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마담 보바리'를 읽고, 몽상가는 권태에 잡아먹힌다 [도서/문학]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
글 입력 2021.06.22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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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마담 보바리>의 줄거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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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샤를 보바리' 라는 한 남자가 있다. 그는 헬리콥터 맘인 어머니의 치맛자락에 휩싸여 의사라는 직업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선택했다. 첫번째 결혼도 어머니가 골라준 나이가 많은 미망인과 했다. 질투가 많은 부인과의 고루한 결혼 생활을 하던 어느 날, 샤를은 루오 영감 집에 왕진을 갔다가 아름다운 그의 딸, '엠마'와 사랑에 빠진다. 마침 운이 좋았던지 부인이 각혈로 죽어 엠마와 결혼을 할 수 있게 된다. 엠마는 주머니 사정에 맞지 않게 화려한 결혼식을 원했다. 엠마는 허영심이 많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동경했던 것이다. 아내를 무척이나 사랑했던 샤를은 그녀에게 최대한 맞추려고 노력한다. 샤를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엠마는 재미없는 결혼 생활에 만족하지 못한다.

 

 

 

'엠마'를 잡아먹은 권태



 

"그녀는 우연의 다른 조합으로 딴 남자를 만날 수 없었을까를 자문했다. 그러고는 그 일어나지 않은 사건들, 그 달라졌을 삶, 알지 못하는 그 남편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그녀의 삶은 마치 빛들이창이 북쪽으로 나 있는 다락방처럼 차가웠고, 소리 없는 거미와도 같은 권태는 어둠 속에서 그녀의 마음 구석구석에 집을 짓고 있었다."

 

 

엠마는 학창시절에 동화 속 '백마 탄 왕자님'이 자신을 구하러 와주기를 꿈꾸는 인물이었다. 이미 아버지와 살았던 시골의 조용한 전원 생활에 진절머리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낭만적일 것이라 생각했던 샤를과의 결혼 생활 또한 따분하기만 했다.

 

엠마는 '거리의 소음과 극장의 웅성거림과 무도회장의 눈부신 광채'가 있는 도시에서 살고 싶어 했다. 이러한 엠마에게 재미없는 결혼 생활은 고난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소리 없는 거미와 같은' 권태는 그녀를 점점 갉아먹기 시작했다. 사치스러운 생활에 대한 선망은 귀족이 초대한 무도회에 다녀오면서 더 심해진다.


 

"얼마 후면 단념해야 할 이 호화로운 생활에 대한 환상을 연장하기 위해 그녀는 잠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보비에사르에 갔던 일은 마치 폭풍우가 종종 하룻밤 사이에 산을 만들어 놓은 커다란 균열처럼 그녀의 삶에 구멍 하나를 만들어 놓았다."


"그녀는 생활의 모든 쓴맛이 접시에 차려져 나오는 것 같았고, 삶은 고기에서 올라오는 김 냄새를 맡으면 영혼 저 깊숙한 곳에서 또 다른 구역질 같은 것이 울컥 솟아 올라오곤 했다."

 

 

무도회가 끝난 밤, 엠마는 얼마 후면 사라질 신기루와 같은 호화스러운 생활을 조금이라도 눈에 더 잠기 위해 잠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일생일대에 한 번 찾아온 기회를 조금이라도 더 누리기 위해서였다.

 

일상으로 돌아온 후에도 무도회에 갔던 일은 엠마의 삶에 균열을 만들어 놓았다. 그녀가 무도회에서 잠시나마 맛보았던 달콤한 환상은 일상을 더 구차하게 보이게 만들었다. 무도회에 대한 추억은 그와 동떨어진 공간에 사는 엠마에게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생활의 모든 쓴 맛'과 '구역질' 이라는 단어가 엠마의 일상을 둘러싼 절망과 좌절을 잘 말해주고 있다. 엠마는 현실과 환상 사이에서 오는 괴리감 속에 점철되었다.

 

 

 

'엠마 보바리', 파멸에 이르다


 

샤를은 우울증에 걸린 아내를 위해 조금 무리해서 '용빌'로 이사한다. 여기서부터 권태는 브레이크가 고장난 기관차처럼 폭주하기 시작했다. 용빌에서도 엠마는 자신이 품은 환상에 도달하지 못해 감정적 배출구를 찾았는데, 바로 불륜을 저지르는 것이었다.

 

첫번째 불륜 상대는 바람둥이 기질이 넘치는 거친 남자, '로돌프'였다. 매력넘치는 로돌프와의 외도는 짜릿했다. 하지만 그는 사랑의 도피를 하기로 한 약속을 깨고 잠적해버린다. 로돌프는 진심으로 사랑했던 엠마는 크나큰 상실에 빠진다.

 

이후에 남편에게는 피아노 레슨을 간다는 핑계를 대고 젊은 서기인 '레옹'과 은밀한 만남을 즐기지만 그마저도 금방 싫증이 난다. 그 와중에 엠마는 허영과 사치에 빠져 큰 빚을 진 상태였다. 그녀는 눈더미처럼 불어가는 빚에 허덕이다가 음독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샤를 또한 아내가 진 빚 때문에 고생만 하다가 병에 걸려 죽는다.

 

 

 

보바리즘


 

'보바리즘'은 프랑스 철학자 고티에가 <마담 보바리>의 엠마의 성격을 따서 만든 말이다. 국어사전에 '인간이 자신의 환영(幻影)을 좇아 자기를 속이고 자기를 실제와는 다른, 분수 이상의 존재로 생각하는 정신 작용'이라고 나와있는데, '엠마 보바리'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엠마는 현실과 이상을 구분하지 못하고 자신의 삶도 환상적인 것으로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현실은 엠마의 뜻을 허락하지 않았다. 권태에 빠진 그녀는 신경질적인 변덕쟁이로 변한 것은 물론이고 불륜을 지루한 일상에서의 도피처로 선택했다. 진부함이 간통 속에서도 반복되는 모습을 발견한 엠마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위안을 얻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권태의 반복'은 엠마를 파멸로 치닫게 만들었다.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


 

<마담 보바리>를 읽으면서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허영심이 지나쳤던 엠마는 일상이 지루하고 무미건조하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이 엠마를 권태의 상태로 몰아넣었고, 이 권태는 그녀로 하여금 환상과 환멸 사이에서 서성이게 했다.

 

사실 가정 형편이 그리 가난했던 것도 아니었다. 남편인 샤를이 의사였기 때문에 그럭저럭 생계를 유지할 만큼의 돈은 있었다. 하지만 엠마의 기준에서 남편의 수입으로는 호화스러운 생활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만족하지 못했던 것이다. 권태에 빠진 것도,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에 이른 것도 모두 엠마가 자신의 손으로 자초한 일이다.

 

현실감각을 지닌 사람은 엠마처럼 환상으로 도피하지 않고 현실에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견디기 힘들다고 도망친 곳에는 내가 원하는 것이 없다. 환상은 우리가 현실에서 간절히 바라보고 있을 때만 아름다고 낭만적이다.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다면 잠깐은 그럴 수 있다. 때로는 이것이 맞는 방법일 때가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줄곧 천국이라고 믿었던 곳이 또다른 지옥일 수도 있으며, 더 냉담하고 치열한 경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더 높은 단계로 도약하려는 자세는 삶을 발전시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환상과 도달할 수 있는 이상을 잘 구별할 수 있는가이다. 도전하고자 하는 목표가 현실과 어느정도 타협이 되었는지,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명확한 계획을 세웠는지 등 구체적인 청사진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무분별한 도전은 엠마 보바리처럼 환상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만들 것이다.

 

 

[최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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