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무수한 영감을 주었던, 살바도르 달리 展

Salvador Dali, Imagination and Reality 살바도르 달리 展
글 입력 2022.01.10 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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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살바도르 달리전 ver.2.jpg

 

 
녹아내리는 시계, 점점 어두워지는 그림자, 기괴한 구도.
 
살바도르 달리의 대표작은 바로 <기억의 지속>이다. 초현실주의의 끝판왕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의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정말 기묘하고, 몽환적이며, 무의식의 세계로 흘러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시대적으로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새로운 미술사조의 문을 연 예술가의 등장에 눈이 휘둥그레졌을 것이다. 그의 삶과 다른 작품들이 궁금해졌다.
 
<살바도르 달리 展>은 국내에서 선보이는 살바도르 달리의 첫 원화전으로, 달리의 천재적인 예술성과 기이한 면모를 모두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총 10개의 섹션으로 구성된 본 전시는, 달리의 유화와 삽화 그리고 영상 작품뿐 아니라, 대형의 설치작품과 포토존 등 다양한 콘텐츠가 준비되어 있다.
 
예술이 인생을 지배해야 한다는 달리의 신념과 그의 초현실 세계를 이번 전시를 통해 경험해 보길 바란다.
 
 

 

스튜디오에서 그린 자화상


  

1. 아버지의 초상화와 에스 야네르에 있는 집 Portrait of My Father and the House at Es Llaner, 1920.jpg
<스튜디오에서 그린 자화상> 1919 ⓒSavador Dail, Fundacio Gala-Salvador dali, SACK, 2021

 


달리는 아버지의 친구이자 화가였던 라몬 피초를 통해 그림을 더 집중적으로 연습하게 된다. 달리의 재능을 알아보고 감탄했던 라몬 피초는 자신의 집 꼭대기에 스튜디오를 마련하여 달리가 언제나 와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했고, 달리가 그림 그리는 것을 반대했던 달리의 아버지를 설득하여 미술 전문학교에 입학할 수 있게 도왔다.
 
<스튜디오에서 그린 자화상>처럼 달리는 아름다운 풍경이 내다보이는 라몬 피초의 집 꼭대기, 즉 달리의 첫 스튜디오에서 옆에 이젤을 두고 그림을 그리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붉은빛이 감도는 선홍색 물감은 이젤 주변에 강한 붓 결로 칠해져 있고, 파란색과 보랏빛 계통의 물감은 발코니 테두리에 칠해져 마치 작품 속 프레임 역할을 하는 듯 보인다.
 
여기서 달리는 이젤 앞에 앉은 자신의 옆모습을 그리기 위해 세 개의 거울을 두고, 반사된 각도를 정확하게 계산하며 그렸다고 한다. 일찍부터 달리가 고수한 과학적인 접근법과 실험정신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슈거 스핑크스

 

0322.jpg
<슈거 스핑크스> 1933 ⓒSavador Dail, Fundacio Gala-Salvador dali, SACK, 2021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등을 돌린 채 넓은 광야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달리의 부인 갈라이다. 갈라는 여기에서처럼 자수 재킷을 입고 달리의 작품에 자주 등장한다. 신화적인 존재인 ‘스핑크스’를 연상시키는 오렌지빛 구름과 하늘이 그녀를 뒤덮고 있다. 달리는 항상 갈라가 수수께끼와 미스터리를 가지고 있는 스핑크스 같다고 빗대어 표현하곤 했다 한다.
 
갈라의 정면에 놓인 사이프러스 나무 사이로 두 인물과 수레 하나가 보이는데, 이는 장 프레수아 밀레의 <만종> 속의 인물을 모티브로 삼아 그린 것이다. 달리는 이 그림에서뿐만 아니라 꾸준하게 <만종>을 분석하고 응용해 그릴 정도로 중요하게 여겼다고 한다.
 
덕분에 다양한 해석이 오가는 <만종>을 다시 보게 되었다. <만종>은 ‘오후에 치는 종소리’라는 뜻으로 본래 종교적 경건함과 노동에 대한 고찰 그리고 감사함을 기도하는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달리는 이 작품을 보자마자 충격적인 불안감에 휩싸여 그림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주장했다 한다. 그의 편집증적인 비판 덕분에 <만종>은 지금까지도 여러 해석이 오가는 명작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다가오는 밤의 그림자

 

2. 지는 밤의 그림자 Shades of Night Descending, 1931.jpg
<다가오는 밤의 그림자> 1931 ⓒSavador Dail, Fundacio Gala-Salvador dali, SACK, 2021

 

 
그림 중앙에 떨어져 있는 사탕 같은 조약돌이 보이는데, 조약돌 아래로 퍼져 있는 그림자는 마치 그랜드 피아노의 형상 같기도 하다.
 
이는 달리가 어렸을 때 해변가에 피아노를 가지고 나가 새벽까지 연주하던 가족들과의 추억과, 자주 나가 뛰어놀던 집 근처 ‘콘피테라 공원’을 상징하는 조약돌이다. 밝고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는 상징물들에 비해 이 그림을 그릴 당시 달리는 우울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고 한다. 바로 그의 아내 갈라가 많이 아팠기 때문이다.
 
우측 하단에 천 조각으로 덮여 알 수 없는 형태는 가정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슬리퍼, 테이블, 주전자 병 등을 숨기고 있는데 이는 앞으로 다가올 ‘더 나은 시간’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결론적으로 이 작품은 ‘반대’되는 상징물들이 대조되어 구성된 작품이라고 볼 수 있겠다. 밝은 뒷배경과 그림자, 목가적이었던 과거와 우울하고 불안한 현실, 그리고 멀리 묘사되는 기쁨의 전경과 가까이 보이는 고통의 상징물들까지 당시 달리의 복합적인 심정이 잘 내재되어 있는 그림이다.
 
 
 
무제 (맑은 날씨의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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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맑은 날씨의 지속)> 1932 ⓒSavador Dail, Fundacio Gala-Salvador dali, SACK, 2021

 

 
달리는 집착과 욕망, 죽음과 비참함 등의 테마를 하나의 그림에 상징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특히 몰두했던 기법으로 왜곡된 이미지를 뜻하는 ‘아나모르포시스’가 있다. 이는 반사되는 거울 또는 각도에 따라 왜곡되는 상을 관찰하는 것인데, 달리는 해당 기법을 활용하여 해골을 주로 그렸다고 한다.
 
이 작품에서도 바닥에 해골을 하나 볼 수 있다. 그 위에는 여자의 슬리퍼 한 짝이 길게 늘어나 목발 같은 지지대에 걸쳐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달리의 그림에 자주 나타나는 요소들 중 하나이다.
 
갈라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도 <슈거 스핑크스>처럼 자수 자켓을 입은 그녀의 뒷모습이 보인다. 하의를 벗은 갈라의 옆에, 미스터리 한 인물이 한 손에 문어를 들고 갈라를 향해 서 있다.
 
이 인물은 리디아 노게즈라는 여성의 두 아들 둥 한 명을 상징한다. 리디아 노게즈는 카다케스에서 마녀로 불릴 만큼 조금 광적인 여성 어부로 여관을 운영했는데, 달리의 집과 가까워서 달리와 갈라에게 여러 번 도움을 주었던 인물이라고 한다.
 
 
 
네로 코 주위의 탈물질화

 

5. 네로의 코 주위의 탈물질화 Dematerialization Near the Nose of Nero, 1947.jpg
<네로 코 주위의 탈물질화> 1947 ⓒSavador Dail, Fundacio Gala-Salvador dali, SACK, 2021

 

 
이 작품은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이 투하된 사건에서 충격을 받은 달리의 ‘핵 신비주의’시기 작품이다. 달리는 이 시기에 사물뿐만 아니라 인물의 분열 또는 비물질화를 통해 회화 속에서 핵분열을 재현하고자 했다.
 
이는 새로운 시도였으나, 여전히 달리의 상징적인 도상들인 사이프러스 나무, 신고전주의 건물, 잉크병, 유기적인 형체의 인물, 시대를 초월한 풍경 등을 담아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고유한 작품 세계를 고수하면서도, 새로운 철학과 사상으로 발전해 나가는 달리의 놀라운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림에서 흥미롭게 살펴볼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림 중앙에 위치한 핵심적인 인물, 월계관을 쓴 로마의 황제 네로이다. 달리가 특히나 열광하고 존경한 인물로, 달리에게 있어 네로는 ‘불확실성’과 ‘새로운 기회’를 뜻하는 중요한 상징이었다고 한다. 여담으로는 달리의 고향집에 네로의 흉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
 

1. Gerard Thomas d Hoste.jpg


 
가장 감동받았던 것은 살바도르 달리의 죽음에 관한 인터뷰 영상이었다. 달리는 죽음을 믿지 않는다 했다. 인간의 죽음은 믿지만 살바도르 달리 자체의 죽음은 두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원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이 맞다. 오늘날에도 그의 작품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앞다투어 그의 그림을 보려고 한다. 그는 아직 이곳에 있다.
 
초현실주의 작품만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입체주의 화풍, 피카소와의 인연, 디즈니와의 합작, 무대 설치 등 다양한 장르와의 연관성으로 놀랐다. 과연 20세기를 대표하는 엔터테이너다웠다. 어쩌면 암울했을 시대를 유쾌하고 강인하게 작품에 담아낸 그가 대단했다. 모두가 그의 매력에 빠져든 이유도 알 것 같았다. 10개의 섹션의 수많은 작품들을 보면서 그의 예술적인 영혼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누구보다 넘치는 자신감으로 자신의 천재성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한 편, 거장들 앞에서는 매우 겸손했던 달리. 인생의 마지막으로 향하는 길에 거장들이 남긴 작품에서 영감을 받고 그들의 감각을 따라가고자 노력했던 달리는, 어쩌면 수 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미술사에 영원히 이름을 남긴 거장들과 그 길을 나란히 걸어가고자 했던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본다.
 
달리가 그의 바람 혹은 확신처럼, 불사의 존재로 우리 곁에 남은 그와 그의 작품들을 통해서 많은 이들에게 영감 가득한 시간이 전달되기를 바란다.
 
 
 

컬쳐리스트 황희정.jpg

 

 

[황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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