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 지금 쉬어도 되는 걸까? [사람]

글 입력 2021.10.07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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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봤던 인상적인 TV 광고가 있다. 모 침대 회사에서 선전하는 2가지 종류의 광고였는데 각각 명인의 연설 영상이 나온 뒤 잠의 중요성을 언급하는 형식이었다. 한 광고는 삶에서 잠은 중요하지 않으며 하루에 4시간만 자면 충분하다고 연설하는 에디슨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또 다른 광고에서는 삶에서 휴식은 중요하며 휴식이 없는 삶은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와 같다는 헨리 포드의 연설이 담겨있었다. 모든 욕망 중 수면욕이 1순위이던 나에게 에디슨의 말은 그저 미치광이 천재의 말처럼 들렸다. 때문에 더 기억에 남으면서도 마음이 갔던 쪽은 헨리 포드의 연설이 담긴 광고였다.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는 불량품을 넘어 살인무기가 될 수 있다. 그만큼 포드는 목적이 있는 삶에서 휴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은유하고 있다. 무언가에 정말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 사람에게 포드의 이 같은 연설은 큰 위로가 될 것이다. 기계인 자동차도 쉼이 있어야 하는데 하물며 사람은 어떠하겠는가?

 

하지만 군을 전역한 후인 6월 말부터 이듬해 2월까지 긴 시간 동안 휴학 중인 나의 입장에서 이러한 위로의 말은 오히려 위기감을 느끼게 한다. 9월에 바로 복학을 할지에 대한 고민이 끝없이 이어지던 찰나에 같이 입대를 한 친한 대학 동기들은 휴학을 결정했다. 하는 수없이 나 또한 긴 인생에서 잠시 쉬어가면 어떤가 생각하면서 휴학을 마음먹었다. 쉬는 동안 독서도 하고 다양한 장르의 영화도 보면서 문화적 소양을 쌓고 싶었으며 대외활동 등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시야와 생각을 넓히고 싶었다.

 

그러나 늘 그렇듯 인생은 원하는 데로 흘러가지 않는다. 난독증 때문인가 책 읽기가 힘들고 넘치는 시간에 비해 영화도 적게 보고 있다. 무한하게만 느껴지는 시간 속에 하루하루를 낭비하고만 있으며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다.

 

자동차는 목적지를 향해 가기 위해서 존재한다. 브레이크도 물론 필수적인 요소겠지만 액셀이 없다면 자동차의 존재 이유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나는 목적도 방향도 잃어버리고 드넓은 북미 사막 한가운데에 멈춰버린 자동차와 같이 느껴진다. 기름이 없어서 어디로도 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빠르게 지나가는 차들을 보며 나도 어디론가 가야 할 것만 같은 위기감과 불안감이 든다. 긴 시간 속을 정처 없이 떠돌다 보면 목표를 위한 휴식은 그저 명분처럼 느껴지고 쉼 자체가 스스로를 퇴보시키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면서도 움직이지 않는 나의 몸뚱이와 굴러가지 않는 머리가 한탄스럽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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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영화 ‘위플레쉬(2015)’의 주인공 앤드류(마일즈 텔러)처럼 독해야 한 분야의 최고가 될 수 있다. 땀이 흐르고 피가 튀면서도 눈물을 머금고 노력의 노력을 거듭하는 것이 최고가 되는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누군가는 그렇게 해서 최고가 되겠지만 나의 꿈은 그렇게까지 원대하지 않다. 소박하고 평범하더라도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다면, 나라는 인간의 독창성이 깨지지 않고 살 수 있다면 그 자체로 값진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의 독창성은 글쓰기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하기에 꾸준히 글을 쓰려 노력하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시대인지를 잘 안다. 우리는 평범해지기 위해 눈물 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렇기에 적지 않은 월급으로 평생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공무원으로 눈길이 돌려지는 것이 현실이다. 하나 둘 주변 지인들이 공무원으로 자신의 목표를 돌릴 때 나는 ‘대체할 수 없는 나’를 만들고 싶은 마음을 간직한 채로 묵묵히 나의 길을 가고 있다. 그러나 과연 내가 ‘무언가’가 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에 고개를 절로 숙인다.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친한 친구 S는 수도권 소재의 유명한 공대에 입학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열정과 노력에 비해 그렇지 못한 자신에게 한계를 느낀 그는 지방 공무원 시험을 치러 지난 9월부터 일을 시작했다. 이른 나이에 자신의 꿈을 저버리고 공무원이 된 S가 안타까우면서도 저게 현실인데 나는 그냥 그걸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끊임없이 생각했다. 내가 ‘별거’인 인간인 것, ‘아무나’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서 뻐팅기는 건가 고민했다. 누군가는 이른 나이에 돈을 벌고 또 다른 누군가는 꿈을 향해 계속 달려가는데 나아가지는 못할망정 멈춰있는 나 자신이 한심하게만 느껴졌다.

 

인생이 재미없다는 대학 친구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나름 유쾌한 삶을 살아왔다. 때문에 그 친구처럼 무엇을 해도 재미가 없고 의욕이 서지 않는 ‘노잼 시기’가 나에게도 올 거라고는 한 번도 상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휴식기를 가지면서 오히려 ‘노잼 시기’를 겪고 있다.

 

집 안에서 천장을 보며 누워있다 보면 끝없이 침잠될 거 같은 때가 있다. 누군가 날 끌어올려 주길 바라는 나의 간절한 외침은 흰 벽에 부딪혀 맥없이 땅으로 떨어진다. 결국 이 상황을 이겨내는 일은 오로지 나의 몫이다.

 

누군가에게는 긴 휴식이 평안을 줄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불안을 안겨주었다. 무언가를 하면서 얻는 성취가 오히려 나에게 만족과 편안을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기에 이 글을 쓰면서 스스로를 일으켜 ‘무언가’가 되기 위해 ‘무엇’이든 해보자고 다시금 마음먹어본다.

 

결심이 쉽게 무너질 수도 있겠지만 금방 다시 일어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사막 한가운데에 멈춰있는 망가진 자동차가 아니라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리는, 그래서 가끔의 브레이크가 정말 달콤하게 여겨지는 삶을 살아가자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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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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