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프레임을 깨고 나온 네 배우들이 담아낸 '사람 사는 얘기' - 언프레임드 [영화]

글 입력 2021.12.09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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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과 안방을 넘나들며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네 배우들이 프레임을 깨고 나왔다. 프레임 안에서의 모습이 더 익숙할 네 배우, '이제훈', '박정민', '최희서', '손석구'가 처음으로 메가폰을 잡은 단편 영화들을 묶어낸 <언프레임드>는 배우 이제훈이 설립한 영화 제작사 '하드컷'과 OTT 플랫폼 '왓챠'가 손을 잡고 진행한 숏필름 프로젝트로, 12월 8일 왓챠를 통해 공개되었다.

 

<언프레임드>는 이번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초청이 되었어서, 나는 이번 가을 부산 극장에서 한 번 봤었다. 배우들의 첫 연출작이기 때문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봤지만, 생각보다 각자의 개성이 뚜렷한 영화였던 만큼 그 잔상이 오래갔고, OTT로 공개될 날만을 기다렸었다. 그리고, 왓챠를 통해 다시 본 네 편의 영화들에 대한 감상을 최대한 스포 없이 공유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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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우리랑 놀고 싶지?" 친구들 사이에서의 묘한 권력관계를 그린 영화 <반장선거>

<반장선거> directed by. 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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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을 좋아하는 마음과 순수한 열정으로 진행될 것 같은 초등학교 반장 선거의 분위기가 영화 <반장선거> 속에서는 사뭇 오싹하게 느껴진다.

 

영화는 조용하고 소심해서 존재감이 별로 없던 초등학생 '인호'가 반대로 반에서 어느 정도 힘을 지닌 '장원'의 제의로 부정 선거에 연루되며 시작된다. '너 우리랑 놀고 싶지?'라는 달콤한 장원의 말 한마디에 넘어간 인호는 장원을 반장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투표를 조작하는 위험한 일에 가담한다.

 

자신의 무리에 끼어주고, 앞으로 뒤는 다 봐주겠다는 장원의 말과 그를 따르기 시작하는 인호의 모습은 어린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도 나타나는 권력관계의 무서움을 보여준다.

 

장원을 따르기 시작하면 이제 반에서 장원처럼 친구들의 중심에 서서 '강자'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을 인호. 하지만, 모두가 강자인 '장원'의 편이었을까, 강자에 가려져 있던 소수들, 약자들의 목소리는 누굴 향해 있었을까. 장원의 무리들의 어두운 옷들과 대비되게 노란 우비를 입고 다니던 인호는 과연 그 색을 잃게 될까.

 

 

 

"남잖아요, 영원히. 재방송으로". 영원히 기억될 가족의 위로, 영화 <재방송>

<재방송> directed by. 손석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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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잃은 이모와 무명 배우 '수인'이 별로 가고 싶지 않은 친척의 결혼식에 동행한다.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기도 하고, 가고 싶지 않은 장소에 가는 것이라 그런지 가는 길에 티격태격하기도 하지만, 둘은 묘하게 닮아있다.

 

재방송을 찾아보는 것처럼, 딸의 흔적을 찾기 위해 딸이 근무했던 병원을 계속해서 방문하는 이모와 언젠가는 재방송으로 자신의 모습을 기록하고 싶은 무명 배우 조카의 교감은 눈에 띄게 따뜻하거나 감동적이지 않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소소한 순간들을 보고 있으면 어느새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각자의 사연으로 인해 결혼식에 참여하기 싫어하는 둘을 가족들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둘만큼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앞으로 둘은 재방송처럼 계속해서 곁에서 웃고 울며 서로를 위로하는 관계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반딧불이가 이제 없는 게 아니라, 우리가 와서 숨은 것 같아." 떠난 사람을 애도하는 영화 <반디>

<반디> directed by. 최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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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더듬증을 앓고 있는 '반디'는 엄마 '소영'과 함께 친할머니 집에 가서 아빠 '원석'의 예전 흔적을 찾아간다.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진 아빠의 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반디는, 엄마와 함께 아빠가 어릴 적 '반딧불이'를 보며 놀았다는 뒷산에서 아빠의 추억을 따라간다.

 

평소에는 말을 더듬지만, 아빠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또박또박 잘 말하는 반디. 상기된 얼굴과 기대 섞인 목소리로 아빠처럼 반딧불이를 찾겠다고 산속을 휘젓고 다니는 반디를 보며, 이제는 아빠가 먼저 우리를 떠났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엄마는 힘겹게 반디의 스케치북에 진실을 적는다.

 

그런 엄마에게 다시 다가와 꼭 안아주며 반디는 '반딧불이가 이제 없는 게 아니라, 우리가 와서 숨은 것 같아'라고 말한다. 반디의 말처럼, 반디의 아빠는 눈앞에서 없어졌지만, 깊은 밤 반디와 소영이 잠든 사이에 반딧불이가 되어 둘을 예쁘게 비추고 있지 않을까.

 

 

 

"그냥. 그 표정이 좋아서." 청년들은 언제 웃을 수 있을까, 영화 <블루 해피니스>

<블루 해피니스> directed by. 이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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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준생 '찬영'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고, 공부를 병행한다. 그러던 도중 우연히 주식 투자로 성공한 동창생 '승민'을 만나게 되고, 주식의 길로 빠지게 된다.

 

주식 차트 속 순간의 등락에 연연해 하는 동안, 찬영은 사랑도, 친구도, 본인이 원래 하고 있던 일도, 그리고 자신의 오랜 꿈도 멀리하게 된다. 신세계를 맛본 직후의 찬영의 밝은 미소를 담은 카메라는 이제 없다. 변해가는 찬영을 바로잡기 위해 연인 '지은'은 찬영의 속사정을 듣고 싶어 하지만, 찬영은 묵묵부답이다.

 

취준생 신분으로 아르바이트를 할 땐 상상할 수 없었던 돈을 만지게 된 찬영은 지은과 때로는 맛있는 밥을 고민 없이 사 먹을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싶었을 뿐, 큰 걸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주식의 늪에 빠지면서 그마저도 좌절된 찬영에게 다시 웃을 날은 있을까.

 

20대라 그런지 코로나19로 인해 취준생들의 상황은 더 악화되고, 주식이나 코인 등으로 '한탕'을 바라보는 청년들의 모습을 담은 이 마지막 영화의 여운이 길게 갔다. 사실 우리 청년들도 터무니없이 큰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마음 편하게 맛있는 거 사 먹을 수 있는 안정적인 수입을 위해 자신을 갈아 넣으며 노력하고 있는 것인데, 정말 청년들에게 행복은 '블루(blue; 침울하다) 해피니스'라는 제목처럼 모순될 수밖에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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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프레임드>는 '연출에 도전한 배우들'이라는 것 이외에는 따로 공통된 주제를 잡고 진행한 단편 영화 프로젝트가 아니기 때문에, 기존에 접했던 옴니버스 영화들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감독으로 변신한 네 배우들이 담아낸 이야기들도, 그리고 연출 방식들도 모두 다 달랐지만, 결국 우리의 '인생'이야기라는 큰 공통된 프레임을 지니고 있었다.

 

살아오면서 한 번쯤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겪게 되는 따뜻함, 감동, 애도, 후회, 씁쓸함, 그리고 약간의 섬뜩함까지. 네 감독들이 각자의 눈으로 바라본 인생의 장면들을 모아 완성시킨 <언프레임드>를 두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보고 나면 희로애락을 한 번에 느낄 수 있다.

 

각 단편 영화들에 지문을 묻혀놓은 것마냥 연출자의 색깔이 분명하게 보이는 <언프레임드>. 아마 이 중에 당신의 취향이 하나 정도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왓챠에서 만나볼 수 있고, 나는 이 감독들의 차기작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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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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