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몽상과 꿈속으로 [영화]

구름 속에 또다른 세계가 존재하는 가에 대한 의문
글 입력 2021.12.17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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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mm 필름 카메라 속에 시간을 담는 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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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삿짐을 정리하던 중 창고 한 편에 놓여있는 박스 안에서 오래된 필름 카메라를 발견했다. 십수 년 전 이모가 거금을 들여 샀던 삼성의 KENOX GX-1 이었다. 긴 세월이 지났음에도 외관은 먼지 하나 없이 깔끔했다. 다만 건전지로 작동되는 방식인지라 텅 빈 건전지 구멍을 바라보자면 그 기능이 여전히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는 미지수였다.

  

시험해 보고 싶다. 올해가 다 가기 전에 그녀의 카메라로 시간을 담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포착해낸 내 어린 시절은 사진 속에 그대로 멈춰 식탁 유리 밑에 진열되어 있는데 반해 이모와 부모님의 시간은 내 손을 떠나 속절없었기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시공간에 존재하는 기적 같은 우리의 유한한 삶의 순간을 35mm 필름 속에 넣으려는 것은 나의 욕심일까. 크리스마스에 눈이 오기를 바라는 것은 덧없는 상념인가 꿈꾸는 자의 열망인가. 영원히 살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인가. 어쩌면 그러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영화가, 사진이 있는 것은 아닐까.


오래된 것들은 그 과거를 모르는 이들에게도 향수를 불러일으키곤 한다. 앞서 언급했던 필름 카메라도 그 단편적인 예시라 볼 수 있겠다. 이 외에도 단 한편도 접해 보지 못한 홍콩 영화 속 장국영이나 양조위 같은 그 시대 스타들이나, 석탄 난로는 구경도 못해 봤지만 식당에서 시켜 먹을 때면 괜히 기분이 몽글몽글해지는 추억의 도시락, 그리고 이제는 쉽게 찾을 수 없는 그 옛날 영화 극장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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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한 극장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엔 늘 이유를 알 수 없는 쾌감이 나를 찾아온다. “어서 와” 한때 구름 속에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하는 가를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다. 처음 비행기에 몸을 실은 날, 차창 너머로 보이는 구름 위에는 아주 아름다운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볼 수 없던 미지의 영역을 조우한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신세계였다.

 

조명이 꺼지는 순간 우리는 먼 과거부터 존재했던 극장의 시초인 어두운 동굴 속에 들어가 있는 원시인들이다. 어둠, 경계를 곤두세워야 하는 본능과는 역설적으로 우리는 그 속에서 경계를 한 꺼풀 벗어던지며 그로부터 발생하는 짜릿한 긴장을 느낀다. 영화를 보는 2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동그란 뒤통수를 가진 이들과 알 수 없는 유대감과 소속감을 공유하며 스크린 너머에 존재하는 세계를 함께 탐험하게 되는 이 비일상성이란 그 자체만으로도 기쁘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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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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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되면서도 새로운 것을 찾는 이들, 예를 들면 나 같은,에게 전하고픈 반갑고 아쉬운 소식이 하나 있다. 올해 8월 31일 운영을 종료한 서울극장을 따라 6년간 함께 했던 서울아트시네마 역시 이번 특별전을 끝으로 이전하게 되었다는 것!

 

대학을 입학하고 첫 번째 겨울 방학을 보내고 있는 학생들, 올겨울을 보낼 일정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이들, 오래된 영화관의 향수를 느끼고 싶은 이들에게 해당 특별전을 추천하고 싶다. 마지막 프로그램인 “극장의 시간”에서 상영하는 영화들은 아래 설명을 참고. 해당 영화들은 12월 16일부터 예매가 가능하다.

 

자세한 사항은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서울아트시네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상영작]

나루세 미키오 <흐트러진 구름>(1967)

자크 드미 <도심 속의 방>(1982)

허우 샤오시엔 <등년왕사>, <언언풍진>, <카페 뤼미에르>

에드워드 양 <하나 그리고 둘>(2000)

히마구치 류스케 <해피 아워>(2015), <드라이브 마이카>(2021) 

오즈 야스지로 <맥추>, <피안화>, <가을 햇살>, <꽁치의 맛>

배창호 <젊은 남자>(1994)

제인 캠피온 <파워 오브 도그>(2021)

로이 앤더슨 <끝없음에 관하여>(2019)

이기혁 <출국심사>(2019), <메소드 연기>(2020), <장미>(2021)

 

 

 

"오즈 야스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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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스튜디오들의 거장이 등장했던 1930년대 대표 감독으로는 단연 미조구치 겐지 감독과 오즈 야스지로 감독이 거론된다. 이 당시 야스지로의 영화로는 <태어나 봤지만>(1932), <작심>(1933), <외아들>(1936) 등이 있는데 우리에게 더 익숙한 영화는 아마도 <동경이야기>(1953)일 것이다.

 

영화 <동경이야기>는 2013년 야마다 요지 감독의 손을 거쳐 <동경 가족>으로 리메이크 되었지만 그 내용은 원작과 대단히 동일하다. 작가주의 감독들이 경애하는 감독인 야스지로의 영화는 인간적이면서도 철학적이다.

 

전쟁이 끝난 후의 가족, 부모, 사랑,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동경이야기>는 현재까지도 걸작으로 언급되며 70년의 세월이 무색하게 현시대인의 마음까지도 울리는 영화이다. 해당 영화를 인상 깊게 본 관객들이라면 분명 그의 다른 작품에도 크게 감명받으리라고 의심치 않는다.

 

<꽁치의 맛>

서울아트시네마 “극장의 시간”에서 오즈 야스지로의 유작 <꽁치의 맛>(1962)을 만나볼 수 있다. 화면의 유머러스함으로 노년의 고독이라는 적막감을 부드럽게 그려낸 <꽁치의 맛>은 그가 이제까지 다뤄왔던 테마인 삶과 죽음, 부모와 자식의 사랑 이야기의 원숙미를 자랑하는 작품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허우 샤오시엔 등 작가주의 감독들의 영화를 애정하고 60년대 일본 영화의 감각을 느껴보고 싶은 이들에게 오즈 야스지로의 세계를 권해보고 싶다.

 

 

 

"에드워드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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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관심이 많은 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새로운 방향을 의미하는 여러 단어들 ; 프랑스의 “누벨바그”, “미국의 뉴 아메리칸 시네마”, “일본의 뉴웨이브” 등이 있다. 그리고 1980년대 대만에도 새로운 방향의 영화들이 등장하는데 해당 시대 뉴웨이브 감독들을 “신랑차오”(새로운 물결)라 불렀다. 에드워드 양 감독 또한 그중 한 명이다.

 

그의 영화들은 꽤 최근 작품이기에 서울극장을 다녀본 이들이라면 눈에 익숙한 제목이 있을지도 모른다. <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1991), <하나 그리고 둘>(2000), <타이페이 이야기>(1985). 혹은 도서관에서 일본 소설 책꽂이를 살피다 우연히 그의 책을 발견했을 지도 모른다. 제목을 볼 때마다 손이 가게 되는 <타이페이 이야기>는 80년대 시대를 배경으로 그 당시 혼란스러운 상황을 한 연인의 삶에 녹여낸 이야기이다.

  

<하나 그리고 둘>

이번 서울아트시네마 “극장의 시간”에서는 에드워드 양 감독의 <하나 그리고 둘>(2000)을 만나볼 수 있다. 사람들의 뒷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소년 양양. 그 뒷모습이란 사람들이 보지 못하고 모르는 부분이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진실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에드워드 양의 카메라에 담겨 하나 그리고 둘을 보여준다.

 

대만 영화 분위기를 좋아한다면 그리고 삶의 진실을 영화를 통해 느끼고 싶다면 감히 에드워드 양의 시선을 추천하고 싶다.

 

 

 

"극장에서 꾼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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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비행기를 탄 것처럼 극장에 들어와 의자에 앉으면 뭄이 두둥실 떠오르는 걸 느낀다. 조명이 꺼지는 것은 눈을 감는 일, 영화는 곧 감독의 세계, 관람한다는 것은 그들이 꾸는 꿈속으로 들어가는 일.  앞서 자세히 언급한 감독 외에도 '나루세 미키오' 감독, '자크 드미' 감독, '허우 샤오시엔' 감독, '히마구치 류스케' 감독, '이기혁' 감독과 '배창호' 감독의 신작까지도 만나볼 수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문을 닫은 서울 극장처럼 많은 극장들의 사정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새로운 OTT 플랫폼이 떠오르고, 코로나 감염을 피하기 위해 극장을 찾는 관객 수도 줄어드는 추세이다. 그에 따라 극장과 영화관이 설자리도 흔들리고 있다.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없다는 말은 인생이나 영화관이나 마찬가지인 거다.

 

그럼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영화를 보는 일. 영원히 존재할 수 없는 순간을 카메라에 담아낸 60년대, 그리고 최근작들까지 관람할 수 있는 서울아트시네마의 마지막 특별전을 우리의 눈이라는 필름 속에 담아내고자 한다.

  

2021년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가 버린 마지막 한 해. 마치 낮잠을 잔 것 같기도, 한여름 밤의 꿈을 꾼 것 같기도 하다. 그다지 행복한 꿈을 꾸지 못한 이들에게 극장 속 꿈의 세계로 초대하는 긴 글을 적어내린다. "어두운 영화관에서 사람들이 여전히 친밀감을 느끼는 것은 눈앞에 보이는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확신을, 함께하는 기쁨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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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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