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영화]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도이 노부히로 감독, 2021년 작
글 입력 2021.12.29 00:0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사랑의 소멸, 관계의 지속



미라 전시회를 좋아하는 '키누'와 가스탱크를 찍는 것이 취미인 '무기'. 둘의 인연은 막차를 놓친 어느 날에 시작된다. 첫차를 기다리며 함께한 술자리에서 둘은 서로의 공통분모에 점점 끌리게 된다.

 

오시이 마모루를 알아본 것에서부터 영화표를 책갈피로 쓰는 점이나 텐지쿠 네즈미 콘서트 티켓을 사놓고 못 간 것까지 똑같은 둘.

 

가위바위보를 할 때마다 보자기가 돌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는 키누의 말에 무기는 운명적 기운을 느낀다.

 

 

[포맷변환][크기변환]A1598A60-4FEB-4B01-8278-E2A263176D3E.jpg

 

 

그 때문인지 이제껏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았던 '극장판 가스탱크'를 키누에게 보여준다. 졸면서 영화를 보고 같이 주먹밥 구이를 먹으며 둘은 서로의 일상에 자연스레 스며든다.

 

첫 데이트에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은 운동화와 비슷한 옷을 입고 나타난 두 사람은 좋아하는 책과 영화와 사람에 대해 밤새도록 떠든다.

 

키누는 연달아 무기의 집에 묵으며 학교도, 취업설명회도 가지 않는다. 그러나 사랑이 주는 행복감에 흠뻑 취해 몰두한 시간만큼, 둘만의 자장에서 벗어나 각자가 감당해야 할 대가는 불어난다.

 

키누는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뒤늦게 취업전선에 뛰어든다. 무기는 안 하고 싶은 일은 안 해도 된다며 동거를 제안하고, 키누는 무기와의 평온한 생활을 지속하기 위해 구직활동을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터무니없는 단가에 맞춰 일러스트 작업을 하는 것에 회의를 느낀 무기는 취직을 결심한다.

 

 

[포맷변환][크기변환]CC3436FE-A6C6-4233-ABD8-C0C8A5B6930E.jpg

 

[포맷변환][크기변환]92B6D1E7-1533-46D5-A1EA-2673DFCAA0EC.jpg

 

 

입사만 하면 키누와 더 잘살 수 있을 거라는, 좋아하는 책이나 영화를 함께 누릴 수 있을 거라는 무기의 소박한 기대와 달리 둘만의 시간은 줄어든다.


회사 일에 치이던 무기는 점점 예전의 취향에서 멀어진다. 설레는 표정으로 문학 무크지를 집어 드는 키누와 달리, 무기는 '인생의 승산'을 읽는다. 키누는 그런 무기에게 왠지 모를 낯섦을 느낀다.

 

서로에게 숨기는 말들이 많아진 두 사람은 결혼에 대해서도 다른 생각을 머금다가, 그냥 삼켜버린다.

 

 

"이해할 수 없었다. 3개월 동안 섹스를 하지 않은 연인에게 결혼 이야기를 꺼내는 건 무슨 마음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언제까지 학생 같은 기분으로 살 건지···. 평생 함께 있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는 걸까?"

 


[포맷변환][크기변환]1898D274-AC0E-4A17-A726-FE11F7575BAE.jpg

 

[포맷변환][크기변환]C5DBB8C6-4463-446F-8C41-1FF418F64A6A.jpg

 

 

과거 "하기 싫은 일은 안 해도 돼."라며 키누를 응원했던 무기는 똑같은 말을 하는 키누에게 '책임'을 운운하며 "인생을 얕보는 걸로 보인다"라는 말을 내뱉는다.

 

서로의 다름을 느낀 순간부터 둘은 각자가 가진 삶의 방식을 부정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렇게 벌어진 틈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조차 포기해버린다. "이제는 다 상관없게 느껴졌다."라는 공통된 생각 하나로, 서로를 조금씩 정리해간다.

 

 

"일단 이별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면, 부스럼처럼 막 떼어내고 싶어져."

 

 

[포맷변환][크기변환]0EBC8F02-8EA5-4139-AB4F-6B96F05CB16D.jpg

 

 

지인의 결혼식에서 둘은 각자 지난 5년의 연애를 돌아본다. 핸드폰 통신사 해약같은 것을 걱정하며, 오늘만큼은 꼭 이별을 고하자고 다짐한다. 그리고 처음 데이트했던 카페에서, 서로를 놓아준다.

 

시간이 흘러 각자 다른 연애를 시작한 그들은 우연히 카페에서 마주친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서로에 대해 생각한다.

 

"키노코 테이코쿠가 활동을 중단한 것, <근사한 밤의 전파> 방송이 끝난 것, 이마무라 나츠코가 아쿠타가와상 수상한 것, 어떻게 생각했을까? 타마강 범람 뉴스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의 집에 처음 갔을 때 내 머리를 말려줬지. 비가 내리고 있었어. 빵집을 했던 노부부는 지금쯤 어떻게 지내실까?"

 

5년간의 연애는 끝났지만 한때 서로의 인생에 깊숙이 침투했던 둘이기에, 안부를 궁금해하는 마음은 계속될 것이다.

 

 

20211229185443_rxwhillb.jpg

 

 

[유여온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