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행복할게요. 행복하세요!

어차피 오해는 필연적이라면
글 입력 2021.10.29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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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밤늦게 택시에서 내리는데 기사님이 그러셨다.

 

“행복하세요~”

 

이 말을 텍스트가 아닌 말로 들은 게 언제였더라. 행복하세요, 어쩌면 텍스트로도 조금 촌스러운 느낌이 든다. 꽃이나 무지개나 떠오르는 태양을 배경으로 ‘오늘도 행복하세요’ 또는 ‘늘 행복하세요’라는 문장이 바탕체나 손글씨로 적힌 이미지가 떠오른다. 우리가 너무 쉽게 사용해서 그 말의 힘을 잃어버린 그런 문장. 그걸 말로 들으니 어색하면서도 귀에 계속 맴돌았다.

 

행복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1. 복된 좋은 운수 2. 생활의 만족과 삶의 보람을 느끼는 흐뭇한 상태 라고 적혀있다. 아마도 보통 사람들은 행복의 의미를 두 번째 의미로 더 많이 쓰고 있을 것이다. 생활의 만족과 삶의 보람. 사람들은 보통 잠들기 전 걱정이 없을 때, 삶을 잘 살고 있다고 느낄 때 행복하다 표현하니까.

 

사실 ‘행복하세요’는 어법 상 맞지 않는 표현이다. ‘가다’, ‘먹다’ 같은 동사는 명령형으로 쓸 수 있지만 형용사는 명령형으로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잘생기세요’, ‘나쁘십시오’ 같은 말을 우리가 쓰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행복하세요’와 더불어 우리가 자주 쓰는 ‘건강하세요’ 역시도 잘못된 표현이다. 말은 공식처럼 딱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관용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예외들이 존재한다. 이 표현도 그 중 하나로 명령의 의미보다는 화자의 바람을 담은 표현이 되었다.

 

 

ⓒ임윤수.jpg

ⓒ임윤수

 

 

택시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가면서 나는 지금 행복한지 생각했다. 글쎄, 정해진 것 없는 불안한 상황을 일년 넘게 이어가고 있고 내가 원하는 삶은 지금의 삶에서 너무 멀다. 매일, 하루에도 몇 번을 바닥과 수면 위를 오간다. 그래도 친구들과 맛있는 걸 먹고 이야길 나누다 택시를 타고 편히 왔으니 이 정도면 행복하다 말할 수 있을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기사님 덕분에 행복이라는 감정을 잠시나마 생각했다는 것이다.

 

감정은 찰나다. 행복 역시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행복이 계속된다면 그것을 행복이라 부를 수 없을 것이다. 빛이 있어야 그림자가 생기듯, 슬픔 뒤에 찾아오는 행복이야말로 진정 달콤하니까. 그리고 그 찰나의 감정을 찾아내고 즐기는 것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나는 그래서 우리가 어법도 맞지 않는 ‘행복하세요’라는 명령문을 쓰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삶에서 행복을 찾아내려면 품이 많이 든다. 마음에 최소한의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니까. 만원 지하철, 만원 버스 안에 사람들 사이에 끼워져 출근하고, 진상 고객들의 비위를 맞추려 자신을 죽이고, 똑같은 하루를 반복해나가는 와중에 여유를 가지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다.

 

그런 우리에게 누군가의 바람을 담은 이 따뜻한 명령은 과거의 실수와 미래의 불안 사이에서 살아가는 우리를 현재로 가만히 데려온다. ‘나 지금 행복한가’, ‘잘 살고 있나’ 되묻고 지금의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건강하세요’도, ‘씩씩하자’도 그렇다. 이런  비문법적 표현들은 상대방의 안위를 걱정하고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 걸 보면 문법적 오류도 꽤나 아름답지 않은가.


*

 

스페인 철학자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Jose Ortega y Gasset)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말은 결핍이다.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다 담지 못한다. 모든 말은 과잉이다. 내가 전하지 않았으면 했던 것들도 전하게 된다.”
 

 

말이라는 것이 그렇다. 말하는 사람의 의도와 전혀 다르게 전달되기 쉽다. 그것이 누군가에겐 상처가 되기도 하고 뜻밖의 위로가 되기도 한다. 삶을 계속 나아가게 하고 한 순간 무너지게 만든다. 우리는 수없이 내뱉는 말들의 결핍과 과잉 사이에서 간신히 서로를 이해하고 그보다 훨씬 많은 오해를 안고 산다.

 

말이 그런 것이라면, 나는 가능한 한 상처 대신 위로와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말을 하고 싶다. 스치는 인연이든 오래 이어질 관계든 대화에서 오해는 필연적이다. 어차피 오해할 거라면 나의 말이 내 의도와는 상관없을지라도 좋은 방향으로 전해졌으면 한다. ‘안녕히 가세요’, ‘감사합니다’도 아닌 ‘행복하세요’라고 인사하셨던 그 기사님처럼.

 

예기치 못한 말에 당황해 그 말에 대한 고마움을 반의 반도 담지 못하는 어색한 답변을 하는 대신, 언제든 능숙히 내가 받은 친절을 되돌려 줄 수 있는 말을 하는 사람이고 싶다. 그래서 나는 스치듯 마주하는 낯선 이의 온기를 잘 담는다. 이렇게 글로, 사진으로, 혹은 감각으로. 언젠가 마주칠지 모를 기사님에게, 따뜻한 오해로 연결될 타인들에게 다시 돌려주기 위해 준비한다. ‘감사합니다’라는 말 대신 어떤 대답이 좋을까. 나는 아마도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행복할게요. 행복하세요!’

 

 

 

컬쳐리스트_신소연.jpg

 

 

[신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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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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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달스
    • "말의 힘"을 알고 나서 생긴 버릇이 있다....침묵
      말을 할때 이 말을 해도 될까하다가...생각해보니 쓸데없는 얘기 같아 안하게 되고, 말수가 점점 없어진다.

      그러다가 또 후회한다.....말을 안해서 후회되는 것들이 생긴다.... 이런 된장....뭐 어쩌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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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달스
    • 이해는 바라지도 않는다....오해만 하지말아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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