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동화와 꿈의 세계에 초대받은 기쁨, 빛과 그림자의 판타지展

글 입력 2021.08.19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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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게에 거장 후지시로 세이지 : 빛과 그림자의 판타지] 전이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카게에'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무작정 전시회장 내부에 들어서자마자 이전에는 본 적 없는 낯선 장르의 작품들의 나를 압도했다.

 

카게에란 일본어로 '그림자 그림'을 의미하며 이름 그대로 종이를 오려 붙이고 그곳에 빛을 비추어 완성하는 작품이다. 처음 카게에에 대한 설명을 듣자 어릴 적 유치원에서 했던 미술놀이가 생각났다. 신문지나 색종이들을 잘게 잘라서 밑그림 위에 붙이던 놀이. 시큼한 풀냄새가 진동했었고 열 손가락이 모두 풀 때문에 끈적했던 기억이다.


분명 처음 접해보는 카게에 작품들인데 작품을 감상하는 내내 묘한 기시감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다. 어두운 전시회장 내부, 빛과 그림자로만 이루어진 작품들을 바라보며 걷는 동안 내내 몽롱했고, 나는 이런 몽롱함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꿈과 동화다.

 

작품 제작 방법부터 동심을 자극했던 후지시로 세이지전의 다양한 카게에들을 보며 나는 마치 동화 속을, 꿈속을 걷는 듯했다. 작품 중 동화책이나 다른 여러 설화의 삽화, 이미지 등으로 쓰였던 것이 많았다.

 

그렇기에 후지시로 세이지전은 모두 작품 그 자체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다양한 이야기가 스며들어 있는 풍부한 도서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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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시로 세이지의 작품은 내 머릿속에서 크게 '무채색인가, 다채로운가'로 분류되어 기억에 남아있다. 우선 오직 흑백으로만 이뤄진 작품들이다. 다른 어떠한 방해물 없이, 오직 색조 없는 무채색계열의 빛과 그림자로만 만들어진 카게에작품들은 강렬했다.

 

극단적인 흑과 백, 오려 붙인 종이와 함께 직선으로 떨어지는 형상들은 전시 관람객들의 시선을 순식간에 사로잡았다.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그렇게 강렬하면서도 동시에 간결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그림의 개성이 잘 표현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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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오공의 얼굴 <사진: 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이러한 특징은 '서유기_손오공의 얼굴'을 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작품에는 오직 검은색, 회색, 흰색만이 존재한다. 명암이나 광이 표현되어있지도 않아 어둡게 표현된 부분은 '검정' 그 자체이며, 희게 표현된 부분은 '하양' 그 자체다.

 

그렇다고 선을 섬세하고 완만한 곡선으로 디테일하게 사용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후지시로 세이지의 특징인 직선이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종이를 잘라 제작하였다는 것을 증명하듯 모두가 뾰족뾰족하다.


그러나 그곳에 표현되어있어야 할 손오공의 모습은 전부 표현되어있었다. 치켜 올라간 눈썹, 굳게 닫힌 입술과 표정은 드세기로 유명한 손오공의 성격, 더 나아가 그런 손오공과 함께 만들어지는 서유기의 천방지축 이야기들까지 오롯이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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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나는 난쟁이 <사진: 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또다른 무채색 작품 '하늘을 나는 난쟁이'에서도 앞서 이야기했던 특징들이 너무 잘 드러나 있다.

 

이 작품에서는 배경 형체를 흐릿하게 처리해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 속에서 풍선에 매달려 공중을 날아다니는 우산, 빗자루처럼 타고 있는 수저와 포크, 무엇보다도 그곳에서 역동적으로 활발히 움직이고 있는 난쟁이들.

 

비현실적인 장면들에 마치 꿈속에 들어온 것만 같은 몽환적인 느낌을 받으며 작품 속 이야기들을 나도 모르게 추측해보게 된다. 저 난쟁이들은 어떤 상황 속에서 저렇게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일까? 지금 신난 것일까? 놀란 것일까? 혹은 화내고 있나? 마치 고조되는 만화영화의 한 장면을 캡쳐한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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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노래하다 <사진: 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반대로 다채로운 작품들 속에서는 채도 높은 배경 속 인물에만 짙은 암흑으로 그림자 져 있다. 눈썹은커녕 입꼬리도 가려져 표정 하나 보이지 않는 인물들의 모습을 보며 판타지의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서 묘한 기이함을 느끼게 된다. 아름다운 풍경들이다. 정말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동화같은 풍경들이다.

 

그러한 배경에 속에서 작품의 인물들은 어떤 상황에 높여 어떤 이야기들을 하고 있을까. 마냥 아름다운 이야기 같다가도 그것이 그저 나의 착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감히 유추해내기가 어렵기에 그저 꿈속을 거닐듯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나를 응시하는 그림자들을 함께 응시할 뿐이다.


최근 동화책을 읽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삶이 건조할 때이면 위로를 주거나 동기부여 해주는 콘텐츠를 많이 봤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흡수시키기 힘들 정도로 체력이 고갈되어 있었다. 이러한 와중 선택한 것은 눈을 끔벅이던 더 옛날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조건 없이 사랑받으며 걱정의 개념도 생성되기 전이었던 그때 보았던 환상들을 다시금 보기 시작하는 것. 건조한 삶 속에서 동화책은 위안이었고, 되돌려받은 동심은 나를 치료해주었다.


이런 나에게 [카게에거장 후지시로 세이지 : 빛과 그림자의 판타지]는 동화책 안으로 들여보내주는 마법 같은 전시였다. 어린아이로 돌아가 빛과 그림자에 매혹되어 한참 동안 놀이동산에서 뛰어논 듯한 기분이었다. 전시회가 끝난 이후, 후지시로 세이지 거장이 남긴 메세지가 이 전시회를 보고 느낀 감정을 그대로 감싸주었다.

 

*

 

"전람회를 찾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 여기에서 만났던 것을 마음속에 간직해주세요. 그리고 문득 떠올려 주세요. 그때, 아름다운 빛이 마음속에 들어온다는 것을. 마음에 그늘이 있다면 밝은 빛으로 감싸 준다는 것을 빛과 그림자가 조화를 이뤄 마음에 평온을 주고 작은 꿈이, 커다란 희망이 삶의 기쁨으로 될 수 있기를. 또 만납시다."

 


[김혜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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