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들은 무엇을 위해 싸웠는가? - 라스트 듀얼 [도서]

글 입력 2021.11.09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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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내가 발을 딛고 선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좋아한다. ‘결투’, ‘기사와 영주’, ‘중세시대’라는 이야기의 키워드는 내게 충분히 흥미로운 소재였다. 물론 <라스트듀얼>은 실제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야기지만, 현재의 나와 전혀 다른 상황 속의 실재였던 과거란 어쩌면 허구처럼 느껴지고 만다.

 

‘픽션’처럼 느껴져 책을 읽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라스트듀얼>은 단지 흥미로운 허구적 상상력이 주가 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이야기의 서사는 저자 에릭 재거의 탄탄한 고증과 역사적 사료에 기반해 일지처럼 묘사되고 진행된다. 더불어 프랑스와는 멀리 떨어진 한 국가의 현대인에게는 다분히 관계없는 사건처럼 느껴졌던 <라스트듀얼>의 메인 키워드인 ‘결투’마저도, 긴 시공간을 건너 와 닿는 또 다른 울림을 주었다. 그 시간과 거리를 뛰어넘어 전달되는 메시지가 확실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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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무엇을 위해 싸웠는가?


 

중세 봉건 사회의 기사 장 드 카르주는 소위 ‘잘 나갔던’ 기사였다. 그에게는 젊고 아름다운 새 아내와 오랜 친우 자크 르그리가 있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자신의 ‘뒤’에 있을 것만 같았던 친구 르그리가 어느새 백작의 총애를 받아 자신의 것이라 생각했던 토지까지 얻게 되자, 점점 르그리에 대한 적개심을 갖는다. 자신과 자신의 가문을 지키기 위해, 그는 잉글랜드 원정에 참여한다.

 

카루주와 르그리의 불편한 사이가 계속되던 중 공식적인 자리에서 둘은 겉보기식으로 화해하지만, 이후 둘의 사이를 영영 회복시키지 못할 사건이 터진다. 자크 르그리가 카루주의 아내, 마르그리트를 강간한 것이다. 마르그리트는 당시 여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묵인하지 않고, 남편에게 밝힌다. 이후 카루주와 르그리는 ‘결투 재판’, 즉 이 책의 메인 사건이 되는 그들의 마지막 전투에 임하게 된다. 이 전투에서 만일 카르주가 진다면 그는 죽게 되고, 마르그리트는 자동적으로 부정을 저지른 아내가 되어 화형에 처해진다.

 


(1) 장 드 카루주(Jean de Carrouges)의 싸움

 

장 드 카루주는 거듭 자신은 죄를 짓지 않았다는 르그리에 대적하여 자신의 아내의 억울함을 밝히기 위해 결투에 임한다. 그의 결투에 아내가 있었음은 명백하다. 그러나 과연 카루주의 싸움의 가장 큰 목적은 아내의 결백을 입증하고 진실을 쫓는 것이었을까?

 

카루주는 가문이 무엇보다 중요한 사람이다. 허영심과 욕심, 그리고 능력도 출중한 기사지만 그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문의 명예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는 르그리에게 땅을 잃은 것도, 그 친구 때문에 자신의 입지가 점점 줄어드는 것도 두고 볼 수 없는 문제였다.

 

르그리가 자신의 아내를 건드린 것은, 당시 중세 기사인 카루주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아내의 인권 유린이라기보다는 자신의 명예를 훼손한 것에 더 가까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 대상이 어느새 자신의 자리를 뛰어넘은 오랜 친구였을 때, 그의 결투의 목적이 어디로 향했는지 가늠할 수 있다.

 


(2) 자크 르그리(Jacques Le Gris)의 싸움

 

자크 르그리는 '사람 좋은' 기사다. 하급 종기사의 신분이었지만, 원만한 언변과 대인 처세술로 피에르 백작의 눈에 들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세를 불려 가다 생의 출발점부터 앞서가던 친구 카루주의 입지를 뛰어넘는다. 그리고 그는 오랜 친구의 아내 마르그리트를 겁탈하고 나서도, 자신의 죄를 부인한다.

 

자크 르그리에게 닥친 결투 재판은 자신의 욕심을 모두 실현할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만일 결투에서 이긴다면, 르그리는 신성한 신이 허락한 전사가 되며, 깨끗하게 무죄로 남는다. 더불어 당시 사람들의 이목이 쏠린 결투를 통해 유명세와 부 또한 함께 얻게 된다.


비록 그 욕심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으나, 당시 기사들은 결투와 전쟁, 그리고 죽음과 가까운 존재들이었다.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으면서, 르그리는 결투에 임한다. 승리 시 얻게 되는 이익에 비하면, 그에게 거짓을 고수하는 것은 너무나도 쉬웠다.

 


(3) 마르그리트(Marguerite)의 싸움

 

마르그리트는 출생부터 절대적으로 열세의 위치에 놓여 있다. 그의 가문은 ‘배반자’라 낙인 찍혔으며, 여성이 인간 자체로서가 아닌 남편의 부속이자 재산으로 취급되던 시대에 여성으로 태어났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와는 크게 상관없는 결혼을 하게 되고, 오랜 시간 난임으로 주변의 부정적인 시선을 받는다.


그러나 마르그리트는 으레 주변이 그랬던 것처럼, 본인에게 닥친 상황을 무마하거나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시 상황에서 본인이 할 수 있는 선에서 가장 강경하게 문제에 직면한다. 마르그리트는 검을 들고 결투장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사건의 진실을 논하고 그리고 자신의 입장을 대변해 억울함을 밝힌다. 오직 진실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움에 임한 것이다. 그리고 세 사람의 '라스트 듀얼'에서, 진실을 위해 싸운 것도 오직 마르그리트 한 사람이었다.

 

 

 

픽션 속에서 현실적 맥락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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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라스트듀얼>은 우리의 현실과는 먼 사건의 소재들로 인해 마치 픽션처럼 느껴지기 쉽지만, ‘삶이라는 개별적인 결투 아래 어떤 목적을 갖고 싸우느냐’에 대한 현실적인 의문을 던진다. 책의 세 등장인물들처럼, 우리는 같은 일에 종종 다른 목적과 이유를 가진 채 접근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근본적인 진실은 가려지기 쉽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픽션처럼 느껴지는 서사에 현실의 맥락이 녹아 있는 이야기다. <라스트듀얼>은 바로 그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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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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