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꿈의 청사진을 그린 괴짜 화가 - 살바도르 달리전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흐리다
글 입력 2022.01.09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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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변환][포스터] 살바도르 달리전 ver.1.jpg

 

 

‘살바도르 달리’ 전시를 보러 가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는 온전히 포스터 속 달리의 모습 때문이었다.

 

눈 위치까지 길러 꼬아 놓은 수염, 있는 대로 크게 뜬 눈, 그와 대비되는 굳은 입술까지, 그의 모습은 누가 보아도 정상은 아니었다. 그의 조금은 광기 어린 모습이 시선을 잡아 끌었고 대체 어떤 화가이길레 저토록 상식 밖의 포스터가 탄생한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들었던 것 같다.


그의 전시를 보기 위해 방문한 DDP 디자인 플라자는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이 화가의 작품을 보기 위해 이만큼의 사람들이 몰려든 것을 보고 또다시 의문이 들었다. 그가 여느 다른 화가들과는 다른, 사람을 끌어 들이는 그의 매력은 무엇이란 말인가? 전시를 관람하며 그러한 나의 의문점은 차근히 해결되었다.

 

 

 

천재화가가 아닌 인간으로서 달리, 그는 누구인가?



‘살바도르 달리’는 일생을 천재화가로 불리울 만큼 그의 업적은 찬란하다 못해 눈부시다. 그러나 그의 이런 천재성에는 어쩐지 부자연스러울 정도의 광기가 느껴지곤 하는데 이번 전시의 첫번째 섹션에서는 그의 이러한 천재성 뒤에 숨겨진 비운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항상 달리를 따라 다니는 그의 어두운 그림자는 죽은 형의 영혼이었다.


달리는 실제로 ‘죽은 형의 시체가 나의 영혼에 매달려 있는 것 같다’고 말을 했을 정도로 죽은 형처럼 되지는 않겠다는 강한 목표에 집착하곤 했는데 형과 많이 닮아 있었던 그가 자신을 형과 완전히 분리 시키기 위해 행했던 방법이 바로 괴짜가 되는 것이었다. 그는 강박적으로 괴상한 행동을 일삼았고 종래에는 피해 망상증 정도의 극단적인 사고를 지니게 되었다.

 


[크기변환]섹션 01_천재의 탄생_전시전경, 2021.jpg

 

 

그리하여 나는 달리의 고향인 ‘케다케스’에 위치한 해안가 별장에서의 추억을 그린 작품 몇 점을 소개하고 있는 첫번째 섹션이 매우 인상깊게 다가왔다. 어쩐지 조금은 멀게만 느껴졌던 ‘천재 괴짜 화가’라는 수식어를 지닌 달리의 인간적인, 조금은 유약한 면모를 새롭게 마주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크기변환]1. 아버지의 초상화와 에스 야네르에 있는 집 Portrait of My Father and the House at Es Llaner, 1920.jpg

<스튜디오에서 그린 자화상 Self-Portrait in the Studio>, c. 1919

ⓒ Salvador Dalí, Fundació Gala-Salvador Dalí, SACK, 2021

 

 

달리는 그의 작품에서 케다케스를 이상적이고 몽환적인 ‘여름의 상징’으로 그려왔는데 어쩌면 그의 마음의 고향은 아이러니하게도 달리가 스스로 괴짜적인 행동을 일삼을 수 밖에 없었던 원인이었던 ‘가족’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달리가 존경심을 느끼면서도 항상 사랑받기를 갈망할 수밖에 없었던 그의 아바지를 그린 작품에서 그의 이러한 이중적인 내면이 잘 도드라져 보인다.

 

 

 

서로의 뮤즈이자 영감의 원천, 갈라와 달리



이렇듯 어린 시절 사랑을 갈구 해야만 했던 달리는 1929년, 그의 인생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치게될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게 된다. 바로 초현실주의 작가들 사이에서 사업 수완이 좋기로 유명했던 ‘갈라’인데, 당시 남편과 함께 달리의 집을 방문한 갈라와 달리는 마치 자석의 다른 극처럼 서로에게 끌리게 되었고 결국 둘은 적지 않은 나이차를 뛰어 넘고 서로의 반려가 되었다.

 


[크기변환]7. 갈라의 발 입체적 작품 Galas Foot Stereoscopic Work, 1974.jpg

<갈라의 발 (입체적 작품) Gala's Foot. Stereoscopic Work>, c. 1974

ⓒ Salvador Dalí, Fundació Gala-Salvador Dalí, SACK, 2021

 

 

달리의 작품에서 갈라의 모습은 위의 작품과 같이 때로는 노골적으로 또 때로는 은밀하게 등장하곤 하는데 이는 달리가 갈라를 만난 이후 그의 영감의 원천은 언제나 갈라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작품 속에 갈라의 뒷모습을 그리거나 그녀의 모습을 조그맣게 그려 넣었는데 관람을 하면서 마치 숨은 그림 찾기처럼 이를 찾아 보고 의미를 생각해 보는 소소한 재미가 있었다.

 

 

 

꿈은 또다른 현실이다, 초현실주의의 거장으로 거듭나다



달리라면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는 역시 ‘초현실주의’가 아닐까 싶다. 초현실주의 화풍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 영향을 받아 무의식 세계의 표현을 지향한 20세기 사조이다. 달리는 꿈과 환각 속에서야말로 완벽한 무의식의 자유를 느낀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꿈에 기반한 프로이트의 분석에 매우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그의 천재력 덕분인지 그는 곧 초현실 주의 그룹의 눈에 띄어 그 일원이 되었다.


달리의 초현실주의는 그러나 다른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작품과 분명히 대비되는 점이 있었는데 그의 독특한 표현 방식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보통 초현실주의라하면, 의식의 흐름 기법처럼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자유롭게 묘사를 하다 보니 굉장히 모호하게 뭉뚱그려 표현하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달리의 작품들을 보면 비록 소재 자체는 매우 비현실적일지언정 마치 실제로 눈앞에서 목도한 것을 표현한 것마냥 세밀하고 디테일하게 대상을 그렸음을 눈치챌 수 있다.

 


[크기변환]4. 임신한 여성이 된 나폴레옹의 코, 독특한 폐허에서 멜랑콜리한 분위기 속 그의 그림자를 따라 걷다 Napoleons Nose, Transformed into a Pregnant Woman, Strolling His Shadow with Melancholia amongst Original Ruins, 1945.jpg

<임신한 여성이 된 나폴레옹의 코, 독특한 폐허에서 멜랑콜리한 분위기 속 그의 그림자를 따라 걷다. 

Napoleon's Nose, Transformed into a Pregnant Woman, Strolling His Shadow with Melancholia amongst Original Ruins>, 1945

ⓒ Salvador Dalí, Fundació Gala-Salvador Dalí, SACK, 2021

 

 

특히나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 굉장히 긴 제목의 이 작품은 달리가 어떻게 그만의 초현실주의 표현 기법을 구축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을 처음 접하자마자 들었던 생각은 ‘굉장히 대칭적이다’라는 인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달리는 기하학적인 지식까지 동원하여 작품의 구도를 세밀하게 계산하였으며 작품 속 모든 요소들은 그의 철저한 계획 하에 배치되고 표현되었다고 한다.


달리는 이러한 독창적인 무의식 표현법을 ‘편집광적 비판 기법’이라고 명명하고 그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그는 무의식이 지배하는 꿈 속에서의 세계를 의식적으로, 극사실주의적으로 표현해내면서 꿈과 상상의 세계를 현실로 이어지게 만들었다. 즉, 그는 꿈이 단지 꿈에서만 멈추지 않고 우리의 의식으로까지 진출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의 이러한 표현법은 굉장히 아이러니 하지만 동시에 불가능해 보였던 무의식의 영역과 의식의 영역의 통합을 이루어냈다고 볼 수 있다. 나 또한 몇 십년 전에 꾸었던 꿈을 아직까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 때도 있고 가끔 인상적인 꿈을 내용을 기록해 두었다가 그것에서 영감을 받고 하는데 기억을 더듬어 보면 무의식 세계에서도 분명히 색채가 있었고 그것을 어렴풋이나마 그려내 볼 수 있을만큼 구체적이었다.


달리는 이렇듯 그의 작품을 통해 무의식과 의식이라는 상반된 두 세계의 희미한 연결고리를 확고히 함으로써 빙산처럼 수중에 가라 앉아 있던 무의식의 영역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의식을 이끌어냈다.

 

 

 

장르도, 공간도 뛰어 넘은 달리의 천재성


 

[크기변환]달리전.jpg

 

 

살바도르 달리, 그가 이토록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천재로 남을 수 있었던 데에는 끊임 없이 이어지는 그의 도전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캔버스 위 뿐만이 아니라 석판, 영화 스크린, 나아가서는 대형 설치 미술 영역까지 진출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작품 속에서 빛나는 천재성을 뽐냈다.


달리의 장르를 넘나드는 작품들 중에도 무엇보다 인상깊었던 것은 그가 스페인의 거장 감독 루이스 브뉘엘과 협업하여 낸 <안달루시아의 개>라는 영화였다. 전시장에서 이 영화를 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가만히 작품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아무리 가까이 붙어 앉아 집중해도 작품에서 멀어지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한마디로, 작품이 관람객을 ‘소외 시키는’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러한 반응은 달리의 계산된 전략이었는데, 그는 관객이 쉽게 이성적, 심리적, 문화적으로 이해하거나 해석할 단서를 영화 속에서 완전히 배제해 버렸다. 그리하여 영화 속 인물들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괴랄하고 어딘지 좀 잔인한 행동을 일삼는다. 이런 비상식적인 인물들의 행동을 보다보면 나 또한 이성적인 의식을 놓고 저 멀리 어딘가 무의식을 헤매다가 마치 꿈속에서 영화 속 장면들을 더듬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컬처리스트 명함 (1).jpg

 

 

[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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