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카프카 - 카프카의 마지막 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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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와 나의 만남은 6년 전에 수강한 한 교양 수업에서 이뤄졌다. 판타지 문학을 공부하는 수업이었는데, 그 수업을 통해 여러 고전 문학을 접했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단연 카프카의 <변신>이었다.
강의 이름에 ‘판타지’가 들어가지만, 인간이 갑충으로 변했다는 설정 말고는 지독하리만치 현실적인 소설이었다. 하루아침에 벌레로 변했는데도 출근을 걱정하는 주인공, 가장의 기능을 박탈한 구성원에게 매몰찬 가족들까지, 극적인 장치 하나 없이 우중충한 기운만 머금던 그 소설이 왜 그렇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 이후로 카프카는 나에게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카프카’라는 매력적인 어감의 이름도 그렇고, <변신>의 모티프가 실제로 본인의 가정 환경이었다는 점도, 생전엔 이름을 떨치지 못했으나 죽고 나서 유언으로 친구에게 태워달라고 부탁한 원고가 출간되어 세계적인 명성을 떨쳤다는 점도 모두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그 뒤로 지금까지 <변신> 외에 읽은 카프카 소설이 한 편도 없다는 것이다. 작년 <소송>을 읽으려고 시도했으나 흡입력 있는 초반부 전개에 매료되었음에도 바쁘다는 핑계로 거의 읽지 못한 채 도서관에 반납했다. 몇 달 전에는 호기롭게 카프카의 단편집을 구매했으나 그 책 역시 지금까지 책장에 꽂힌 채 바깥세상을 보지 못하고 있다.
<변신>의 여파가 너무 강한 탓인지, 관심은 가지만 선뜻 도전할 엄두가 나지 않는 작가. 카프카는 내게 그런 소설가였다. 그러던 내게 카프카적임에 뛰어들지 않고도 카프카를 자세히 알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그게 바로 이 책 <카프카의 마지막 소송>이다.
소송을 다루는 영리하고 사려 깊은 묘사
<카프카의 마지막 소송>은 카프카 원고를 둘러싸고 2016년까지 이어졌던 지난한 소송의 과정을 담은 논픽션이다. 카프카의 원고를 넘겨받은 친구 막스 브로트는 원고를 태워달라는 유언을 무시하고 출간하며 카프카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자신의 비서에게 카프카의 원고를 넘기고 사망했는데, 이후 이스라엘 국립도서관이 비서의 가족들, 호페 가(家)에 원고 반환을 요청하는 소송을 건 것이다. 점점 소송은 이스라엘, 독일 양국 간의 경쟁으로도 이어지며 수많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게 된다.
저자 베냐민 발린트는 그 복잡한 소송의 전모를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않고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풀어낸다. 몇십 년에 걸친 지난한 소송을 파악하려면 쓰는 작가는 물론이고 읽는 독자도 피로감이 상당할 텐데 베냐민 발린트는 영리하게 카프카가 글을 쓰고 사망한 20세기 초의 시간대와 소송이 진행되는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반의 두 가지 시간대를 교차로 서술하며 독자로 하여금 흥미의 끈을 놓지 않도록 한다.
교차 서술은 재미를 유지하는 역할만 하지 않는다. 이 소송의 주인공은 단연 카프카다. 소송의 쟁점이 되는 원고는 단순한 종이 뭉치가 아닌 카프카가 남긴 삶의 기록이다. 저자는 이 소송을 소모적인 싸움으로 소비되지 않게 카프카 자체가 어떤 사람인지, 그의 원고가 많은 이에게 왜 이렇게까지 막대한 영향을 행사하는지 설득력 있게 서술한다. 카프카의 생애, 막스 브로트와의 우정, 유대교와 시온주의자와의 관계, 독일어와 히브리어의 의미 등 카프카에 대한 중요한 정보가 제공되면서 덕분에 독자가 소송을 납작하게 인식하지 않도록 한다.
이 책을 읽으며 제일 좋았던 건 모든 인물이 입체적으로 묘사된다는 점이었다. 소송은 이해관계가 상반된 양측이 싸우는 것이고, 필연적으로 어느 한 편을 응원하게 마련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누가 적법한 상속자인지 감히 확신할 수 없었다. 300쪽이 훌쩍 넘는 긴 분량을 소화하면서도 카프카의 원고가 특정 누군가의 것이라는 생각이 단 한 번도 들지 않았다.
카프카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
최종 판결이 내려지는 마지막 챕터와 에필로그에서 이 소송에 대한 저자의 견해가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저자의 태도는 철저히 ‘중립’이다. 저자의 중립적인 시선은 어느 쪽이 이기든 피해 보지 않겠다는 의도에서 비롯된 방관이 아니다. 소송을 옆에서 오랫동안 지켜보고, 치열하게 조사하며 심사숙고한 끝에 내린 결론이다.
본 소송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유욕이 약했던 남자가 남긴 예술 유산을 소유하려고 하는 자들의 정체를 폭로했다.
p.313
<카프카의 마지막 소송>은 적법한 상속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리지 않고 계속해서 질문만 던진다. 카프카는 독일 작가인가, 유대인 작가인가? 친구의 유언을 어긴 막스 브로트는 적법한 상속자인가? 유명인의 원고는 꼭 국가 기관에 기증해야 하는가? 가장 핵심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예술은 소유할 수 있는가?’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억울하게 소송당한 요제프 K의 이야기를 다룬 카프카의 소설 <소송>처럼 이 소송 역시 부조리하다. 진짜 주인인 카프카는 자신의 원고가 어떤 가치를 지녔는지도 모르고 일찍이 사망했다. 카프카는 독일어 사용자로서도, 유대인으로서도 자의식을 드러낸 적이 없는데 카프카를 이루는 수많은 요소 중 하나에 불과한 ‘독일어’와 ‘유대인’은 독일과 이스라엘의 명분으로 기능한다.
진정한 소유는 무엇인가? 소장하고 있으면 소유인가? 그 종이를 소장했다고 해서 카프카의 정신을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는가? 카프카는 애초에 타인에게 자신의 정신을 이어줄 생각 따위 전혀 없는데 말이다.
카프카 소설의 핵심은 ‘무기력’이다. 그의 소설 주인공들은 억울하게 폭력을 당하고, 이에 순응한다. 이는 아버지로부터 심각한 정서적 학대를 입은 카프카의 삶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기력한 인물로만 그의 소설은 역설적으로 그가 세상을 향해 저항하는 수단이었다.
카프카가 남긴 유명한 명언,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가 되어야 한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처음 이 명언을 접했을 때 우울하고 무력한 기운을 내뿜는 소설의 작가가 이런 역동적인 말을 했다는 게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카프카의 마지막 소송>을 다 읽은 지금은 그다지 신기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일기를 살펴보면 카프카에게 글은 부와 명예의 수단이 아닌 지긋지긋한 인생을 버티기 위한 생존 수단이었다. 지독한 자기혐오로 가득한 카프카의 글은 그가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게 도와주었다.
복잡한 소송에 휘말린 카프카의 원고는 무기력한 그의 소설 주인공을 닮았다. 결국 지지부진한 소송도 최종 판결이 내려졌다. 그러나 저자는 이 소송이 끝이 아니라고 말한다.
언젠가 카프카는 이렇게 썼다. “우리는 시간이라는 개념 덕분에 그것을 ‘최후의 심판’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것이 실제로 가리키는 것은 끝나지 않는 즉결심판이다.” 예루살렘 판사들은 판결을 내렸을지 몰라도, 카프카가 남긴 유산을 둘러싼 상징적 소송은 아직 진행 중이다.
p.314
그 자신이 한 말처럼 카프카의 책은 무수히 많은 이에게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가 되었다. 카프카의 원고가 누구의 것이냐는 질문은 무의미하다. 카프카라는 유일무이한 작가는 그 어디에도 소속된 적이 없다. 최종 판결에 따라 어느 한 측에 귀속된 카프카의 원고도 누군가의 소유물이 아닌 ‘카프카’라는 존재의 상징으로만 남을 것이다.
[진금미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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