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궁을 내 집처럼 드나들기 - 아주 사적인 궁궐 산책

김서울의 궁궐 에세이
글 입력 2021.06.14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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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풍경

 

 

서울에는 조선의 다섯 궁궐이 있다. 나는 한 번도 궁을 잘 안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고궁과 꽤 가깝게 지내온 것 같다. 생각해보니 내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도 경복궁 경회루를 배경으로 한 사진이다. 서울의 궁궐은 조선 왕조의 권위를 보여주는 건물이지만, 내게 궁은 유적보다는 공원에 가깝다.

 

특히 시내에 있는 덕수궁은 약속 시간이 남으면 잠시 들어가서 시간을 보내는 장소, 국립현대미술관에 방문한 김에 둘러보는 장소다. 중고등학생 때는 궁을 자주 보지 못하니 궁에 갈 때면 브로셔를 꼼꼼히 읽으며 건물의 쓰임새를 익혔지만, 대학에 와서 서울을 열심히 돌아다니게 된 후로 궁은 좀 더 편하고 익숙한 장소가 됐다.

 

그래도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궁은 어려운 장소일 것이다. 조선 왕조 권위의 상징이기도 하고, 역사 공부를 할 때 자주 등장하는 중요한 공간이다 보니 각 궁의 역사와 쓰임새를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공부를 할 결심은 서지 않는다면, 김서울의 에세이 《아주 사적인 궁궐 산책》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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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서울은 《유물즈》, 《뮤지엄 서울》 등 박물관과 유물을 재치 있는 시선과 가벼운 문체로 담아낸 책을 펴냈다.

 

저자의 SNS 팔로워이자 《유물즈》를 구하고 싶었지만 못 구한 사람으로서 내게는 《아주 사적인 궁궐 산책》의 출간 소식이 아주 반가웠다. 조선 고궁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에는 망설여지지만, 궁을 더 알아가고 싶은 나 같은 사람에게 딱 좋은 책일 것 같아서다.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지극히 주관적인 궁궐 취향 안내서’에서는 창덕궁, 경복궁, 덕수궁, 창경궁, 경희궁 다섯 궁을 하나씩 소개한다. 2장 ‘궁궐의 돌’은 말 그대로 궁궐의 바닥, 기둥, 장식, 조각 등에 쓰인 돌을 소개한다.

 

3장 ‘궁궐의 나무’는 전각에 쓰인 목재와 꽃나무 등을 소개한다. 4장 ‘궁궐의 물건’은 궁의 모습이 담긴 그림과 궁에서 사용하던 왕실 용품 등을 통해 궁궐에서의 삶을 소개한다. 궁의 모습을 담은 사진도 함께 배치되어 직접 궁을 돌아다니며 보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저자는 궁의 구석구석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전각의 배치와 각 전각의 기능을 공부할 때는 못 보고 지나쳤던, 궁의 풍경을 다채롭게 만드는 작은 돌과 나무에도 주의를 기울인다. 궁 바닥에 깔린 돌을 밟아보면 이상한 기분이 들곤 했다. 이 돌이 수백 년 동안 한 자리를 지키면서, 궁에서 일어난 일들을 모두 지켜봤을 거라는 게 신기하고, 왕실 사람들이 밟았던 돌을 내가 밟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지금까지 몇 명의 사람이 이 돌을 밟았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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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의 전각

 

 

책에는 궁에 쓰인 돌에 관한 이야기도 등장한다. 궁궐 건축물을 지을 때는 내구성이 강하고, 습기에도 강한 화강암을 썼다고 한다. 화강암은 무늬도 고르고 오염에도 강해서 아주 좋은 건축 재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면 그 돌을 손수 다루는 석장은 화를 낼지도 모르겠다”고 저자는 쓴다. 너무 단단해서 세밀한 세공은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니 화강암으로 조각한 불상과 석수는 대리석 조각보다 더 섬세한 노력이 필요한 셈이다.

 

이 대목을 읽고 나서 고궁의 돌짐승들 사진을 보니, 단단한 돌로 어떻게 저런 둥글고 귀여운 동물을 조각했는지 놀라웠다. 예전에는 궁에서 석수를 보면 궁을 지키는 동물인가 보다, 하고 지나갔는데 이제는 땀 흘리며 동물을 조각했을 석공의 모습까지 떠오를 것 같다.

 

궁궐에서 돌만큼이나 자주 볼 수 있는 것이 나무다. 궁을 걷다 보면 정말 눈을 돌리는 곳마다 나무가 있는 걸 볼 수 있다. 책에서도 언급되는 창덕궁 홍매화는 그 풍경을 보기 위해 궁을 찾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런 꽃나무는 대부분 조선 후기에 심은 어린 나무들이라고 한다.

 

조선 초기에는 살구나무, 감나무, 앵두나무나 회화나무 등을 많이 심었다고 한다. 뽕나무 또한 오디 열매가 열리고, 누에고치를 생산하는 양잠업에 쓰이는 나무였기 때문에 궁궐 안에 심은 것은 물론이고 국가 차원에서 뽕나무 심는 것을 적극적으로 권장했다고 한다.

 

창덕궁과 창경궁의 경계 근처에서도 400년이 넘은 뽕나무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창덕궁, 창경궁을 여러 차례 둘러보면서도 400년이 넘은 뽕나무가 있는 줄은 몰랐다. 왕실 사람들이 먹었을 오디 열매가 지금쯤 나무에 열려 있을 거라 생각하니 마냥 신기하다.

 

친구들과 궁에 가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여기가 내 집이면 얼마나 좋을까?”다. 철저히 현대인의시선으로 바라본 궁은 서울 시내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고, 교통이 편리한 데다 경치까지 좋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소음으로부터 해방되기까지 하는 최고의 집이다. 귀여운 돌 조각들과 우아한 기와, 계절의 변화에 맞춰 옷을 갈아입는 나무들과 함께 사는 삶은 상상만 해도 행복할 것 같다.

 

《아주 사적인 궁궐 산책》을 읽고 나니, 이렇게 아름답고 볼거리가 많은 궁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궁에 가면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구석구석을 좀 더 열심히 보게 될 것 같다.

 

 

[도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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