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들이 시민의 광장에서 그들의 춤을 출 수 있게 해주시오 - 출입국사무소의 오이디푸스

글 입력 2024.04.29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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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극 '콜로누스의 오이디푸스'는 디아스포라의 원형적인 모티브로 흔히 소개된다.

 

디아스포라는 흔히들 자신의 고향을 떠나 떠도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하지만 실제 디아스포라의 스펙트럼은 상당히 넓다. 디아스포라라고 하면 흔히들 전쟁과 고난을 피한 이주민을 생각하지만, 경제적 상황 때문인 이주, 1세대의 자식들인 2, 3세대도 크고 작게 디아스포라의 정신을 지니고 있다.

 

내 생각엔 그것을 명확하게 규정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디아스포라란 기본적으로 고정되지 않은 민족적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개인의 다양한 반응과 관련된 것이다. 상처받은 조국, 나에게 상처를 준 고향, 경제적 어려움, 떠돌았던 부모에서 비롯된 것이건,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스스럼없이 자신이 이곳에 속한다고 쓰지 못하는 이들이다.

 

한국에서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흔하지 않았다. 사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부분은 상당히 기묘하다. 우리나라에는 다양한 이유로 이주할만한 이들이 많았다. 재일 조선인, 고려인, 파견 광부와 간호사, 우리는 이들의 이야기를 낭만적이지만 흐릿하게 전달받았다. 국제적 정세의 충돌과 침묵과 억압을 강요받았던 아픈 역사 탓일까, 아니면 단일민족이나 한민족의 급격한 경제발달의 물살 속에서 이들은 잊혀야 했던 걸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오늘날까지 이들의 이야기는 혐오의 그릇으로만 담기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디아스포라를 중심 소재로 한 책들이 발간되고 관련된 주제의 연극이 올라오는 것은 진심으로 반길만한 일이다. 오늘 리뷰할 '출입국사무소의 오이디푸스' 역시 '콜로누스의 오이디푸스'의 서사를 현대적인 이민 문제와 엮은 연극이다.

 

디아스포라를 다루는 작품의 가치는, 콜로누스의 오이디푸스에서 묘사되는 아테네를 위한 축복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 희극에는 생각하는 이상적인 시민 국가 상이 담겨 있다. 아테네는 자신 스스로도 알 수 없었던 가장 끔찍한 죄를 저지른 망명자 오이디푸스를 쉴 수 있게 해준다. 신탁과 같은 운명의 급살에 지친 오이디푸스를 기꺼이 수용하는 신성한 땅 콜로누스는 희극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지금 이곳, 여기에서 받아들여질 때 망명자의 몸을 품은 땅은 비로소 축복받을 것이다.

 

연극 '출입국사무소의 오이디푸스'는 다양한 디아스포라의 목소리들을 병렬적으로 배치한 후, 중간마다 오이디푸스 이야기를 넣는 식으로 전개된다. 오이디푸스, 코러스, 안티고네의 역할은 돌아가면서 맡는다.

 

연극에는 불법 이민자, 외국인 노동자, 국제결혼, 정치적 분쟁이나 전쟁 피해로 인한 도피 망명자 등이 소개된다. 망명자에 대한 주제를 다루는 연극답게 배우는 다양한 인종을 가진 사람으로 배치되었다. 이 작품의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작품에서 결코 민족성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작품의 자막, 대사, 소품은 기본적으로 한국어를 중심으로 묘사되지만, 이곳이 한국이라는 점은 결코 드러나지 않고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도 묘사하지 않는다.

 

이들이 어디서 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이토록 묘사되지 않지만, 망명한 이후의 이야기는 자세히 묘사된다. 무심한 출입국 사무소 직원들과 턱없이 부족한 인식,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는 행정적, 사회적 차별은 비극적인 영웅 오이디푸스뿐만 아니라 이들이 숨을 헐떡이는 '들개'와 극적으로 동일시 됨으로써 극적으로 묘사된다.

 

이러한 연극의 잊혀야 했던 걸까, 나는 관람객으로서 '망명자의 삶'을 가까운 공감하는 반면, 이들이 정말로 이곳에 존재하는가에 대해서는 모호한 감상을 받게 되었다. 사실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 좀 더 묘사되었으면 하기도 했다. 망명 된 자들의 목소리를 되살리는 잊혀야 했던 걸까 국가라는 경계마저 넘어서 좀 더 넓은 스펙트럼의 이야기를 담으려는 의도에는 공감하지만, 이것이 이곳의 이야기인가에 대해선 모호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건방지게 그들의 정체성을 한국의 정체성에 동화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다. 나는 디아스포라의 목소리가 구체적인 개개인의 이야기를 통해서 전달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정말로 살고 싶은 이상적인 콜로누스는,연극에서 묘사된 것처럼 너무나 피상적이어서 가사가 우스꽝스럽게 느껴지는 국가의 노랫 소리가 아니라, 운명의 죄를 지은 이들을 시민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성숙한 시민의 국가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명의 오이디푸스가 온몸으로 뛰며 춤을 추는 장면은 고전적이긴 해도 깊은 인상으로 다가왔다. 이 작품에서 담아내지 못한 수많은 디아스포라의 목소리들을 그 장면에서 말이 아닌 몸짓으로, 대사가 아닌 표정으로 담아내는 것 같았다. 나는 정말로, 그런 춤을 도시의 광장에서 출 수 있는 시민의 도시에 사는 것을 원한다. 솔직히 이 연극은 간혹 너무 거창한 목소리로 들려도, 그래서 참 너무나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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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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