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 안에 있는 '태양'을 찾아서 - 연극 '태양'

인간 존재의 본질을 찾는 여행, 연극 <태양>을 만나다
글 입력 2021.10.18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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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존재가 태양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중학교때 어렴풋이 배운 태양의 개념이란 '지구 지름의 109배이며 지구 질량의 33만 배'라는 것 정도인데, 태양이란 실체에 대해 깊이 기억에 남는 것은 없다.

 

그래서 다시금 상기해보았다. 태양의 실체는 모를지언정 우리에게 태양의 의미는 무엇일까. 분명한 바는 태양이 에너지의 근원이자 태양계의 유일한 별이라는 것이다. 태양이 있으므로 세상에는 낮과 밤이 있다. 태양없이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태양이 없다면 대기와 물의 순환은 멈추고, 태양열을 통해 삶을 지탱해온 모든 생명들의 숨이 멎는다.

 

하이얗게 밝은 태양을 정면으로 본다면 우리는 실명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태양은 너무나도 밝고, 그 밝은 나머지 죽을 때까지 태양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똑바로 쳐다볼 수 없는 그 '태양'으로 인해 이 생을 살아나가는 존재다. 말하자면 태양에게 목숨을 빌린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그만큼 태양은 인간에게, 더 나아가 생명에게 '필연'인 존재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태양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린 연극이 등장했다. 그들이 살아가는 배경은, 바로 마에카와 토모히로 작가의 SF 연극 <태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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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초, 세계인구는 바이러스로 인해 급감한다. 하지만 감염자 중 바이러스 항체가 생긴 사람들의 몸이 더 강하고, 더 오래 젊음을 유지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들은 신인류로 부상하지만, 자외선에는 매우 민감해 밤에만 활동할 수 있어 밤의 인간이라는 의미로 '녹스'라 불린다. 우월한 신체를 가진 녹스는 정치 경제를 이끌어가는 존재가 된다.

 

어느 날, 구인류가 모여 사는 작은 마을에서 녹스 한 명이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 사건으로, 바로 옆 녹스 자치구는 이 마을에 경제적 지원을 끊어버린다. 마을은 고립되고, 사람들은 하나, 둘 마을을 떠나 이제 남은 주민이라고는 스무 명 남짓. 그렇게 10년이 지난 뒤, 마을의 봉쇄가 풀리고, 다시 구인류와 녹스의 왕래가 시작되는데..

 

- 연극 <태양>의 줄거리 중에서

 

 

연극 <태양>은 우리가 어렴풋이 느끼고 있는 태양의 의미를 한껏 살리면서도 인간 존재의 의미를 유쾌한 동시에 심오하게 질문하는 극이다. 곧 무너질 것같은 위태로운 하늘 아래, 텅 비어 자유로운 땅만 남겨진 무대 위. 그 속에서 <태양>이 시작된다.

 

오직 밤이 되어야만 사는 신인류 녹스와 태양 아래에서 삶을 이어가는 구인류 큐리오들. 이 둘의 완벽한 대비를 한 공간에서 그려낸 <태양>은 공연 내내 이분법적인 환경과 인물 특성을 드러낸다.

 

자외선에 민감한 녹스는 태양빛을 보면 몸이 타죽고 말기에 언제나 밤 안에서 생활을 이어간다. 그들의 몸짓은 마치 AI를 연상케하듯 기계적이며 부자연스럽다. 그들은 냉철할 정도로 이성적인 사람이며, 감정에 치우치는 법이 없다. 늙지도 않는 건강한 젊음, 강건한 육체를 지닌 녹스는 무서울 것이 없다.


"곧 알게 돼. 그동안 얼마나 비합리적인 사고를 하고 살았는지."

 

녹스가 된 레이코의 말에 따르면 큐리오들은, 즉 태양 아래 사는 인간이라면 비합리적인 사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두부 모 자르듯 이성적인 녹스와 달리 큐리오의 삶은 복잡하다. 큐리오는 지나치게 감정적이며, 사고보다 행동이 앞선다. 인물 간의 갈등은 숨쉬듯 벌어지곤 한다. 이들을 보고 녹스가 "도저히 저 사람들을 같은 인간으로 받아들일 수 없어"라 말할 정도니, 큐리오는 여전히 인간적인 한계에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연극 <태양>에서 그리는 이들 간의 상호작용과 갈등은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을 만큼 '역동적이다'. 그들은 서로를 미워하기도, 궁금해하기도, 밀어내기도, 동시에 참을 수 없을 만큼 그 경계를 넘고 싶어한다. 마치 이들은 서로의 모습을 보며 '본래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질문하는 듯 보인다. 태양을 등지고 사는 인간과 떠오르는 태양빛의 한줄기조차 피할 수 없는 인간. 이들은 서로가 결핍된 것을 가지고 있고,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을 결핍한 자들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태양>은 우리에게 혼란스러움의 보따리를 던져준다.

 

그래서 과연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데?

 

 

 

우리 안에 있는 '태양'을 찾아서


 

필자는 연극 <태양>을 현장에서 100% 이해했다고 느낄 수 없었다. 이 극이 제시하는 '인간성'과 '인간 존재'의 근원을 오직 밤의 인간, 낮의 인간의 대비만으로 깨달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밤의 인간은 아무리 잘났어도 태양을 보면 타 죽는 존재니, 결국 우리는 태양을 벗어나 살 수 없다. 태양이 있기에 우리가 살아간다!'는 일차원적인 교훈이 이 극의 전부라고 믿지 않았다.

 

말하자면 이 극은 우리에게 '인간은 이런 존재야'라고 정답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우리 안에 있는 '태양'이 무엇인지 관람객 개인에게 묻고 있는 것 같았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본 극에서 녹스와 큐리오는 팽팽한 신경전과 갈등 끝에, 극적으로 '공존'을 선택하게 된다. 필자가 느끼기에 극의 결론에 다다라서 전개가 갑자기 빨라졌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지만 결국 극의 끝에서 말하는 의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공존해야 한다'는 메세지였다.

 

그러나 그런 아름답고 고리타분한 메세지가 이 극의 전부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분명 극이 끝나도 관객의 가슴 속에 무언가 거대한 '질문'을 남기는 것이 연극 <태양>의 제작의도라 믿었다. 그래서 그들이 숨겨놓은 질문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았다.

 

그러다 문득 스스로에게 '태양'의 존재를 되묻는 순간이 왔다. 그 태양은 이 글을 시작할 때 언급했던 항성으로서의 '태양'이 아니다. 내 안에서 존재하지 않을 때 스스로가 없어져버릴 수도 있는, 혹은 내 본래의 정체성을 잃게 할 수도 있는 그런 중심의 존재로서의 '태양'이 무엇인지 자문하게 되었다.

 

녹스와 큐리오는 비단 미래시대의 '인간 군상'만으로 단정지을 수 없는, 어쩌면 우리 안에서 살고 있는 밤의 인간과 낮의 인간이 아닐까. 합리적인 척, 잘난 척하면서도 허점을 지울 수 없는 교만한 우리네의 모습이 '밤의 인간' 녹스라면, 타당한 척하면서도 비합리적인 행동을 일삼는 '낮의 인간' 큐리오는 인간의 본성 그 자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건 비단 항성으로서의 태양 유무를 떠나 모든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이분법적인 자아일 것이다.

 

연극 <태양>이 제시하는 녹스와 큐리오의 공존은 작게보면 개인 스스로가 맞이하는 '통합'일 수 있고, 더 나아가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 간의 '연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자아와 사회가 모두 분열되기 딱 좋은 이 시기에, 더 완벽한 분열을 조장하는 것이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합과 연대'를 외친 이 작품이 뜻깊게 느껴졌다. 물론 쉽지 않은 길이다. 그것이 한 사람의 변화든, 집단의 변화든.

 

극이 끝나는 시점에서 '밤의 인간' 녹스인 요지는 큐리오이자 그의 친구였던 '낮의 인간' 소이치의 손을 잡고 뜨거운 태양 아래 삶의 매듭을 짓는다. 요지는 말한다. "태양을 등지고 살면 안 돼." 그의 외침은 우리에게 '잃어버렸던 태양을 꼭 찾으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오늘도 태양은 뜨고, 지며 하루가 흘러간다. 태양이 선물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각자만의 태양을 찾을 수 있을까? 언젠가 스스로 안에서 밝게 타오르는 태양을 찾아, 태양이 없는 시간조차 눈부실 정도로 화려한 빛을 뿜어내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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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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