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두 조각 사랑의 필요조건 [공연]

"나를 부정하면 파멸하리라"
글 입력 2021.10.11 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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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헤드윅>의 메인테마는 ‘사랑의 기원’이다. 플라톤의 <향연> 속 신화와 함께 헤드윅은 묻는다. 그렇다면 나의 반쪽은 어디 있는지, 나와 닮았는지, 다르지만 잘 맞을지. 관객에게, 그리고 헤드윅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헤드윅>이 전하는 메세지는 사랑의 ‘기원’보다는, ‘시작’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헤드윅>은 모든 사랑의 시작이 궁극적으로 어디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때문에 본 글은 사랑의 시작점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다.

 

뮤지컬 원작의 <헤드윅>은 성전환 수술에 실패, 1인치의 살덩어리만 남은 ‘헤드윅’의 이야기이다. 공연은 헤드윅, 그리고 ‘성난 1인치(the Angry Inch)’ 밴드의 단독 콘서트 형식으로 진행된다. 헤드윅은 자신의 유년시절부터 시작해 실패한 성전환 수술, 떠나버린 루터와 무너져 내린 베를린 장벽, 이어 자신의 음악을 뺏아간 토미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인생을 노래한다.

 

 

[크기변환]hedwig.jpg

 

 

 

1. 사랑의 가치관


 

<헤드윅>에는 크게 두 종류의 사랑의 가치관이 등장한다. ‘종류’의 구분이 옳은 분류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든 메인 인물인 헤드윅과 토미의 사랑에 대한 가치관은 비슷한 듯 미묘하게 다르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뮤지컬과 영화 <헤드윅> 속 헤드윅과 토미의 대사, 행동으로 유추할 수 있는 부분에 한해 이루어진 개인적인 해석이다.

 

 

1-1. 헤드윅, 플라톤 <향연>

 

 

 

넘버 자체가 워낙 유명해서 많이들 들어보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극의 초반 헤드윅이 부르는 넘버 Origin of Love이다. 이 노래는 헤드윅이 그리는 사랑의 모티브가 되는 중요한 노래인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Origin of Love는 태초에 인류가 두 사람이 등을 붙이고 있는, 네 개의 팔다리와 두 개의 얼굴을 가진 모습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인간을 경계한 신들이 인간을 반으로 갈라놓았고 현재 우리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신화에 따르면 인간은 과거의 ‘온전’한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자신의 반쪽을 찾는 여정을 하는 존재이다. 이는 플라톤의 <향연> 속 아리스토파네스의 신화를 차용한 것이다. 헤드윅의 사랑은 플라톤의 <향연> 속 신화, 어린 시절 어머니가 들려준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크기변환]origin of love.jpg

 

 

헤드윅에게 사랑은 ‘하나’가 되어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자신의 결핍을 충족시키는 ‘욕망’이다.

 

헤드윅은 Origin of Love처럼 사랑을 온전한 한 조각이 되는 일이라 생각한다. 반쪽에 집착하는 것도 이때문이다. 헤드윅은 반 쪽으로 남고 싶지않다. 그는 사랑이 하고 싶고, 이를 통해 완전한 조각이 되고 싶어한다.

 

뮤지컬에서 헤드윅은 한 조각이 되면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나기에 신들이 벌벌 떨었을지 궁금해한다. 그리고 토미를 만난 후 헤드윅은 깨닫는다. 사랑, 하나됨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말이다. 신들을 벌벌 떨게 한 것은 ‘창조’라는, 사랑의 산물이었다. 이는 영화에서 사랑이 무엇이라 생각하냐는 토미의 물음에, ‘무엇인가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 이라 답하는 헤드윅을 통해 알 수 있다.

 

또한 ‘온전한 하나’가 되는 일은 헤드윅의 결핍을 감싸주는 기제로 작동한다. 장벽이 무너지기 전에는 자유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성전환 수술이 실패하고 루터가 떠난 뒤에는 애정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그는 반쪽을 찾아 헤맸다. 그에게 사랑은 자신의 결핍을 채우고 싶은 욕망의 한 형태이다. 실제 ‘사랑의 기원’ 신화가 담긴 플라톤의 <향연> 속 메인 소재는 에로스론인데, 에로스론이 궁극적으로 주장하는 사랑은 무언가를 향한 ‘욕망’이다. 이때 욕망의 이유는, 바로 ‘결핍’이다.

 

정리하자면 헤드윅은 하나가 됨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완전해지길 원하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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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토미, 아담과 이브

 

토미의 사랑은 아담과 이브에서 시작한다. 토미는 가장 행복한 천국은 이브가 아담 안에 있을 때라고 생각한다. 토미의 사랑 역시 ‘하나됨’이다.

 

토미는 ‘하나’가 되기 위해 많은 것을 공유하고자 한다. 토미와 헤드윅의 관계가 ‘선악과를 달라’던 토미의 말에서 출발한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이후 헤드윅은 토미에게 자신이 살아온 그간의 인생을 털어놓고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그리고 헤드윅은 자신의 이야기 뿐 아니라 음악적 지식을 비롯해 자신이 아는 모든 것, ‘지(앎)’을 전한다.

 

그러나 토미는 결국 떠난다. 이브의 선악과를 달라던 토미가, 그다지 좋은 아담은 아니었던 듯 하다.

 

 

[크기변환]tommy.jpg

 

 

1-3. 헤드윅, 그리고 토미가 바라보는 곳

 

헤드윅과 토미의 사랑은 모두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바라보는 곳은 너무나 다르다. 헤드윅의 사랑은 두 사람이 등을 맞대고 세상을 바라보는 형태이다. 그의 시선을 외부를 향한다. 반면 토미는 이브가 아담안에 들어간, 완전한 결합의 형태로 토미의 시선은 내부를 향한다. 두 사람이 그리는 정반대의 시선은 함께 하지 못하는 결말을 예견하는 듯 보인다.

 

 

[크기변환]origin of love_2.jpg

 

 

어찌되었든 <헤드윅>은 ‘하나됨’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하나가 되어야 하며, 우리는 어떤 사랑을 해야 하는 것인가.

 

 

 

2. 나를 부정하면 파멸하리라


 

“Deny me and be Doomed (나를 부정하면 파멸하리라)"

 

 

[크기변환]denymeandbedoomed.jpg

 

 

영화 <헤드윅>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문구다. 아마 <헤드윅>의 궁극적인 주제를 가장 잘 함축하는 문장이 아닐까 생각한다.

 

<헤드윅>은 본 글의 시작에서 언급했듯 ‘잃어버린 반쪽을 찾는 여정’이다. 다만, 이 반쪽을 멀리 있는 누군가에게서 찾아서는 안된다. 우리의 여정은 ‘나’로부터 잃어버린 반쪽을 찾는 일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일단 나 자신이 온전한 한 조각이 되어야 한다.

 

헤드윅이 누군가를 아무리 애타게 사랑해도 이루어지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헤드윅은 아직 반쪽이니까. 자신과 닮은 이츠학을 억압하며 자신을 부정하는 그가, 아직 자기 자신도 사랑하지 못하는 그가 어떻게 다른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겠는가.

  

사랑의 시작은 나 자신이다. 잃어버린 반쪽은 나에게서 찾아야 한다. 나 자체가 온전한 조각이 되면 우리는 비로소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 그렇게 두 조각, 세 조각, 키워가는 것이다.

 

뮤지컬 <헤드윅>이 오는 31일까지 공연된다. Covid-19로 관객이 함께 즐기지 못하는 것도, 너무 큰 대극장 무대도 다소 아쉽지만 또 그런 상황이기에 오는 감동이 있으니 기회가 된다면 관람하시길 바란다.

 


[이시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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