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깊이 없음의 깊이

글 입력 2021.12.27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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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이보다는 깊이에 가치를 두어야 한다고 믿어왔다.

 

나는 분명 깊이에 대한 개념도 없이 하향에만 집착해온 사람이다. 표면의 매개를 망각하고 바로 깊이로 뛰어들기만을 욕망해온 사람이다. 작품 수용자로서의 나는 항상 거짓된 껍데기를 효과적으로 벗겨내고 창작자가 뚫어둔 두더지 굴을 성실히 타고 내려가야 하는 의무를 진 입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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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에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만 모든 감각을 열어야 하는 전시 공간에서도 나는 벽 한 구석을 채운 텍스트에만 몰두하고, 도슨트의 설명에만 침잠했으며, 작품의 표면을 받아들이기 보다 항상 그 이면에 창작자가 숨겨두었을 게 분명한 ‘어떠한 깊이’를 찾으려고 애썼다. 당연히 창작자로서의 내 정체성도 수용자가 내가 지정한 정확한 지점을 찾아 정확히 파내리는지를 관찰하는 것에 있었다. 나는 수용자의 눈이 아닌 눈빛에, 손발이 아닌 손짓과 발짓이 그린 궤도에, 입이 아닌 그것을 타고 나온 말들에 집착하고 멋대로 해석했다. 집에 도착하면 정작 남는 것은 현존하던 이미지가 아닌 그 위에 임의로 덧댄 텍스트들뿐이었다.


내 이름은 실제 사전에 등제된 소나무 숲이란 뜻의 ‘송림(松林)’을 그대로 사용한다. 한자를 풀이하면 이름의 뜻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부분의 경우와 다르게, 내 이름은 한 겹의 은유로 둘러싸여 있다. 이름을 지어주신 엄마는 흔히들 소나무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에 구애받지 말고 네 이름이 가진 의미와 깊이를 확장시키며 살라고 하셨다. 인생의 순간들마다 소나무 숲이 지닌 또 다른 가능성들을 찾아가라고. 깊이 내려가는 일이 나에게 태초에 부여된 과제라는 것을, 핑계 같지만 나에게는 하나의 숙명처럼까지 느껴진다는 것을 이렇게나마 설명해본다.

 

어쨌거나 그렇기에 세상의 모든 것은 깊이를 가져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나에게 실망하게 될 것이다. 내가 표층만으로 이뤄진 사람이라니, 살 가치가 없군!

 

*


어느 날 간만에 만난 김과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는데, 그가 자신이 요즘 웹소설에 푹 빠져있다고 전했다. 개중 몇 개를 추천해주길래 한번 읽어보겠다는 의례적인 말로 넘어가려는데, 김은 자신의 모바일 책장에 전시된 웹소설 하나를 열어 나에게 내밀었다. 책을 좋아하는 너니까, 지금 한번 간을 보지 않겠냐는 것이다. 나를 고립시키는 독서가 익숙한 나에게 일요일 오후 역전에 위치한 소란한 카페는 적당한 공간이 아니었다. 그러나 권유에 못 이겨 몇 자 읽어보았다.

 

고루한 묘사 위주인 건 물론이요 스토리 진행을 설명하기에 급급한 짧은 호흡의 문장들이 썩 눈에 차지 않았다. 제목들도 죄다 길고 괴상했다. 양으로 승부를 보는 웹소설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제목에 기본적인 스토리와 인물 설명을 밝혀야만 하기에 이렇게 웃긴 제목들이 생겨나곤 한다는 김의 설명이 따라왔다. 가볍다, 가벼워. 깊이를 팔 지점이 전혀 보이지 않잖아. 나는 당황스러웠다. 로맨스 판타지 세계관에서 대영주나 후작의 영애로 환생하는 여자의 자극만 난무하는 연애담에서 나는 무슨 깊이를 봐야 하고, 또 볼 수 있는가.


그러나 나는 가벼움과 얕음이 승리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걸 수없이 실감한다. 일명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를 사는 이들에게 시간과 물질을 아끼는 일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 또래들은 영화를 2배속으로 관람, 아니, 훑어보고, 1분이 채 안 되는 숏폼이나 스낵 콘텐츠들에 열광하며, 완결된 드라마나 예능보다는 짧은 편집본을 시청하길 즐기고, 하나 하나 문장의 속살을 까보아야 하는 독서보다는 짧고 사실적인 묘사 위주의 가벼운 소설을 택한다. 깊이를 찾기도 전에 또 다른 콘텐츠로 삶을 채우고 또 채우는 것이다. 그러나 이 '깊이 없음'이 정녕 '가치 없음'과 이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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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전자신문

 

 

대중문화 평론가 버지니아 헤퍼넌은 미국에서의 케이팝과 틱톡의 유행은 젊은 세대의 ‘가벼움에 대한 갈망’을 반영한다고 말했다. 정치 사회적 갈등이 끊이질 않는 상황 속에서 아이들은 어른들이 부재한 틱톡 월드에서 댄스 챌린지를 이어가고 노래하고 춤추는 재미를 발견했다. 그리고 당분간 이 세상을 떠날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하나의 콘텐츠를 감상할 때 모든 환경을 완벽히 정비해야만 하며, 그것을 수용하고 반추하는 과정이 느린 나로서는 또래들의 콘텐츠 소비 속도를 따라가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러나 MZ 세대는 스스로를 ‘잘 소비하는 인간’으로 정의하고 엄숙함보다는 유머를 추구한다. 자꾸만 넓고 얕아지는 그들의 세계에서 (또 어쩔 수 없는 내 버릇에 따라) 이유와 의미를 찾아보자면, 나는 그들이 ‘깊이 없음의 문화’를 통해 완벽한 유토피아를 기다리는 것이 아닌, 지금 여기 현재에 끝없이 작고 짧은 유토피아들을 만들어간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일명 ‘얕음의 혁명’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서 결국 수도사들을 죽인 금서는 그 어떤 엄숙한 텍스트들도 아닌 말하자면 ‘깔깔유머집’ 한 권이었다. 이처럼 우리를 무겁게 짓누르는 삶을 되려 조롱하고 걷어낼 수 있는 방법은 그저 빠르게 웃고 노래하고 춤추는 것이다. 기술에 대한 적응이 뛰어난 MZ세대는 이를 다양한 형식의 콘텐츠로 직조해 빠르게 공유해나가는 법을 안다. 이들은 그저 얕음에서 머물지 않고 얕음을 공유할 줄 아는 것이다. 그렇기에 얕은 대신 넓어진다. 깊이 대신 넓이의 가치를 알아간다.


김에게 그가 좋아하는 웹소설들에 대해 들으며 나는 얕음에 대한 선호가 반드시 얕게 사는 삶과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느꼈다. 진로 문제로 한동안 우울감에 빠져 있었던 김의 손을 잡고 그림자 밖으로 이끈 것은 화려한 프릴 드레스를 늘어뜨린 판타지 세계의 영애들이었기 때문이다. 경제적 곤란, 불안정한 미래, 인간 관계의 복잡함, 건강에 대한 걱정, 우리의 삶을 둘러싼 모든 문제들이 깊고 무겁다. 어쩌면 이러한 것들이 야기한 불안을 달래기 위해 얕음의 가치가 뻗어나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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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캐릿

 

 

내 또래들은 일명 ‘갓생 살기’에 몰두해 있는 세대이다. 얕게 살기를 꿈꾸는 듯 하면서도 필시 그에 대한 불안을 갖고 있고, 차마 행하지 못할 때도 많다. 그 과정에서 얕은 문화 콘텐츠들은 갓생에 대한 이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대안 세계를 상상할 수 있는 쉼터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콘텐츠 시장의 유목민이 되어 얕은 일상에서도 얕은 의미들을 주우며 사는 법을 익히고, 현실에서 잠깐 물러나 충전하고 금세 삶의 현장으로 돌아오는 법을 배운다.

 

케케묵은 깊이 찾기에 집착해온 나지만 얕음에 대해 반추하다 보면 실은 모든 문명이 얕아 빠진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품게 된다. 당시에는 얕았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다음 세대에 의해 발견되고, 명명되고, 상상세계 속에서 구체화되면서 점차 공허한 깊이들을 만들어온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으로까지 나아간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얕은 문화들도 후대에는 어떠한 의미를 입고 두꺼워질지 모르는 일이다. 그리 생각하니 현재 내 앞에 펼쳐진 수많은 얕음들이 벌써부터 아쉬워진다. 나 역시 표면을 훑을 수 있는 가벼운 눈을 되찾아 넓이를 관조하는 법을 배워야 할 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생각보다도 그리 입체적이거나 깊지 않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얕음이 악이 아니듯이, 깊이도 선이 아니라는 것을 매순간 깨닫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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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송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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