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디스토피아 속 선과 악의 딜레마 :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영화]

글 입력 2024.01.13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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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2023)를 본 적이 있다.


처음에는 가족들이 넷플릭스로 보던 것을 따라 본 것으로 시작하였다. 그랬기에 그 어떤 사전 정보도 없었다. 영화라는 사실조차도 자각하지 못하였다. 과거 아파트에 관한 영상들이 다큐멘터리처럼 펼쳐지는 것이 흥미로워 지켜보던 중, 갑자기 서울 시내의 지반이 울렁거리며 크게 파도를 치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꽤 충격적으로 다가온 첫인상이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재난 영화이지만, 우리가 그동안 봐온 일반적인 재난 영화와는 다소 결이 달랐다. 보통 재난 영화는 그 재난에 초점을 맞추어 웅장한 연출이 이어지는 블록버스터의 성격이 강한데, 오히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초반 대지진의 연출 외에 그 이후에 특별히 다루는 재난 상황은 없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재난 당시보다 그 이후의 상황, 그리고 그때의 사람들의 본능과 심리를 깊게 파고든다. 이 영화가 은근하게 강조하는 지점은 결국 대지진이라는 커다란 재해로 인해 사회의 시스템 자체가 완전히 무너졌다는 것이다. 화폐의 가치는 쓸모없어졌고, 지위와 명예도 소용없었다.

 

 
“지금 은행이 다 무너졌는데 무슨 대출이 중요하다 그러세요? (...) 솔직히 살인범이나 목사님이나 지금 똑같아 이제는. 위아래 없어요. 다 평등해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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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대지진 이후 유일하게 우뚝 서서 살아남은 황궁아파트라는 곳이 있었다. 이곳을 중심으로 다시 작은 사회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질서와 시스템을 새로 구축하였다. 이 시스템을 이끌 지도자(일명 ‘주민대표’)가 생겨나면서, 계급도 저절로 뒤따라올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굳이 만들지 않아도 되는 규칙과 체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점이 인간이 가지는 특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디스토피아 속에서도 유토피아를 찾으려 노력하는 점도 특징적이다. 아파트의 규칙을 설명하며 마치 아파트 광고처럼 주민들의 화목한 모습이 스쳐 지나가고, 식량을 얻은 이후 잔치를 열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모습이 현재의 풍경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재난 상황을 무조건 부정적 혹은 절망적으로 바라보던 기존 재난 영화들과는 다른 특징적인 점이었기에, 더 기괴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 불쾌한 기괴함은 주민들이 그 화목함을 위해 무엇을 해왔는지를 알기 때문일까? 아파트에 숨어 살던 외부인들을 내쫓고, 식량을 얻기 위해 그곳에 살던 사람을 폭행하였다. 비록 시스템을 새로 구축하긴 하였지만, 이미 거대한 사회의 시스템이 무너지고 생존조차도 쉽지 않은 재난 상황 속에서 결국 인간은 인간성을 포기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것은 대부분의 디스토피아 영화와 재난 영화가 지적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아무리 인간이라도 해도 결국 생명체인 이상 이들의 일차적 목적은 결국 ‘생존’에 있다. 그렇기에 인간은 본능적으로 ‘악’에 이끌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 ‘악’은 자신이 생존하기 위해 타인을 해치는 행위를 의미한다. 그러나 인간은 그나마 지성을 가진 동물로서 마땅한 책임을 지기 위해, 혹은 인간이 만들어낸 공동체를 평화롭게 유지하기 위해 ‘선’을 추구하고자 한다. 달리 말하자면, 인간을 ‘선’으로 이끄는 이유가 사라지면 결국 인간은 ‘악’을 택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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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도 분명 ‘선’을 추구하는 인물은 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는 ‘명화’(박보영)라는 인물이 대표적이다. 외부인들을 내쫓고 폭력적인 수단을 써가며 식량을 얻는 행위에 반대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명화’는 아파트 내에서도 배척되는 소수의 의견일 뿐만 아니라 영화 외적으로도 관객들의 많은 비판을 받는 인물이다.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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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는 또 ‘생존’이라는 키워드와 연결 지을 수밖에 없다. ‘민성’(박서준)의 예시를 들어보자. ‘민성’은 대지진 당시 트럭에 깔린 여성을 구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노력한 인물이다. 그러나 도로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결국 그도 여성을 포기하고 차 안으로 대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는 살아남았다. 결국 선을 추구하는 것도 살아있어야 가능한 일이고, 살기 위해서는 악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이 질문 앞에서는 아무리 선을 추구하려는 사람도 망설일 수밖에 없다. 외부인이 제 가족을 해치는 상황 속에서도 외부인에게 친절하게 대할 수 있는가? 이것은 ‘명화’에게도 동시에 던져진 질문이었고, 결국 ‘명화’는 남편인 ‘민성’을 지키기 위해 외부인을 공격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하하 호호 웃으며 화목하게 지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모두가 선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대부분은 악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것을 이기심이라고 일제히 매도하기에는 어려운 딜레마들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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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작중 ‘도균’(김도윤)의 처절한 외침을 한 번 들어보도록 하자.

 

 
“아무리 세상이 이 지랄이 났어도! 해도 되는 일이 있고! 하면 안 되는 일이 있고!”
 


그렇다. ‘명화’를 무조건 지지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황궁아파트 주민들을 무조건 옹호할 수도 없다. 외부인들이 부리나케 도망치는 모습을 보고 ‘바퀴벌레’라 부르며 조롱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인가? 그리고 이 ‘바퀴벌레’를 숨겨주었던 주민들을 색출해내 ‘방역’하고, 그 집 문에는 빨간 페인트칠을 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인가? 나는 이 페인트칠을 보고 과거 나치가 유대인을 구분하기 위해 집 문에 ‘다윗의 별’을 그리던 때를 연상하였다.


그리고 악을 선택한 사람들도 ‘모두가 선을 추구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 문제였다. 본인들이 쫓아낸 외부인들이 그저 수긍하며 조용히 떠나갈 사람들인가? 그들도 생존을 위해서 다시 반격을 준비했을 것이라는 점을 주민들은 예상하지 못하였다. 결국 그들의 악이 쌓이고 쌓이며 거대한 스노우볼이 만들어져 황궁아파트로 돌진하였다. 악으로 뭉친 집단은 결코 평화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반대로, ‘명화’가 황궁아파트를 떠나 도착한 다른 아파트의 주민들은 달랐다. 오히려 외부인인 ‘명화’에게 식량과 주거 공간을 제공하였다. 하지만 그들도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점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즉, 선을 추구한다고 해서 결코 생존에 약하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마지막 장면을 통해 선한 마음가짐으로도 충분히 생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암시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근래 본 국내 영화 중 가장 흥미롭게 본 영화였다. 몇몇 장면의 연출은 감탄이 나올 정도였고, 무엇보다 아파트 커뮤니티의 형성은커녕 이웃의 얼굴조차 익숙하지 않은 요즘 상황 속에서 아파트 주민들을 중심으로 똘똘 뭉치는 모습을 보여주는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한 번쯤은 꼭 보기를 추천한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고 나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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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성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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