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구룡마을, 아홉 마리의 용을 깨우다 [공간]

글 입력 2021.05.06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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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룡마을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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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 포르노’ 개념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이 증가한 것은 작년이었다.

 

영화 <기생충> 촬영지를 관광패키지로 발전시키겠다는 서울시의 발표가 있던 후부터, 누군가의 가난마저 상품화하는 빈곤 포르노 현상에 대해 실감하게된 것이 계기였다. 비슷한 예시로, 2017년에는 서울시 중구에서 주민의 허가 없이 대학생 쪽방 체험 프로그램을 주선하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주민들은 나라가 나서서 그들의 삶을 구경거리로 만듦에 비판했다. 이렇게 가난마저 탐하는 이들의 이기심을 보여주는 모순적인 사례들이 물 밀 듯이 쏟아지고 있다.

 

한 기사를 접하고 구룡마을로 향하는 길, 나는 이 빈곤 포르노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답사 전 많은 블로그를 통해 그 마을을 관광 삼아 방문한 이들을 보았기에 마음이 복잡했다. ‘달동네 패키지 여행’등의 이름 하에 말이다. 주민들의 얼굴이 그대로 드러난 사진을 SNS에 무분별하게 기재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많은 이들이 구룡 마을 방문 후기로 자신이 현재 영위하고 있는 삶에 대한 다행을 표했다. 나는 타인의 삶의 악조건에 빗대어 자신의 행복을 찾는 행태에 의문을 느꼈다. 그렇기에 구룡마을로 향하는 나의 목적과 방향성에 대한 고민은 필수불가결한 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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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한 가운데에 남은 마지막 판자촌. 이질적인 단어의 조합에 끌려 답사로까지 이어진 발걸음이었지만, 오래도록 붉은 플랜카드가 펄럭이는 구룡마을 앞에서 서성였다. 결국 걸음을 옮긴 것은 구룡마을은 내 두 눈으로 목격하고 싶은 서울의 이면이었기 때문이다.


분당선이 가로지르는 강남 한 복판. 신식 주상복합 단지에서 횡단보도를 한 번 건넜을 뿐인데도 구룡마을은 단 번에 내게 끼쳐왔다. 철제 벽들을 붉게 그은 페인트 자국과 투쟁 중임을 명시하는 입간판과 배너들, 모서리가 떨어져 펄럭대는 벽보, 비에 곤죽이 되어 잔뜩 뭉쳐진 폐지 더미, 대충 묶인 채 리듬 없이 쌓인 쓰레기,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녹슨 고철들의 산을 주욱 지났다.

 

투쟁 상태를 여실히 보여주는 공고문들이 벽화처럼 늘어져 있었다. 트럭 뒤에 몸을 웅크린 남자 몇은 이방인을 낙인하는 눈으로 내 움직임을 짧게 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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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긴장이 오른 나는 걸음에 속도를 더했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왔지만 여전히 판자촌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기어가 닳아 무너지기 직전인 자전거 위에 앉아 평온하게 세수하는 고양이를 한참이고 응시했다. 마을의 오랜 터줏대감마냥 나에게 슬쩍 시선을 준 고양이는 유연하게 다리를 뻗더니 빠르게 사라졌다. 고양이가 사라진 길을 따라 나는 마을의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판자촌 안쪽까지 올라가는 동안 윙윙대는 파리 떼를 손으로 쫓아내며 정말 많은 생각을 떠올렸다. 모순적이게도 판자촌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강남을 대표하는 마천루들도 점점 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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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낮이라 그런지 마을 안쪽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마을은 키가 작은 나조차 허리를 굽혀야 할 정도로 좁고 낮은 판자집들이 줄지어 있었다. 여기저기 구멍난 벽을 천과 비닐로 막아두었고 일상적인 살림살이들이 좁은 마당을 가득 채웠다. 빨래들이 펄럭이는 등 누군가의 정겨운 삶의 흔적이 가득했다. 집마다 거주자를 표시하는 파란 이름표들이 붙어 있었고, 번지수를 표현한 듯 파란 스프레이 자국이 가득했다.

 

낯선 차림의 젊은 여자가 마을 안쪽을 걸어다는 것이 생경하셨는지, 할머니 한 분께서 말을 거시기도 했다. 얼마 후 나는 정처럼 내놓아진 플라스틱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주민과 짧게나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는 우연한 만큼 소중했다.

 

 

 

2. 구룡마을에서의 삶


 

주민분과의 대화를 통해 마을에 대한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1980년대 중반, 서울 구도심이 빠르게 재개발되면서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바로 도시 빈민들이다. 한국에서 방대한 양의 도시 빈민이 형성된 데에는 산업화의 영향이 크다. 이촌향도 현상으로 인해 1980년대 초반 서울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자연히 아무런 생활 기반도 없이 이주한 이들은 도시 빈민으로 전락했다. 인구 증가로 다양한 도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2012년, 서울시는 30년 가까이 무허가촌으로 방치됐던 구룡마을을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속도는 더뎠다. 사업이 빠르게 추진되지 않은 데에는 주민들과 서울시, 토지주, 그리고 강남구청 간의 개발 및 보상 방식에 대한 갈등이 주 요인으로 자리한다. 서로의 이해 관계가 너무나 달라 쉽사리 협의가 쉽게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구룡마을 곳곳에는 수도, 전기, 화장실 등도 없는 곳에서 기본적인 생활권을 위해 싸운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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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마을은 여전히 기초수급자, 노인, 빈자에게 매우 취약한 환경이라 느꼈다. 이 마을에 대해서는 크게 두 시선이 교차하는데, 첫째는 혐오 공간이라는 인식이다. 구룡 마을은 기본적인 위생시설이 갖춰있지 않은 곳이 많고, 오랜 시간 법적인 주민으로서 인정받지 못해 항상 마음에 불안을 안고 사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화재와 폭우, 산사태 등의 자연재해에 노출되어 있기도 하다.

 

또한 부촌 옆의 빈민가라는 인식 때문에 무작정 감성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내가 목격한 바로는 구룡 마을의 주민들은 우리와 다를 바 없이 일상을 영위해나가고 있었다. 함께 대화를 나눈 할머니는 아침에 일어나 밥을 해 먹고, 텃밭에서 밭일을 하고, 빨래와 설거지를 하고, 등산로를 산책하며 평범한 일상을 영위해나간다고 말씀하셨다. 주민 대표 단체가 분열해 갈등하는 상황에서도 주민들의 삶은 우리의 시간과 같이 빠르고도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3. 구룡마을에 서사를


 

나는 서사의 힘을 믿는다. 서사가 가진 힘이란 풀밭에 하릴없이 누운 앨리스를 벌떡 일으켜 토끼 굴로 떨어지게 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 머리로 받아들이기 전에 마음으로 스며드는 것들은 사람을 기꺼이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서사의 예술을 하겠다고 결심한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구룡마을을 다녀온 후 마을이 내제한 문제들을 다름 아닌 '문화 예술의 힘'으로 완화할 수 있지 않을까 느낀 것은 이러한 수순에서였다.

 

구룡마을 주민들과 이를 둘러싼 지역 갈등에 대해 조사하며 ‘관심의 부족’을 실감한 나는 이에 방점을 두고 고민했다. 그러다 ‘구룡’이라는 마을 이름에 대해 고민해보게 되었다. 홍콩의 구룡성채가 겹쳐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다 생각이 다른 쪽으로 튀었다. 구룡, 아홉 마리의 용. 실제 마을의 정경과는 다르게 말뿐만으로도 범상찮은 아우라가 느껴졌다.

 

정말 그 한자를 쓰는 게 맞을까 싶어 검색을 거듭했지만, 상세한 자료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다 매우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발견했다. ‘무용가 김윤진의 <구룡동 판타지-신화재건 프로젝트>’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서였다. 구룡마을에 필요한 것은 시와 주민들 간의 이해관계 조정뿐 아니라 '서사를 부여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자연히 일반인들의 관심이 증폭되고, 끝없이 장기화되는 문제에 다양한 사람들이 직접적인 도움이 될 것이란 믿음도 솟았다.

 

사람을 행동하게 만드는 서사의 힘에 승부를 걸어볼 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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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는 단선적으로 끝나긴 했지만, 도시 공동체 일원들 사이의 연대와 사랑을 일깨워주고 마을에 신화를 부여하는 아주 중대한 작업이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이 공연의 의의는 신화의 현대적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과학과 이성의 가치를 높이 사는 우리에게 신화란 그저 허무맹랑한 낭설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신화를 접할 때면 표면적인 내용뿐 아니라 그 기저에 담긴 일종의 ‘상징’을 파악하는 게 관건이란 생각이다.

 

구룡마을을 둘러싼 정치/경제적 싸움이 장기화되고 있는 지친 상황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두고 갈등하고 있는가에 대해 원초적인 물음을 던질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구룡마을 자체의 역사적 가치와 그 안에서 삶을 꾸려나가고 있는 사람들의 입김에 집중해야 할 때인 것이다.

 

이 마을에 서사를 부여하는 것은 산업자본주의 상황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해주며,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주는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 마을의 가치가 올라갈수록 우리는 돈이 아닌 인간을 목격하게 되지 않을까. 이것이 구룡마을을 둘러싼 지역 갈등 앞에서 고민해볼 만한 색다른 태도가 되지 않을까. 서사는 진정 사람을 움직이게 하니까 말이다.

 

 

[오송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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