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하늘 따라 가는 산책

글 입력 2021.07.21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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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오키나와 여행 중 담은 하늘

 

 

내가 지금껏 봤던 하늘 중 단연코 가장 아름다웠던 하늘은 오키나와의 하늘이다.

 

그런데 어쩐지 요 며칠-가장 무더웠던 며칠-간의 하늘은 오키나와의 하늘과 닮아있다. 여름의 오키나와는, 정말, 쨍-하게 덥다. 한국의 여름이 행인들을 찜통 속 만두로 만드는 더위라면, 오키나와의 여름은 나의 머리 뚜껑을 프라이팬으로 만드는 더위다.

 

오키나와의 하늘을 이야기하자면 낮디 낮았던 구름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구름과 구름 사이 간격을 재어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정말 어딜 가든 머리맡에 구름이 따라다녔다. 더위만큼이나 쨍하게 파란 하늘에 푹신하고 하얀 구름이 겹겹이 있는 풍경은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그 찬란한 구름에 깔려버릴 것 같았던 날들.

 

*

 

산책이란 어쩜 이렇게 손쉽게 사람의 죄책감을 덜어내는 걸까. 온종일 느적거려도, 아침에 쓴 체크리스트 목록을 하나도 채우지 못해도, 산책 몇 십 분이면 그럭저럭 괜찮은 하루가 뚝딱 완성되어 버린다. 몸을 일으켜 신발을 신고 다리를 교차해 움직이는 것만으로 어딘가에 도착한다는 사실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색하다. 이 놀라운 기동성이라니. 지하철이나 버스나 자동차와는 다르다. 동력은 오직 나 뿐. 내 몸 뿐.


산책은 어딘가로 가기 위해 하는 것은 아니다. 산책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 산ː책 ] 휴식을 취하거나 건강을 위해서 천천히 걷는 일.

 

 

여기서 특별히 마음에 드는 부분은 ‘천천히 걷는 일’이다. 숨 가쁘고 정신없이 뛰어가는 세상사 속에서 잠시 천천히 걷고 오겠다고 양해를 구하는 것 같다. 그래서 산책이 좋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산책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나 같은 경우는 예전에는 산책을 무척 좋아하고 즐겨했으나 아주 도심으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그리고 코로나 상황이 심해지면서 걷는 것이 여의치 않게 되었고, 걷는 일 자체에 대한 흥미가 떨어졌다.

 

그런데 최근 들어 다시 산책을 하기 시작했다. 이 푹푹 찌는 날씨에 무슨? 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어쩔 수가 없다. 창밖을 내다볼 때마다 여름은 무더위를 보상이라도 하듯, 파란 하늘로 사람을 유혹한다. 하지만 우리 집에서는 여러 건물에 막혀 하늘을 제대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여름의 보답을 제대로 확인하려면 그의 더위까지 감수해야만 한다.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늘 그 유혹에 진다. 하늘만 따라 다니는 산책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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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워낙에 운동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운동화뿐만 아니라, 일상에 접해있는 어떤 것이든 투박하게 느껴지는 것은 늘 선택에서 뒤로 밀려나게 된다. 투박한 데서 나오는 아름다움과 그것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통 마음이 가질 않는다. 그래서 여름을 제외한 계절에는 거의 로퍼나 단화를 신고, 여름에는 주구장창 샌들만을 신는다.

 

그런데 하늘에 이끌려 일어난 날은 꼭 운동화에 눈이 간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하늘이 아까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걷다보면 몇 킬로미터는 훌쩍 걷게 될 거란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 망설이다가 신발장 저 아래에 있는 운동화를 꺼내 신었다. 오랜만에 양말에 운동화까지 갖춰 신으니 발이 가볍다.

 

신이 나서 가본 적 없는 길을 가보기로 했다. 최대한 건물이 하늘을 막고 있지 않은 길로, 더 한적한 길로, 하늘을 더 잘 볼 수 있는 길로. 그렇게 얼마든지 걸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천만에, 여름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조금 걸었을 뿐인데 몸 전체에서 땀이 줄줄 나오는 게 느껴질 것이다.

 

이런 와중에 만나는 편의점은 꼭 오아시스 같다. 하지만 고민이 뒤따른다. 과연 시원한 물이 주는 행복감이 더 클 것인가, 이 날씨에 짐이 하나 더 늘어나는 괴로움이 더 클 것인가. 체력이 좋지 않은 나는 늘 후자에 지고 만다. 조금만 더 참아보자며 걸음을 마저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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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쩐지 오르막길이 나오기 시작한다. 동네 산책을 여러 번 하며 느낀 것은, 생각보다 ‘길의 끝’이 많다는 것이다. 당연한 사실 아니냐고? 글쎄. 그리고 그 끝은 보통 내가 걷기 좋아하는 소박한 동네 골목길에 있다.

 

이번 산책도 그랬다. 긴가민가한 감을 붙잡고 오르막길을 끝까지 걸었으나 나온 것은 아파트 단지였다. 뒤늦게 지도 앱을 켜보니 완전히 막힌 길이었다. 이럴 때는 허탈하지만 또 마냥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렇게 잘못 든 길이 아니었더라면 아마 절대로 와볼 일이 없었을 곳이다. 멋진 카페도 트렌디한 소품샵도 잘 꾸민 사람들도 없지만, 그냥 이곳에서 생활을 꾸려 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어느 동네든 별  다를 게 없는 분리수거장이나 아파트의 조밀한 창살, 조심성 없이 세워진 자전거를 보고 있으면, 완벽한 타인의 삶이 내 삶과 납작하게 겹쳐지는 감각이 피어오른다. 내 삶과 저 삶이 그다지 다를 바 없다는 사실에서 오는 오싹함과 평이한 안도감.


가로막길을 되돌아 나와 버스를 탔다. 집에 갈까, 조금 더 걸어볼까 고민을 하다가 문득 집 근처 영화관의 꼭대기 층에 있는 카페가 떠올랐다. 가지 않은지 좀 되었는데 이 순간에 떠오르다니. 선택지 단 하나에 전구가 켜진 것처럼 명료해졌다. 오늘 산책의 목적은 오로지 하늘을 따라다니는 것이었으니 더할 나위 없었다.

 

하늘과 가장 가까워질 수 있는 곳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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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이 틀어진 내부를 뒤로 하고 테라스 자리로 나오니 기다렸던 풍경이 있다. 산책은 어디로 가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지만, 오늘 산책의 종착지는 분명 이곳이었다. 토끼인지 백조인지 모를 구름이 눈앞에 둥글 떠다니고, 다른 쪽 하늘은 구름이 흐드러지듯 퍼져있었다.

 

한참을 멍하니 구름만을 보고 있는데 빛과 위치가 조금씩 옮겨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바람이 어느 쪽으로 불고 있는지, 구름이 어떤 모양으로 바뀌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영원히 보고 있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바다 앞이 아닌 곳에서 처음 해보았다. 하늘과 바다는 그것들을 해치는 주범인 인간이 보기에 과분할 만큼 아름답고 찬란하다.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테라스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핸드폰이나 모니터가 아닌 하늘만을 바라보고 있다.

 

고등학생 때, 창 밖 하늘을 보고 스케치북과 색연필만 든 채로 뛰쳐나왔던 날이 있다. 하늘과 나 사이 장애물이 없는 곳을 찾기 위해 뛰어 가면서, '이건 반드시 그려야해'라고 생각했었다. 모기에 이곳 저곳이 쥐어뜯긴 채로 돌아왔지만 그 날의 감각은 잊히지 않는다. 문득 터너가 떠오른다. 터너의 그림을 처음 보았던 중학생 때 이후로, 유독 아름다운 하늘을 볼 때면 꼭 터너를 생각하게 된다. 그도 이런 풍경을 보았겠지. 그래서 그런 그림을 그렸던 것이겠지.

 

하늘을 따라 나섰던 짧은 산책은 시간과 공간을 거슬러 다른 누군가의 삶과 마음을 겹쳐 보게 했다. 산책은 그래서 충분히 여행이다. 특별한 곳에 가지 않아도, 누군가와 왁자지껄하게 모이지 않아도, 혹은 그렇기 때문에 더욱 멀리, 깊이 다녀올 수 있는 가뿐하고 조용한 여행. 이번 여름, 나는 기꺼이 하늘의 유혹에 못 이긴 산책자가 되어보려 한다.

 

 

[송세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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