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문 이머시브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

글 입력 2024.04.30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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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 속 탄생한 그레이트 코멧


 

이머시브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의 원작은 『전쟁과 평화』로, 19세기 러시아를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사상가인 레프 톨스토이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소설이다. 이 책은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침입을 중심으로 1805년부터 1820년까지 15년 동안의 러시아 역사와 그 당시 사회를 보여준다. 레프 톨스토이는 작품에 등장하는 총 559명의 인물을 통해 삶과 죽음, 사랑과 증오 등 인간의 감정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의 작곡·작사·극본을 맡은 데이브 말로이는 『전쟁과 평화』 2권 5장에 있는 70페이지 분량에서 영감을 얻어 피에르와 나타샤가 시련 끝에 삶의 전환점을 맞이하는 순간을 무대에 담았다. 2012년 뉴욕 오프 브로드웨이의 ‘아스 노바’ 극장에서 첫선을 보인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은 2021년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한국 초연을 올렸다. 작품을 상징하는 짙은 붉은색과 화려한 금색이 어우러진 유니버설아트센터는 러시아의 무도회장 분위기를 잘 살렸다고 평가받기도 했다.

 

1812년 모스크바의 오페라 극장을 화려하게 구현한 무대와 팝, 일렉트로닉, 클래식, 록, 힙합 등 다 장르의 음악을 선사한 성스루(Sung-Through)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은 제6회 한국뮤지컬어워즈의 총 5개 부문(프로듀서상, 안무상, 무대디자인상, 조명디자인상, 앙상블상)에서 상을 거머쥐었다.

*성스루(Sung-Through): 작품의 시작부터 끝까지 대사 없이 노래로만 이루어진 뮤지컬.

 

올해 6월까지 상연되는 이번 재연에서는 초연 당시 코로나 19로 축소된 이머시브 요소를 강화하며 관객과 배우와의 물리적 거리감을 좁혔다. 그 덕분인지 온 무대를 종횡무진하는 배우들에 공연 시작 전부터 끝날 때까지 연이어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본 적 없던 이머시브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은 어떤 작품인지 개인적인 후기를 곁들여 소개해보려고 한다.

  

 

시놉시스

 

1812년 모스크바 나폴레옹의 침공으로 도시가 불길에 휩싸이기 직전. 러시아 백작의 서자 피에르는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지만, 삶에 대한 회의감으로 술과 사색에 잠겨 무기력한 나날을 보낸다. 한편, 젊고 아름다운 여인 나타샤는 전쟁터에 나간 약혼자 안드레이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그와 재회하기 위해 모스크바에 도착한다.

 

그리움이 깊어져 가던 어느 날, 나타샤는 매력적인 젊은 군인 아나톨을 만나고 그의 유혹에 점차 빠져들게 된다. 한순간의 끌림에 사로잡힌 나타샤가 아나톨과 함께 도주하려던 그때, 이들의 무모한 계획이 발각되면서 수포로 돌아가고 나타샤는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모두 잃을 처지에 놓인다. 안드레이의 친구이자 나타샤 일가의 오랜 지인인 피에르는 절망에 빠진 나타샤를 찾아간다. 그는 삶의 의미를 모두 잃은 나타샤에게 깊은 연민을 느끼고, 그녀의 유일한 희망이 되어준다.

 

밤하늘 위로 1812년의 위대한 혜성이 가로지르고, 피에르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끼며, 이제 나아간다. 새로운 삶을 향해.


 

 

19세기 러시아 무도회장과 이머시브 뮤지컬의 만남


 

먼저 이머시브 뮤지컬이란 “관객이 수동적으로 바라보는 것에서 벗어나 직접 참여하는 형태의 공연”을 말한다. 다시 말해 객석과 무대 경계(또는 배우와 관객)를 허물고, 관객에게 특정 역할을 맡아 연기하게 하는 등의 관객 몰입형 또는 관객 참여형 공연을 일컫는다.

 

그런 의미에서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은 상당히 잘 만든 이머시브 뮤지컬이라고 볼 수 있다. 호화로운 19세기 러시아 무도회장이 떠오르는 작품은 7개의 원형 무대를 둘러싼 코멧석과 1층, 발코니층, 2층 객석 모두를 아우르며 온 사방에 있는 관객들이 극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끈다. 전 배우가 박수와 함성을 유도할 뿐만 아니라 하이파이브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춤을 추는 등 관객을 극 속으로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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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만 아니라 박수나 함성을 통해 넘버를 함께 창조해간다. 음악감독의 지휘하에 배우와 관객이 하나 되어 러시아 음악을 우리만의 박자와 소리로 표현한다. 또한, 무대 바로 앞의 F석에 앉은 관객들은 작품에도 일부 참여하며 사랑 고백을 받기도 하고, 애정 깃든 편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만약 에그쉐이커 MD를 구매한 관객의 경우, 특정 장면에서 배우들과 함께 에그쉐이커를 흔드는 퍼포먼스를 취할 수도 있다.

 

아무리 소극적인 관객이라 하더라도 코멧석에서는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바로 코앞에 있는 배우들이 눈을 마주하고, 같이 따라 부르자며 손짓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배우들이 틈만 나면 원형 무대 밖으로 뛰쳐나가기에 다른 구역에 앉은 사람이라도 넋 놓고 공연을 관람하기는 어렵다. 이처럼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은 요즘 문제 되는 ‘시체 관극’ 문화를 뒤엎는 공연이기에 더욱 편한 자세로 즐겁게 관람할 수 있었다.

*시체 관극: 시체처럼 아무런 반응이나 움직임 없이 공연을 관람하는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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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와 관객이 함께 호흡하는 뮤지컬


 

원래 1,000쪽이 넘는 『전쟁과 평화』 중 70페이지 정도의 짧은 분량을 뮤지컬로 녹여내다 보니 스토리를 이해하고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가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1막에서는 무슨 내용인지 해석하느라 정신이 없다 보니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결국, 2막에서는 각 인물에 대한 이해를 포기하고 “러시아식 막장 드라마구나”라며 타협한 채 배우들이 이끄는 대로 몸을 맡겼다. 기존의 라이선스 뮤지컬과 비교해서 스토리와 넘버가 약한 편으로, 관객들에게 특정한 메시지를 남기는 극은 아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머시브 뮤지컬 장르이기에 어떤 장면이라도 관객이 개입할 수 있는 가벼운 스토리와 넘버로 구성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가사 또한 굉장히 친절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설명하는 아이엠송(I am Song)인 ‘프롤로그’로 다양한 등장인물을 소개하는데, “나타샤는 어려”, “소냐는 착해”, “아나톨은 핫해”, “엘렌은 헤퍼” 등 각 인물의 성격을 대변하는 직관적인 표현이 돋보였다.

 

일명 ‘일렉트로 팝 오페라’라고 불리는 신나고 독특한 장르의 넘버는 배우와 관객이 함께 호흡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아직 러시아 음악과 타 장르의 조화는 낯설고 생경했지만, 이를 상쇄하는 배우들의 열연과 활기 넘치는 관객 분위기에 차차 적응할 수 있었다. 


피에르의 ‘The Great Comet of 1812’, 나타샤의 ‘No One Else’, 엘렌의 ‘Charming’, 소냐의 ‘Sonya Alone’처럼 긴 호흡의 솔로 넘버는 배우의 성량과 고음으로 무대를 압도하면서 탄성을 자아냈다. 그리고 ‘The Ball’, ’Balaga’, ‘The Abduction’처럼 다 같이 뛰면서 춤추고 노래하는 넘버로 관객들의 흥을 돋우며 심심할 틈조차 없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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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배우들의 악기연주다. 그들은 아코디언, 피아노, 바이올린 등 연주와 연기를 함께 소화하는 ‘액터 뮤지션’이 되어 유니버설아트센터를 빈틈없이 채운다. 따라서 배우의 기량과 컨디션이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그들의 역할이 막중하다 보니 그날의 캐스트에 따라서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 나는 김주택 피에르-이지수 나타샤-고은성 아나톨-김수연 소냐-홍륜희 엘렌 조합으로 봤는데, 원체 실력 있는 배우들이라 그런지 큰 아쉬움은 없었다.

 

방대한 대사를 노래에 입히다 보니 어색하긴 했지만, 성스루 형식의 단점 중 하나임을 감안하고 들어서 괜찮았다. 극의 중심을 지켰던 주·조연 외에도 전 객석을 무대로 확장하며 수준급의 연주와 가무를 선보인 다재다능한 앙상블 덕분에 무대 퀄리티가 업그레이드되어 흡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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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관객의 참여를 중시하는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은 어떤 자리를 선택하냐에 따라서도 후기가 갈릴 듯하다. 배우들의 동선이 많은 원형 무대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그 매력이 배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관객이 참여하고 싶은 정도에 맞춰 자리를 예매하겠지만, 왜 코멧석(특히 F, A, B) 자리가 매진될 확률이 높은지가 극명하게 두드러졌다.

 

내가 앉은 C구역의 경우 배우들의 이동 통로였기 때문에 그들이 어딘가로 떠나거나 잠시 대기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고, 그들의 생생한 표정을 관찰하며 간단한 눈인사를 주고받을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F, A, B구역 보다는 상대적으로 주·조연 배우들의 동선이 적었고, 간단한 대화를 나누거나 팬서비스를 받기는 어려웠다. 따라서 이 작품을 100% 즐기고 싶다면 최대한 무대와 가까운 자리를 선점하는 게 좋을 듯하다.

 

 

 

적극적인 관극 문화를 위한 노력


 

사실 몇 가지 아쉬운 점은 있었지만 그럼에도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은 성공적인 이머시브 뮤지컬이라고 생각한다. 무려 1,000석이 넘는 대극장에서 전 객석을 다채롭게 활용했기 때문이다. 원형 무대의 다양한 통로를 활용하고, 1층의 뒤쪽 구역과 2층 발코니석의 가장자리까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배우들을 보며 수동적인 관극 문화를 깨기 위한 노력이 여실히 느껴졌다. 그래서 작품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는 몰라도 일단 재밌는 경험이자 특별한 체험을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가치 있게 다가왔다.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은 대사가 없다 보니 관객이 말보단 몸짓으로 참여하는 비중이 높았다. 아직은 배우가 아닌 누군가의 적극적인 개입을 낯설어하는 관객들이 더 많기에 현시점에서는 나쁘지 않은 접근이었다고 판단된다. 그렇지만 앞으로 개발될 이머시브 뮤지컬에서는 여기서 더 나아가 헐거운 스토리의 보완, 관객과의 자유로운 대화, 결말이나 분기점 선택 등의 참여 요소를 적극적으로 도입해서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더욱 옅어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며 마친다.

 

 

**사진 출처: 쇼노트

   

 

[최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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