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김송수를 소개합니다.

나무에게 이름 지어주기
글 입력 2024.04.30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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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 식물이 생겼다. 이 이야기를 하면 다들 예의상의 관심을 보이며 어떤 식물을 키우느냐 묻는데 그때 소나무라고 대답하면 이 예의상의 관심은 갑자기 진심 어린 궁금증으로 변한다. 궁금증보다도 더 정확한 표현은 황당함일지도 모르겠다.


정확히 말하면 소나무는 아니고, 소나무와 닮았고 어쩌다 보니 이름에도 소나무 송 자가 들어가는 침엽수의 한 종류인 금송이다. 그래도 대충 소나무라고 말할 때가 많은데, 당연히 산에서 보는 그 소나무가 아니다. 아니 그런 소나무인 건 맞지만, 하도 조그마해서 아직은 나무처럼 보이지도 않는, 그런 아기 금송이다.


풀도 아니고 꽃도 아니고 나무를 키울 생각이 내 머리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나무를 좋아하는 아빠가 금송 화분을 두 개 만들며 하나를 내게 입양 보낸 것뿐. 처음에는 무언갈 책임진다는 게 마음이 편치 않아 거절하려고 했는데 물만 가끔 주면 된다는 말에 데려왔다. 그렇게 지난달부터 내 자취방에 살게 된 나무 하나. 매번 홀로 다녀오던 본가인데 이번에는 이 작은 나무와 함께 기차를 타고 돌아오니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하지는 않았다. 그냥 손 하나가 무거웠을 뿐, 평소처럼 돌아왔다.


우리 집에 데려온 지 일주일이 되었을 때 엄마가 사진 한 장을 보냈다. 본가에 남아있던 금송의 사진이라 그 애와 우리 송수를 비교할 수 있었다. 두 나무 모두 민둥하던 머리 꼭대기에서 새 머리털이 자라려는 낌새를 보였다. 미묘하지만 송수가 더 잘 자라고 있었고 이건 아무래도 이름을 붙여준 효과라고 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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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결에 생긴 반려 식물이지만 이름은 주어야 예의다. 이름을 짓는 것은 어렵지 않다. 우리 집안의 성씨를 성으로 주고, 나와 같은 항렬의 돌림자를 마지막 자로 주고, 가운데 자는 개체로서 가질 수 있는 정체성을 준다. 이름을 주어야겠다 마음먹은 지 3초 만에 이 애의 이름은 김송수가 되었다. 송은 당연히 소나무 송(松). 우리 집에 오기로 한 순간부터 이 금송이 이름이 김송수(金松洙)가 될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너무 성의 없이 지었다고 슬퍼할 필요는 없다. 이게 내 집의 규칙이다. 내 집 안의 모든 생명체 또는 내가 그에 준하여 취급하는 것들은 모두 이름을 갖고 있다. 김개수(개 모양 인형), 김토수(토끼 모양 베개), 김여수(여우 모양 전등) 등이 있다. 이들과 비교하자면 송수는 한자로 이름을 통일해주는 정성이라도 보였으니 오히려 공을 많이 들여 지은 이름에 속할지도 모른다.


송수가 더 빨리 자라는 이유가 이름 덕이라는 말을 전해 들은 아빠도 이에 질세라 이름을 붙여주었는데, 김송수라는 이름을 내가 선점한 덕에 송수의 형제는 금송에서 송을 제외하고 남은 글자, ‘금’을 가져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송수의 형제는 김금수가 되었다. 김금수(金金洙). 아무리 금수의 한자가 그것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금수(禽獸)가 자꾸만 생각나는 이름이다. 짐승을 뜻하는 한자가 아니라는 걸 되새겨봐도 별로 위안은 되지 않을 것이다. 김과 금이 같은 한자니까. 아마 송수도 처음에 자기 이름에 불만을 품었다가도, 제 형제의 이름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나면 나에게 감사하겠지.


송수는 금수와 비교해서뿐만 아니라, 객관적으로도 빨리 자라는 것 같다. 어떤 날은 너무 빨리 자라서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본가에는 항상 식물이 많았지만, 한 번도 걔네가 더 컸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그래서 송수도 몇 년이 지나야 일 센티미터 크고, 또 한참 후에 일 센티미터 크고 그럴 줄 알았는데 지금 우리 집에 온 지 한 달 만에 내 손가락 두 마디 정도 자란 것이 눈에 보인다. 아기라 그런지 정말 콩나물처럼 자라는(금송에게 콩나물처럼 자란다고 하면 칭찬일까, 모욕일까? 혹시 금송이라는 정체성에 혼란을 주지는 않을까?) 김송수. 남의 집 애들은 빨리 큰다던데, 송수가 이렇게 빨리 크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내가 송수를 우리 집 애로 쳐주지 않고 남의 집 애 취급한다는 증거일까. 그렇게 생각하면 송수에게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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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으로는 네 살, 이 세상에 나온 지는 오 년 차, 내 집에 오고 이름을 얻은 지는 한 달 차인 김송수의 키는 내 손바닥 한 뼘가량이다. 그래서 자라는 화분도 한 손으로 달랑 들 수 있을 작은 크기인데, 곧 있으면 화분을 더 큰 것으로 바꿔줘야 할 것 같다. 그리고도 또 한참이 지나면 화분에 담기지 않을 만큼 크게 자랄 테다. 물론 내가 식물 학대를 하지 않고 잘 키웠을 때의 이야기지만 지금까지만 봐서는 꽤 관리를 잘 하는 듯해 만족스럽다.

 

김송수가 내가 생각하는 ‘나무’의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얼마나 걸릴까? 실은 그때가 오기도 전에 본가로 돌려보낼 확률이 더 높다. 내 자취방은 큰 나무를 감당할 공간도 흙도 없으니, 공간과 흙, 그리고 결정적으로 마당이 있는 본가에 가는 게 낫다. 하지만 아빠의 손으로 돌아가더라도 김송수는 그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유년 시절을 함께한 나를 잊지 않을 것이다. 은혜를 모르는 짐승이 아니라 나무 된 도리를 할 줄 아는 나무로 자란다면 마땅히 그럴 것이고, 그의 주 양육자인 나는 송수를 그런 나무로 키우기 위해 그의 목성교육(인성교육이 아닌 木성교육)에 최선을 다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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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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