 어머니께서 항상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서사를 붙여서 이야기를 해 주셨어요. "저 사람은 교복을 입은 걸 보니까 아마 학교를 가는 모양이지. 그런데 화구통을 들고 있는 걸 보니까 오늘 미술 시간이었나보다. 저 앞의 사람은 짐이 많네, 멀리서 왔나 보다." 이런 식으로요.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고 어디를 가는지, 그런 소소한 이야기들을 지어내어 들려주셨는데, 그게 저한테 좋은 기억으로 남았어요.

 

저는 아직도 버스 같은 거 타면 사람들을 보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냥 사람 사는 모습을 보는 거요. 그런 것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무언가에 서사를 부여하게 되었고 그런 것에 익숙해진 것 같아요. 모든 사람들은 다 개개인의 서사가 있고, 나 역시 마찬가지고, 그래서 내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었다는 사실까지도 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제가 지금 이 이야기를 어머니께 말씀드리면 어머니는 "내가 그랬었나?"하시면서 의아해하실지도 모르지만, 제가 누군가의 서사를 궁금해 한다거나 서사를 만들고 싶다는 욕구를 갖게 된 경위에는 그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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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ul Leiter, Cap, c.1960

 

 

그리고 창작물이라고 하면... 사실 저는 수많은 창작물에서 영향을 받긴 해요. 그런데 최초의 기억으로 내려가 보자면 아마 아는 사람은 많이 없긴 할 텐데, <아무도 모르는 색깔> 이라는 긴 판타지 동화가 있어요. 그런데 제가 어렸을 때 그걸 읽고 푹 빠져버린 거예요. 초등학교 1~2학년 때인가. 그래서 어떻게 했냐면, 그 책의 주인공의 이름을 제 이름으로 바꿔서 그 소설을 쓰기 시작했어요. 작은 노트에 쓰기 시작해서 끝까지 다 썼거든요.

 

그런데 그게 일종의 계기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때 ‘끝까지 쓰는 맷집’이 생긴 거예요. ‘어쨌든 내가 무언가를 끝냈다.’ 이런 거요. 서사를 쓸 때 정말 중요한 게 끝까지 쓰는 거거든요. (웃음) 사실 저 그거 못할 때도 많아요. 그런데 그 경험 자체가 저에게는 창작 활동에 재미를 붙이게 된 최초의 계기가 된 것 같아요. 그 뒤로는 많은 아티스트분들에게 영향을 받으면서 쓰고 있죠.

 

글감을 어디서 얻으시는지 궁금해요. 또, 독립 영화를 만드신다는 글을 얼핏 본 적이 있는데, 작업적 영감을 어디서 얻으시는지 궁금하네요.

 

사실 진짜 현실적으로 이야기를 하자면… 마감이…

 

(일동 폭소)

 

역시 마감을 꼽으셨군요.

 

갑자기 마감을 해야할 때가 있잖아요. 세 달 안에 이걸 만들어야 한다거나, 그럴 때가 있죠. 그럴 때 영감이 떠오를 때가 많고요. 저는 오히려 특정한 계기가 있다기보다는 대부분 자극이 없는 멍 때리는 시간에 떠올라요. 왜, 미디어에서 누군가가 영감을 얻고, 뮤즈가 나타나는 순간이 되게 극적인 순간으로 그려지잖아요. 연출도 극적으로 하고. 근데 사실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그러실 거예요. 저는 침대에 막 누워서 뒤척거릴 때나, 버스에서 창 밖을 보고 있을 때나, 깜박이는 커서를 보고 있는 시간에 떠오르고요.

 

어떤 소재가 확 떠오르는 것보다는 첫 문장이나 영화의 경우 첫 쇼트가 생각날 때가 더 많아요. 첫 문장을 쓰고 나면 지극히 보게 되거든요. 내가 이걸 무슨 감정으로 썼는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지. 그리고 저는 항상 저를 담는 편인데, 그게 저에 대해서 이해하는 방식인 것 같기도 해요.

 

송림님의 글에서 ‘서사의 힘은 그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음으로부터 기인한다. 크고 작은 서사를 형성하고 공유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모두 창작이나 소비의 역할을 맡아 되고 모두를 안을 수 있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을 읽은 적이 있어요. 이상적인 창작자와 소비자의 모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이상적이지 않은 창작자와 소비자는 있더라도 반대의 경우는 정의되지 않는 게 제일 좋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감히 그런 걸 정의 내릴 수는 없겠지만 개인적인 소견을 말해보자면, 우선 이상적인 창작자가 되기 전에 이상적인 소비자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세랑 작가님의 <시선으로부터>에도 “읽는 사람은 결국 쓰게 되기 마련이다”라는 문장이 등장 하잖아요. 심지어 왜 그런지 이유도 말해주지 않죠.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아요. 그렇게 계속 읽어 나가고, 타인의 문장에 질투도 해보고, 그것에 영감도 받고, 반동도 가지고. 그런 사람들만이 좋은 창작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스스로에게 “나는 창작자야”라고 정체화시키는 것 자체가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너무 부끄럽잖아요. 내가 무슨 예술가이고. 내가 무슨 창작자이고. 근데 그걸 나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순간, 그리고 또 다른 면에서는 내가 소비자라는 걸 인식하는 순간이 좋은 창작자가 될 수 있는 시발점인 것 같아요. 저도 저를 스스로 창작자로서 명명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창작자가 된 것 같거든요. 그게 되게 어려워요. 처음에는. 창작자라는 이름을 가진 다른 사람들의 창작물과 내 창작물을 비교하면 너무 부끄럽기도 하고.

 

진짜… 완전히 공감합니다.

 

이상적인 소비자는… 우리가 너무 많은 매체의 시류 속에 살다 보니까, 거기에 휩쓸리지 않고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소비자의 중요한 덕목이 된 것 같아요. “나는 이걸 좋아해”, “나는 이걸 좋아하지 않아.” 저는 이런 걸 당당하게 밝힐 수 있는 것도 좋은 소비자가 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자유라고 생각해요. 그런 말을 하려고 아트인사이트 같은 플랫폼이 있는 거고, 이런 만남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거니까요.

 

알찬 답변 감사드립니다. 벌써 마지막 질문이네요. 향후 활동 계획이 있다면.

 

우선 졸업 영화 시나리오 완성을 해야 해요. 그리고 휴학을 하는 동안 현장 업무를 좀 경험해보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아트인사이트에서 새 소설을 쓰고 싶어요. 이 세 개만 제대로 해내면 소원이 없겠네요.

 

“엇, 여기서 말씀하시면 해야하는 거 아시죠?”

 

(웃음) “저 지금 그러려고 뱉은 거예요. 일단 뱉어 놔야 하게 되니까요.”

 

"좋습니다. 그럼 저는 천천히 송림님 다음 글을 기다릴 일만 남았네요. 오늘 성실히 인터뷰에 참여해주셔서 감사드려요."

 

인터뷰가 끝난 뒤에도 우리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아마 방금 전까지 나눈 이야기들과 크게 다를 것은 없었으리라고 회상한다. 그의 말에 바쁘게 맞장구치며 속으로 생각했다. 영상으로든, 활자로든, 앞으로도 그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게 될 것 같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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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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