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베르나르다 알바, 시대의 욕망이 빚어낸 아름다움 [공연]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의 색을 더 진하게
글 입력 2024.05.20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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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을 이용한 극강의 대비와 은유


 

「베르나르다 알바」의 대표적인 색은 단연 붉은 색이다. 이 작품에서 붉은 색은 베르나르다의 통제, 자유 억압, 권력 등을 상징한다. 주로 부정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이 색은 극 곳곳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작품에서는 이와 대조적인 색으로 ‘초록색’을 활용한다. 초록색은 자매 중 막내인 아델라의 드레스 색이기도 하며 동시에 자연 즉, 자유를 상징한다.

 

이 부분은 처음으로 아델라가 초록 드레스를 든 채 자신의 이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 그녀는 초록 드레스를 입고 언젠가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겠다고 말한다. 해당 장면에서는 무대에 올라와있는 모든 인물(아델라 포함)이 안토니오의 장례식으로 인해 검은 상복을 입고 있다. 그중에서 색을 가진 오브제는 아델라가 들고 있는 초록색 드레스밖에 없다. 아델라가 결혼과 자유를 외치며 문을 여는 순간, 문 너머는 온통 초록 빛깔뿐이다.


그렇기에 극 후반부, 아델라가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에서 나타나는 검붉은 색은 자유와 대비되며 그녀의 비극성이 더욱 강조된다. 아델라의 죽음을 은유적으로 나타내는 연출로 무대 상부에서 줄에 매달린 의자가 떨어진다. 이때 보랏빛 조명이 아델라 의자를 비춘다. 보라색은 자연에서 가장 보기 어려운 색이다. 이런 점에서 극 내내 자유를 외치던 아델라의 죽음이 보라색으로 표현된다는 것은 인간 내면의 본성(자유를 향한 갈망, 의지, 태초의 자연)과는 극단에 서 있으면서 동시에 인위적인 것(인간이 만들어낸 권력, 위계질서, 통제)에 잠식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또한 푸른색과 붉은색이 혼합된 보라는 자신이 갈망하던 자유와 베르나르다의 억압 사이 그 어느 것도 택하지 못한 채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아델라 그 자체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같은 상황에서 아델라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아델라에게 선택지라는 게 주어지지 않았는데 도대체 뭘 선택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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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색을 이용한 연출이 빈번하게 등장하면서 극 중 인물들이 겪고 있는 상황이나 심리상태가 꽤나 단적으로 드러나는데, 개인적으로 극의 톤앤매너와도 잘 맞아떨어진다고 느껴졌다. 그녀들은 안토니오의 상을 치르며 무려 8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밖에 나가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 설정은 그녀들의 억압된 욕망, 자유를 향한 갈망이 언제 표출되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다는 것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 당시 여성을 향한 사회적 차별과 편견이 얼마나 만연하였는지를 보여준다. 설정만 떼어놓고 본다면 충분히 극단적이라고 느낄 수 있으나, 이것이 그 시대 여성들의 진짜 삶이었기에 납득할 수 있었다. 이같은 배경과 단적으로 보여지는 여러 연출적 요소들은 서로 잘 어울렸다.


극 중에서 색을 입고 나오는 인물은 아델라뿐만이 아니다. 베르나르다의 어머니인 ‘마리아 호세파’ 역시 아델라와 마찬가지로 색을 지닌 인물로 나온다. 심지어 마리아 호세파는 가장 첫 장면인 프롤로그를 제외하면 항상 흰옷을 입고 등장한다. 호세파는 여든을 넘긴 나이임에도 힘이 장사인 캐릭터이며, 한 번 밖으로 나오면 온 집 안을 휘젓고 다니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베르나르다는 그런 호세파를 평상시에 집에 가두어 둔다. 그 이유인 즉슨, 이웃들이 그런 호세파의 모습을 보게 될까봐 두려워서. 그만큼 베르나르다는 이웃들의 시선을 신경쓰는 인물이다.


개인적으로 베르나르다의 어머니인 호세파가 아델라와 견줄 만큼 베르나르다의 위계에 저항한다는 설정이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극을 보며 베르나르다의 권력과 통제가 비가시적인 계승으로서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베르나르다의 어머니인 호세파는 어째서 흰옷을 입고 자유를 말하는 것일까. 비록 호세파는 베르나르다에 의해 방 안에 갇히게 되는 인물이긴 하나, 끊임없이 방을 탈출하여 집 안 곳곳을 누빈다. 그녀는 베르나르다가 유일하게 딸들이나 하녀들만큼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위치의 인물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호세파가 말하는 ‘자유’란, 시대의 권력과 위계질서 너머 절대적인 개념의 무언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는 호세파라는 인물 속에서 약간의 희망을 본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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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나는 아델라와 마리아 호세파가 단둘이 만나는 장면을 절대 잊을 수가 없다. 무대 위에는 흰 옷을 입은 두 여성만이 존재한다. 아델라와 호세파는 극 중 유일하게 직접적으로 자유를 말하는 인물들이다. 특히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시간 순서상 마을에서 결혼 전 임신한 처녀(마을 한 처녀가 결혼 전에 아이를 낳은 후 아이 시체를 땅에 묻었는데, 들개가 그 아이 시체를 물어다 처녀의 앞에 가져다둔 이야기. 남편은 누군지 아무도 모른다)의 장면 이전에 배치되어 그들의 연대감이 더욱 극대화되었다. 게다가 베르나르다 및 다른 딸, 하녀들이 아델라의 죽음을 눈치채기 직전에 그녀의 의자를 넘어뜨리는 인물 역시 호세파라는 점을 보아 아델라와 내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인물은 호세파라는 점이 더욱 뚜렷해진다.


그녀들 중 몇몇이 ‘결혼’을 갈망하는 것은 단순히 ‘자유’를 원하는 부분이라 말하기 어렵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녀들은 꾸준히 ‘결혼’에 대해 말하며 이 집에서의 탈출을 꿈꾸지만, 그와 동시에 딸들 중 한 명인 마르띠리오가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반부에 그녀 또한 뻬뻬를 사랑하고 있었음이 드러나며 극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극 내내 결혼을 거부하던 마르띠리오 마저 인간 본연의 감정인 사랑은 피할 수 없으며, 그 사랑으로 인해 아델라가 목숨을 잃게 된 결말은 시대의 비극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결국 마르띠리오를 포함한 모든 인물들은 시대가 만들어낸 피해자라는 점을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깊은 아이러니와 모순이 내제되어 있는 극이다. 가부장적이며 여성의 자유가 가벼운 것으로 치부되는 당시 시대상을 비판하면서도 인간의 내면을 입체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이 좋았다. 또한 자신이 원하는 자와 결혼하여 이 집을 탈출할 거라는 아델라가 ‘자유’를 상징한다는 점에 있어서(또한 극 중에서 가장 선명한 색인 초록색을 상징한다는 점에 있어서) 흥미로웠다.


폰시아는 왜 자꾸만 높은 곳으로 기어오르려고 하는 것인가

 

극을 보며 아델라만큼이나 흥미로웠던 인물은 바로 ’폰시아‘이다. 폰시아는 베르나르다 알바 집의 하녀 중 가장 나이가 많은 하녀장으로, 30년 간 그녀의 집에서 일해왔다. 베르나르다는 종종 그녀의 출신(정확히는 그녀의 어머니가 사창가 출신이라는 점)을 들먹이며 그녀를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극 중 폰시아의 솔로 넘버인 ‘삼십 년 내내‘는 그녀가 베르나르다의 집에서 삼십 년 동안 하녀일을 해 오며 그동안 마음 속에 쌓아둔 분노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때 폰시아는 베르나르다가 이전에 했던 행동을 모방한다. 의자를 끌며 무대 중앙을 걸어가던 베르나르다를 그대로 따라하는 폰시아의 모습은 꽤나 자신의 집주인을 닮아있다. 그러나 폰시아가 베르나르다를 상징하는 의자를 닦다 이내 그곳에 침을 뱉어버리는 행위엔 집주인을 향한 그녀의 증오가 여과없이 묻어난다. (‘침을 뱉는 행위’ 또한 극 후반부 아델라를 통해 이어진다)

 

이러한 폰시아의 감정은 과거 베르나르다가 안토니오를 향해 가졌던 증오와도 닮아있다. 나의 상상이긴 하나 죽은 안토니오의 억압이 안토니오 → 베르나르다 → 폰시아로 이어진다면, 폭력은 결국 되물림된다는 뜻이 아닐까. 본인이 안토니오에게 받은 폭력을 스스로 끊지 못하고 계속해서 이어나간다면, 결국 베르나르다 가문은 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물론 베르나르다 또한 시대의 피해자이긴 하나 그와 동시에 가해자이기도 하니까. 왜인지 확실히는 모르겠으나 극을 보며 만약 폰시아가 권력을 지닌 존재, 그러니까 ‘베르나르다처럼 나름 인정받는 집안에서 태어났더라면 베르나르다와 약간은 닮은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살펴보면 폰시아와 베르나르다가 서로 비슷한 구석이 꽤 존재한다. 왜 난 두 사람이 한 인물의 과거와 현재처럼 보일까.


가끔은 폰시아가 베르나르다보다 더 우위에 있는 존재로 느껴지기도 한다. 표면적으로 보았을 땐 베르나르다가 자신의 딸들을 전부 통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 모든 딸들은 그녀에게 감추고 있는 비밀이 한 가지씩 존재한다. 그리고 베르나르다가 알지 못하는 비밀을 폰시아는 전부 다 알고 있다. 베르나르다와 폰시아 두 사람 장면, 베르나르다의 대사 중 “나는 내 딸들의 운명을 다 알아.” 이런 말이 있는데, 이는 베르나르다 본인이 지식들의 위에 있고 그들의 운명을 본인이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그러나 딸들의 운명을 알고 있다는 베르나르다의 대사와는 달리 그녀는 딸들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게 거의 없다. 오히려 그녀의 딸들에 대해 더 잘 아는 자는 폰시아다. 이런 점에서 베르나르다가 지금껏 행해왔던 권력은 결국 허상일 뿐이며, 그들의 내면까지는 통제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심지어 ’나는 네 마음까지 다 읽을 수 있다‘는 폰시아의 대사는 운명을 알고 있다는 베르나르다의 이전 대사와 맥을 같이 하며, 두 사람 모두 자꾸만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초월적인 존재가 되려고 애쓰는 것처럼 느껴진다. 다른 관점에서 보았을 때 베르나르다의 우위에 있는 존재가 생각보다 많다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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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말이 마굿간에서 탈출한 장면, 수말이 발정났다는 말에 베르나르다는 수말을 풀고 암말을 마굿간에 가두라고 지시한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을 보면서 「에쿠우스」가 떠올랐다. 무대를 뒤덮은 시뻘건 조명까지도 「에쿠우스」의 하이라이트 장면을 연상케했다. 참으로 강렬했다. 「에쿠우스」처럼, 잠시 이 작품 속 암말을 ‘신’이라 여기고 신과 영접하는 장면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암말은 딸들과 마찬가지로 베르나르다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암말이 마굿간을 탈출하는 행위는 베르나르다 딸들의 억압된 자유가 표출됐음을 상징한다. 말이 한바탕 무대 위를 휩쓸고 간 후, 베르나르다의 딸들은 잠깐 동안의 욕망 해소를 만끽한다. 그 달콤함 또한 베르나르다로 인해 금방 사그라들긴 하지만.


이 장면을 처음 봤을 땐 베르나르다가 굉장히 오만하다고 느꼈다. 그녀는 마치 본인이 명령하는 그대로 세상이 돌아갈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두 번째로 이 작품을 관람했을 땐 그런 베르나르다가 나에겐 굉장히 무기력한 인물로 다가왔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베르나르다는 자신이 딸들의 앞날(운명)을 다 아는 것마냥 외쳐댄다. 운명은 그 누구도 알 수 없으며 혹여 알게 된다 하더라도 절대 바꿀 수 없는 것으로 통용되어 왔다. 그녀는 운명을 꿰뚫어볼 수 있는 신처럼 행동하면서도 자꾸만 신의 섭리를 어기려고 든다. 오만한 짓이다. 그녀는 자신의 목에 걸린 십자가 목걸이가 부끄럽지도 않은 것인지.


이 작품은 조명 연출만큼이나 음향 효과 또한 귀 기울여 들을 필요가 있다. 「베르나르다 알바」에서는 다양한 소리들이 마치 줄 꿰매지듯 연달아 등장한다. 관객들이 잊을 때쯤 소리에 대한 감각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이 극에서 등장하는 ’소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도구를 이용한 소리‘이고, 두 번째는 ’신체를 이용한 소리‘이다. 도구를 이용한 소리에는 캐스터네츠와 같은 악기를 사용한 경우와 악기가 아닌 도구를 악기로서로 활용한 경우가 있다. 신체를 이용한 소리에는 배우들이 직접 몸을 두드리며 내는 소리, 손바닥을 치는 소리, 발을 구르며 내는 소리, 입으로 내는 소리 등이 있다. 이중에서 나는 배우들이 본인의 신체를 직접 두드리며 내는 소리에 집중했다. 이러한 연주 방식은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데 그만큼 신선했다. 몸을 치는 행위는 단순히 소리를 내기 위한 수단뿐만이 아닌 극의 분위기를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역할도 수행한다. 작품에서는 현재 극의 진행을 알려주거나, 극 전개 중간에 끼어들어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는 ’서술자‘ 역할이 존재한다. 서술자는 특수한 창법을 이용하여 극을 이끌어가는데, 이런 서술자 역할을 각 인물들이 돌아가며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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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 작품에서 안무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공연의 주가 되는 무용 장르가 ‘풀라멩코’인데 아마 한국 사람들에게는 조금 낯선 장르일 수도 있겠다. 「베르나르다 알바」에서는 채현원 안무감독에 더해 이영자 ‘플라멩코 감독’이 따로 있을 정도로 플라멩코에 진심이다. 플라멩코는 무엇보다도 강렬한 힘과 에너지가 요구되는 장르이기에 더욱 반가웠다. 온전히 여성들로만 가득 채워진 무대, 그것도 플라멩코를 추는 배우들이라니! 홀릴 수밖에 없다.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는 필자가 굉장히 아끼는 작품이다. 빠른 시일 내에 새로운 시즌으로 돌아오길 바라며 글을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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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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