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찰나의 순간이 전하는 무한한 메시지 - 게티이미지 사진전 [전시]

사진은 순간에 영원성을 부여한다.
글 입력 2022.02.05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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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음으로써 순간에 영원성을 부여한다.’


전시장 내의 한 벽면에 적혀있던 문구는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빙빙 맴돌았다. ‘순간’은 소멸한다. 그것도 아주 빠르게. 지금도 우리가 통과하고 있는 수많은 ‘순간’들은 사라지고 있다. 사진을 찍는 행위는 빠르게 달아나는 순간을 붙잡아 형태로 남긴다. 결국, ‘순간’은 ‘사진’에 의해 시간을 초월하는 존재로 남게 되는 것.


세계 최대 콘텐츠 아카이브 '게티이미지'의 컬렉션을 세계 최초 대규모 기획전으로 선보이는 <게티이미지 사진전 - 세상을 연결하다>가 3월 27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최된다. 전시는 크게 2개 관으로 나뉘며 5개 섹션으로 구성된다. 1관에서는 게티이미지의 방대한 아카이브를 소개하고, 2관에서는 시공간을 뛰어넘어 세상을 연결하는 사진의 역할을 재조명한다.


사진으로 기록된 순간들은 세대, 국적, 성별을 뛰어넘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가치와 감정을 담아 서로를 연결한다. 이번 전시는 수많은 사건, 사고가 반복되는 인류의 연대기 속 누구나 공감하는 인간의 연대를 이야기하며,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희망과 위로를 전한다.

 

 

 

Section.1 아키비스트의 저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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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를 내밀고 있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1951년 3월 14일 그의 72번째 생일에 사진작가가 웃어달라고 요청하자 혀를 내밀고 있다.

 

이 사진은 꽤나 유명한 사진이어서 보자마자 반가웠다. 혀를 내밀고 있는 그의 모습이 장난기 가득해 보였는데, 웃어달라는 사진작가의 요청에 유쾌하고 센스 있게 응한 사연이 담겨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혀를 내미는 표정을 짓는 것은 정말이지 찰나의 순간이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은 셔터와, 아인슈타인의 짓궂은 표정의 합이 탄생시킨 최고의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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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원의 개

 

  

사진을 보자마자 속으로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장면을 볼 수 있다니!'라고 외쳤다. 위 모습은 런던의 피카딜리 서커스 호텔에서 호텔 경비원이 작은 닥스훈트에게 말을 걸고 있는 모습이다.

 

우리는 길거리에서 꽤나 자주 반려견들과 그의 주인을 볼 수 있다. 종종거리는 발걸음으로 주인 곁에서 열심히 보폭을 맞추는 반려견들의 모습은 너무나 사랑스럽다. 지나가는 곳곳마다 시선을 사로잡고 마음을 녹인다. 나는 그들을 마주칠 때마다 사진을 찍지 못하는 아쉬움을 대신하여 눈으로 바삐 그들 모습을 담아내었다. 늘 그렇게 찰나의 기쁨으로나마 스쳐갔던 모습을 이 사진 앞에서 오랫동안 눈에 담을 수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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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트엔드의 사제

 

 

어머니의 반대로 전쟁 중 피란을 떠나지 못한 소녀 헬렌 부시가 런던 이스트엔드의 폭파된 집에서 프랑스 구호 의류를 챙기는 사제를 돕고 있다.

 

위 사진을 담은 사진작가 '버트 하디'는 전쟁 중의 모습을 주로 담아냈다. 나는 전쟁 중에 찍힌 사진들을 보며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현실에서 이런 장면이 구현된 것이 놀라우면서도 안타까웠다.

 

전쟁 중, 혹은 그 이후의 모습을 상상하면 우리는 비참한 암흑세계를 그려낸다. 하지만 '버트 하디'는 참혹함의 틈새로 새어 나오는 찰나의 아름다움을 재빠르게 사진으로 포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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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 가십

 

 

리차드 뉴트라가 에드가 코프먼을 위해 설계한 팜스프링스의 사막 저택.

 

리타 바론(맨 왼쪽)이 헬렌 조조(왼쪽)와 예술품 딜러인 조지프 린스크의 아내인 넬다 린스크에게 다가서고 있다.

 

화사하고 매혹적인 색감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사실 흑백 사진이 아닌 이상, '색감'은 사진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떠한 색감으로 어우러졌는지, 혹은 채도와 명도에 따라서도 사진의 분위기는 변할 수 있다. 위 사진은 '봄'을 연상케하는 색감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중앙에 위치한 물의 청량함으로 사진은 한층 풍성함을 더한다.

 

 

 

Section.2 현대르포의 세계


 

이 구역에서는 고통과 아픔의 민낯을 그대로 마주한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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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박함으로 분신자살을 시도한 헤라트 여성

 

 

아프가니스탄 헤라트. 분신자살 시도로 몸의 70%에 심한 화상을 입은 열여덟 소녀 마수마. 그녀는 지역 병원 화상치료센터에서 손에 생긴 흉터를 보여주고 있다.

 

현재 약혼한 상태인 마수마는 두 달 전 화상을 입었으며, 자살을 시도한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의료진은 그해 7월까지 80건이 넘는 분신 신고가 접수됐다고 말했는데, 이는 보수적인 이슬람 법과 남성 중심의 아프간 사회에서 여성의 종속적인 위치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여성의 자살은 강제 결혼과 가정폭력, 빈곤, 박탈된 교육 기회 등을 이유로 이루어진다.

 

인간은 자유에서 오는 행복을 누린다. 그것을 이루지 못하는 이슬람 여성들은 그들의 존엄성을 잃고 살아갈 바에 죽음을 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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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위협으로 멸종위기에 처한 고릴라

 

 

콩고 동부 부키마. 반 밀렵 팀의 보호 관리원과 지역주민들이 비룽가 국립공원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은 마운틴고릴라 네 마리의 사체를 치우고 있다. 사살 동기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정치적인 이유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에서는 멸종 위기에 처한 비룽가 지역의 고릴라를 보호하고 있는 경비 대원 100명 이상이 살해되었다. 콩고 경비대는 지역에서 불법으로 이루어지는 석탄 채굴과 충돌하며, 살해와 고문, 협박에 노출된 상황이다.

 

안타까움과 분노의 감정이 뒤섞였다. 동물도 우리와 같은 생명체다. 왜 사람들은 동물들을 죽이는 일이 사람을 죽이는 일과 동일시하지 않는 걸까. 사살하면서 어떠한 마음의 동요도 일지 않는 것인가. 사람들의 악한 싸움에 죄 없는 동물들이 휘말려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너무 안타까울 따름이다.

 

 

 

Section.3 기록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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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어머니

 

 

7명의 아이를 둔 32세의 궁핍한 완두콩 농업 노동자 어머니.


'도로시아 랭'이 찍은 이 사진은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사업의 일환으로 농업안정국(FSA)에 몸담고 있을 당시 촬영한 것이다.

 

그녀는 지쳐 보인다. 어머니의 어깨에 파묻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 또한 마음이 아프다. 궁핍함 속에서 앞으로 꾸려나갈 그들의 생업에 대한 어머니의 염려가 눈빛에 담겨있는 것만 같다. 1935년에서 1944년 사이 미국인의 생활이 이 사진 한 장 속에 기록되어 있다.

 

 

 

Section.4 연대의 연대기


 

반복되는 역사 속 아이러니를 체감할 수 있도록,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서 발생했지만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는 두 작품을 교차 구성했다. 데칼코마니처럼 비슷한 모습의 서로 다른 사진을 통해 시공간을 초월해 되풀이되는 역사를 돌아보고, 그 속에서 변하지 않는 인류애와 평화정신, 보편적 가치를 되짚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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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피델 카스트로와 오스발도 도르티코스 - 1960년 3월, 쿠바 아바나에서 열린 행진에서 체 게바라가 오스발도 도르티코스,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걷고 있다.


아래) 셀마-몽고메리 행진 - 미국 인권 운동가인 마틴 루터 킹이 셀마에서 몽고메리까지 흑인 투표권 제한을 항의하는 행진을 이끌고 있다. 킹 옆에는 존 루이스, 제시 더글러스 목사, 제임스 포먼, 랠프 애버내시가 있다.

 

두 사건 모두 화합과 단결을 보여준다. 다른 시대, 다른 곳에서 마치 평행이론처럼 일어나는 역사가 신기할 따름이다.

 

 

 

Section.5 일상으로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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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 마스크를 쓴 채 하는 영화 속 키스

 

 

독감이 대유행 중인 할리우드에서 감염 예방을 위해 보호 마스크를 착용한 영화 속 키스 장면이다.

 

사실 이 전시를 보러 오기까지 발길을 가장 이끈 사진이 이 작품이었다. 순간 이 작품을 보자마자 최근 팬데믹 시대를 담아낸 사진인 줄 알았으나 위 사진은 1930년대에 찍힌 사진이다. 비록 현시대를 담아낸 작품은 아닐지라도, 그 당시에도 바이러스는 존재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우리는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다방면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감수해야 할 불편함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전의 평범했던 일상을 다시 누릴 수 있다는 기대감은 한풀 꺾인 상태다. 하지만, 위 사진은 우리에게 동질감에서 비롯되는 공감과 함께, 그럼에도 다시금 생동감을 되찾자는 위로의 다독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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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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