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포착자의 애정이 사진에 담길 때, 영원히 사울 레이터 [도서]

아마도 뉴욕의 산책자였을 그에게
글 입력 2022.02.07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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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잘 찍는 가장 첫 번째 방법은 피사체를 사랑하는 것일 것이다. 대상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만 그것을 아름답게 담아내기 위해 궁리할 테니까.


단적인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한때 배우 티모시 샬라메가 찍은 음식 사진이 화제가 됐었다. 찌그러진 종이 접시 위에 식은 감자튀김 몇 개. 남배우 중 유독 마른 체형에 속하는 그이기에 얼마나 음식에 관심이 없는지를 보여준 셈이다. 다른 사진은 꽤 괜찮게 찍으면서도 유난히 음식사진만 잔뜩 푸석거렸다.


나를 예로 들 수도 있다. 평소 사진 찍기를 좋아하지만 그렇게 잘 찍진 못한다. 그럼에도 우와 소리 나올 정도로 잘 나온 사진들이 있다면 역시 좋아하는 아이돌을 담을 때. 눈썹, 눈꼬리, 콧망울, 입매, 턱선까지 구석구석 다 예쁜 내새끼들을 찍고 있으려니 자연스레 꽤 근사한 무언가가 완성되는 것이다.


피사체에 대한 애정이 동반된 사진은 확실히 반짝거린다. 평범한 풍경인데도 오래 들여다보게 된다. 포토그래퍼 사울 레이터는 살아생전 뉴욕의 길거리를 잔뜩 찍었다. 재료는 그리 특별하지 않다. 축축한 벽돌, 바쁘게 걸어가는 여성과 남성, 자동차, 네온사인, 창문, 뭐 그런 것들.

 

그럼에도 그 ‘평범한’ 사진에 자꾸 눈길이 가는 이유는, 역시 그 안에 담긴 포착자의 애정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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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 레이터의 팬이었던 일본의 작가 오타케 아키코는 사울이 이스트 10번가에 살았다는 사실에 충격 받았다고 말한다. 작가가 직접 그 근처에 살아본 바, 10번가는 유달리 독특한 곳이었다는 것이다. 1970~80년대 뉴욕 이스트 빌리지는 다른 지역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위험한 곳이었는데, 10번가 블록만 유독 평화롭고 차분했다고 한다.

 

조금만 넘어가면 마약쟁이들이 도사리고 있었음에도 10번가만큼은 그늘진 나무가 가득한 차분한 곳이었다고. 그리고 사울 레이터는 1952년 스물여덟 나이에 10번가에 아파트를 얻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곳에 살았다. 60년이 넘는 시간이었다.


한 곳에 오래 머무를수록 무뎌질 법한테 사울 레이터의 시선은 변함없이 경쾌하다. 익숙함이 불러온 권태, 매너리즘보단 상대를 더 알아갈수록 깊어지는 편안한 애정이 담겨있다. 그는 어떻게 똑같은 곳에서 이렇게 많은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걸까? 그것도 매번 다양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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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평범하고 고독한 것들 사이에서 빛나는 경이를 발견했던 예술가.”


라고 사울을 수식하곤 한다. 사울이 찍은 사진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첫째, 사울은 열심히 걸어 다니고 있었다. 둘째, 사울은 가만히 멈춰 응시하고 있었다. 이 당연한 말이 무엇인고 하니, 사진을 찍으려 돌아다니는 사울의 모습이 그려진다는 것이다.


사울은 열심히 걸어 다니고 있었다; 사울이 찍은 사진의 배경은 평범하지만 다채롭다. 흔히 볼 수 있는 길거리지만 온갖 구석구석을 쏘다닌 흔적이 역력하다. 아마 사울은 사진을 찍으러 나갈 때마다 아주 긴 산책을 했을 것이다.


사울은 가만히 멈춰 응시하고 있었다; 사울의 사진엔 두 가지 이상의 사물이 겹쳐진 경우가 많다. 주로 창문, 창틀, 진열대 유리 등을 프레임으로 삼고 그 안에 인물을 배치시켰다. 사울이 만든 액자(프레임) 속엔 뉴욕 시민들이 들어가 있다. 바쁜 걸음으로 움직이는 뉴요커들이 절묘하게 그 안을 지나갈 때까지 작은 뷰파인더를 한참동안 들여다보고 있었을 사울이 그려진다.

 

아마 ‘빛나는 경이’란 것은 이런 인내심으로 피어난 마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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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 간의 인내심과 느긋함이 깃들어있는 사울의 사진을 볼 때 그가 사랑했던 뉴욕의 길거리, 평생을 몸담았던 이스트 빌리지 10번가가 느껴진다. 또 그가 그의 익숙한 집 앞을 이처럼 아름답게 포착했던 것처럼, 나도 우리 동네를 어떻게든 비벼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 샘솟기도 한다.

 

익숙하고 고요한 곳에서 긴 산책을 하며 카메라를 찰칵였을 그를 떠올리면 왜인지 경건한 수도승의 모습이 그려진다.


좋은 사진이란 포착자의 애정이 담긴 것이고, 그렇게 애정이 담긴 사진은 공간의 분위기를 함께 느끼게 한다. 평범한 공간을 눈부시게 만든 것은 뉴욕에 대한 그의 사랑이었음을 깨닫는다. 우리는 우리의 사진에 어떤 애정을 담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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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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