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삶을 읽고 음악을 듣다 - 클래식은 처음이라 [도서]

그들의 음악이 아직까지 사랑받는 이유
글 입력 2021.07.16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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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는 지금, 문서의 빈 화면을 띄워 놓고, 차이콥스키의 ⟪사계, Op.37a⟫, 6월 <뱃노래>를 듣고 있다. 클래식 음악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진 않지만 자주 듣는 작품 몇 곡이 있는데 이것이 그중 하나다. 글을 쓸 때, 책을 읽을 때, 공부할 때는 가사가 있거나 템포가 빠른 음악에는 집중력이 흐려져 가사 없는 재즈나 클래식을 틀어놓곤 한다. 차이콥스키의 <뱃노래>는 대학교 때 시험 직전에 마지막으로 암기한 부분을 상기하며 긴장을 풀기 위해서 들었던 기억이 있다. 잔잔한 강물 위에 떠다니는 배, 항해 중간에 만난 파도, 다시 잠잠해지는 물살이 연상되는 곡이다.

 

 

『클래식은 처음이라』

조현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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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네이버 오디오클립과 팟빵에서 ‘조현영의 올 어바웃 클래식’을 진행하고 있는 조현영 피아니스트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처럼 이 책도 라디오같이 혹은 자기 전에 듣는 이야기같이 편안하게 흘러간다. 책에 소개된 곡을 틀어놓고 한 챕터씩 음악가들의 인생 이야기를 들으면 어느새 10명의 음악가와 그들의 대표곡들을 만나게 된다.


 

(...) 저는 클래식을 처음 접하는 분들에게 가장 쉽게 재미있게 클래식의 진수를 알려드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지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긴 고민 끝에 제가 선택한 방법은 한 명의 인간으로서 클래식 음악가들의 인생을 반추해보면서 그들의 음악을 함께 소개하는 것이었습니다. 더불어서 그들이 어떻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시대의 한계를 극복하고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아름다운 명곡을 창작해냈는지 말하고 싶었습니다.

 

- 프롤로그 中

 

 

한마디로 이 책은 이론이 아닌 '사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음악사에서 중요한 10명의 음악가를 추려 그들의 삶을 통해 곡을 이해하는 것이다. 미술이나 음악 등 예술작품을 이해하는 데에는 만든이의 삶이 참 중요하다. 화가가 어떤 환경에서 이런 작품을 제작했는지 알고 나면 작품을 이해하기가 더 쉬울뿐더러 그 감동이 더 크게 전해지는 것처럼, 작곡가가 어떤 시기에 그런 곡을 창작했는지 알고 나면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 혹은 묻어나오는 분위기가 더 잘 와닿는다.


미술관에서 작품 설명을 읽지 않고 그림을 감상하듯 클래식 음악도 기본 정보 없이 한 번 들어보는 것도 좋다. 하지만 어느 순간 곡을 더 깊게 이해하고 싶어진다면 어려운 음악이론을 공부하기보다 이 책이 들려주는 작곡가의 삶을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하면 어떨까? 작곡가가 가난으로 불안한 시기였는지, 친구의 죽음으로 우울한 시기였는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기쁜 시기였는지 인간 대 인간으로서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보는 것이다.

 

*

 

저자는 클래식 음악이 "일상에 감동을 더해주고",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도록 도와주고",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시간을 견디는 힘을 길러준다"고 설명한다. 마치 슈퍼푸드의 효능처럼 클래식 음악이 우리의 일상을 건강하게 해 줄 것만 같다. 필자는 이 중에서도 클래식 음악이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점이 특히 흥미로웠고 그 이유가 궁금했다.

 

 

클래식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음악을 듣다 보면, 특정 작곡가의 특정 작품에 끌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왜 이 음악에 이렇게 끌리는지 생각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어떤 감정에 동요되는지 알아차리게 됩니다. 내가 모르던 나에 대해 알게 되는 순간이지요.

 

- 서문 中

 

 

필자가 놀랐던 것은, 좋아하는 작곡가 몇 명과 작품 몇 곡 있으면서도 스스로 그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누군가를 알아갈 때 상대가 좋아하는 것들을 자연스럽게 물어봤으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것의 이유를 찾아가며 나 자신을 알아갈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만 생각해보지 못한 접근이었다. 이 10명의 음악가의 삶, 그들의 작품 탄생 비화를 읽으면서 왜 내가 그 곡에 끌리는지, 사람들은 왜 그 곡을 좋아하는지 짐작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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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아실 드뷔시 (1862~1918)

“음악이란 음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음표와 음표 사이의 침묵 안에 있다."

 

 

필자가 좋아하는 음악가는 드뷔시다. 처음 ⟪베르가마스크 조곡 L.75⟫, <달빛>을 듣고선 빠져들었다.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된 ⟪영상 1집, L110⟫, <라모에 대한 존경>과 ⟪영상 2집, L.111⟫, <황폐한 사원에 걸린 달>도 참 좋았다.

 

드뷔시의 곡은 어딘가 특이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다. 드뷔시 이전의 음악에 비해 자유로운 선율과 몽환적인 분위기가 좋아서 그의 음악을 찾아 듣곤 했다. 저자의 설명을 읽고나서야 드뷔시 음악의 특징이 작곡가 본인의 기질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사랑에 있어서도, 음악에 있어서도 자유로웠던 드뷔시는 기존의 틀을 과감하게 깨버리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우리가 생각하는 예술가다운 예술가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점이 나처럼 드뷔시를 좋아하는 이들이 그의 곡에 끌리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생각했다. 전통과 이론보다 느낌과 뉘앙스를 전달하고자 했던 그의 음악이 듣는 이에게 여러 감정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인간의 감정은 시대를 초월하여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만큼 보편적이다. 그리고 예술은 각각의 방식으로 여러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그중에서도 클래식 음악은 악기, 곡의 멜로디와 리듬, 화성 등 여러 요소를 통해 그것을 전달한다. 이 책에 등장한 지난 시대를 살았던 음악가들도 사랑과 이별을 하고, 탄생과 죽음을 지켜보았으며, 때로는 자신의 능력을 의심했고, 때로는 절망했지만, 그런 모든 감정을 음악으로 승화시켰다. 고전 문학과 고전 영화처럼 클래식, 즉 고전음악의 매력은 인간으로서 맞닥뜨리는 상황과 감정에 몇백 년이 흐른 지금도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이들의 음악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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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묘사하는 음악가들의 성격을 엿보는 재미도 있다. 꾸준하고 성실한 바흐, 인기 많은 아이돌같은 리스트 등 본인과 비슷한 음악을 창작한 이들이 있는 반면 당당하고 자신감 넘쳤던 베토벤, 예민하고 여렸던 차이콥스키처럼 몰랐던 면모를 알게되기도 한다. 차이콥스키의 <뱃노래>를 다시 들으며 '유리로 만든 아이'같았던 그를 떠올려 보기도 한다.

 

*

 

이 책에 기대할 수 있는 소득 중 하나는 이처럼 유명한 음악가들을 그저 음악책에 나오는 먼 옛날에 존재했던 전설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 자체로 보게 된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기에 그들의 작품을 고리타분한 무엇이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감동을 선사하는 살아있는 음악으로 느끼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클래식 음악의 매력과 음악가의 매력을 함께 느낄 수 있는 『클래식은 처음이라』를 많은 클래식 입문자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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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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