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투박한 손길이 건네는 마음 [음악]

글 입력 2021.12.24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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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출근을 했다. 처음으로 사회에 발을 내디뎠고, 나에게도 신입사원이라는 수식어가 생겼다. 온전한 사회인이 된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꽤 오랫동안 나는 스스로 소득을 책임져왔다. 아르바이트 경력만 도합 4년이었고, 그 속에서 틈틈이 근로장학생으로 근무하기도 했으며, 마지막으로는 한 달짜리 인턴도 했었다. 그동안 학생이라는 보호되는 신분 하에 어른의 세계를 어깨 너머 지켜본 결과, 그들의 세계는 마치 게임 속의 던전 같았다. 실제로 맛보기 스푼처럼 아주 짧게 인턴으로 근무했을 때,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하루하루를 보냈었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회사’라는 곳은 늘 두려움의 대상이었으며, 언젠가 넘어야 할 산이자 스스로 깨트려야 할 벽이었다.

 

그 때문에 출근하기 며칠 전부터 머리는 가볍게 있자고 말하지만, 막상 마음은 편치 못했다. 어느 정도였냐면 출근 전날 인터넷에 떠도는 신입사원 매뉴얼을 정독하고, 심지어는 직장인 전화 예절을 확인하며 혼자 시뮬레이션을 펼치기도 했다.

 

따라서 첫 출근날의 나는 종일 불편함을 부대끼고 생활할 사람이었고, 어딘가 마음 한구석에 기댈 곳을 미리 마련해두어야만 했다. 꽤 오랜 시간 공들인 고민이 무색하게도 답변은 단출했다. 늘 그랬듯 이동 시간 동안 노래를 들으며 상념을 지우는 것. 이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자, 그렇다면 늘 하던 행동에 특별히 의미를 부여한 게 과연 성공적이었을까? 음, 정확히 말하자면 반반이긴 한데 그래도 성공에 가깝다고 말하고 싶다. 처음의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갔지만, 결과적으로는 따스한 손길을 받긴 했으니 말이다. 첫날의 나에게 손을 내밀어 준 건 내가 열렬히 좋아하는 가수도, 요즘 꽂힌 노래도 아닌, 옛것이었다. 정말 옛날의 것. 내가 노력해서 찾지 않으면 가닿기 힘든 영역에 있는 것.

   

 

 

우연은 새로운 발견을 낳고


 

우선, 첫날의 나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 출근 당일 7시에 일어나 모든 준비를 마치고, 귀에는 에어팟을 꽂은 채 버스에 올랐다. 출근 시간에 가까워질수록 걱정은 한데 쌓였고, 이를 덜고자 계획했던 대로 좋아하는 노래 몇 가지를 골라 주구장창 반복해서 들었다. 좋아하는 만큼 노래에 집중하기 수월했기 때문이다. 조금 부끄럽지만 다들 그럴 때 있지 않나, 노래를 듣는 순간만큼은 가수에 이입해서 아무런 잡생각 없이 철저히 노래에만 집중할 때. 내 시간의 8할은 이러했다. 이런 날 누구보다 잘 알기에 심장이 콩닥거리는 첫 출근길을 잠시나마 달랠 수 있는 수단은 노래뿐이라고 판단하지 않았을까 싶다. 익숙하고도 신나는 멜로디가 귓속으로 스며드니 마음은 점차 진정되었고, 머릿속을 넘쳐흐르던 걱정들은 3분간의 과몰입이 연쇄적으로 이어지면서 조금씩 안으로 몸을 숨겼다. 귀에서 에어팟을 빼는 순간 다시금 원상 복귀돼버렸지만.

 

다행히도 내가 했던 걱정의 98%는 일어나지 않았고, 무탈한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할 줄 아는 게 없는 신입인지라 교육만 듣다 가버린 하루였음에도 불구하고, 내내 긴장을 해서인지 회사를 빠져나오자 경직된 몸에 힘이 풀리면서 온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는 아침에 했던 대로, 늘 해오던 대로 에어팟을 귀에 꽂은 채 다시금 과몰입하는 시간을 가지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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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내내 노래에 과몰입하기 위해서는 랜덤으로 재생되는 다음 곡이 운 좋게 원하는 것으로 나와야만 한다.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약간의 부가 설명을 하겠다. 나의 플레이리스트에는 100여 개의 곡이 담겨 있지만, 이 모든 걸 공평하게 듣진 않는다. 모든 장르의 음악, 신곡, 요즘 트렌드를 기반으로 한 곡, 누군가의 추천곡, 내가 좋아하는 곡 등 갖가지 이유를 붙여 완성된 플레이리스트는 잡탕(?)에 가까웠고, ‘내가 모르는 노래는 없어야 한다’는 괴상한 고집으로 인해 듣지도 않으면서 추가한 곡이 꽤 많은 상태였다. 이러한 노래들이 담긴 바구니에서 눈을 감고 좋아하는 곡을 꺼내려면 운이 좋아야만 한다. 이러한 이유로 늘 랜덤으로 설정해놓고, 원하는 곡이 재생될 때까지 무한으로 다음 버튼을 누르는 행동은 어느새 습관이 돼버렸다.

 

출근길에 신나는 곡으로 상념을 잊었으니, 퇴근길에도 좋아하는 곡으로 지친 마음을 달래려 했다. 창문에 머리를 기대어 운 좋게 재생된 좋아하는 곡을 들으며 멍하니 있다가 랜덤으로 재생되는 다음 곡을 맞이할 때였다. 처음 듣는 전주, 요즘 것이 아니라는 직감, 나와는 동떨어진 시대를 거친 것 같다는 강한 느낌. 재생되고 10초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바로 알 수 있었다. 아, 예전에 넣어둔 옛날 노래구나.

 

 

 

나를 사로잡은 옛날 노래


 

전주만 들어도 바로 알 수 있을 만큼 요즘 음악과는 결이 달랐다. 심지어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세상에 알려진 것들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곧바로 스킵하고는 다른 곡을 찾았겠지만, 몸이 지쳐서일까 그럴 힘도 없었고, 그냥 계속 듣고 싶었다. 정말 거창한 이유 없이 그냥 쭉 들어보고 싶었다. 그렇게 습관적으로 움찔거리던 손가락을 제자리에 둔 채, 잠시 옛것의 투박함에 몸을 맡겼다.

 

 


 

 

영원한 음유시인이라는 故 김광석의 노래이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바람이 불어오는 곳> 등 그의 많은 대표곡은 여러 후배 가수들이 수없이 많이 커버해왔고, 나 역시 후배 가수들의 무대를 보며 노래를 접해왔다. 그 때문에 원곡을 들은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 있게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곡은 완전한 초면이었다. 아마도 과거의 나는 다양한 시대의 음악을 접하고 싶어서 무작정 유명한 가수를 검색해 상위에 뜨는 곡을 추가했던 것 같다.

 

앞서 ‘옛것의 투박함’이라는 표현을 쓴 데에 반해 전혀 투박함을 찾을 수 없었다. 물론, 요즘의 음악보다 세련미가 덜 한 건 사실이지만(어디까지나 음악 문외한의 입장에서), 괜히 명곡이 아니었던 건지 너무 좋았다. 정말이지, 너무너무 좋았다. 오죽하면 끝에 가까워지는 재생 바를 시작 지점으로 끌어 놓고는 처음부터 다시 들었다.

 

그때야 비로소 절감했다. 아, 이래서 몇십 년이 지나도 사람들이 계속 찾는 거구나. 좋은 것은 언젠가 입소문을 타게 되어 있듯이, 일찍이 발견한 좋은 것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질 않는 법이다. 그의 음악도 마찬가지였다. 너무도 좋은 것이라서 아무리 시간이 흐른다 한들 절대 잊히지 않을 것이었고, 두고두고 회자 될 것이었다.

 

 


 

 

10월의 가수라는 이용의 노래이다. <잊혀진 계절>은 10월의 마지막 날에는 필수적으로 들어야 하는 곡으로 일찍이 자리매김했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이라고 첫 소절부터 10월의 마지막 날을 직설적으로 표현한 덕분에 시대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이 10월 31일에는 <잊혀진 계절>을 챙겨 듣곤 한다.

 

내가 이 노래를 알게 된 경위는 역시나 후배 가수의 커버 영상이었다. 가수 아이유가 한 프로그램에서 기타를 치며 이 곡을 부른 영상이 꽤 높은 조회 수를 기록했고, 그 숫자에 나도 일조했을 만큼 여러 번 시청했기 때문에 정말 좋은 곡이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원곡을 찾아 듣지 않고, 여전히 후배 가수들이 재가공한 곡을 들으며 지내왔다.

 

그들이 재해석한 곡이 내 귀에 너무나도 적합해서 우습게도 원곡을 듣지도 않았으면서 원곡보다 좋은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누군가 재가공한 작품이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원작의 훌륭함 덕분이라는 걸. <잊혀진 계절>도, 그 외의 다른 음악도 마찬가지라는 걸.

 

 

 

투박한 손길이 건네는 마음


 

트렌드는 빠르게 변화한다.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전문가가 아닌지라 어깨 너머 훔쳐본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음악에도 분명히 트렌드는 존재하고, 음악가들은 이를 따라가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그에 적합한 창작물을 세상에 내놓는다.

 

자꾸만 내가 옛날 음악을 ‘투박함’이라는 단어로 표현하는데 불편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오해를 풀고자 한다. 여기서 투박함은 볼품없고 둔함을 뜻하는 게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요즘 음악과의 간극을 뚜렷한 한 단어로 말하고 싶은 마음에 오랜 시간 일해온 부모님의 거칠고도 투박한 손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그때는 가장 세련되고 아름다웠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거칠어지고 투박해진, 그러나 여전히 따스한 손길.

 

나는 내가 자라온 세대에 맞춰 만들어진 음악만을 듣고 자랐다. 한평생을 발전된 기술로 만들어진 세련된 음악만을 접해온 세대였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과거를 찾아보지 않는 이상 옛날 음악을 접하긴 어려웠다. 하필이면 남들 다 듣는 트렌드에 따르는 귀를 가졌던지라 더욱이나 힘들었다. 그래서인지 무의식적으로 옛날 음악 특유의 투박함을 거부해왔는데, 그 행동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이었는지 이제야 깨닫는다.

 

늘 하던 행동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게 성공적이었냐는 질문에 반반이라 대답한 이유는 출근길에는 상념을 지울 수 있었고, 퇴근길에는 뜻하지 못한 곳에서 따스한 손길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반반이지만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었던, 좋은 순간을 가질 수 있었던 시간이었기에 이는 확실히 성공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마도 나는 내일도, 모레도 이 투박함에 매료돼 헤어나오지 못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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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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